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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 August 2007

노무현이 위대한 이유

노무현이 위대한 이유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절실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경제 문제, 양극화 문제, 신자유주의 문제 들을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정치 개혁을 말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환경과 복지 문제 들을 얘기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이 문제들이 잘 풀리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언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 사회의 근본 모순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 엄청난 언론 권력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언론 독재 시대이다. 군부 독재 시절, 부패한 독재 권력에 빌붙어 기생했던 그 언론들이 민주 정부 10년째인 지금 민주화의 열매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무임승차도 이런 무임승차가 있을까. 무임승차만도 염치없을 일일텐데, 이제 독재 권력이 사라진 자리를 그 염치없는 언론들이 꿰차고 들어섰다. 선출된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조차도 그 언론들의 횡포에 다구리를 당하는 세상이니 일반 국민들이야 오죽할까.

전두환이 언론통폐합을 할 때 꼬리내리고 숨죽이고 있던, 그리고 그 앞에서 딸랑이를 흔들었던 이들이 기자실 통폐합에는 언론 탄압이라며 난리를 치고 있다. 40여개 언론사 편집국장들까지 단체 행동에 나섰으니 그들의 특권의식이 뼈 속까지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론 권력은 이미 정치 권력을 넘어섰다. 지금 언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은 대통령이나 정치 집단이 아니다. 다만, 자본과 언론 사주들 뿐이다. 지금의 언론들은 스스로 권력이 되었으며 스스로 정치 권력도 창출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러한 특권 의식은 비단 수구 언론들 뿐만 아니다. 자칭 진보라는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조중동이 이명박 캠프의 총사령탑이고 오마이뉴스가 문국현의 나팔수가 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이러한 언론들의 가장 큰 폐해는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상식과 가치를 전도시킨다는 데에 있다. 자기들의 이익과 맞지 않을 경우에는 그것이 아무리 옳은 방향의 의견이나 정책이라 할지라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무력화시킨다.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이명박의 온갖 비리 의혹에는 눈 감으면서 대통령은 처 20촌까지 뒤지는 자들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말도 안되는 이데올로기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여론을 조작한다. 어떻게 이명박 같은 이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나라가 됐단 말인가. 음주 운전 기록만 있어도 고위공직자로 임명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위장 전입을 비롯해서 부동산 문제, 주가 조작 문제, 세금 문제 등등 수없는 비리로 얼룩진 자는 언론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자의 주민등록초본을 떼어 본 사람들은 줄줄이 구속이 되고.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있는가.

우리나라의 현대 정치사에서 언론을 탄압한 권력자들은 몇 있었어도 언론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운 정치인은 오직 노무현이 유일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마지막 과제로 언론 개혁을 빼들었다. 그들이 “언론 자유”이라는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니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기자실 없애는 것 하나도 (이것은 상당히 지엽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엄청난 저항에 맞부딪히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은 말한다.

언론들이 사실은 제가 보기에 상당히 막강한 특권들을 누리고 있더라는 것이죠. 심지어 인사에 대해서도 발언할 만큼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근거가 되는 제도들 몇 가지를 끊어버린 것이죠. 그때 기자실을 폐지시켰습니다. 그런데 다 폐지된 줄 있었는데 몇 년 지나고 보니까 아직 그루터기가 남아 있어요.

[중략]

자기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는 어떻게 하냐, 그래도 그 공론의 장에 모두를 다 올려놓고 공정하게 뛰게 해줘야 합니다. 그럼 노무현 하고 싶은 얘기도 실어줘야 될 것 아닙니까? 전 세계에서 기자실을 운영을 하고 있는 나라가 과연 몇 개국이나 되며, 그 기자실에 대한 선진국 기자들의 평가는 어떻게 나와 있으며, 사무실 출입에 대한 원칙은 어떻게 돼 있으며, 기자가 공무원을 인터뷰하려고 할 때 거치는 절차가 어떻게 돼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주장하는 문제에 대해서 같이 내놓고 같이 갑론을박하고 이해 관계가 없는 제3자 그리고 이 사회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판단하게 해줘야 될 것 아닙니까. 전혀 안 합니다. 그들의 사유물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디 가서라도 이 말을 해야겠는데 말할 데가 없습니다. 이 말이 보도가 될까요.

