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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어제는 작심하고 하루종일 TV 앞에 앉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을 보았다. 직접 워싱턴에 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날씨도 춥고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 일찌감치 TV로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바마를 지지하든 그를 지지하지 않든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이 있다. 바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는 것. 링컨이 노예해방선언문에 서명한지 정확히 146년만에,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바로 그 링컨기념관 앞에서 그 역사에 남을만한 연설인 “I have a dream”을 외친지 46년만에 현재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흑인이 아닌 나도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정작 흑인들은 어떻겠는가. 수백년동안 노예로 비천한 삶을 살았고,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그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은 그들에게 있어 제2의 해방을 의미했다.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링컨 기념관 앞에서 이렇게 사자후를 토했다.

I have a dream that one day this nation will rise up and live out the true meaning of its creed: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I have a dream that one day on the red hills of Georgi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sit down together at the table of brotherhood.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n the state of Mississippi, a state sweltering with the heat of injustice, sweltering with the heat of oppression, will be transformed into an oasis of freedom and justice.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down in Alabama, with its vicious racists, with its governor having his lips dripping with the words of interposition and nullification; one day right down in Alabama little black boys and black girls will be able to join hands with little white boys and white girls as sisters and brothers.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and every hill and mountain shall be made low, the rough places will be made plain, and the crooked places will be made straight,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마틴 루터 킹, “I have a dream” 연설 중에서>

그리고, 46년이 지난 2009년 1월 2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 기념관 맞은 편에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통령 취임 연설로 이렇게 화답했다.

The time has come to reaffirm our enduring spirit; to choose our better history; to carry forward that precious gift, that noble idea, passed o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he God-given promise that all are equal, all are free, and all deserve a chance to pursue their full measure of happiness.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연설 중에서>

사람은 피부 색깔에 관계 없이, 가진 것에 관계 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진리, 자유롭다는 진리,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진리가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지 150여년만에 그리고 킹 목사가 외친지 50여년만에 오바마에 의해 실현되어지려는 순간이다.

지금 미국은 경제 문제를 비롯해서 수많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왔지만, 그들은 탐욕스러웠고, 겸손하지 못했으며, 때로는 무자비했다. 촘스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통제되지 않는, 통제할 수 없는 수퍼 불량 국가였던 것이다. 이제 그 미국이 자신들의 탐욕으로 인한 엄청난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지도자로 오바마를 택했다.

오바마가 미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그 전의 미국 지도자들 보다는 조금은 더 도덕적이고, 조금은 더 진보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 그가 제시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책들을 보면 그가 적어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Our challenges may be new. The instruments with which we meet them may be new. But those values upon which our success depends — hard work and honesty, courage and fair play, tolerance and curiosity, loyalty and patriotism — these things are old. These things are true. They have been the quiet force of progress throughout our history. What is demanded then is a return to these truths. What is required of us now is a new era of responsibility — a recognition, on the part of every American, that we have duties to ourselves, our nation and the world, duties that we do not grudgingly accept but rather seize gladly, firm in the knowledge that there is nothing so satisfying to the spirit, so defining of our character, than giving our all to a difficult task.

열심히 일하기, 정직, 용기, 선의의 경쟁, 관용, 호기심, 성실, 그리고 애국심. 결국 인간이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 무기들은 우리가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기본들이다. 그는 그의 취임 연설에서 그 기본을 강조했다.

비주류가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최고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는 주류보다도 더 도덕적이어야 하며, 더 똑똑해야 하며, 더 정직해야 하며, 더 열심히 일해야 하며, 더 잘생겨야 하며, 더 말을 잘해야 한다. 게다가 하늘도 도와야 한다. (미국의 경제 위기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오바마가 아무리 훌륭한 자질이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은 미국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 민중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일일 것임이 분명하다. 그의 통치 아래서 미국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도덕적이고 조금 덜 탐욕적이길 기도한다. 오바마가 킹 목사의 꿈을 한발 한발 이루어가길 기도한다.

