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났다. 가을 들녘은 표현 그대로 황금 물결이었다. 신은 늘 그렇게 세상을 축복했다. 연일 따사로운 햇빛과 드높은 하늘과 맑은 물로 세상을 어루만졌다. 보릿고개는 그야말로 옛말이 되고 말았다. 곡식은 차고도 넘쳤지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힘에 겨웠다.
풍년이 되어도 농민들은 울상을 짓는다. 쌀값은 그들의 힘겨운 노동을 보상해 주지 못했다. 자연은 농민들을 축복했지만, 세상은 그들을 따돌렸다. 그들은 자식과 같은 벼를 갈아엎으며 눈물을 흘렸다.
공교롭게도 위키피디아의 Big Man 페이지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Big Man의 예시로 나와 있었다(가 지금은 지워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간다의 이디 아민, 짐바브웨의 무가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등과 어깨를 나라히 하고 있었다(가 지금은 사라졌다).
Lee Myung-bak – President of Republic of Korea. Dictator. He ruined Korean democracy which had been recovered under 2 former Korean presidents, Roh Moo-hyun and Kim Dae-jung (Nobel Laureate)
이명박 – 대한민국 대통령. 독재자. 두 명의 전직 대통령, 노무현, 김대중이 회복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Big Man을 대표하는 인물로 언급되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지금 지지율이 한창 올라 표정 관리에 들어간 상태다. 한겨레가 발표한 지지율 조사에서 Big Man 이명박은 45%의 지지율을 얻었다. 정운찬 총리 임명이나 4대강 사업은 국민의 3분의 2가 반대하는데도 Big Man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절반 가까이 된다.
확실히 그는 Big Man이 맞는 것 같다. 국민들은 그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책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에 비해 그를 너무도 인간적으로(?) 지지하니 말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그를 빨아주니 그는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용산에서 철거민의 장례를 여지껏 치르지 못해도 그는 건재하다. 너덜너덜 온갖 불법과 편법 의혹을 받는 총리와 장관을 임명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업을 그는 의기양양하게 밀어붙인다. 국정원이나 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해도 별 상관없다.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서된다. 그는 Big Man이니까.
Big Man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흥분하고 자랑하는 대통령, 그리고 그를 절반 가까이 지지한다는 국민들. 오늘도 나는 당신들이 별 일 없이 살길 기도할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615선언 9주년 기념 연설 중, 가장 뼈 아프게 다가왔던 부분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관련된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만일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고초를 겪을 때 500만명 문상객 중 10분지 1인 50만명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이럴 순 없다, 매일 같이 혐의 흘리면서 정신적 타격을 주고, 스트레스 주고, 그럴 수는 없다, 50만명만 그렇게 나섰어도 노 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억울하고, 희생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겠습니까.
그가 옳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고 조문한 사람이 500백만명이나 되었는데, 그 중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나섰더라면 우리는 그를 지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탄핵 때 우리가 노무현을 지켰던 것처럼 그렇게 나섰더라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뼈에 사무친다. 우리는 그의 무고함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그렇게 스러져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간악한 언론과 검찰이 잔인하게 그를 짓누를 때에도 우리는 방관자였다. 결국 그는 우리 곁을 쓸쓸히 떠났다. 우리는 그와 함께 할 자격이 없었다. 그와 같은 위대한 인물은 이 척박한 반도땅을 오래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운명이었을까?
그가 떠나고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슬픔이 가슴 깊이 침잠했다. 까닭 모를 눈물이 때를 가리지 않고 흘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노무현의 뜻을 잇고자 하는 모임들이 속속 등장했다. 국민참여정당과 시민주권모임이 출범했고, 노무현재단이 설립되었다. 너무나 크고 위대한 소를 잃었기에 이 볼품없고 척박하고 탐욕스럽기까지한 외양간을 버려두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리라. 하여 나는 국민참여정당과 시민주권모임에 가입했고, 노무현재단의 후원인이 되었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한 500만명의 사람들 중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인 5만명만 나서준다면 우리는 노무현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노무현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여기에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제2, 제3의 노무현을 만들어낼 수 없고, 설령 그런 인물들이 나타난다 해도 그들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진리는 깨달은 성자들의 의해 이미 드러나 있었다. 세상은 이미 구원되어 있었다. ‘나’를 버리고 ‘참나’를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대로 인간의 본질은 신(神)일진데, 우리의 욕망과 카르마가 그 본질을 가리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그것에 있다.
