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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추기경의 죽음으로 돌려막아야 할때?

이제는 추기경의 죽음으로 돌려막아야 할때?

어제 저녁, 김수환 추기경이 87년의 생을 마감했다. 아침에 일찍 KBS를 보니 온통 추기경의 죽음에 대한 뉴스 뿐이었다. 처음 서너 꼭지야 그렇다해도 10여분이 넘게 추기경의 죽음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니 점점 지겨워지다가 마침내, 혹시 푸른 기와집에서 또 돌려막기 지령이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추기경이 얼마나 높은 자리인지 잘 알지 못한다. 또한, 그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헌신해 왔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은 진정한 종교인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박정희 시절 탄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섰던 지학순 주교의 이름을 또렷히 기억한다.

지난 성탄절에 이명박이 김수환 추기경을 문병 갔을때,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 추기경에게 “교회에서 성탄예배를 보고 오는 길”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이에 김 추기경은 “이렇게 누워서 맞게 돼 좀 미안하다. 바쁘신 대통령께서 이렇게 오셔서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 추기경은 특히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참 힘이 난다”며 격려했다.

[김수환 추기경 “대통령 말들으면 힘난다”, 한국경제신문]

지난 시절 김수환 추기경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가 잘 모르지만, 이제 병원에 누워있던 추기경은 이명박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힘이 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명박의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구역질이 올라오는데, 추기경은 힘이 난단다. 문병 온 사람에 대한 인사치레인지, 아니면 너무 나이가 들어 판단력이 흐려진 것인지도 모르고, 그도 아니면, 원래 이명박 같은 특권층을 좋아한 사람이지도 모른다.

용산참사를 강호순 사건으로 돌려막겠다던 이명박 정권이 이제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으로 위기를 모면할지 모른다. 이제 정권의 주구가 되어버린 KBS가 온종일 추기경의 삶과 죽음에 대해 방송을 해댈 것이고, 조중동은 온 지면을 추기경 이야기로 도배를 할 것이다. 용산참사와 강호순을 이용한 여론조작으로 궁지에 몰렸던 이명박이 한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혹 저 세상에서 용산 참사로 먼저 가신 철거민 양반들을 만나거든, 빈말이라도 “미안하다”라고 한마디 하고, 그들을 위로해 주시라. 추기경에게는 힘을 주던 이명박의 말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이명박 치하에서 국민 자격 없는 사람들

이명박 치하에서 국민 자격 없는 사람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명박 정권 아래서 자기가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은 고사하고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고 오해고 오산이다.

용산에서 5명의 철거민들이 불길에 휩싸여 개만도 못한 죽음을 당했다. 누구한테? 민중의 지팡이라고 자부하는 경찰한테 말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그 경찰한테 말이다. 엄동설한에 오갈데 없는 철거민들이 시위를 시작하자 3시간 만에 특공대 투입이 결정됐고, 하루만에 무자비한 진압을 통해 5명이 죽고, 수십 명이 체포되었다.

그들의 죄는 수십년 동안 용산에서 세입자로서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이고, 재개발이 시작되자 갈곳이 없었다는 것이고, 이사비 정도만 받고 나가라고 할 때 조용히 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는 그것이 이 엄동설한에 불에 타서 죽어도 될 정도의 중죄인 것이다.

용산구청은 이미 지난해부터 이런 사태를 미리 예고하고 있었다.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용산구청 앞 간판, “생떼거리 쓰는 사람은 자제하시길”, 오마이뉴스]

여기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당연히 철거민들을 지칭하는 것이고, 민주시민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철거민들은 지금이 이명박 정권 세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기야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5명의 철거민이 죽고나서도 청와대의 한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과격시위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는데 이번 사고가 그런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김은혜, “과격시위 악순환 끊는 계기” 발언 논란, 오마이뉴스]

이건 이명박 정권의 솔직한 심정을 철모르는 청와대 대변인이 순진하게 얘기한 것이다. 앞으로도 생떼거리를 쓰거나 과격시위를 하면 저렇게 죽을 수 있으니 밤길 조심하라는 일종의 부드러운 협박이다.