강기갑을 지켜내야 하는 이유

강기갑을 지켜내야 하는 이유

18대 국회가 당연히 막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지난 해 봄 총선이 끝난 바로 직후였다. 수구 정당 한나라당이 170석을 넘었고, 그에 못지 않은 수구 정당 자유선진당이 18석, 친박연대라는 해괴한 이름을 가진 한나라당 샴쌍둥이가 8석으로 국회의 3분의 2가 수구들로 득시글거렸다. 게다가 무늬만 야당인 민주당이 80여석, 그리고 잘난 진보 민노당은 17대에 비해 반으로 줄어든 5석에 불과했다.

이런 “똥덩어리” (강마에 버전으로) 국회를 만든 우리 국민들의 저력(?)에 대해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에 의해 생긴 결과가 아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파고들면 그들의 영향이 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직접적으로는 국민들의 무관심과 탐욕이 빚은 불행한 결과다. 수구세력 지지자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쓰레기장에서 장미꽃이 핀다고 이런 막장 18대 국회를 만든 국민들이 용서받을 수 있다면 그 이유는 강기갑이라는 인물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정말 경남 사천의 유권자들에게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들이야말로 18대 국회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을 국회로 보내주었다.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고, 그 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참여정부 시절 민노당이 보여주었던 정치력 부재와 그동안 민노당의 간판이라 불려왔던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등에 깊이깊이 실망했던 사람이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은 좌파 인텔리일지언정 그들은 노동자 농민이 아니다. 그들은 머리와 말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말했듯이) 그들은 스키머(Schemer)이고, (김근태, 문국현이 그렇듯이) 그들은 껍데기다.

내가 민노당을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강달프 강기갑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현재 18대 국회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이 땅의 농민들과 노동자들에게 말이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자신의 노동으로 가치를 생산하고 창조하고 그러면서도 늘 고달프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말이다. 강기갑의 어깨에 수백만 농민들의 그리고 천만 노동자들의 한과 기대와 염원이 걸려 있다.

강기갑은 평생 농민으로 살아왔다. 그는 그의 두손으로 흙을 일구고, 곡식을 키우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지금은 정치인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뼛속 깊이 농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는 투박하고, 거칠고, 어눌하고, 세련되지 못했지만, 그는 정직한 손을 가지고 있고, 노동의 의미를 온몸으로 알고 있다. 이 지점에서 강기갑은 말로만 정치를 하던 기존 좌파 인텔리들과 극명하게 구별된다.

조중동,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그들의 주적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주적을 숙청하기 위해 악랄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공격한다. 대단한 능력이다. 김대중, 노무현, 유시민, 이해찬 등이 끊임없이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자, (노무현은 여전히 그들의 밥이지만) 이제 그 화살이 강기갑을 향하고 있다. 강기갑은 현재 수구들의 눈엣가시다.

한나라당은 강기갑의 사퇴결의안을 준비하고, 국회사무처는 강기갑을 고발한단다. 검찰은 법원에서 나온 1심 결과가 너무가볍다며 어떻게 해서든 강기갑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끌어내려 하고 있다. 조중동은 연일 강기갑에 대해 폭력사범으로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수구세력 지지자들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는 현재 강기갑이 필요하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국회를 구할 수 있는 단 한명의 의인이다. 수구들의 표적이 된 강기갑을 지켜야 한다. 당신이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면 강기갑에게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지금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끌고가는 이 나라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강기갑을 끌어안아야 한다.

나는 노무현, 유시민에 이어 세번째로 강기갑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국회에서 정정당당히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저 탐욕에 찌든 한나라당과 수구세력에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릴 수 있도록 그를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이다.

강기갑 의원에게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데, 다음에는 저 박계동이의 면상에 국민의 이름으로 정의의 고무신을 날려주시길 바란다. 룸싸롱에서 여종업원 가슴이나 만지던 자가 국회사무처장이라니. 이런 자들 때문에 대한민국 국회는 하염없이 막장으로 치닫는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탐욕이다

문제는 여전히 탐욕이다

20세기의 위대한 영혼 간디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Earth provides enough to satisfy every man’s need, but not every man’s greed.

