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Press 2.0.6 출시
여행을 다녀오는동안 WordPress 2.0.6 이 출시되었다. 이번 버전의 특징은
- 몇 가지 보안에 관련된 문제가 고쳐졌고
- 사파리 브라우저에서 HTML QuickTags 이 가능해졌으며
- 댓글을 거를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고
- PHP/FastCGI setups 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보완 갱신하는 개발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버전 2.1을 기대해본다.
여행을 다녀오는동안 WordPress 2.0.6 이 출시되었다. 이번 버전의 특징은
- 몇 가지 보안에 관련된 문제가 고쳐졌고
- 사파리 브라우저에서 HTML QuickTags 이 가능해졌으며
- 댓글을 거를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고
- PHP/FastCGI setups 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보완 갱신하는 개발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버전 2.1을 기대해본다.
첫눈은 설레임이다. 유난히 따뜻한 올 겨울은 첫눈의 설레임 대신 봄 햇살의 포근함만을 주었다. 나 같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겨울이 큰 축복이지만, 때로는 아무도 걷지 않은 눈 덮인 하얀 들판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강원도 평창에서 올 겨울 들어 처음 눈을 보았다. 떡가루 같은 하얀 눈 위에 딸아이와 같이 누워 하늘을 보았다. 이제 여섯 살이 되는 아이에게 잊혀지지 않은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첫눈이 내렸다
퇴근길에 도시락 가방을 들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렸다
눈송이들은 저마다 기차가 되어 남쪽으로 떠나가고
나는 아무데도 떠날 데가 없어 나의 기차에서 내려 길을 걸었다
눈은 계속 내렸다
커피 전문점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으나 배가 고팠다
삶 전문점에 들러 생생라면을 사먹고 전화를 걸었으나 배가 고팠다
삶의 형식에는 기어이 참여하지 않아야 옳았던 것일까
나는 아직도 그 누구의 발 한 번 씻어주지 못하고
세상을 기댈 어깨 한 번 되어주지 못하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워
삶 전문점 창가에 앉아 눈 내리는 거리를 바라본다
청포장사하던 어머니가 치맛단을 끌며 황급히 지나간다
누가 죽은 춘란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선다
멀리 첫눈을 뒤집어쓰고 바다에 빠지는 나의 기차가 보인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다
미움이 끝난 뒤에도 다시 나를 미워한 것은 잘못이었다
눈은 그쳤다가 눈물 버섯처럼 또 내리고
나는 또다시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린다<정호승, 첫눈>
정호승의 첫눈은 설레이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돌아갈 곳이 없는 연어는 얼마나 슬플 것인가. 귀소본능의 DNA를 감당하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그것들에게 돌아갈 곳이 없다면 바다는 끝없이 깊어지기만 할 것이다. 15시간의 비행동안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을 생각했다.
3년만에 돌아온 집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하늘은 좀 더 뿌옇고, 근처 풍광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지만, 그 집의 온기만은 여전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따뜻한 가슴과 미소로 고달픈 지난 3년을 위로해 주셨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여겨지는 새해 첫날이다.
음악은 추억을 불러내는 묘한 힘이 있다. 어제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Radiohead 의 Creep 은 나를 옛날 그 때로 되돌려 보냈다. 이 노래를 처음 들려준 이는 잘 살고 있을까.
When you were here before,
Couldn’t look you in the eye
You’re just like an angel,
Your skin makes me cryYou float like a feather
In a beautiful world
I wish I was special
You’re so very specialBut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 here?
I don’t belong hereI don’t care if it hurts,
I wanna have control
I want a perfect body
I want a perfect soulI want you to notice
when I’m not around
You’re so very special
I wish I was specialBut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 here?
I don’t belong here, ohhhh, ohhhhShe’s running out again
She’s running
She runs runs runs runs…
runs…Whatever makes you happy
Whatever you want
You’re so very special
I wish I was specialBut I’m a creep,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 here?