인기 댄스 그룹 2pm의 박재범이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몇 년전 인터넷에 올린 한국에 대한 글이 문제가 되었다. 순식간에 여러 주장들이 난무했다. 가수라는 공인이 가져야할 자세부터, 천박한 애국주의, 그리고 파시즘에 이르기까지 그 주장들은 날카로운 논리를 간직한 채 서로를 찌르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어느 주장이 옳고, 어느 주장이 그른지 얘기할 수 없는 그야말로 논란의 도가니였다.
유승준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미국명은 스티브 유. 그는 병역 의무를 다하겠다고 하다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함으로써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은 그의 말바꿈과 표리부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도 역시 가수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삶의 궤적이 청문회를 앞두고 드러나기 시작했다. 깔끔한 이미지에 진보연했던 그도 역시 병역면제, 세금탈루, 논문 이중 게재 의혹을 받고 있다. 예상대로 그는 한나라당과 이명박과 훨씬 가까운 족속이었다. 이명박도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국군통수권자가 되었다. 물론 그가 임명하는 장관과 고위급의 태반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위장 전입과 같은 가벼운(?) 범법 행위는 기본이었다. 새로 임명된 검찰총장도 위장 전입을 몇차례 하고도 법을 집행하는 검찰총장이 될 수 있었다.
박재범과 유승준은 가수다. 물론, 그들이 실수를 하긴 했지만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국회의원이나 장관, 그리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실수(범법 행위가 아니라)는 용납되지 않았다.
법을 어긴 이력이 없이는 현 정부의 고위직이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박재범이나 유승준이 했던 실수보다도 정운찬이나 이명박의 범법 행위들이 더 심각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박재범과 유승준의 실수로 그들이 가수를 그만두어야 한다면 정운찬이나 이명박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법을 어긴 것인데도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일까?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대부분의 장관급 고위급들이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데, 유독 가수들은 여기서 자유롭지 못할까? 세금도 아랫 것들이나 내듯이 병역도 역시 아랫 것들이나 지기 때문이겠지. 이제 우리는 실질적 봉건시대에 산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그 계급에 속하지 않는 나나 당신은 군말없이 세금 내고 군대 다녀와야 하는 것이다.
박재범이 미성년 연습생 시절에 올린 몇 마디 글 때문에 이 나라는 너무나 뜨거웠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병역 면제에, 세금 탈루에, 논문 이중 게재를 한 총리를 받아들일 것인가? 박재범과 정운찬, 가수와 총리. 과연 예의 그 날카로운 이중잣대가 여기서도 먹힐 것인가? 나는 담담히 지켜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 실수를 탓하기 전에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할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 여유가 관용을 낳고 그 관용은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관용은 모두에게 동등히 적용되어야 하겠지만, 여전히 나는 정운찬보다는 박재범을 옹호하고 싶다.
황석영의 경우에는 변절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도 있겠다. 한국의 대표하는 저항 문인이었고, 남북을 이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월북을 감행하기도 하여 오랜 기간 옥고를 치루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명박과 손을 잡고 중도 어쩌구 할 때에는 참담했다. 어찌 황석영이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고, 칠십에 가까운 그의 “황구라” 인생이 그렇게 스러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정운찬에 이르러서는 아무런 정서적 반발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변절이 아닌 회귀이거나 자연스러운 드러냄이었기 때문이다. 정운찬의 삶이 한나라당과 이명박의 지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말로는 이명박 정권을 몇 번 비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그의 인생을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그저 깔끔한 이미지의 주류였다.
작년 12월에 그는 대규모 토목사업을 반대한다는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뉴딜은 제도를 바꾸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둔 것이지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뉴딜한다고 잠수돼 있던 대운하가 나올까 걱정이다.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맞지 않는 대운하 사업에 들어갈 돈은 장기적 연구와 개발 등 소프트파워 신장에 써야 한다.
<2008년 12월 10일 뉴욕 초청 강연 중에서>
그의 말은 불과 1년도 안되어 이렇게 바뀐다.
