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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소설에는 “행복”라는 화두를 지니고 여행을 떠나는 정신과 의사 꾸뻬 씨가 등장한다. 꾸뻬 씨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행복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여행을 통해 꾸뻬 씨가 배우게 된 23가지의 지혜들은 행복에 관한 다양한 단면들을 보여준다.

  1. 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12.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15.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6.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19.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행복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또는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며, 그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 또는 다른 이들의 행복으로 완성된다.

꾸뻬 씨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늙은 스님은 왜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되는지를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지요. 그렇게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입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p. 190>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 한 조각 바라보면서,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피어난 들꽃 한송이를 바라보면서, 무더위를 식히는 한줄기 소나기를 바라보면서, 저녁 밥에 스며있는 농부들의 부지런한 손길을 느끼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무한히 감사하며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은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파랑새다.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 블로그를 우연히 찾은 당신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할 것이며, 그로 인해 나도 무한한 행복감에 빠지리라.

자비의 마음

자비의 마음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자비의 마음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약하거나 강하고 굳세거나, 그리고 긴 것이건 짧은 것이건 중간치건, 굵은 것이건 가는 것이건, 또는 작은 것이건 큰 것이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살고 있는 것이나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어느 누구도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 또 어디서나 남을 경멸해서도 안 된다. 남을 곯려 줄 생각으로 화를 내어 남에게 고통을 주어서도 안 된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 없는 자비심을 발하라.

또한 온 세계에 대해서 무한한 자비를 행하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자비를 행하라.

서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신성한 경지라 부른다.

May all beings be happy and secure, may they be happy-minded.

Whatever living beings there are, either feeble or strong, all either long or great, middle-sized, short, small or large,

Either seen or which are not seen, and which live far (or) near, either born or seeking birth, may all creatures be happy-minded.

Let no one deceive another, let him not despise (another) in any place, let him not out of anger or resentment wish harm to another.

As a mother at the risk of her life watches over her own child, her only child, so also let every one cultivate a boundless (friendly) mind towards all beings.

And let him cultivate goodwill towards all the world, a boundless (friendly) mind, above and below and across, unobstructed, without hatred, without enmity.

Standing, walking or sitting or lying, as long as he be awake, let him devote himself to this mind; this (way of) living they say is the best in this world.

<숫타니파타 Sutta Nipata>

이러한 가르침에 따르면,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이나 이명박이나 뉴라이트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고, 성철 스님이 “나의 원수가 나의 가장 큰 은인“이라 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슬픈 5월, 평화로웠다

슬픈 5월, 평화로웠다

빙하기 같은 4월을 뒤로 하고, 5월이 되자 온 산들이 들고 일어섰다. 바람에 온기가 실려 있었고, 나무와 꽃들은 저마다의 싱그러움을 자랑했다. 산을 보고 들을 보면, 달라진 것이 없었다. 때가 되면 꽃이 피었고, 나뭇잎이 돋았으며, 새들이 날아왔다. 한가하고 평화로웠다.

천안함으로 죄없는 병사들이 수장되어도, 구제역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동물들이 산채로 땅에 묻혀도, 켜켜이 쌓인 슬픔으로 끝없이 침잠하여도 자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평화로웠다.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봉하 들판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해가 떠오르는 남동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출 시간이 지났지만 두터운 구름과 자욱한 아침안개 때문에 아직 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태양이 솟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리를 곧게 펴고 섰다.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 마을의 정겨운 산과 들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평화로웠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사람들은 언제까지 그를 기억할까. 해마다 5월이 되면 그의 모습을 기억할까. 따뜻한 바람에 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평화로운데,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는 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정녕 평화로웠을까.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를 마쳤다. 몇가지 일을 하고, 두끼 식사를 하고, 책을 몇 줄 보았다.

인디언들의 몇 가지 가르침

인디언들의 몇 가지 가르침

아침에 눈을 뜨거나 저녁에 잠들기 전에 뭇 생명들과 그대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 감사하라. 위대한 정령이 그대에게 준 많은 좋은 것들과 날마다 조금씩 더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라. 어제 그대가 한 행동과 생각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구하라. 다른 모든 생명체에게 이로움이 될 일들을 찾으라.

대지와 대지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의 어머니로 여기라. 광물 세계, 식물 세계, 동물 세계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어머니 대지를 더럽히는 어떤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지혜를 갖고 어머니 대지를 보호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한결같이 진실되어야 한다.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인류 전체를 존중하는 것과 같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과 부족들은 하나의 들판에서 피어난 서로 다른 색깔의 꽃들과 같다. 모두가 아름답다. 위대한 정령의 자식들로서 모두가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일에 있어 절제와 조화를 중요시 여기라.