[중략]

저는 소신대로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소위 개혁을 하려고 했고, 서로 공생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니까 옛날에는 편을 갈라서 싸우던 언론이 저한테 대해서는 전체가 다 적이 돼버렸어요. 매우 중요한 얘기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PD연합회 20주년 축사>

정말 많은 일을 해결한 노무현 정부가 이제 언론 독재에 맞섰다.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을 일삼아 우리 사회 정상적인 여론이 공론화되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상식과 가치를 전도시키는 쓰레기 언론들을 청소하지 않고 우리는 이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에 언론 개혁없이는 정치 개혁, 양극화, 교육 문제 등의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토론과 정책을 수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과 대언론 정책을 지지한다. 노무현만이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모든 후보들 (이명박 빼고) 은 자기들의 언론관과 언론 정책을 밝혀야 한다. 특히 민주신당의 후보들과 독자 출마를 선언한 문국현 후보는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다. 언론에 대한 견해가 후보들의 옥석을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노무현의 철학과 정책을 계승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이런 언론을 견디느니 차라리 탈레반을 견디겠다

이런 언론을 견디느니 차라리 탈레반을 견디겠다

아프간 피랍 사태가 정부의 노력으로 잘 마무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언론이 한마디씩 토를 달고 있다. 휴가까지 반납하며 사태해결을 위해 노심초사한 대통령과 공무원들의 노력에는 애써 눈을 감으면서 말도 안되는 논리와 프레임으로 정부를 공격한다.

자, 수구 보수 신문들부터 보자.

“국제사회 원칙을 지키기보다 발등의 불 끄기에 급급한 인상을 남겼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책임 연구원은 29일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수습하면서 외교적 손익을 따져볼 때 한국은 국제적 신뢰와 국격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인질은 석방됐지만 ‘비싼 수업료’ 지불, 중앙일보]

납치가 일어난 지역의 정부를 제쳐둔 채 납치범과 직접 협상을 벌인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앞으로 여러 나라가 무장세력에 항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독일 슈피겔은 “납치를 부추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인질 구했지만 납치 근본 해결 못해, 동아일보]

“광(光) 나는 것은 청와대가, 껄끄러운 것은 외교통상부가 발표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류 중인 한국인 인질 19명의 전격 석방합의 사실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명의로 발표된 배경을 놓고 대선을 겨냥한 ‘생색내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생은 외교부가 하고 생색은 청와대가?, 서울경제]

납치된 사람들을 구해 오니, 이제 한다는 소리가 국제 사회의 원칙을 못지켜 국격에 상처를 받았단다. 직접 협상을 벌인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 정말 어이없지 않은가.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테러 집단과 직접 협상을 하지 않으면서 납치된 사람들을 전원 무사히 구해왔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프간 정부나 미국은 탈레반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직접 협상” 말고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만약 매일 한 사람씩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국제적 관행을 지키기 위해 탈레반과 직접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경우 이 쓰레기 언론들은 직접 협상하라고 매일 정부를 다그쳤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국제적 원칙이 무슨 소용이냐고 하면서.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더욱 웃긴 것은 인질 석방 발표를 청와대가 했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대선을 겨냥한 “생색 내기”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의 잘난 언론들은 구제 불능이다. 이들은 예수나 부처가 와도 구제가 안되는 족속들이다.

그렇다면 자칭 진보 언론들의 보도는 또 어떨까. 오마이뉴스의 윤똑똑이 손석춘이 또 나섰다.

고 김선일이 참혹하게 숨졌을 때 경고했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남은 인질이 모두 풀려나기로 합의된 오늘, 거듭 진지하게 당부한다. 이라크에서는 자주적 결정으로 철군해야 옳다. 그것이 또 다른 참극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침략전쟁 파병으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스스로 높일 길이다.