자연은 모든 인간의 “필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지만, 모든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라는 이 간결한 말은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 위기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결국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끝없는 탐욕의 추구에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간단하게 진단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 탐욕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청빈하고 간소하게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들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규범이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시작되는 이 경제 위기 속에서 인간들이 삶의 방법을 보다 현명하게 배워나가기를 바란다. 지능이 있는 생명체라면 그렇게 진화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런 피눈물나는 대가를 치루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

인간들은 신과 자연 앞에 겸손해야하며, 욕망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모든 종교가 인간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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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보다 세련되지만 더 경계해야 할 인물

이문열보다 세련되지만 더 경계해야 할 인물

이문열이 조갑제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빨갱이 아버지를 원죄로 받아들인 이 가련한 소설가는 자신의 유아적 상상력이 고갈되어 버리자 무의식 속에 침잠되어 있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수구꼴통의 길로 들어섰다.

이문열의 막말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기에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될 일이다. 이문열, 조갑제, 전여옥 같은 인간들은 지구 어느 곳을 가더라도 확률적으로 존재하게 되어있기에, 이들이 지껄이면 지나가는 개가 짖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뿐이다. 상대를 해줄 필요도 없고, 화를 낼 이유도 없다.

문제는 이문열이 아니고 최장집 같은 인간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 정치학계의 거두인 최장집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 집회를 하러 나온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교수는 그러나 “거리의 정치는 오늘 이 선에서 그쳤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번 시위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 이 문제는 ‘끝이 없는 시위’가 아니라 제도권 내 정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정치를 통해 풀어야지 이 단계를 넘어서는 시위가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 교수는 “21년 전처럼 독재정부에서 민주정부로 정치체제를 변화시킨다든가, 지금처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쇠고기 문제 등 거대 이슈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규모로 거리에 나와 ‘이건 안된다’고 말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섬세한 대안을 만들어 내는 일에는 ‘거리의 정치’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치권이 나서서 전체 공익에 부응하는 제도 조건에서 선택할 대안,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낼 단계가 됐다”는 얘기였다.

[최장집 교수 “거리 집회는 오늘 이 선에서 그쳐야”, 데일리서프라이즈]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최장집은 거리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물론이고 한나라당과 수구세력들이 3분의 2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정치권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단다. 도대체 문제를 이렇게 만든게 누구인지 최장집은 알고나 하는 얘기인가. 촛불은 이메가가 항복을 할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정치권에만 맡겨두어서는 안된다. 지금 정치 지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한다며 앞장서서 비판했던 최장집이 이메가 정부에게는 그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지 않는다.

나는 한 때 진보학계의 거두라는 최장집이 왜 한나라당의 집권을 바라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을까 궁금했었다. 오마이뉴스가 전한 “이명박과 최장집, 나라 걱정에 머리맞댄 시절도”라는 기사는 왜 최장집이 이메가에게는 그 서슬 퍼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지 못하는지 그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메가와 최장집은 비록 추구하는 이념을 다를지 모르지만, 아직도 암묵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 동문으로 말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온 국민들에게 이문열과 최장집은 결국 같은 얘기를 했다. 단순무식하게 자신의 분노를 절제하지 못한 이문열은 막말을 한 것 뿐이고, 최장집은 진보계의 학자답게 세련되지만 간교하게 촛불을 꺼 볼려고 한 것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문열이나 조갑제처럼 드러내놓고 수구꼴통 짓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더욱 위험한 부류는 마치 진보인척 하면서 끊임없이 뒷다리를 잡는 최장집이나 손호철 같은 인물들이다. 이들은 머리는 따로 두고 있지만 결국 뿌리는 수구들과 하나인 샴쌍둥이인 것이다.

그나저나 이메가는 좋겠다. 수구 대표인 이문열부터 진보 대표인 최장집까지 서로 촛불을 꺼보겠다고 달려드는 소방수들을 두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이메가는 촛불이 꺼질까 매일 기름을 부어대는구나. 눈물나는 코메디의 한 장면이다.

두 번째 의인이 된 김이태 연구원

두 번째 의인이 된 김이태 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첨단환경연구실에서 근무하는 김이태 연구원이 이메가가 추진하고 있는 대운하 사업에 대해 양심선언을 했다. 지난 1월 서울대 이준구 교수에 이어 두 번째다. 김이태 연구원의 경우는 대운하 반대 논리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라는 국토해양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양심선언을 했다는 점에서 이준구 교수의 경우보다 파장은 더 클 것이다.

