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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소요유

친엄마 맞아?

친엄마 맞아?

암탉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자기 알을 품어 새끼를 키우고 싶었다. 그것이 목숨 걸고 양계장을 탈출해야 하는 이유였다. 암탉은 숲에서 어미 잃은 청둥오리의 알을 품었고, 청둥오리 새끼의 엄마가 되었다.

“친엄마 맞아?”

늪에서 살던 다른 짐승들이 수군거렸다. 암탉이 오리를 키우다니. 암탉은 하늘을 날지도 못했고 헤엄을 칠 줄도 몰랐다. 청둥오리가 크면서 배워야할 것들을 알려줄 수 없었다. 하지만 암탉은 친엄마보다도 더 애지중지하며 새끼 오리를 키웠다. 암탉에게 친엄마, 새엄마는 아무 의미없는 편견이었다.

세상을 지탱하는 것을 단 하나 고르라면 그것은 바로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는 생명의 기원이고, 세상을 유지하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복제 동물을 제외하고 엄마 없는 생명은있을 수 없다. 엄마 잃은 새끼처럼 불쌍한 생명은 없다.

계절이 바뀔수록 청둥오리는 건장하게 자랐고, 암탉은 시름시름 야위어갔다. 암탉은 모든 것을 다 주었다. 청둥오리는 누구보다도 높이 누구보다도 멀리 날았고, 자기 아비처럼 청둥오리 무리의 파수꾼이 되었다. 늠름한 청년으로 자란 오리를 보면서 늙은 암탉은 행복했다.

암탉은 자신의 천적인 족제비의 새끼들에게도 연민과 사랑을 느꼈고, 급기야 자신의 몸을 양식으로 주었다. 그것은 비극도 아니고 희생도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무한한 사랑이었고, 세상을 지켜주는 행복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아직도 중년의 아들에게 “아가”라고 부르는 나의 어머니에게, 그리고 딸아이를 낳아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아내에게 바치는 예찬이었다.

엄마, 세상을 구원하는 사랑의 원천인 엄마.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 엄마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었다

뜨거운 태양이 서산으로 떨어지고, 붉은 노을의 흔적도 점점 사라지면서 땅거미가 내렸다. 작렬하던 태양의 뜨거운 빛이 사위어 가면서 바람이 불었다. 한낮의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바람이 불었다.

이름 모를 풀들이 춤을 추었고, 숲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저수지에 갇힌 물들이 바람을 타고 내 앞으로 밀려왔다. 나는 한 포기의 들풀이 되었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바람이 부는대로 내 몸을 맡겨 버렸다.

바람 부는 한여름 밤에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앞산마루에 길쭉한 달이 떠올랐다. 바람은 달을 밀어 올렸고 별들을 은하수 너머로 흐르게 했다. 그 별들을 따라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이 흘렀다.

시간이 멈췄다. 바람이 불었지만 세상은 고요했다. 텅 빈 풍경과 함께 모든 욕망은 침잠했다.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아픔은 바람과 함께 내 곁을 떠났다.

바람은 누군가의 노래를 싣고 왔다.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의 노래가 들렸다. 세상에 온 이유를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 그 원죄와도 같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

바람은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여행자들의 삶은 바람과 함께 번져 나갔다.

7월의 어느 밤에 바람이 불었다.

리더의 조건

리더의 조건

요즘 공부 꽤나 한다는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보면, 열에 아홉은 “글로벌 리더(Global Leader)”라고 답한다. 그냥 리더도 아니고, 글로벌 리더다. 확실히 우리가 어렸을 때와는 생각의 규모가 다르다.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하면서도 왜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꿈을 꾸게 되었는지 개운치 않다.