“대운하에 대해선 반대입장 분명히 했다. 환경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대운하가 우선순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4대강은 수질개선과 관련 있기 때문에 쉽게 반대하기 어렵다. 청계천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4대강 주변에 중소도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반대할 의사 없다.”
정운찬에게 있어서 4대강은 토목공사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평생 학자로 지냈던 사람의 권력욕이 정치인 못지 않다.
정운찬과 같은 학과에 근무하고 있는 이준구 교수는 4대강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 정부가 내놓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은 별 경제적 효과 없이 환경을 대규모로 파괴할 잠재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대운하사업과 단 한 치의 차이도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부가 이제는 우리 강을 살리기 위해 그 사업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4대강 정비사업이 주변 환경과 생태계에 대운하 사업 이상의 피해를 가져올 것은 너무나도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며칠 전 서울대가 만든 세계 최초의 복제 늑대 스널프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늑대 한 마리 죽은 것이 무슨 대수냐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스널프는 우리 지구별에서 처음으로 엄마 아빠 없이 태어난 늑대다. 엄마 아빠의 존재와 사랑을 몰랐던 스널프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
이 소식을 듣고 떠오른 사람은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었다. 권정생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 남기신 마지막 동화가 “랑랑별 때때롱”이다. 이 동화의 머리말에서 선생은 엄마 아빠가 없는 동물을 왜 만들어야 하냐고 되물었다.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던 스널프의 마음을 사람들은 단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보았을까? 과연 사람들에게 그런 생명을 만들어낼 권리가 있는 걸까?
5백 년 전 랑랑별에 살았던 보탈이는 모든 우수한 유전자를 받아서 태어난 아이였지만, 그는 슬픔도 기쁨도 알지 못하는 아이였다. 놀 줄도 모르는 아이였다. 놀 줄을 모르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새달이와 마달이처럼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놀아야 한다. 가리마에서 햇볕 냄새가 나는 아이들, 피부는 까맣지만 건강한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된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해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놀 줄 모르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 그리고 극한의 경쟁만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권정생 선생의 “랑랑별 때때롱”은 행복한 세상의 가장 기초가 무엇이냐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전해준다. 많은 어른들이 이 동화를 읽고 다시 한 번 삶과 행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불과 석달 사이에 우리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인 두 명을 연달아 여의었다. 떳떳하게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고, 대통령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단 두 명의 정치인이 그렇게 스러져 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서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대통령도 이렇게 쉽게 떠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공개된 일기 속에서 그는 적어도 5월 초까지는 소소한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마지막 일기 중에서]
노무현의 죽음을 가장 슬퍼했던 사람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20년이나 어린 후배를 먼저 보내야하는 노 정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 같은 민초도 슬픔을 감당하지 못했는데, 그는 얼마나 비통했을까.
노무현은 유서에서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했다. 두 명의 위대한 정치인이 그렇게 떠나간 것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다. 그것은 그 두 사람의 운명뿐만이 아닌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이었다.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하고 독재의 부역자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이 현실에다, 무지한 백성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최소한의 도덕성조차 팽개치는 상황에서, 운명은 가장 위대한 두 명의 정치인의 목숨을 요구했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통곡했다. 감히 말하건데 노무현의 죽음을 그렇게 서럽게 울어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그 휠체어에는 KARMA(카르마)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이 민족이 지은 업보를 두 명의 위대한 정치인이 지고 떠났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이 민족의 카르마는 또 어떤 댓가를 요구할 것인가? 삼천리 금수강산을 내놓으라 할 것인가? 그 정도 댓가를 치루면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나 있는 것일까? 카르마에는 에누리가 없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의 이용호 화백은 “지팡이와 밀짚모자”라는 만평에서 이 세상을 떠난 두 정치인의 다정한 모습을 아련히 그려 놓았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 속보로 흘러나오는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 목이 메였다. 지난 달부터 병세가 위중하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려왔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서거 소식은 여전히 견디기 힘든 슬픔이었다.
김대중이 누구던가.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 온몸으로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그리하여 그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견디면서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 아니던가.