삶에서 그대를 행복으로 이끄는 것과, 그대를 파괴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삶의 지혜다.

그대의 마음이 안내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를 따르라. 여러 가지 형태로 찾아오는 해답에 마음을 열어 두라. 해답은 기도를 통해, 꿈을 통해, 또는 홀로 고요히 있는 시간을 통해서도 올 수 있다. 지혜로운 어른들과 친구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그것은 찾아온다.

<아메리카 인디언 도덕률, 류시화 역>

Each morning upon rising, and each evening before sleeping, give thanks for the life within you and for all life, for the good things the Creator has given you and for the opportunity to grow a little more each day. Consider your thoughts and actions of the past day and seek for the courage and strength to be a better person. Seek for the things that will benefit others (everyone).

Treat the earth and all of her aspects as your mother. Show deep respect for the mineral world, the plant world, and the animal world. Do nothing to pollute our Mother, rise up with wisdom to defend her.

Be truthful at all times, and under all conditions.

The hurt of one is the hurt of all, the honor of one is the honor of all.

All the races and tribes in the world are like the different colored flowers of one meadow. All are beautiful. As children of the Creator they must all be respected.

Observe moderation and balance in all things.

Know those things that lead to your well-being, and those things that lead to your destruction.

Listen to and follow the guidance given to your heart. Expect guidance to come in many forms; in prayer, in dreams, in times of quiet solitude, and in the words and deeds of wise Elders and friends.

<Native American Traditional Code of Ethics, Intertribal Times, October 1994>

미국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인류 역사상 영적으로 가장 진보된 종족이었다. 백인들은 그들을 야만인 또는 미개인이라 불렀다. 백인들은 그들의 터전을 빼앗고, 그들을 몰살시켰다.

그들은 사라졌고, 그들의 정신만이 화석처럼 남겨져 있다.

인간들이 겸손해야 하는 까닭

인간들이 겸손해야 하는 까닭

임마뉴엘 스베덴보리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튼과 어깨를 나란히할 정도로 유명한 과학자였다. 그는 57세 때부터 27년간 지상과 영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천국과 지옥을 체험했고, 그것들을 방대한 기록으로 남겼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그가 신을 버리고 과학을 추종하는 인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과학은 놀라운 기적을 인류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만은 절대로 못합니다. 첫째 현미경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둘째 싹트는 보리알 하나도 생명을 가진 것을 창조하지 못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 p.63>

인간유전자 염기서열을 판독해낸다는 인간의 과학이지만, 스베덴보리의 말처럼 생명을 가진 것은 짚신벌레 한마리 만들어내지 못한다. 인간의 과학으로는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신이기에 “신은 없다” 또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다. 과학으로 볼 수 없으면 정말 없는 것인가. 인간의 과학이 그만큼 완전한 것인가.

엄청난 발전을 이룬 과학이지만, 우리 인간들이 알고 있는 것은 갠지즈강의 모래알 몇 개뿐이다. 진실로 인간들은 신 앞에, 그리고 신이 창조한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인간들의 오만은 파멸을 불러온다. 신은 언제나 그것을 경고하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못들은 체 하거나 실제로 듣지 못한다. 그 소통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을 하게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는 그의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에서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그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들은 자기의 삶을 만들어 간다. 인간들이 각자의 소명을 다하고 물리적 몸을 벗을 때, 다시 말해 인간들의 삶이 죽음을 통해 완성될 때, 물리적 몸은 소멸하지만 인간들의 영은 창조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 존재의 근원을 신이라고 하고, 하느님이라고도 하고, 붓다라고도 부르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근원이다.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창조의 근원 앞에서 받는 단 하나의 질문.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이 질문에 쩔쩔매며 우물쭈물할 나를 상상해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봉사를 해왔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영향을 주며 살아왔을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자명하다. 예수나 붓다를 비롯한 인류의 수많은 성인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은 단 하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심지어 원수라 할지라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감싸주는 것, 그것만이 영원하다는 것은 진리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결코 불행이 아니라고. 죽음은 고통도 두려움도 아니라고. 죽음은 삶의 완성이자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마치 누에가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이고 삶의 목적은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우리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우리의 몸을 진짜 “나”로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몸이 죽어 소멸하면 우리도 소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스 박사의 연구와 증거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과학”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수많은 신비주의 스승들이 수천 년 전부터 가르쳐왔던 것들이다. 우리의 몸이 소멸한다 해도 우리의 “참나”는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찾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생의 수레바퀴>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고, 그만큼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없이 기뻤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미리내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神)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본질

신(神)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본질

결국, 야보 선사의 흔적없는 삶은 나를 라마나 마하리쉬와 성철 스님에게 인도했다. 성자들의 가르침은 그 뿌리가 어느 종교에 닿아있든지 상관없이 꼭 닮아 있었다. 또한, 라마나 마하리쉬의 신에 대한 가르침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정의와 다르지 않았다.