“저는 요즘 국토해양부 TF팀으로부터 매일 매일 반대논리에 대한 정답을 내놓으라고 요구 받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반대논리를 뒤집을 대안이 없습니다. 수많은 전문가가 10년 연구했다는 (데) 실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김이태 연구원은 스스로를 유약한 사이비 과학자로 칭했지만, 그는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이다. 특히 그가 “불이익 감수하겠습니다. 한참 입시준비중인 고3의 딸과 고1의 아들만 아빠를 믿어주면 됩니다.”라고 얘기한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추악한 이메가 정부 하에서 그는 당연히 불이익을 받게 되겠지만, 그는 두 아이의 존경을 받는 아빠가 되었으며 나를 포함한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었다.

김이태 연구원이 한 얘기는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아무런 실익이 없는 대운하를 추진할 논리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몇몇 쓰레기 같은 지식인 나부랭이들 같이 “강에 배가 다니면 수질이 좋아진다”라든지, “물건을 하루 먼저 보내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라는 코메디를 하지 않고, 제 정신 가진 사람들은 대운하를 찬성할 수 없다.

김이태 연구원은 이메가 정부가 왜 쓸모없는 운하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메가가 대운하를 고집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대규모 개발을 통해 주변 땅값을 올려보자는 것이다. 최근 2~3년간 대운하 사업이 시행된다고 얘기 나온 곳의 땅 거래가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해 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모르긴 몰라도 강부자, 고소영이라 불리는 이메가 정부의 내각, 그 친인척들, 그리고 대한민국 1%의 주류들이 대부분 그 땅을 샀을 것이다. 이메가는 그들의 투자에 보답을 해 줄 의무가 있다. 왜? 자기를 대통령으로 밀어주었으니까.

두 번째는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한 비자금 조성이다. 아직까지도 건설 회사들이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할 것이며, 그 비자금의 일부는 정치 자금으로 다시 들어올 것이다. 말은 민간 자본으로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국민 세금으로 메꿔야 할 사업이다. 왜? 아무런 사업성이 없으니까. 사업성이 없어도 건설 회사들이 대운하 상업을 하겠다고 들어오는 이유는 이메가가 그 이득을 보장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이메가가 할 줄 아는 것이 삽질, 거짓말, 그리고 먹튀 정도이기 때문이다. 경제를 살릴 능력도, 의지도, 비전도 없는 인간이 내세울 정책은 대운하 같은 것 밖에 없다. 그리고 그동안 이런 삽질과 거짓말 그리고 먹튀로 재미를 좀 봤거든. 청계천숭례문을 보시라. 그가 서울 시장 재임 시절에 최고의 치적으로 자랑하다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를. 결국 대운하가 가져올 재앙은 어차피 그가 대통령을 그만둔 후에 닥쳐올 것이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전두환 이후 가장 최악의 대통령을 맞은 이 나라에 김이태 연구원의 용기는 한 줄기 빛이요, 한 줌의 소금이다. 성경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아브람이 여호와한테 받은 약속이 사실이라면, 우리도 희망은 있다. 열 명의 의인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이준구, 김이태. 우리는 벌써 두 명의 의인을 찾았다.

이준구 교수, 김이태 연구원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한다.

저렴한 위선자의 말로, 문국현의 경우

저렴한 위선자의 말로, 문국현의 경우

지난 대선 당시, 진보 진영에서는 문국현을 제 2의 노무현으로, 또는 진보 진영의 대표 선수로 지지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의 젊은 유권자들은 문국현을 많이 지지했었다. 나도 처음에는 정계에 갓 입문한 그의 언행을 유심히 관찰했었지만, 정치인 문국현의 밑천이 일천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대선 당시 나는 문국현에 대한 몇 개의 글을 썼었는데, 몇몇 문국현 지지자들은 내가 쓴 글들을 참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오늘 문국현은 자유선진당의 이회창을 만나 교섭단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두 당의 정체성이 그리 다르지만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치 신인 문국현의 입에서 노회한 정치 9단 김종필 같은 얘기를 듣는 것은 참으로 역겨운 일이다. 물론, 그가 대선 직전 박정희의 청렴결백성을 주장할 때부터 이런 사태를 예견할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문국현을 대선 기획 상품으로 밀었던 오마이뉴스와 지난 대선 때 문국현을 지지했던 적지 않은 진보 성향의 지지자들은 지금 이회창과 손맞잡고 활짝 웃는 문국현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문국현과 같은 이런 껍데기들이 스스로의 궁벽한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예상보다 빨리 자폭했다는 사실이다.