오늘 그가 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지 100일도 안되어 김대중 대통령도 떠났다. 해방 이후, 대통령이라 부를 수 있었던 단 두 명의 정치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갔다.
죽기 직전까지 독재에 대해 걱정해야 했고, 민주주의에 대해 걱정해야 했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해 노심초사해야 했던 대통령이 그렇게 갔다. 도덕이 밥먹여주냐며,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며 아무 생각없이, 아니 너무나 탐욕스럽게 이명박을 찍은 국민들을 뒤로 하고 그가 세상을 떠났다.
김대중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없었다. 국민들은 여전히 박정희, 전두환 같은 군부독재자들에게 짓밟히고 있었을 것이고, 정권 교체도 없었을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도 없었을 것이다. 민주주의 상징이자 민주주의 그 자체였던 그가 그렇게 갔다.
노무현이 가고, 김대중이 갔다. 이제 누구에게 기대겠는가? 이 땅의 힘없는 백성들은 이제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 절망 안에 또다른 절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두달 전 김대중 대통령이 615 선언 9주년에 했던 연설이 우리에게 들려준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나는 오랜 정치 경험으로, 감각으로, 만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큰 결단 내리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더불어서 여러분께도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정권이) 백 수십명 죽이고, 인혁당도 죽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 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위해서 우리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양심, 행동할 때 누구든지 사람은 마음 속에 양심이 있습니다. 행동하면 그것이 옳은 일 인줄 알면서도 무서우니까, 시끄러우니까, 손해보니까 회피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 국민의 태도 때문에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죄 없이 세상을 뜨고 여러 가지 수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이룩한 민주주의는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 양심에 합당한 일입니까.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만일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고초를 겪을 때 500만명 문상객 중 10분지 1인 50만명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이럴 순 없다, 매일 같이 혐의 흘리면서 정신적 타격을 주고, 스트레스 주고, 그럴 수는 없다, 50만명만 그렇게 나섰어도 노 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억울하고, 희생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겠습니까.
나는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게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그리고 독재자에 고개를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제, 남북간 화해 협력을 이룩하는 모든 조건은 우리가 마음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서, 그렇게 해서 온 국민들이 바른 생각도 갖고, 표현이나 행동해야 합니다. 선거 때는 나쁜 정당 말고 좋은 정당 투표해야 하고, 여론조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4700만 국민이 모두 양심을 갖고 서로 충고하고 비판하고 격려한다면 어디서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일어나고, 어디서 소수 사람들만 영화를 누리고, 다수 사람들이 힘든 이런 사회가 되겠습니까.
그는 85세의 고령에도 마지막까지 피맺힌 목소리로 절규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그의 정치 역정은 끝까지 이 땅의 독재와 맞붙는 것으로 끝났다. 목이 메인다.
노무현이 가고 김대중이 갔다. 우리들은 정치적 고아가 되었다. 이제 우리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 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님 만나 두 분이 못다한 정 나누십시오. 저희들은 두 분이 사무치게 그리울 뿐입니다.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한비야의 책을 내게 처음 선물해준 이는 지금 내 아내다. 결혼 전 아내는 한비야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용기와 도전 정신, 그리고 그 에너지가 펄펄 끓어 넘치는 모습은 20대의 여성들에게는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의 책을 거의 모두 섭렵했고 그의 열정이 몹시도 부러웠지만, 아내처럼 그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같이 삶에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사람과 한비야의 열정은 양립할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 희망이나 열정이 없었다. 그냥 주어지는대로, 물이 흐르는대로 몸을 맡길 뿐이었다. 때문에 나에게 도전이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의지와는 거의 무관하게 삶은 이리저리 나를 데려갔다. 그런 나에게 한비야의 모습은 전혀 다른 종족의 삶이었다. 나는 도전하지 않았고 어떤 성취를 바라지 않았다. 한비야는 끊임없이 도전했고, 끊임없이 희망을 만들어갔다. 나는 한비야의 삶을 존경했지만, 동경하지는 않았다.
한비야가 새책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 모든 이들이 공평한 삶을 사는 세상,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세상이죠. 그런 세상이 올까요?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요? 난 40대 때의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 부었어요. 그런데 세상은 변했나요? 그대로예요. 바보들의 행진.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나는 너무 행복해서 포기할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