신지호라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아예 대놓고 이렇게 얘기했다.

전철연은 반 대한민국 단체이고, 이번 농성은 생존권 투쟁이 아니라 전철연이라는 반 대한민국 단체가 벌인 도심테러이다.

[신지호 “반국가단체의 도심테러”, 오마이뉴스]

철거민들이 모여 만든 단체는 반국가 테러단체이고, 철거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테러분자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물론 신지호라는 자도 이명박과 같은 뉴라이트 출신이다.

이명박 정권 치하에서 국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고소영, 강부자 정도 그리고 종부세 대상자가 될 정도의 재산이 있는 사람들 정도이다. 전체 국민에 1~2% 되는 사람들이다. 이명박 정권이 얘기하는 거의 모든 정책, 경제 살리기 등등은 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지, 나나 당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런 극한 상황을 당하고도 아직도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의 국민이 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들이 국민 취급을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명박이 지하 벙커로 들어가고나서, 자칭 미네르바라는 네티즌이 구속되었고, 5명의 철거민이 숨졌다. 이명박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낸 셈이고, 이건 시작일 뿐이다. 누차 얘기하지만,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견디든지 아니면 싸워 끌어내든지. 이도저도 아니면 소망교회라도 다녀보든지.

돌아가신 철거민들의 명복을 빈다. 다음에는 철거없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행복하게 사시길. 부디.

미네르바 구속, 이것은 인터넷과 리만 브라더스의 전쟁이다

미네르바 구속, 이것은 인터넷과 리만 브라더스의 전쟁이다

이제부터 인터넷에 글을 쓸 때, 비록 개인 블로그라 할지라도 논문처럼 정확한 레퍼런스(참고문헌)와 주석을 달아야 할 것이다. 언제 어떻게 검찰에 소환될지 모르니, 어디까지가 인용이고 어디까지가 의견인지를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혐의를 벗을 수도 있고, 처벌을 받더라도 최소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다음 아고라에서 정확한 경제 예측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인터넷 논객이 미네르바다. 미네르바가 이렇게 인터넷과 언론을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그의 해박한 경제 지식과 손쉽게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한 정확한 경제 진단과 예측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년부터 대한민국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한 “리만 브라더스”의 뻘짓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음 아고라를 가지 않기 때문에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언론이나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옮겨진 그의 글을 몇 편 읽어 보았다. 큰 틀에서 그가 한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나 같은 소시민에게도 벌써 2005년 말, 2006년도부터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소문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국발 금융 위기를 불러올 것이고, 우리나라도 그 금융위기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것,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였다.

리만 브라더스가 그 위기를 잘 넘길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였다. 리만 브라더스의 이력만 보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작년에 리만 브라더스가 1년 내내 행한 짓들을 보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위기의 시작은 미국이었지만, 그 위기를 증폭시킨 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한 마디로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포크레인으로도 못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해가 바뀌자마자 우리의 검찰께서 “미네르바 검거”라는 탁월한 선택을 하시어, 오히려 리만 브라더스를 더 곤경에 처하게 했다. 물론, 리만 브라더스의 지시였는지, 아니면 검찰 스스로 판단해서 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네르바 검거는 검찰은 물론 리만 브라더스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악수임은 분명하다.