[인질 석방을 환호만 할 수 없는 까닭, 오마이뉴스]

손석춘은 이 납치사건이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은데, 그것은 아니다. 이번 납치 건은 아프가니스탄 파병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파병을 안 했더라도 샘물교회의 단기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봉사라는 이름의 선교 활동을 했다면 역시 납치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의 책임은 파병을 한 정부가 아니라 정부의 만류에도 굳이 아프가니스탄 선교를 떠난 교회 측에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아니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원해서 이라크에 파병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억측일 뿐이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한겨레 또한 사설에서 횡설수설하면서 결론은 이라크 철군이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려면 무엇보다 명분 있는 외교가 전제돼야 한다. 사실 한국은 아프간에 지금까지 군 병력을 남겨놓을 이유가 없었다. 이라크 파병도 처음부터 명분이 없었다. 정부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이번 사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비상시의 외교력은 평소의 외교 행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마련이다. 한국 외교는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한국 외교 현주소 보여준 아프간 인질 사태, 한겨레]

정부의 노력과 성과를 흔쾌히 칭찬하지 못하고 어떤 식으로든 흠짓 내려하는 한국의 언론들. 그들에게는 기자실이라는 떡고물이 더 중요하겠지. 탈레반보다도 더 극악스러워 보이는 언론들이다. 아, 정말 이런 언론들을 견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프간 사태 해결의 최고 공로자는 ‘한국 언론’

아프간 사태 해결의 최고 공로자는 ‘한국 언론’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사람들이 모두 풀려났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일단 큰 희생없이 사건이 마무리된 것은 잘 된 일이다. 40여일 간 납치되었던 사람들도 삶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과 종교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 사건은 그들에게 내린 하늘의 선물일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들은 좀 더 겸손하고 다른 종교를 존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을테니. 뭐, 아니면 말고.

많은 국민들은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들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시했던 우리 정부는 “테러 집단과의 직접 협상”이라는 꺼림칙한 전술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제 사회의 비난의 목소리를 각오하고 “철 없는”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정부가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은 평가받고, 칭찬받아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 해결의 숨은 공로자는 따로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그 잘난 언론들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단 한 명의 기자도 사건의 현장인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 정부 요청을 받은 아프간 정부가 비자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한국의 기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것은 사태 해결에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연합뉴스 발로 한겨레에 보도된 기사는 아프간 사태의 최대 희생자는 ‘한국 언론’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언론들의 입장이고, 피랍자나 그들의 가족, 국민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언론들이 직접 아프간 땅을 밟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그들이 아프간에 가서 쏟아냈을 법한 그 어마어마한 가공의 왜곡 기사들만 상상하면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당장 사태 해결이 된 후언론들이 내놓는 기사들을 보라.

정부 초기대응 미숙… “희생 불렀다” [YTN]

외교적 개가인가 … 테러집단과 타협인가 [중앙일보]

‘이면합의’ 있나 [연합뉴스]

탈레반 ‘몸값’ 포기했을까? [연합뉴스]

한국 외교 ‘반성과 새출발’ 계기 [연합뉴스]

이런 언론들이 협상이 진행되는 아프간 현지에 가서 직접 취재한답시고 협상팀을 비아냥대는 추측성 기사를 마구 쏟아냈다면 아마 대부분의 피랍자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열받은 탈레반이 기자들까지 납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과 기자들이 보인 그 자제력에 나는 고개 숙인다. 당신들의 그런 노력이 21명의 목숨을 건진거나 다름 없다. 당신들이 맨날 “무능”하다고 욕하는 참여정부는 당신들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해결한다.

그냥 외신들 (비록 오보라도) 받아쓰기나 하면서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 당신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대통령 후보는 기획 상품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대통령 후보는 기획 상품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의 언론들 (물론 대부분은 쓰레기이지만) 은 대통령 선거라는 게임에 감독으로 데뷰하기 시작했다. 조중동이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것이야 다들 아는 사실이고, 이번 대선에서도 이명박을 적극 밀고 있다. 아니 그냥 미는 정도가 아니고, 거의 일거수일투족을 코치하고 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제 소위 진보 언론이라는 오마이뉴스까지 가세하고 있다. 물론 오마이뉴스가 미는 문국현이라는 인물은 이명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인생을 가진 인물이다. 인정한다. 그가 가슴 따뜻한 성공한 경영자라는 것 인정한다. 오마이뉴스의 정치적인 노선이 문국현과 같다면 문국현 지지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보이는 행태는 도가 지나쳤다. 지난 주부터 연일 문국현 기사를 탑에 올려 놓고 문국현 띄우기를 기획적으로 하고 있다.