<리더십에 관한 21가지 불변의 법칙>을 얘기한 존 맥스웰(John Maxwell)에 따르면, 사람들은 먼저 대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대신 대의를 전파하는 리더를 먼저 받아들이고, 그 리더가 얘기하는 비전을 따른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리더는 좋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리더로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훌륭한 비전이나 대의명분을 제시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지식이 있고 비전이 있어도 리더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뢰를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기회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기회주의자들은 늘 사사로운 이익에 민첩한 자들이다. 기회주의자들은 리더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설령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여 리더가 된다 하더라도 기회주의자들의 밑천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기회주의자가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 조직은 금세 망가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리더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기회주의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주의자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리더로서 받아들여질 것이고, 사람들은 리더의 비전을 따르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찌기 기회주의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기회주의자는 포섭대상일 뿐 지도자로 모시지 않는 것이 내 철학이다.

노무현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기회주의자들을 포섭의 대상으로 보았으나, 아무것도 아닌 나 같은 민초는 기회주의자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다만 연민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도층이라 불리는 자들은 거의 대부분 기회주의자들이다. 기회주의자들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눈 앞의 이익에 민첩하기 때문에 이익을 앞세우는 세상에서 득세하게 되어 있다. 그들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저 압도하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인물은 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것이다.

기회주의자가 아닌 리더가 되는 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다. 생각보다도 훨씬 힘든 일이다. 리더가 되겠다는 아이들이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를 깨닫는다면, 리더보다는 민초로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한 길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꿈이 소박하면 할수록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장마철 블로그 새단장

장마철 블로그 새단장

비를 몹시 좋아하는 나도 몇 주째 계속되는 장마가 부담스럽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매일 먹으면 질리듯이, 아무리 비를 좋아한다 해도 일년 내내 햇빛을 볼 수 없다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간 모양이다. 모처럼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눈을 상쾌하게 한다.

지난 7월 4일에 워드프레스 3.2 “Gershwin”이 출시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물끄러미 창 밖에 내리는 비만 바라 보았다. 블로그에 들르지 않은지 오래 되었고, 스팸이라 불리는 광고 댓글도 제대로 치우지 않은 터라 새로 나온 워드프레스를 설치한다는 것은 게으른 나에게 몹시도 귀찮은 일이었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자마자 불현듯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새단장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 나온 워드프레스 3.2는 PHP 5.2.4 이상을 요구했다. 리눅스에 설치된 PHP를 최신 버전으로 판올림하고 난 후 워드프레스 3.2.1 버전을 설치했고, 블로그의 겉모습도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는 “2011”이라는 주제로 바꾸었다.

좋은 디자인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고급스러워야 한다. 새로 단장한 블로그가 마음에 든다. 아주 오랜만에 대청소를 한 느낌이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기도

기도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리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 나서, 식사를 하기 전에, 일을 끝마치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위대한 자연과 어머니 대지와 나와 관계하는 모든 이들 앞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리라.

늘 온화하고 겸손하고 충만하게 삶을 대하리라.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고 검박하게 삶을 누리리라.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예견하지 않고, 언제나 순간순간에 충실하리라. 분노보다는 용서로, 두려움보다는 자비로, 미움보다는 사랑으로 삶을 채우리라.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의 행복을 기원하리라.

식사 기도

이 음식을 주신 하느님(위대한 정령)께 감사드립니다. 곡식들이 자랄 수 있게 해 주신 어머니 대지와 힘든 노동으로 그것들을 거두어 주신 농부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음식들의 건강함이 우리 안에 하느님(위대한 정령)의 온전성을 가져다 주기를 기도합니다.

We thank Great Spirit for the resources that made this food possible; we thank the Earth Mother for producing it, and we thank all those who labored to bring it to us. May the wholesomeness of the food before us, bring out the wholeness of the Spirit within us.

<Native American, Prayer before eating>

슬픈 5월, 노무현을 가슴에 묻다

슬픈 5월, 노무현을 가슴에 묻다

5월은 푸르름이다. 산천초목이 새로운 생기를 얻어 푸르게 피어나는 계절. 5월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가장 슬픈 계절이기도 하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것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꼭 두해가 지났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잊혀지기 마련이라지만, 때로는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사진만 보아도,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글만 읽어보아도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인다. 그를 추모하는 전시회에 가서 울지 않으려 했지만, 때로는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불과 2년 사이에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졌다. 생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비난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추모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삶과 죽음만큼 큰 간극을 보였다.

