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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죽으면 나타나는 징후들

꿈이 죽으면 나타나는 징후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첫번째 소설 <순례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꿈들이 죽어가는 두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여깁니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 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그 세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 문학동네, pp. 78-79>

코엘료의 말이 맞다는 가정에서 본다면, 나의 꿈은 이미 죽어 버렸다. 나에게 나타난 징후는 세 번째 것인데, 언제부턴가 나는 삶에 대한 기대를 접었던 것 같다. 무엇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던 몇몇 경우엔 내 노력보다 훨씬 큰 것을 얻기도 했고, 그렇지 않았던 대부분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실패했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않았고, 운이 좋았다고 해서 기뻐하지도 않았다. 삶은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내 곁을 스쳐 갈 뿐이었다. 나에게는 열정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저 순간순간 내 자신을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

내 삶은, 언젠가는 바다로 가겠지만 그것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었다. 때로는 바위에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폭포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내가 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가 가버렸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 코엘료의 말처럼 나의 꿈은 이미 죽어 버린 것인가?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아내의 꿈은 코엘료처럼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었다. 아내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꿈을 이룬 후에 아내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땅 위에 희망은 없었다

땅 위에 희망은 없었다

땅 위에 희망은 없었고, 신은 우리를 잊은 듯 했다. 어떤 이들은 신의 아들을 보았다 했지만,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다. 그가 왔다면, 그는 전에 했던 것처럼 아주 위대한 일들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도, 그가 한 일도 보지 못했기에 그가 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희망을 잡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들은 그의 자비를 구하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그들은 그가 했다고 알려진 약속에 매달렸다. <붉은 구름,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There was no hope on earth, and God seemed to have forgotten us. Some said they saw the Son of God; others did not see him. If He had come, He would do some great things as He had done before. We doubted it because we had seen neither Him nor His works. The people did not know; they did not care. They snatched at the hope. They screamed like crazy men to Him for mercy. They caught at the promise they heard He had made. <Red Cloud,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가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가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는 하버드에서 최고의 강의를 한다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비껴갈 수 없는 여러 도덕적 딜레마들을 유명한 철학 이론들을 끌어들여 설명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좋은 책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샌델 교수가 도덕적 책임의 세 가지 범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도대체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가? 인간들의 관념 속이 아니고, 하버드 대학 같은 아름다운 강의실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과연 정의는 존재하고 정의는 승리하는가? 사필귀정이란 말은 진리인가?

엊그제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사실상 이라크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했다. 사담 후세인이라는 독재자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으로 4만 여명의 군인과 86만 여명의 민간인 등 총 90만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아이들과 여자들은 모래 사막에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쓰러져 갔다. 이런 것이 정의로운 전쟁인가?

15세기 콜럼버스가 오기 전 미국 대륙에는 천만 명이 넘는 인디언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백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인디언들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고난을 당한다. 15세기에 천 만명이 넘던 인디언들이 20세기에는 불과 20만명 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6000천만 마리나 있던 들소들은 2천여 마리만 살아 남았다. 백인들의 사악함과 탐욕 앞에 인디언과 들소들은 겨우 멸족만을 면했을 뿐이다. 이들에게 정의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광주에서 수백 명의 무고한 국민들을 죽이고 집권한 전두환은 “정의 사회 구현”이란 표어를 내걸었다. 이 독재자는 호주머니에 29만원을 넣고 다니면서 말년에 아주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다. 이런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가?

인류 역사 상 정의라는 것이 실현된 적이 있었는가? 왜 언제나 힘없는 사람은 죽어야 하고, 고통받아야 하고, 탄압받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힘이 정의인가?

힘이 정의인 세상에서 샌델 교수의 책은 한낱 멋진 지적 유희로 끝나 버릴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소설에는 “행복”라는 화두를 지니고 여행을 떠나는 정신과 의사 꾸뻬 씨가 등장한다. 꾸뻬 씨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행복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여행을 통해 꾸뻬 씨가 배우게 된 23가지의 지혜들은 행복에 관한 다양한 단면들을 보여준다.

  1. 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12.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15.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6.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19.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행복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또는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며, 그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 또는 다른 이들의 행복으로 완성된다.

꾸뻬 씨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늙은 스님은 왜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되는지를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지요. 그렇게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입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p. 190>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 한 조각 바라보면서,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피어난 들꽃 한송이를 바라보면서, 무더위를 식히는 한줄기 소나기를 바라보면서, 저녁 밥에 스며있는 농부들의 부지런한 손길을 느끼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무한히 감사하며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은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파랑새다.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 블로그를 우연히 찾은 당신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할 것이며, 그로 인해 나도 무한한 행복감에 빠지리라.