I don’t belong hereI don’t belong here…
<Radiohead, Creep>
성지미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산업경영학부 조교수는 4일 ‘맞벌이 부부의 시간 사용’이라는 보고서에서, 맞벌이 부부 중 부인의 가사노동 시간이 주당 21.4시간으로 남편의 4.6시간에 견주어 다섯배 정도 많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한국노동연구원의 ‘한국노동패널’ 7차 연도(2004년) 자료를 이용한 것으로, 맞벌이 부부 859쌍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보고서를 보면 자녀가 있는 경우에 남성의 가사노동이 주당 5.1시간으로 조금 늘어났으며, 자녀가 2살 미만일 때 8.4시간으로 가장 많았다. 2~5살은 7.3시간, 6~11살 4.5시간, 12~18살은 3.9시간으로 나타났다. 여성도 자녀가 있을 때 23.2시간으로 가사노동이 증가했고 2살 미만일 경우 28.8시간, 2~5살 24.6시간, 6~11살 23.7시간, 12~18살 22.1시간이었다. 또한 남성의 고용 상태별로 가사노동 시간을 분석한 결과, 임금노동자일 때 5.3시간으로 가장 길었고 고용주와 자영업은 각각 3.5시간인 것으로 집계됐다. [맞벌이 주부 집안일 주21시간…남편의 5배, 한겨레신문]맞벌이를 하는 우리나라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평균 5배 정도 더 가사노동을 한다는 얘기다. 사실 직장에서도 여자들이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남편과 아이들 치닥거리에 쉴 틈이 없다. 이런 불평등이 계속되는 한, 여성부는 그 상징성 자체로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 집안 일은 여자들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어머니, 아내, 딸들이 안쓰럽지도 않은가. 그렇다고 여성부의 웃기는 캠페인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여성부 책임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회식 후의 성매매를 걱정할 일이 아니라 시야를 좀 더 넓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회식 문화가 담백하지 않다. 이런 문화를 좀 더 가족적이고 담백하게 유도할 필요가 있다. 내가 여성부의 정책 입안자였다면, 직장의 연말 회식을 가족 중심의 모임으로 유도했을 것이다. 부부동반이나 더 넓게는 아이들까지 같이 즐길 수 있는 회식과 모임에 비용을 도와주는 이벤트. 이런 방법이 훨씬 세련되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시라. 여성부가 단지 성매매 방지만을 위해 일하는 곳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여성부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 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 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늘 고생하는 아내에게 오늘밤 그의 수고를 위로하며 읽어주고 싶은 시다. 당신을 만나 행복했다고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싶다. 여전히 나는 아내에게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조선일보 따라쟁이가 되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안타깝고도 슬프다. 오늘 한겨레의 사설은 그들에게 가졌던 일말의 기대마저 무너지게 만든다.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항상 신중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고 내용이 옳더라도 정제되고 격식있는 언어가 아니면 괜한 상처와 대립을 낳을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민주평통 연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군대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 “그 많은 돈을 우리 군인들이 떡 사 먹었느냐”는 등의 품위 없는 표현 때문에 군복무 단축 검토나 튼튼한 국방 안보를 강조한 본디 뜻은 사라졌다. 대신 예비역 장성들이 모여서 공개 반박 성명서를 내고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하는 등의 불필요한 갈등만 초래했다. 맘속에 있는 말을 그때 그때 다 쏟아내는 대통령이 아니라 충분히 걸러서 국민을 편안하게 만드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어떤 국민도 대통령이 ‘동네북’이 되는 것을 진정으로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표현을 가다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있다. 국민과 소통하는 일이다. 부동산값과 교육 문제 등으로 시달리는 국민의 아픔을 절실히 깨닫는다면 대통령이 차기 대선 예비주자들과의 기싸움에 매달릴 여유가 없을 것이다. 임기 말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 것은 정치인들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대통령 본인이 이런 데서 정치인들에게 느끼는 “서운하고 분한” 심정을 앞세우기보다는 국민들이 정부의 무능과 실정으로 느끼는 절망과 허탈감을 먼저 헤아리길 바란다.
<대통령의 서운함보단 국민의 허탈감이 우선이다, 한겨레>
나는 대통령의 민주평통 연설 중에 품위 없는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듣는 사람에 따라 거친 표현이라 할만한 부분은 있지만, 현장의 즉석연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대통령이 얘기한 조용한 안보, 작통권 환수 문제, 한미동맹 관계, 군 개혁에 관한 문제 등 어느 한 군데 사리에 맞지 않고 원칙에서 벗어난 구절이 없었다. 그런데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들은 말 한 두마디 꼬투리를 잡아서 대통령의 연설을 폄하하기에 급급하다. 어떤 언론도 논리적 해석이나 반박을 하지 않았다.
정말 한겨레는 몇몇 표현때문에 대통령의 본의가 다 사라졌다라고 믿는가. 본말이 전도되게 만든 것이 혹시 당신들이 아닌가. 정작 중요한 것은 다 제쳐놓고 꼭 말투만을 붙잡고 늘어져야 하는가. 어떻게 이렇게 비겁한가. 다른 신문들이 다 그렇다해도 한겨레만은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 아닌가.
사설의 점입가경은 다음 구절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단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기네스북 감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도록 만든게 누구인가. 4년 내내 대통령의 말을 왜곡하고 비방한 것이 누구인가. 한겨레는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가.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국민들 앞으로 편지를 쓰겠나.
나는 대통령에 관련된 말이 논란이 될 때 꼭 청와대 홈페이지에 가서 원문을 확인한다. 대통령의 말을 전달하는 언론들을 믿을 수 없어서다. 정말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한겨레도 이제 무치족 반열에 오르고 싶은 모양이다.
