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의 달인, 노회찬

궤변의 달인, 노회찬

조선일보와 노회찬은 양립할 수 있을까? 얼핏 보면 이 둘의 사상이 극과 극으로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조선일보와 노회찬은 분명히 양립할 수 있다. 언젠가 노회찬이 밝혔듯이, 노회찬은 30년간 조선일보를 구독해온 애독자다. 따라서 그가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아무런 정서적 거부감이 없다.

노회찬을 아직도 진보 진영의 대표 인물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노회찬의 조선일보 생일 잔치 참석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것은 노회찬 잘못이 아니고, 노회찬을 진보인사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잘못이다. 노회찬은 본인이 밝혔듯이 조선일보의 30년 애독자이기 때문이다. 애독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신문의 창간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뭐가 대수인가.

파문이 일자 노회찬은 자신의 블로그에 궤변으로 얼룩진 변명을 늘어 놓았다. 내가 노회찬을 비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노회찬이 조선일보 창간 행사에 간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에 대한 얼토당토 않은 말들을 지껄인 것이 문제다. 노회찬은 겉으로 선명한 진보 정치인의 이미지를 지켜나가고 싶은 동시에 속으로 조선일보 30년 애독자로서의 애정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

노회찬은 변명 중에 몹시 거슬리는 부분은 다음과 같은 합리화다.

일부에서 저의 그날 강연을 놓고 ‘조선일보의 30년 애독자로서 조선일보를 최고의 신문으로 고무찬양한 강연’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평양을 방문한 한 교수가 방명록에 덕담 한마디 쓴 것에 대해 북한을 고무찬양한 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조선일보가 기사를 쓰기 전의 일입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은 온데 간데 없고 덕담 중 몇마디로 저의 철학과 소신과 강연내용을 왜곡한 것입니다.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하니 ‘아니면 말고’라는 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우리 안에도 ‘조선일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싸우면서 닮는다는 옛말 있습니다. 제가 여전히 안타까운 것은 조선일보와 싸우면서, 싸우는 동기가 되었던 ‘조선일보식 글쓰기’를 닮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노회찬, 감사와 함께 사과드립니다]

자기 행위의 합리화를 위해서는 서슴지 않고 다른 이들을 끌어들인다. 겉으로는 조선일보식 글쓰기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선일보를 애독한다. 그러면서도 선명한 진보 정치인인듯 행세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이중성을 몹시 싫어한다.

예를 들어, 어떤 (말로만) 항일 독립 투사가 일본 천황의 생일 초대에 참석해서 천황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건배를 했다면 그는 진정한 독립 투사인가, 아닌가? 사람들이 그가 천황의 생일 잔치 참석한 것을 비난하자, 그는 “천황과 대화하면서 그를 변화시키러 간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우리 안에도 ‘일본 제국주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그의 진정성을 믿어 주겠는가?

예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다. 언론을 가장한 정치집단이면서 사익추구집단이다. 그들의 이념은 보수도 아니고 오로지 “기회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친일 반동 기회주의 집단의 본류 중에 하나가 조선일보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일보는 포용의 대상도 아니고 변화시킬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조선일보는 하나의 시금석이다. 조선일보를 인정하느냐, 하지않느냐로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과 진정성을 판별받게 되는 것이다.

노회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제발 담백하게 살라는 것이다. 노회찬이 조선일보 애독자라고 해서 비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건 노회찬의 자유다. 하지만 괜히 말도 않되는 “우리 안에도 ‘조선일보’가 있다는 생각” 따위의 변명은 정말 보기도 싫고, 견디기도 힘들다. 조선일보를 읽고 조선일보를 위해 건배하는 것 다 좋은데, (우리 인간적으로) 제발 선명한 척, 진보인 척은 하지 말자.

사실 시간 내가면서 노회찬에 대한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유창선의 “조선일보 기념식 참석, 노회찬을 위한 변명” 을 읽고는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유창선, 이사람은 또 뭐냐? 안습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생긴 말인가 보다.