자비의 마음

자비의 마음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자비의 마음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약하거나 강하고 굳세거나, 그리고 긴 것이건 짧은 것이건 중간치건, 굵은 것이건 가는 것이건, 또는 작은 것이건 큰 것이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살고 있는 것이나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어느 누구도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 또 어디서나 남을 경멸해서도 안 된다. 남을 곯려 줄 생각으로 화를 내어 남에게 고통을 주어서도 안 된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 없는 자비심을 발하라.

또한 온 세계에 대해서 무한한 자비를 행하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자비를 행하라.

서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신성한 경지라 부른다.

May all beings be happy and secure, may they be happy-minded.

Whatever living beings there are, either feeble or strong, all either long or great, middle-sized, short, small or large,

Either seen or which are not seen, and which live far (or) near, either born or seeking birth, may all creatures be happy-minded.

Let no one deceive another, let him not despise (another) in any place, let him not out of anger or resentment wish harm to another.

As a mother at the risk of her life watches over her own child, her only child, so also let every one cultivate a boundless (friendly) mind towards all beings.

And let him cultivate goodwill towards all the world, a boundless (friendly) mind, above and below and across, unobstructed, without hatred, without enmity.

Standing, walking or sitting or lying, as long as he be awake, let him devote himself to this mind; this (way of) living they say is the best in this world.

<숫타니파타 Sutta Nipata>

이러한 가르침에 따르면,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이나 이명박이나 뉴라이트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고, 성철 스님이 “나의 원수가 나의 가장 큰 은인“이라 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슬픈 5월, 평화로웠다

슬픈 5월, 평화로웠다

빙하기 같은 4월을 뒤로 하고, 5월이 되자 온 산들이 들고 일어섰다. 바람에 온기가 실려 있었고, 나무와 꽃들은 저마다의 싱그러움을 자랑했다. 산을 보고 들을 보면, 달라진 것이 없었다. 때가 되면 꽃이 피었고, 나뭇잎이 돋았으며, 새들이 날아왔다. 한가하고 평화로웠다.

천안함으로 죄없는 병사들이 수장되어도, 구제역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동물들이 산채로 땅에 묻혀도, 켜켜이 쌓인 슬픔으로 끝없이 침잠하여도 자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평화로웠다.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봉하 들판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해가 떠오르는 남동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출 시간이 지났지만 두터운 구름과 자욱한 아침안개 때문에 아직 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태양이 솟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리를 곧게 펴고 섰다.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 마을의 정겨운 산과 들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평화로웠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사람들은 언제까지 그를 기억할까. 해마다 5월이 되면 그의 모습을 기억할까. 따뜻한 바람에 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평화로운데,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는 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정녕 평화로웠을까.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를 마쳤다. 몇가지 일을 하고, 두끼 식사를 하고, 책을 몇 줄 보았다.

인디언들의 몇 가지 가르침

인디언들의 몇 가지 가르침

아침에 눈을 뜨거나 저녁에 잠들기 전에 뭇 생명들과 그대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 감사하라. 위대한 정령이 그대에게 준 많은 좋은 것들과 날마다 조금씩 더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라. 어제 그대가 한 행동과 생각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구하라. 다른 모든 생명체에게 이로움이 될 일들을 찾으라.

대지와 대지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의 어머니로 여기라. 광물 세계, 식물 세계, 동물 세계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어머니 대지를 더럽히는 어떤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지혜를 갖고 어머니 대지를 보호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한결같이 진실되어야 한다.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인류 전체를 존중하는 것과 같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과 부족들은 하나의 들판에서 피어난 서로 다른 색깔의 꽃들과 같다. 모두가 아름답다. 위대한 정령의 자식들로서 모두가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일에 있어 절제와 조화를 중요시 여기라.

삶에서 그대를 행복으로 이끄는 것과, 그대를 파괴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삶의 지혜다.

그대의 마음이 안내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를 따르라. 여러 가지 형태로 찾아오는 해답에 마음을 열어 두라. 해답은 기도를 통해, 꿈을 통해, 또는 홀로 고요히 있는 시간을 통해서도 올 수 있다. 지혜로운 어른들과 친구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그것은 찾아온다.

<아메리카 인디언 도덕률, 류시화 역>

Each morning upon rising, and each evening before sleeping, give thanks for the life within you and for all life, for the good things the Creator has given you and for the opportunity to grow a little more each day. Consider your thoughts and actions of the past day and seek for the courage and strength to be a better person. Seek for the things that will benefit others (everyone).

Treat the earth and all of her aspects as your mother. Show deep respect for the mineral world, the plant world, and the animal world. Do nothing to pollute our Mother, rise up with wisdom to defend her.

Be truthful at all times, and under all conditions.

The hurt of one is the hurt of all, the honor of one is the honor of all.

All the races and tribes in the world are like the different colored flowers of one meadow. All are beautiful. As children of the Creator they must all be respected.