노무현을 탄핵으로 몰았던 민주당이 노무현의 맏상주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고, 노무현을 경포대라 비난했던 손학규가 민주당 대표가 되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부르짖고 있다. 노무현 생전과 사후에 달라지지 않은 것은 여전히 이땅은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이라는 것이고, 노무현이 평가받는 이유는 단지 그가 죽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희망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너무 이른 얘기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쉽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

노무현의 후계자라 불릴만한 유시민은 요즘 생전의 노무현 만큼 비난을 받고, 욕을 먹는다. 그 이유는 생전의 노무현이 욕을 먹었던 이유와 같다.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지 않고, 상식과 원칙, 정의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무현을 보좌했던 이들도 유시민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 노무현의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가시밭길인가를 알 수 있다.

노무현의 죽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했지만, 그들의 비열함과 탐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유시민도 노무현 만큼 시달릴 것이고, 고통을 받을 것이고, 욕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이 끝까지 노무현 정신을 놓지 않는다면, 노무현 지지자들은 유시민을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한번이면 족하다. 또다시 노무현 정신을 부여잡고 가는 이들을 노무현처럼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해마다 아름다운 5월이면, 광주와 노무현으로 세상은 슬픔에 잠길 것이다. 노무현을 가슴에 묻은 나는 해마다 5월이면, 그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유시민을 통해 노무현의 부활을 꿈꿀 것이다.

울지 마라, 유시민

울지 마라, 유시민

간절함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 쉽게 가면 좋으련만 애당초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은 가시밭이었고 돌밭이었기에 아무도 가려하지 않은 길이었다. 노무현이 그 길을 갔고, 이제 유시민 당신이 그 길을 따르겠다고 한 것 아닌가. 게다가 당신은 노무현이 못다 이룬 꿈까지 짊어지고 가겠다니 그 얼마나 고난의 길이겠는가.

당신은 최선을 다했고,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 뒤돌아 보면 아쉬움이 남을지라도, 당신의 선택 우리의 선택은 최선이었다. 간절함이 사무쳤지만 때가 되지 않은 것일 뿐. 옳은 선택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노무현이 가고자 했던 길을 유시민 당신이 앞장서지 않으면 누가 앞장서겠는가. 운명이라면 운명인 것이다. 그것이 노무현을 따르고자 했던 당신의 운명이고, 노무현을 지지했던 나 같은 이름없는 지지자들의 운명인 것을.

노무현을 지지했고 여전히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잘난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그에게서 제대로 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였다. 모두들 눈 앞에 이익을 쫓아 달려가는 세상에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나선 그이를 보고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을 때 그 옆을 끝까지 지켰던 당신, 유시민. 이제 노무현이 떠난 세상에서 노무현의 부채를 탕감하겠다고 나선 당신.

강금원이 당신을 버리고, 이기명이 당신을 버리고, 이광재가 당신을 버리고, 서프라이즈가 당신을 버리고, 한때 노무현을 지지했다고 하던 이들 모두가 당신을 등진다 해도 나는 당신 곁에 남을 것이다.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당신을 일으켜 세우고, 당신과 비를 맞으면서, 노무현이 가고자 했던 그 길, 당신과 함께 갈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해타산을 따지지만, 오늘 나는 유시민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 노무현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고 한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당신 곁에는 노무현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수많은 노무현들이 있고, 수많은 유시민들이 있다.

울지 마라, 유시민!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 말고, 미안해 하지도 마라. 오늘은 푹 쉬고, 새날이 밝으면 새날의 길을 가자. 그 길의 끝에서 우리들의 꿈이 영글고 있다. 노무현의 꿈이 영글고 있다.

꽃비

꽃비

바람이 부니 꽃비가 내린다.

하얀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린다.

아름다운 것들은 머물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게 왔다가 그렇게 쉬이 떠나는 것.

과거도 미래도 없는 순간일 뿐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기억되지 않는 슬픔.

순간으로 존재하면 완전한 것이다.

 

4월 19일

바람이 불고, 꽃비가 내렸다.