국민들이 실망과 허탈감의 느낀다면 그 책임의 9할은 언론의 몫이다. 나는 당신들 때문에 더 허탈하고 절망한다.
수돗물에 불소를 넣어 국민들의 충치를 예방하자는 정책은 위험하면서도 웃긴다. 보건복지부와 몇몇 치과 의사들을 주축으로 20여년 전부터 제기되어 온 얘기인데 아직까지도 미련을 못 버린 모양이다. 지난 달 경향신문 기사는 내년부터 더 많은 정수장에 불소를 넣을 것이라는 보건복지부의 정책을 보도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 건강을 생각하는 것은 나무랄 수 없지만, 이런 식은 아니다. 불소가 충치를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끊임없이 의심받고 있고, 불소의 독성이 몸 안에 쌓여 갑상선 기능 저하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수 십년 전부터 제기되고 있는데도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보건복지부가 할 일은 아니다.
충치가 걱정되면 더 자주 닦으면 되는 것이고, 불소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소 치약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수돗물 불소화에 들어가는 예산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치약과 칫솔을 사서 나누어 주라. 그 편이 훨씬 효과적이고,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테니까.
수돗물 중에 우리가 음용수로 사용하는 것은 채 1%도 안된다. 그러면 그 많은 물에 들어가 있는 불소는 그냥 자연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이빨도 없는 물고기들이 불소를 많이 섭취하면 어떻게 될까. 독극물이 몸 안에 쌓이게 되니 건강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수돗물 불소화 정책을 폐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런 우매하고 위험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우리 국민들이 자기 이빨 건강을 위해 칫솔질을 할 수준은 되지 않는가.
녹색평론에서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읽어볼 수 있다.
꽃처럼 무너지던 시절 있었네
나 아직 이십대 늙은 사내처럼
추억을 말하네……
사라져간 물결 있었네
그 물결 속으로
그리움의 나뭇가지를 꺾으며 나는
제발 내게 기적이 없기를 빌었네
삶이 전쟁이므로 사랑도 전쟁이었고
나의 샤먼 그대는 나를 적시지 않았네
세상에 대한 알 수 없는 적개심
나 휘발유 같던 시절 있었네
자폭하고 싶었지 나 아직 이십대
그대 내 전부의 세상
그대는 바뀌지 않았네 나 참을 수 없어
몸을 떨었네 휘발유 같던 시절 있었네
지난날에 발 담그고 나는
구시렁거리네 철든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노여움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노여움으로
건너오는 건 아닌지
나 아직 이십대 개떡같은 사랑
이야기하네 왜 나, 나의 사랑을
과거의 일로 돌리려 애쓰는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대였으므로
나는 외로웠네
모든 바람은 새로웠지만
낯익은 것들이었네 폭풍이 몰아쳐
그대 조금 흔들렸지만
내 몹쓸 사랑, 꽃처럼
무너지던 시절 있었네[이대흠, 나 아직 이십대]
어둠과 취기에 감았던 눈을
밝아오는 빛 속에 떠야 한다는 것이,
그 눈으로
삶의 새로운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 입술로
눈물 젖은 희망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어제 너를 내리쳤던 그 손으로
오늘 네 뺨을 어루만지러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결국 치욕과 사랑은 하나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가을비에 낙엽은 길을 재촉해 떠나가지만
그 둔덕, 낙엽 사이로
쑥풀이 한갓 희망처럼 물오르고 있는 걸하나의 가슴으로
맞고 보내는 아침이 이렇게 눈물겨웁다.
잘 길들여진 발과
어디로 떠나갈지 모르는 발을 함께 달고서
그렇게라도 걷고 걸어서나 서른이 되면
그것들의 하나됨을 이해하게 될까.
두려움에 대하여 통증에 대하여그러나 사랑에 대하여
무어라 한마디 말할 수 있게 될까.
생존을 위해 주검을 끌고가는 개미들처럼
그 주검들으로도
어린것들의 살이 오른다는 걸나 감사하게 될까, 서른이 되면…
[나희덕, 나 서른이 되면]
방황은 이십대에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길을 헤메고 있다. 분노와 사랑이 무뎌지지 않기를 빌며…
MY LORD GOD, I have no idea where I am going. I do not see the road ahead of me. I cannot know for certain where it will end. Nor do I really know myself, and the fact that I think I am following your will does not mean that I am actually doing so. But I believe that the desire to please you does in fact please you. And I hope I have that desire in all that I am doing. I hope that I will never do anything apart from that desire. And I know that if I do this you will lead me by the right road though I may know nothing about it. Therefore I will trust you always though I may seem to be lost and in the shadow of death. I will not fear, for you are ever with me, and you will never leave me to face my perils alone.
[Thomas Merton, “Thoughts in Solitude”]
당신을 기쁘게 하겠다는 바람이 사실 당신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찾아왔지만, 우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생일만을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