원칙이란 이런 것이다. 노동자의 삶은 노동자가 지켜야 하고, 농민의 삶은 농민이 지켜야 한다는 것. 노동자의 삶을 합리적인 경영자로 보이는 위선자가 바꿀 수 없다는 것. 한국노총이 대선에서 이메가를 지지한 것은 한국노총이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고, 지난 총선에서 강기갑이 한나라당 사무총장 이방호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지난 총선의 유일한 위안꺼리라는 것이다.

정치인을 평가하고 선택할 때, 우리는 주로 언론이 제공한 정보를 이용한다. 하지만, 그 정보라는 것이 대개는 왜곡되어 있고, 대개는 각색되어 있어서 정확한 판단을 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우리는 그 정치인의 인생 역정과 선택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하며,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어떤 자세를 견지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문국현의 경우가 진보 진영에게 좋은 공부가 되기를 바란다.

죽음을 앞두면 현자가 되는가

죽음을 앞두면 현자가 되는가

내가 인정하는 또 하나의 진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 아무리 큰 명예와 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언제 죽을지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내일이 될지 아니면 몇 십년 후가 될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아는 사람들은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가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릴 때는 어떤 종교인들 보다도 더 경건한 삶을 유지한다고 한다. 죽음이 삶과 대적되는 개념이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다음 생을 준비할 때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게 되어 있다.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가상 현실을 가르치는 Randy Pausch라는 교수의 마지막 강의가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주 우연히도 이 교수의 강의 동영상을 보았는데, 췌장암 말기를 선고받고, 아직도 어린 세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어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이 공개 강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 교수의 강의 내용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교수의 삶이 내가 감명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것도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의욕적으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4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젊은 아내와 어린 세 아이들을 두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강의는 그 상식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울림의 정도는 다르다.

내가 Randy Pausch의 입장이라면, 나는 내 딸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 줄까? 곰곰히 생각해 보지만,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다시 만날 기약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더더군다나 그렇다. 그리고 그 슬픔은 살아남은 아이들의 몫이 될테니까.

Randy Pausch가 건강해지길 바라지만, 그가 건강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강의를 보면서 그의 세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자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손학규, 변절한 기회주의자는 입을 닥쳐야

손학규, 변절한 기회주의자는 입을 닥쳐야

손학규는 한때 인권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얼마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던 그가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교수를 하다가 민자당에 입당하여 국회의원이 된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인물이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의 후신인 민자당에 입당했다. 그의 배신의 세월은 공식적으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나라당에서 손학규는 3선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 지사 등을 두루 거치며 보수 엘리트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다. 한나라당이 제공하는 단물이라는 단물을 죄다 빨아먹으며, 한나라당의 수구꼴통 이미지를 탈색시키기 위한 얼굴마담 노릇을 한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이명박, 박근혜와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산이 없자 당을 박차고 나와 버린다.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당”이라는 말을 남기고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손학규의 두번 째 변절이다. 그의 말처럼 한나라당은 예나 지금이나 친일과 독재의 잔재들이 주인인 그런 당인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세력과 15년 가까이 나뒹군 손학규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게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손학규는 정동영이 열린우리당을 깨고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자, 그곳에 입당하여 경선을 치른다. 대선 후에는 급기야 통합신당의 대표가 된다. 그리고는 또다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칼을 겨눈다.

손 대표는 이날 KBS1 TV ‘18대 총선 정강정책방송연설’에 출연 “대통합민주신당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로부터 정말 따끔한 회초리를 맞았다. 아쉽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지만 당연히 맞을 매를 맞은 것”이라고 해석한 뒤 “그저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허송세월한 대가”라고 참여정부의 지난 5년을 맹비난했다.