21 thoughts on “궤변의 달인, 노회찬

  1. 표현법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전체적으로 저와 같은 생각이시네요.
    노회찬의 글을 읽으면서 못내 답답했습니다.
    독립투사의 비유가 적절하다 못해 통쾌합니다.

    1. 사실 극우론자인 조갑제 같은 부류보다 노회찬 같은 부류들을 더 조심해야 합니다. 한때 이재오, 김문수도 극좌인 척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사상보다는 됨됨이를 보아야겠지요.

      건강하세요.

  2. 어제 DM으로 공감드렸었는데, 간만에 온라인으로 들어올 기회가 있어
    댓글 드립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항상 좋은 글 선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 작성하는데, 탭키간 이동과 화면 아래로 이동시 다음페이지 불러오는데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거 같습니다. 제 브라우저 문제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크롬플러스 4.0.295.0 쓰고 있습니다.

    1. 공감해 주시니 제가 오히려 더 고맙지요.

      저는 크롬 3.0을 쓰는데, 크롬에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크롬플러스는 제가 테스트를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네요.

      건강하세요.

  3. 역시 소요유님의 글을 보니 저 혼자만 화가 났던 것은 아니었군요.
    님의 말씀중 “조선일보는 하나의 시금석이다. 조선일보를 인정하느냐, 하지않느냐로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과 진정성을 판별받게 되는 것이다 ” 백번 공감합니다. 조선일보를 신문으로 보는 사람들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죠. 멀쩡한 사람들도 오랫동안 이가짜를 접한 사람들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오른쪽 끝에 가 있더라구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그들이 의도한데로 정말 황당하게 왜곡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경우를 봅니다. 이젠 되도록 그런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해요. 불행히도 제주변에 너무많습니다.

    1. 제 주변에도 참 많습니다. 하긴 하루에 수백만 부씩 발행하는 신문이니 많은 사람들이 볼 겁니다.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4. 저는 이번 사안에서 대해서는 노회찬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명백한 판단착오이고, 전략적인 과오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일만으로 노회찬이라는 정치인 전부를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요유님 글에서 그런 성급함이 느껴져 아쉽습니다. 저는 노회찬이든 노무현이든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번 일은 그 실수라고 보아야지 그것으로 그 정치인의 진정성과 그가 걸어온 길 모두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엄격하고, 과도한 해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소요유님께서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저 역시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소요유님과 판단을 함께 합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힘 꽤나 있고, 또 명망이나 있단 사람들 가운데 조선일보에 투항 내지는 포섭되지 않은 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죠. 참으로 절망스러운 현실입니다.

    다만 진보의 씨가 말라가고 있는 이 땅에서,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의 존재가 여전히 고마운 저 같은 사람에게 이번 일은 분노를 일으킨다기 보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만들어냅니다.

    1. 민노씨 님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사람을 판단할 때는 좀 길게 보는 편이고, 정치인 노회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일이 정말 단순 실수였다면 저는 이런 글을 아예 쓰지도 않습니다.

      노회찬에 대해서는 2004년 국회의원 때부터 쭉 지켜보아왔습니다. 초기의 신선함이 채 1년을 가지 않더군요. 물론 저의 관점이고, 노회찬이 정치인이 되기 전의 행적을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합니다.

      아쉽게도 저는 노회찬이나 심상정에게서 김문수나 이재오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아시겠지만 김문수나 이재오도 한때는 정말 좌파 중 좌파였고, 진보 중의 진보였지요. 저는 노회찬이나 심상정에게서 기대를 접은지는 꽤 됐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런 슬픈 예감은 이번 사건을 통해 증명되었듯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민노씨 님의 정치적 지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지만, 노회찬은 아닌 듯 합니다. 이정희 의원이나 강기갑 대표가 노회찬보다 훨씬 나은 인물들입니다.