처음 한두번이야 뭐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갔지만, 이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지금 보이는 오마이뉴스의 행태는 조중동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쌍둥이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오마이뉴스 편집국은 이런 식의 행위가 문국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그들의 수준은 조중동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지향이 좀 다를 뿐이지.

지금 오마이뉴스는 이수만의 SM 사단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왜 언론이 대선 후보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매니저가 아니라면 문국현 캠프의 기관지라도 된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문국현을 팔아 장사를 하자는 것인가?

우리나라 언론들이 비겁한 이유는 할 짓들은 다 하면서 정작 지지선언은 안 한다는 것이다. 대선이 가까워오면 미국의 언론들은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 다 밝힌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대선이 개입하는 일은 없다. 다만 철저한 검증과 사실 보도를 통해 유권자들의 판단을 도울 뿐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겉으로는 중립인 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각 캠프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이것이 언론의 자세인가? 그럴거면 차라리 공개적으로 본색을 밝히기라도 하든지.

오마이뉴스는 문국현을 제 2의 노무현으로 만들어 보려 하는 모양이다. 내 단언하지만 문풍은 없다. 문국현은 지금의 수준으로는 노무현을 쫓아갈 수 없다. 그는 아직 용기를 보여주지 못했고,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노무현이 2002년 단지 경선에서 이겨 노풍을 만든 것이라고 보는가? 아니다. 그런 노무현이 되기까지 그에게는 10년 이상의 도전과 좌절이 있었다. 그런 토대 위에서 2002년 노풍이 생겨난 것이다.

문국현이 단지 두어 달만에 노무현의 경지에 오르려는 것은 과욕이다. 마치 유치원생이 대입 수능을 보는 꼴이라고나 할까. 문국현이 훌륭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아니다. 그의 최선의 전략은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팀에 들어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초심을 많이 잃었다. 지금은 조중동의 또다른 인터넷 버전으로 퇴락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대통령은 기획 상품처럼 두달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신차리시게. 오마이뉴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한 법인 걸 아직도 모르시겠나. 그냥 문국현을 가만 놔두라구.

난생 처음 박사모의 눈물에 공감하다

난생 처음 박사모의 눈물에 공감하다

이미 지난 일이고 별 관심도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의 승자는 이명박이 아닌 박근혜다. 박근혜는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당원 투표에서 신승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뒤져 이명박에게 후보 자리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여론조사가 이번 경선의 승자를 결정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경선은 민주주의 형식을 빌어 당원 투표를 했지만 결정은 여론조사가 했다. 여론조사가 민주주의의 절차를 뒤집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과학의 이름을 빈 사기”라 할 수 있다. 설문조사를 단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설문의 문항을 어떻게 만들고, 순서를 어떻게 하고, 표본을 어떻게 추출하고, 응답률을 어떻게 조정하고, 빠진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고, 데이터 분석에 어떤 기법을 사용하는가 등등 사실 단계단계마다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표본 추출 방법, 표본 오차 해석, 응답률 등을 무시한 여론조사 결과로 한 정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이것은 여론조사 업체가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꼴이다. 한나라당의 정당 민주주의는 결국 여론조사 업체 선정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만약 박근혜가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아니 박근혜 진영의 어떤 인사라도 여론조사의 맹점을 알고 있었더라면 이번 경선의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숫자가 뿜어내는 객관이라는 마력에 사로잡혀 여론조사의 포로들이 되버린 정치인들. 그냥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그것도 대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숫자일 뿐이다.

때문에 박사모의 식을 줄 모르는 분노가 지극히 정당해 보이며, 난생 처음으로 그들의 눈물에 공감하고 말았다. 이번 한나라당의 여론조사에 의한 경선 결과는 개혁진영에 있어서는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보다는 이명박이 훨씬 상대하기 쉽지 않나.