신은 형상이 없이 어디에나 있습니다.

신은 순수한 존재이며, 순수한 의식입니다.

세상은 신 안에서 그리고 신의 힘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그러나 신은 세상의 창조자가 아닙니다.
신은 결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신은 그저 있습니다.
신에게는 의지도 욕망도 없습니다.

개별성이란 자신이 신과 같지 않다는 환영입니다.
이 환영이 사라질 때 남아 있는 것이 신입니다.

신, 구루, 참나는 동일합니다. 구루는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신입니다. 동시에 구루는 헌신자의 가슴에 있는 참나입니다.

신은 있습니다.
신은 그대 안에 있습니다.
신은 언제나 일인칭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불멸의 의식, p. 124>

진리는 깨달은 성자들의 의해 이미 드러나 있었다. 세상은 이미 구원되어 있었다. ‘나’를 버리고 ‘참나’를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대로 인간의 본질은 신(神)일진데, 우리의 욕망과 카르마가 그 본질을 가리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그것에 있다.

스널프의 죽음

스널프의 죽음

며칠 전 서울대가 만든 세계 최초의 복제 늑대 스널프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늑대 한 마리 죽은 것이 무슨 대수냐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스널프는 우리 지구별에서 처음으로 엄마 아빠 없이 태어난 늑대다. 엄마 아빠의 존재와 사랑을 몰랐던 스널프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 이 소식을 듣고 떠오른 사람은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었다. 권정생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 남기신 마지막 동화가 “랑랑별 때때롱”이다. 이 동화의 머리말에서 선생은 엄마 아빠가 없는 동물을 왜 만들어야 하냐고 되물었다.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던 스널프의 마음을 사람들은 단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보았을까? 과연 사람들에게 그런 생명을 만들어낼 권리가 있는 걸까? 5백 년 전 랑랑별에 살았던 보탈이는 모든 우수한 유전자를 받아서 태어난 아이였지만, 그는 슬픔도 기쁨도 알지 못하는 아이였다. 놀 줄도 모르는 아이였다. 놀 줄을 모르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새달이와 마달이처럼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놀아야 한다. 가리마에서 햇볕 냄새가 나는 아이들, 피부는 까맣지만 건강한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된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해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놀 줄 모르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 그리고 극한의 경쟁만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권정생 선생의 “랑랑별 때때롱”은 행복한 세상의 가장 기초가 무엇이냐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전해준다. 많은 어른들이 이 동화를 읽고 다시 한 번 삶과 행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은 이유 중 하나가 건강할 때는 건강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지 모를 뿐더러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자신이나 아니면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병에 걸려 건강을 잃었을 때 이제 건강은 모든 것이 되어버린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사람이 그렇게 간사하다.

나도 그렇게 어리석고 간사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가 건강을 잃었을 때, 그리고 주류의학인 서양의학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건강은 병원이나 의사가 지켜주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것은 오롯이 자기 자신의 책임이었다. 병을 앓는 것도 자기 자신이고 치료를 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었다. 의사들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옆에서 도와줄 수는 있지만, 선택은 결국 자신의 몫이었다.

따라서 평소에도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병원에만 맡겨놓고 그 의사들의 말을 무작정 믿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서양의학의 허와 실을 깨달아야 한다. 서양의학이 무엇을 해줄 수 있고, 무엇을 해줄 수 없는지를 알아야 한다. 서양의학이 단지 여러 의학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서양의학뿐만 아니라 한의학도 있고, 자연의학도 있고, 수많은 대체의학 요법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 어떤 치유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이 될 수 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읽었던 여러 가지 건강 서적들 중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우선 추렸다.

자연 치유
이 책은 앤드류 와일이라는 의사가 쓴 책이다. 앤드류 와일은 서양의학을 전공했으면서도 그 한계를 깨닫고 여러 가지 대체의학에 눈을 돌린 몇 안되는 의사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주류의학에 너무 “병” 자체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자연치유력”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양의학과 대체의학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서술한 책이다. 건강에 대한 입문서로 강추한다.

약이 사람을 죽인다
레이 스트랜드라는 의사가 쓴 책으로,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약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한 책이다. 미국 사람들의 사망 원인 중 두번째가 의약품의 오남용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이 책을 읽으면 약을 함부로 먹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제약회사들과 주류의학계의 추악한 거래에 대해서도 고발하고 있다.