닭공장 세상

닭공장 세상

옛날 닭들은 말이지, 양지 바른 뒷곁에서 유유자적하며 놀았어. 벌레 한 마리 잡아 먹고 하늘 한 번 쳐다 보고, 모래 한 알 입에 물고 구름 한 번 쳐다 보고. 세상은 고요했고, 바삐 돌아가는 것은 없었어. 병아리들은 어미닭을 종종거리며 따라다니구. 가끔 시집 간 딸과 사위가 오면 제일 실한 놈이 잡혀서 털이 뽑히기도 했지만, 닭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었지.

요즘 닭들은 말이지, 공장에서 태어나고 공장에서 자라다가 공장에서 죽어 가지. 세상이 변했어. 모든 것은 돈과 경쟁으로 환원되어 버려. 닭들은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닭장에 갇혀서 하루 종일 인간들이 갖다 주는 사료를 먹고 살을 찌우지. 달걀을 낳게 하려고 잠도 재우지 않고. 30촉 백열 전구 밑에서 숨을 쉬기도 힘들어. 병이라도 생기면 항생제가 기본이고, 조류독감 같은 전염병이 돌면 그냥 산 채로 땅에 파묻어 버리지. 불과 30년 만에 세상은 그렇게 변했어.

그런데 닭들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 인간들도 닭장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그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지. 더군다나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은 하루 종일 닭공장 같은 학교와 학원에 가둬 놓고 숨도 못쉴 정도로 공부를 시켜. 사실 그런 것들을 공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말이야. 아이들을 시험 잘보는 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인간들은 그런 것을 경쟁력이라고 불러.

이런 닭장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은 닭장 같은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거야. 거의 매일 같이 떨어져 죽거나 죽을려고 마음 먹는 아이들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는 세상이야. 중고등학교 아이들의 자살은 아예 관심도 없어. 교통사고 같이 취급이 되거든.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죽고, 대학생들도 닭공장 같은 세상을 못견뎌 죽어 나가. 그런데도 인간들은 죽은 아이들의 연약함을 비난하거든.

세상은 닭들에게도 지옥이 되었고, 인간들에도 지옥이 되었어. 정말 돈만 잘 벌고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닭공장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는 있는 건지, 언제까지 이런 닭공장 세상을 견디며 살 수 있는 건지, 아이들을 닭공장으로 밀어넣는 부모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정말 어쩔 수 없는 건지.

이런 것이 몹시 궁금한 봄날 아침인데, 목련과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었어.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것이 이런 건가?

부음(訃音)

부음(訃音)

인간들의 역사가 문자로 기록된 이후 세상은 언제나 말세였고, 인간들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려 말세인 세상을 구원해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때때로 후세에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걸출한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인간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을 저주하여 죽였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나타났다. 세계화된 자본주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꽃같은 젊은이들이 매일매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그들은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젊은 시절, 기성세대들의 탐욕을 욕했던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자 그들의 부모를 닮기 시작했고, 그들의 아이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말도 안되는 변명을 뇌까리면서 아이들을 무한 경쟁의 정글로 몰아넣었다.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 중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부터 죽어나갔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는 영화 제목으로만 의미가 있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나보다 나이 어린 이들의 부음(訃音)을 받을 때만큼 고역스런 일이 없다. 그들의 죽음에 공범 아닌 공범으로 그리고 기성세대로서 일말의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만큼 불쌍한 사람들이 있을까. 그야말로 지울 수 없는 상처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손으로 자기가 낳은 자식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아이들은 세상에 절망하여 세상을 뜨고, 부모들은 먼저 간 자식들을 생각하며 절망한다. 운 좋게도 아직 그런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부모들은 여전히 자식을 위한다며 그들을 죽음의 경쟁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말도 안되는 절망의 악순환은 중단되지 않는다.

섬진강의 매화와 진해의 벚꽃이 만개하여 이 조그마한 땅 한반도에 온통 꽃향기 휘날릴 때에, 어떤 아이들은 어디선가 혼자 세상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봄에 슬픈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