여론조사는 그냥 한 순간의 경향을 파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절대 맹신해서는 안된다. 여론조사의 결과로 한 정당의 후보를 뽑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도 무식한 짓이다. 이런 행위는 이번 한나라당의 경선으로 끝내야 한다.

두 번이나 대선에 실패하고도 한나라당의 자업자득은 계속되고 있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아직은 문국현보다 유시민, 이해찬, 한명숙이다

아직은 문국현보다 유시민, 이해찬, 한명숙이다

오마이뉴스가 문국현에 올인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대표 오연호는 김헌태라는 여론조사 전문가의 입을 빌어 그들 또한 김헌태와 마찬가지로 문국현에 올인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하기야 조중동이 이명박 같은 이를 대통령 만들려고 발벗고 나섰는데. 살아 온 이력으로 봐서 문국현은 이명박과는 비교가 안되는 인물이다. 문국현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예의가 있는 사람이다. 그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보여 준 리더십과 성과는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우리 경제계에 좋은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지지를 아직은 유보한다. 문국현은 유능하고 인간적인 CEO 그 이상은 아니다. 그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업의 수장으로서 일을 잘 꾸려 왔지만, 나라의 대표로서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은 경험이 전무하다. 게다가 나는 그의 팀이 누구인지 알 지 못한다. 단기필마로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없지 않은가.

문국현이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이 되고자 했다면 더 먼저 움직였어야 했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국가 경영에 대한 경험을 쌓든지 아니면 보궐 선거라도 출마해서 그의 능력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도 아니었으면 민주신당의 경선에라도 참여해서 그가 기성 정치인들을 어떻게 요리할 수 있는지 실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그는 넘어서지 않고 피했다. 극복하지 않고 우회했다. 지금의 문국현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지금은 문국현보다는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이다. 이 세 사람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은 한 몸이다. 세 사람은 이명박을 꺽기 위해서 변신 합체할 것이다. 셋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지만 결국 이 세 사람이 차기 정부를 이끌 것이다. 노무현이 뿌려 놓은 씨앗을 그들이 거둬들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최악의 후보를 선택했다.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고 후보가 되었다면 한나라당이 정권을 가져갈 확률이 거의 100% 였을 것이다. 박근혜가 후보가 되었다면 정권 교체 확률이 적어도 70%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으로 한나라당은 정권을 가져갈 수 없다. 이명박은 지난 대선 후보인 이회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구 보수 세력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 후보였다는 이회창으로도 한나라당은 두 번이나 실패했다. 아무리 조중동의 막강한 지원사격이 있다 하더라도 이명박으로는 힘들다.

나는 문국현이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과 한 팀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정권을 재창출하길 바란다. 그 팀 속에서 문국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마음껏 보여 달라. 그 팀 속에서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라. 그런 연후에 나라의 대표로 나서길 바란다. 내가 지금 노무현의 열렬한 지지자이듯이 그 때에는 당신의 열렬한 지지자가 될 것이다.

문국현이 오연호나 김헌태의 “피를 끓게” 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아니다. 문국현의 선택을 지켜 볼 것이다.

화려한 휴가와 일해공원

화려한 휴가와 일해공원

5.18 광주 민주 항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는 그 흥행 성적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광주 민주 항쟁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드라마로 덧칠되어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고, 본질적인 접근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그런 아쉬운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광주 항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 (비록 돈을 벌기 위한 상업 영화라 할 지라도) 가 만들어지기까지 27년의 세월이 걸렸다. 27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80년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장본인은 “호주머니에 29만원 밖에 없다”며 그 뻔뻔스런 얼굴을 쳐들고 있다. 그의 고향 합천에는 그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 들어섰다. 전사모라는 인터넷 카페에는 14000 여명의 회원들이 각하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80년 광주 민주 항쟁을 “광주 사태”라 부르고 망월동 묘지에서 박장대소하는 사람은 이번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화려한 휴가>를 일해공원에서 상영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마스크를 쓴 전사모와 합천 군청의 방해는 우리나라의 천박한 역사 의식과 도덕성의 나락을 보여준다. 참으로 잔인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단지 소수의 꼴통 세력이 아니다. 광주를 “폭도”라 불렀던 언론들이 버젓이 일등 신문으로 불리는 곳에서 이들은 단지 소수의 정신 나간 사람들이 아니다. 그 살인마가 세운 정당이 50% 가까이 지지를 받고, 그 당의 대선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상황에서 이들은 단지 소수의 네오나찌들이 아니다. 이들은 친일파와 독재 세력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부도덕한 주류의 전위대인 것이다.