      참고하십시오.

      http://www.soyoyoo.com/archives/88

  5. 정당의 대표로서 집권과 당의 성장을 위해 최대한 유리한 전략을 택하는 건 일견 당연한 처신이겠으나 수를 너무 깊고 험하게 둔다 싶더군요. 누가 봐도 패착이고 전개 방식이 일단 틀려먹었는데 저리 고집한다는 건 주화입마 아니면 변절로 느껴지네요. 당원 라디오 내용이 어제 진보신당 사이트에 올라왔던데요. http://www1.newjinbo.org/xe/?m.....srl=505620 김일성 생가 가면 친북이냐, 조선일보와 경조사 나누는 게 뭐가 나쁘냐, 조중동 세계일보 문화일보 다 외면하란 말이냐 뭐 이런 식으로 퉁쳐버리는데 뒷골이 좀 심하게 당깁니다.

    1. neo 님이 알려주신 링크로 잠깐 가보니 노회찬의 조선일보 사랑이 생각보다 더 사무치는 것 같은데요. 저는 변절이 아니고 원래 그런 DNA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노회찬, 심상정에게서 김문수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한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고맙습니다.

  6. 제도적 규범보다 윤리.도덕에 익숙한 순박한 사람일 수록,
    행복의 추구보단 생존수단에 버거워 하는 삶일 수록,
    자신의 행복을 배반하는 정치적 결정을 실증적 경험으로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들은 정치와 자신의 삶과는 유리된 것이라 여깁니다.(불온한 시대를 통해 학습된 것임)
    인물의 상징성만 알뿐 그의 이력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약합니다.
    주류매체에 대한 믿음이 강합니다.

    이들에겐 참석의 내용보다 참석 자체만 기억될 것이며,
    조선에 주어진 또한장의 면죄부 쯤으로 여길 것입니다.
    부당한 언론에 대한 적극적 반감도 차츰 희석될 것입니다.
    친일.독제 권력과 이에 기생한 추악한언론은 철저히 이러한 습성을 이용했습니다.

    이들의 정치적 선택은 본의 아닌 역사의 퇴행에 관여되었고
    싫던 좋던 우리의 삶속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기에
    “오얏나무 가지를 지날때 갓끈을 매지않는 것”이
    상징적 인물이 처신해야할 올바른 자세라 여깁니다.

    1. 말씀하신 대로 상징적 인물은 “오얏나무 가지를 지날때 갓끈을 매지않는 것”과 같은 처신을 해야하겠지요.

      제 판단으로 노회찬과 같은 부류는 그런 “상징”적 인물에 낄 수 없다고 생각되지만, 많은 분들이 그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에게는 “겸손”의 그림자가 없습니다. 참다운 지도자가 되려면 “겸손”의 덕목이 절실히 필요한대도 말이지요.

      고맙습니다.

  7. 6/2 지방선거가 끝난 다음에 님의 글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진보신당이 서울 시장 후보 단일화를 안 한 것을 비난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8. 님의 글에 공감을 하면서도 참 속상하네요, 노회찬은 나이 50줄이 넘도록 평생 노동운동에 투신해왔습니다. 50 년이 넘도록 지켜온 소신을 이제와서 내팽겨칠까요? 잘먹고 잘살기 위해 변절을 한다면 김문수처럼 90년 대 초 젊을때 진작 하지 않았을까요?

    제 생각에 노회찬은 그냥 조선일보를 ‘언론’이라 착각하고 있는것 같아요. 그들도 다독이고 친하게 지내면 설득될거라는 너무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김문수같은 나쁜 마음을 먹고있다고 믿기는 싫습니다…

    아직도 서울 작은 전셋집에 단벌 신사로 사는 사람인데, 설마 그럴리가 있을까요?

    1. 저도 노회찬이 김문수 같은 배신자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언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진보 정치인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노회찬 같은 사람이 한 번 변절하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제발 그럴 일이 없길 바랍니다.

  9. 저도 노회찬이 김문수 같은 배신자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언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진보 정치인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노회찬 같은 사람이 한 번 변절하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제발 그럴 일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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