[손학규 “대선패배는 지난 5년 허송세월한 댓가”, 데일리서프라이즈]

지난 5년 세월을 허송한 것은 정동영, 천정배, 김한길의 대통합신당이지 참여정부가 아니다. 손학규가 몸담았던 한나라당은 외환위기를 불러와 나라를 부도사태에 직면하게 만들었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국정 발목 잡기로 세월을 보냈다. 그런 당에서 호의호식하던 자가 참여정부를 비난한다는 것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손학규가 대표가 된 대통합신당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정당이 되었다. 목표도 없고, 동력도 없고, 지지층도 없는 그런 정당이 되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정동영은 정계를 떠나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정동영이지 노무현이 아니다. 정동영은 노무현을 계승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노무현도 정동영을 자신의 후계자로 여기지 않았다. 설령 정동영이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그도 역시 참여정부를 손학규처럼 공격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손학규 같은 변절자는 정계를 떠나야 한다. 떠나기 싫다면 입이라도 다물고 있어야 한다.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얘기하면 안된다. 손학규를 대표로 총선을 치른다면 대통합신당은 몰락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업자득이 될 것이고, 한나라당이 집권한 대한민국 역시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이것 역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의 자업자득이 될 것이다.

인수위, 니들부터 영어만 써라

인수위, 니들부터 영어만 써라

이명박과 (똘)아이들의 지난 한 달간 쑈를 보면 정말 눈물이 난다. 하다하다 이젠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겠다는 정책까지 내놓았다. 국어, 국사를 영어로 가르치겠다던 이명박의 전무후무한 공약을 진짜로 시행할 모양이다. 처음에는 이들이 그냥 무개념에다가 머리만 나쁜 족속인줄로 알았는데, 인수위의 지난 한 달간의 생쑈를 보다 보니 혹시 이들이 안드로메다에서 지구로 유배된 (혹은 지구정복을 위해 파견된) 외계인들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어는 그냥 많이 사용되는 외국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는 말이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이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인생 목표가 아니다. 영어 사교육이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영어 시험의 비중을 낮추면 된다. 아니 영어 시험을 안보면 될 것 아닌가. 외교관이 되고 싶은 사람들, 국제적으로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들,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 이렇게 영어가 필요한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한 만큼 영어를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전과목을 영어로 가르치겠다? 누가 가르칠 건데? 초등학교 교사들 중에 전과목을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원어민을 데려오면 된다구? 교육이 단지 영어만 배우면 끝나는 것인가? 인수위의 인간들 중에 진짜 교육에 대해 아는 인간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라.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인수위부터 영어만 써라. 회의도 영어로 하고, 기자회견도 영어로 해라. 법안도 영어로 만들고, 국회에서의 싸움도 영어로 하고, 한나라당의 당무회의도 영어로만 해라. 이명박도 영어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부시를 만나서도 통역 쓰지 말고 영어로만 얘기해라.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 나는 정말 당신들의 지능지수가 의심스럽다. 이런 정책을 내놓는 인수위의 이경숙이나 이주호 같은 이들은 정말 어느 정도 영어를 잘 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일제 시대 일본의 우리말 말살 정책이 오사카 태생의 이명박을 통해 이런 식으로 결실을 보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세종대왕이 통탄하실 일 아닌가.

단 한 명의 의인

단 한 명의 의인

구약 성경에 보면, 아브람은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해 열 명의 의인을 찾아 나서지만 실패하고, 여호와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다. 아브람은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열 명의 의인을 찾지 못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준구 교수는 우리나라 “미시경제학의 대가”라 불리운다. 미시경제학을 전공했으니 그는 진보 경제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상식과 양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게다가 용기까지 보여 주었다.

대부분 지식인들의 공통점은 유약하다는 것이다. 일부는 권력의 강아지가 되는 것을 서슴지 않고, 또다른 일부는 진보연하면서 심한 딴지를 건다. 이런 구역질 나는 상황에서 이준구 교수는 꼿꼿한 의인이 되었다.

경부운하를 지지한다는 일부 교수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정말 멍청한 사람들이다. 경부운하가 말도 안되는 허황된 짓인 줄 알면서도 자기자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며, 경부운하가 경제성이 있고 꼭 필요한 프로젝트라 생각하는 교수들은 자신들의 지능지수를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유약한 지식인 사회에서 이준구 교수는 첫 번째 의인으로 나섰다. 우리 사회에서도 열 명의 의인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저 경부운하와 같은 또라이 짓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경부운하는 상식과 비상식을 가르는,더 나아가 생존과 공멸을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