80년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의 슬픔과 분노는 여전히 위로받지 못하고 있다. 상처는 덧나고 아픔은 깊어진다. 독재자이자 살인마를 기념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광주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그 상처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에 남아 우리를 끊임없이 일깨울 것이다.

<화려한 휴가>를 보며 가장 가슴 미어졌던 것은 영화보다 “80년 광주”가 백만 배쯤 더 슬프고 아팠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광주의 슬픔과 분노를 감당하기 어렵다. 광주가 어서 위로받을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되길 바란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8할은 광주의 몫이다.

노무현 블로그가 되어 버리다

노무현 블로그가 되어 버리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열 달 남짓 되었다. 처음 의도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건강”과 “IT”에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가끔 내가 읽었던 책이나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간략한 감상 정도를 적어 보고 싶었다. 덧붙여 내가 좋아했던 시들을 다시 베껴 적고 읽고 싶었다. 순전히 나 개인을 위한 공간으로 블로그를 운영할 작정이었다. 내 주위의 지인들한테도 이 블로그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지금도 내가 이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채 다섯 사람이 되지 않는다.

나의 의도는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지난 열 달 동안 나는 이 블로그에서 많은 이슈들, 특히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생각들을 거침없이 밝혔다. 그 시작은 “나는 최후의 노무현 지지자” 라는 글이었다. 작년 말에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힘들어 보일 때, 지지율이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언론들이 떠들 때 그저 묵묵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 글은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었다. 아직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 번 커밍 아웃을 하니 주저할 것이 없었다. 이름 모를 많은 분들의 공감이 힘이 되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글을 40여개 넘게 썼고, 언론을 비판하는 글도 30개 이상 썼다. 내가 썼던 절반 이상의 글들이 노무현과 참여정부, 그리고 언론에 대한 글들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리니 이 블로그는 내가 처음 의도했던 신변잡기류의 블로그에서 정치 블로그,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노무현 블로그로 변해 버렸다. 후회하는가? 아니, 후회하지 않는다. 내 개인 블로그를 노무현 블로그로 만들 만큼 그는 우리 사회에 가치있는 인물이기에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가 퇴임할 때까지 이 블로그는 노무현 블로그로 남을 것이다. 아니 그가 퇴임을 하더라도 이 땅에 “상식”과 “원칙”이 뿌리내리는 날까지 이 블로그는 노무현 블로그가 될 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자신의 블로그를 운영하더라도 이 블로그처럼 노골적으로 지지를 호소하거나 밝히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그도 꽤나 쑥쓰러움을 타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초보 블로거 딱지를 떼지 못했는데, 올블로그가 Top 100 블로거로 선정해 주셨다. 그리고 Top 100 포스트에 다음과 같은 4개의 글이 선정되었다.

12위: 노무현 정부가 성공하지 않았다구?
23위: 종부세 대상자가 “서민”이라 하는 언론들
35위: 노무현, 그는 정말 위인의 반열에 오르려는가
45위: 노무현 대통령이 홍길동인가

그동안 이 블로그에 오셔서 댓글 주시고 공감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올블로그라는 훌륭한 메타 사이트를 운영해 주신 올블로그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앞으로 좀 더 절제되고 성숙한 얘기를 써 보고 싶은데 잘 될 지 모르겠다. 아직은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한 애숭이 블로거에 불과할 뿐더러 사실 시간상 한 달에 10여개 이상 글을 쓰기가 쉽지는 않다. 그냥 블로그에 애정을 가지고 노력할 뿐이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올블로그 TOP 100 블로거 (2007년 상반기)

“파시즘이 나타났다” 진보 양치기들의 딱지붙이기 놀이

“파시즘이 나타났다” 진보 양치기들의 딱지붙이기 놀이

2002년 월드컵 때 수백만 국민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을 했다. 대표팀은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두고 내친 김에 4강까지 올랐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기뻐했으며, 행복했다. 아마 그 때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수백만의 국민들이 떼지어 응원하는 것을 아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진보 양치기들은 말했다. “파시즘의 징후가 보인다”고.