Observe moderation and balance in all things.

Know those things that lead to your well-being, and those things that lead to your destruction.

Listen to and follow the guidance given to your heart. Expect guidance to come in many forms; in prayer, in dreams, in times of quiet solitude, and in the words and deeds of wise Elders and friends.

<Native American Traditional Code of Ethics, Intertribal Times, October 1994>

미국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인류 역사상 영적으로 가장 진보된 종족이었다. 백인들은 그들을 야만인 또는 미개인이라 불렀다. 백인들은 그들의 터전을 빼앗고, 그들을 몰살시켰다.

그들은 사라졌고, 그들의 정신만이 화석처럼 남겨져 있다.

인간들이 겸손해야 하는 까닭

인간들이 겸손해야 하는 까닭

임마뉴엘 스베덴보리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튼과 어깨를 나란히할 정도로 유명한 과학자였다. 그는 57세 때부터 27년간 지상과 영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천국과 지옥을 체험했고, 그것들을 방대한 기록으로 남겼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그가 신을 버리고 과학을 추종하는 인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과학은 놀라운 기적을 인류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만은 절대로 못합니다. 첫째 현미경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둘째 싹트는 보리알 하나도 생명을 가진 것을 창조하지 못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 p.63>

인간유전자 염기서열을 판독해낸다는 인간의 과학이지만, 스베덴보리의 말처럼 생명을 가진 것은 짚신벌레 한마리 만들어내지 못한다. 인간의 과학으로는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신이기에 “신은 없다” 또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다. 과학으로 볼 수 없으면 정말 없는 것인가. 인간의 과학이 그만큼 완전한 것인가.

엄청난 발전을 이룬 과학이지만, 우리 인간들이 알고 있는 것은 갠지즈강의 모래알 몇 개뿐이다. 진실로 인간들은 신 앞에, 그리고 신이 창조한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인간들의 오만은 파멸을 불러온다. 신은 언제나 그것을 경고하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못들은 체 하거나 실제로 듣지 못한다. 그 소통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을 하게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는 그의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에서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그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들은 자기의 삶을 만들어 간다. 인간들이 각자의 소명을 다하고 물리적 몸을 벗을 때, 다시 말해 인간들의 삶이 죽음을 통해 완성될 때, 물리적 몸은 소멸하지만 인간들의 영은 창조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 존재의 근원을 신이라고 하고, 하느님이라고도 하고, 붓다라고도 부르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근원이다.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창조의 근원 앞에서 받는 단 하나의 질문.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이 질문에 쩔쩔매며 우물쭈물할 나를 상상해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봉사를 해왔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영향을 주며 살아왔을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자명하다. 예수나 붓다를 비롯한 인류의 수많은 성인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은 단 하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심지어 원수라 할지라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감싸주는 것, 그것만이 영원하다는 것은 진리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결코 불행이 아니라고. 죽음은 고통도 두려움도 아니라고. 죽음은 삶의 완성이자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마치 누에가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이고 삶의 목적은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우리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우리의 몸을 진짜 “나”로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몸이 죽어 소멸하면 우리도 소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스 박사의 연구와 증거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과학”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수많은 신비주의 스승들이 수천 년 전부터 가르쳐왔던 것들이다. 우리의 몸이 소멸한다 해도 우리의 “참나”는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찾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생의 수레바퀴>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고, 그만큼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없이 기뻤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미리내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神)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본질

신(神)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본질

결국, 야보 선사의 흔적없는 삶은 나를 라마나 마하리쉬와 성철 스님에게 인도했다. 성자들의 가르침은 그 뿌리가 어느 종교에 닿아있든지 상관없이 꼭 닮아 있었다. 또한, 라마나 마하리쉬의 신에 대한 가르침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정의와 다르지 않았다.

신은 형상이 없이 어디에나 있습니다.

신은 순수한 존재이며, 순수한 의식입니다.

세상은 신 안에서 그리고 신의 힘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그러나 신은 세상의 창조자가 아닙니다.
신은 결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신은 그저 있습니다.
신에게는 의지도 욕망도 없습니다.

개별성이란 자신이 신과 같지 않다는 환영입니다.
이 환영이 사라질 때 남아 있는 것이 신입니다.

신, 구루, 참나는 동일합니다. 구루는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신입니다. 동시에 구루는 헌신자의 가슴에 있는 참나입니다.

신은 있습니다.
신은 그대 안에 있습니다.
신은 언제나 일인칭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불멸의 의식, p. 124>

진리는 깨달은 성자들의 의해 이미 드러나 있었다. 세상은 이미 구원되어 있었다. ‘나’를 버리고 ‘참나’를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대로 인간의 본질은 신(神)일진데, 우리의 욕망과 카르마가 그 본질을 가리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그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