병 안 걸리고 사는 법
신야 히로미라는 일본 의사가 지은 책으로 우리 몸 안에 있는 효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식사를 해야하는지 등 건강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상식을 모아놓은 책이다.

사람을 살리는 단식 사람을 살리는 생채식 민족생활의학
이 세권의 책들은 재야 의학자 장두석 선생이 지은 책으로, 일본 니시의학과 우리나라 전통 민간의학들을 접목하여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사람을 살리는 단식>은 반드시 읽어야할 책 중의 하나로 시중에 나온 단식 책 중 가장 권할만한 책이다. 단식은 칼을 대지 않는 수술이라고 할만큼 건강한 삶을 위해 중요한 방편 중 하나이다.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
이 책을 읽고 실제로 김남수 선생과 그의 제자들을 찾아가 뜸자리를 잡았다. 가장 경제적이고 쉽게 면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한의사들도 모두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그들은 이런 시술을 잘 하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일까? “배워서 남 주자”는 김남수 선생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뜸 시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그는 미국으로 내쳐졌다. 참으로 잘난 나라 아닌가?

맘 놓고 병 좀 고치게 해주세요
김남수 선생이 침과 뜸의 대가라면 장병두 선생은 약의 대가다. 그는 주류의학계에서 포기한 수많은 환자들을 치유했다. 그도 역시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고발당하여 법정 싸움을 하고 있다. 수많은 환자들이 그를 애타게 찾고 있지만, 그가 무죄 판결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 검찰이나 사법부가 서민의 편인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도 역시 김남수 선생처럼 해외로 나갈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서양의학의 한계를 극명하게 경험하고 있다. 집안에 암환자 한 사람 없는 집안이 없을 정도로 암이 많아졌고, 고혈압과 당뇨 같은 각종 성인병들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대부분이 생활의 불균형과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이런 퇴행적 질환에 서양의학은 아무런 도움이 못되고 있다. 때문에 서양의학의 한계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스스로 공부하고 방법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위에 소개한 책들은 전문 서적들은 아니지만, 건강과 질병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는데에는 유용한 책들이다. 일단 관심을 갖게 되면 보다 깊게 공부하고 싶은 열정이 생길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건강은 자기 자신이 지켜야 한다.

가장 혁명적인 것

가장 혁명적인 것

김규항의 <예수전>을 보다가 깊이 공감하는 한 구절을 발견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는 정치적인 혁명가가 아니었다’는 상투적인 견해에 대해 묵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치적인 혁명성이 ‘주장’되는 게 아니라 지배체제에 의해 ‘증명’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겉보기엔 제아무리 혁명적이라 해도 지배체제가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한다면 드건 더 이상 혁명적인 게 아니다. 학술적, 문화적 차원에 머무는 혁명 이론 따위가 그렇다. 반대로 겉보기엔 그다지 혁명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데 지배체제가 어떤 과격하고 급진적인 혁명운동보다 더 위협을 느끼고 적대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혁명적인 것이다. 예수는 비폭력주의자였고 국가권력을 접수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건 다 안다. 그런데 왜 지배체제는 폭력을 사용하고 국가권력 접수를 목표로 싸운 바라빠보다 예수에게서 더 큰 위협을 느끼는가? 예수의 정치성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김규항, 예수전, p.248>

지배세력이 가장 위협을 느낀다면 그것은 혁명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지배세력이 가장 위협을 느끼고 두려워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나는 노무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노무현보다도 위대하고 훌륭한 인물은 종종 있었지만, 노무현만큼 지배세력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인물은 없었다. 결국 지배세력의 공포와 열등감이 노무현을 제거하려 했고, 노무현은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해서 그들의 시도를 원천봉쇄했다.

80년 광주가 우리나라 민주화의 젖줄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한 세대가 흐르고, 이제 노무현이 광주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것이다. 광주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노무현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면서 광주의 정신을 계승했다.

노무현 정부가 이념적으로는 중도보수의 길을 걸었지만, 노무현의 가치는 가장 혁명적인 것이었다. 김규항의 정의대로 지배세력을 가장 위협했고, 지배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정치적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규항은 <예수전>에서 위선자인 바리새인들을 혁명의 가장 걸림돌로 지목하면서, 노무현과 지향이 같은 세력을 바리새인으로 폄하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김규항과 같은 좌파들이 참여정부를 오히려 한나라당이나 이명박보다도 더 증오했던 것이다. 노무현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이 오히려 더 바리새인들이 아니었을까? 이 땅의 지배세력은 자칭 좌파라 하는 그들에게 어떠한 위협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규항의 <예수전>은 예쁜 책이지만, 그의 예수에 대한 묵상과 천착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