황우석 때도 그랬지만 이번 심형래의 “디 워” 논란에도 진보 양치기들은 딱지를 붙인다. 비판막는 건 파시즘 진중권을 내버려 두라고. 네티즌의 집단 항의에 대해 진보 양치기들은 언제부턴인가 편리한 딱지를 준비했다. 자신들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그냥 네티즌들은 파시스트가 되어 버린다.

딱지붙이기 놀이의 원조는 원래 극우 수구세력 아니었나. 지금도 내가 쓴 몇몇 글 (특히 노무현을 옹호하는 글)에는 여지없이 “빨갱이” 또는 “북조선에서 사주받았냐”라는 댓글이 붙는다. 극우들의 50년 전통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다. 21세기 인터넷 시대에는 진보 양치기들의 네티즌들에게 “파시스트” 딱지를 붙인다. 이쪽 저쪽의 딱지로 인해 나는 “빨갱이”가 되기도 하고, “파시스트”가 되기고 한다. 웃기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진중권의 입을 막았는가. 도대체 어떤 네티즌이 영화 주류들의 입을 막았단 말인가. 자기 하고 싶은 얘기들 다 하지 않았나. 이제 그들의 말과 글에 대해 네티즌도 한마디씩 하면 안되나? 그들의 의견이 무슨 “성역”이라도 된단 말인가.

지금 상황은 이런 것이다. 심형래라는 아이가 “SF 괴수 영화 만들기”라는 과목 시험에서 맨날 20~30점을 받아오다가 6년의 노력 끝에 40점 짜리 결과를 내 논 것이다. 이송희일이나 진중권이나 영화 평론가들은 “디 워”는 낙제이기 때문에 비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는 것이고, 네티즌들은 “10점”이 어디냐, 정말 열심히 했구나 격려해 주는 것이다. 왜? 그동안 심형래가 10점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심형래가 “우리 자식”이기 때문에.

심형래의 1차 목표는 미루어 짐작컨테 “정말 제대로 된 괴수 한 번 만들어 보자” 이것 아니었을까? 맨날 괴수 인형입고 땀 삘삘 흘리며, 넘어져 가며 찍은 조악한 공룡이나 괴수가 아니고, 정말 헐리우드 영화같은 “괴수” 같은 “괴수” 그런 것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소박한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심형래는 그 꿈을 이루었다.

정말 우리나라 영화계 주류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이라면 심형래의 성취를 올바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심형래가 제작과 CG기술에 대해 이룬 성과를 시나리오 잘 쓰는 작가와 연출력이 좋은 감독과 결합시켜 한층 발전된 SF영화를 내 놓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봉준호나 박찬욱이 감독하고 심형래가 제작하면 안되는 건가? 심형래의 영화가 40점 짜리 밖에 안되기 때문에 비평조차 할 가치가 없다며 매장시킬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 영화 이미 400만이 보았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볼 지 모른다. 당신들의 논리대로라면 비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 영화를 본 몇 백만의 관객들은 도대체 뭐가 될까. 왜 영화계 어렵다고 찌질대면서 정작 영화를 봐 주는 네티즌과 관객들을 “적”으로 만드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스크린 쿼터만 지켜지면 된다는 건지.

하나 더. 논쟁을 할 때 논리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논쟁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진중권은 40점 짜리 쓰레기 영화를 쓰레기라 얘기하는 것에 아무 문제 없다며 쓰레기 영화 한 편에 “사회가 미쳤다”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정말 좋은 논객이 되려면 논리도 정연해야 하지만 그 표현도 절제되고 정중해야 한다. 진중권이나 이송희일 같은 태도로 논쟁에 임하면 결국은 논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왜?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빨갱이” 딱지로 50년간 시달렸다. 이제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진보 양치기로부터 “파시스트” 딱지를 부여받게 되었다. 딱지 붙이기 편리하지만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왜 네티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진보 양치기들은 스스로 되돌아보기 바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했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세상이 진보들의 논리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그들도 알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들의 “겸손”한 주장을 보고 싶다.

위키피디아의 성공, 한 명의 진중권보다 4백만의 관객이 낫다

위키피디아의 성공, 한 명의 진중권보다 4백만의 관객이 낫다

2001년 짐 웨일스가 위키피디아라는 온라인 백과사전을 시작했을 때 아무도 그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다. 일반 네티즌들이 백과사전을 쓰다니, 게다가 아무런 통제도 없고 편집자도 없이. 이건 거의 21세기형 돈키호테 프로젝트라 여겨졌다. 그런데 돈키호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비아냥거리던 지식인들조차 그제서야 “집단 지성” 운운하면서 위키피디아 현상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몇몇은 위키피디아에는 쓰레기 정보만 가득하다면서 여전히 찌질댔다.

작년 네이처에서 위키피디아와 기존의 최강 백과사전이었던 브리태니커의 정확성을 비교했는데, 결과는 막상막하였다. 4000여명의 박사들이 저술한 브리태니커와 이름 모를 네티즌들이 아무 보수도 없이 “자기가 그냥 하고 싶어서” 만든 위키피디아가 거의 동등한 질의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위키피디아는 브리태니커보다 15배쯤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지금도 끊임없이 추가되고 갱신되고 있다. 브리태니커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면 적어도 2년이 걸리는데, 위키피디아의 잘못된 정보는 거의 실시간으로 수정된다.

유명한 미학자이자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백분토론에서 심형래의 영화의 “형편없음”을 다시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곡론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까지 들이대면서 “디 워”의 허술함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진중권이 다시 한 번 강조하지 않더라도 관객들도 알만큼 안다. 심형래의 영화가 훌륭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 중고등학생 정도만 되도 다 안다.

관객들은 7000원의 입장료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영화를 “쓰레기” 취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관객들은 심형래가 지난 20여년간 보여준 열정을 이해하고 성취를 평가하기 때문에 설령 영화 구조가 허술하더라도 눈감아줄만큼은 관대하다. 개봉된 지 2주만에 400백만명이 찾았고 계속 흥행을 한다는 사실은 “디 워”가 관객들에게 7000원 이상의 뭔가를 주고 있는 것 아닌가.

누구든 영화에 대해 좋고 나쁨을 얘기할 수 있다. 영화 평론가든, 관객이든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서 영화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관객들과 네티즌들이 화가 난 것은 영화의 주류 집단 (충무로와 몇몇 감독들 그리고 평론가들) 의 태도 때문이다.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하며 관객들의 가르치려 할 뿐만 아니라 심형래의 영화에 대한 이중적 태도 (그들은 심형래를 같은 영화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스토리의 구조는 다소 허술하지만 심형래 감독의 초기작에 비한다면 현저한 발전을 이루었다”라는 것과 “300억짜리 루즈를 바르다고 예뻐지나”라고 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디 워”에 대해 심형래가 홍보에 들어갔을 때 언론이 떠들었던 것은 심형래의 “학력 위조” 주장이었다. 심형래가 20여년간 이룬 성취는 그냥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순간이었다.

사실 심형래의 영화보다 더 허접한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가. 영화계는 심형래의 성공을 반겨야 하는 것 아닌가? 올해 한국 영화가 죽을 쓰고 있다니 울상지우면서 왜 심형래의 영화를 옹호하고 열광하는 관객들을 “적”으로 돌리는가? 스크린 쿼터만 사수하면 한국 영화가 지켜지나? 홍상수, 이창동의 영화가 필요하다면 심형래의 영화도 필요한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과거 지식인들이 누렸던 권위를 추락시켰다. 네티즌들의 집단 지성은 4000여명의 박사보다도 훨씬 창조적이고 방대한 지식을 생산해냈다. 세상이 변했고,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진중권들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이제 네티즌들은 예전의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계층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더욱 생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건 지식인들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진중권들은 결국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한국 영화계에 필요한 것은 한 명의 진중권이 아니라 400백만명의 관객이다. 관객들에게 감사하라 그리고 관객들을 믿어라. 결국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은 무모해 보이는, 바보같이 보이는 돈키호테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