지금 인터넷 상에서는 “검찰이 구속한 미네르바가 바로 그 미네르바가 맞냐”라는 논란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검찰이 구속한 미네르바는 여러 미네르바 중의 한 명일 뿐이다”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사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워낙 말들이 많으니 나도 “사실만 가지고” 숟가락 한 번 꽂아보면,

1. 인터넷,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 아고라에서 필명으로 미네르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여러 명이 존재한다. 이것은 다음 아고라 운영자에게 물어봐도 금방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고 더군다나 정부의 핵심 관계자까지도 확인해 준 사안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 “미네르바 복수”, 매일경제)

2. 검찰에 구속된 미네르바는 작년 12월 신동아에 인터뷰를 한적이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신동아에 인터뷰를 한 미네르바는 다른 사람이다. 신동아가 그 인터뷰를 조작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들이 인터뷰한 다른 미네르바를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구속된 미네르바가 자신들과 인터뷰한 미네르바인지 아닌지는 확인해줄 수 있지 않을까? (미네르바, 신동아 기고한 적 없다고 부인, 한국경제)

3. 우리의 검찰께서 신동아 관련 부분은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어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셨으며, 지금 구속된 미네르바가 그 미네르바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시었다.

검찰 관계자는 “앞으로 박씨가 글을 쓴 동기와 배경, 공범 또는 주변인물이 있는지 등을 수사할 계획”이라며 “그러나 지난해 말 한 월간지와 인터뷰를 했는지는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향후 수사 방향을 밝혔다.

[연합뉴스, 인터넷논객 ‘미네르바’ 구속 수감]

우리의 검찰께서는 요즘들어 가장 중요한 핵심 사안이라 여겨지는 부분들을 일부러 또는 괜히 애둘러 가시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신동아 인터뷰 부분은 여러 미네르바 중 바로 그 미네르바를 구별하는데 핵심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미 검찰은 지금 구속한 미네르바가 그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씀해 주시었다.

4. 지금 검찰에 구속된 미네르바는 “허위사실 유포”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미네르바가 썼다는 그 많은 글 중에 특히 연말에 정부가 “금융기관에 달러 매입 자제” 공문을 보냈다는 글을 문제삼고 있는데, 그렇다면 정부는 금융기관에 달러 매입 자제를 요청했을까 안했을까? 이석현 의원(이 사람은 국회의원이다)은 정부가 분명히 금융기관에 달러 매입 자제를 전화로 요청했다고 한다. (“정부가 시중은행에 ‘달러매입자제’ 전화까지 했다”, 오마이뉴스)

5. 그렇다면 “전화”로 요청한 것을 “공문”을 보냈다고 했기 때문에 “허위 사실 유포”에 걸린다고 지금 검찰께서는 주장하고 계시고, 여러 미네르바 중 한 미네르바를 구속시킨 것이다. 이것이 과연 구속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우리의 법원 영장 전담 판사이신 김용상 판사께서는 왜 구속영장을 발부해 주셨을까?

김용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외환시장 및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서 그 성격 및 중대성에 비춰 구속수사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영장 발부사유를 밝혔다.

[뉴시스, 미네르바 구속, 네티즌들 갑론을박]

6. 전화로 달러매입자제를 요청한 것을 공문으로 보냈다고 했기에 범죄사실이 소명된다고 하신 김용상 판사는 그동안 어떤 판결을 내리셨을까? 법관은 늘 판결로 얘기한다고 하는데, 김용상 판사의 프로필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고 수사 대상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하는 검찰. 그렇다면 김용상 판사의 그간의 판결들이 국가 기밀이라도 된다 말인가?

사실 검찰에 구속된 미네르바가 진짜 원조 미네르바냐 아니냐는 논란은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 일개 네티즌이 사소한 거짓말(전화로 한 것을 공문으로 했다고 했기에)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고 구속을 했다는 사실, 검찰의 그러한 주장에 법원까지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 이것은 이명박 정권들어 우리나라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것이 아니고, 30년전 쯤 독재의 시절까지 되찾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새해들어 이명박 정권은 검찰을 동원해 인터넷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네르바의 구속은 그 한 단면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리만 브라더스와 인터넷, 과연 리만 브라더스는 인터넷을 평정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이명박이든, 강만수든, 검찰이든, 영장전담판사든 간에 인터넷이 어떤 공간인지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터넷과의 전쟁, 리만 브라더스는 승리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인터넷 최강국이라는 나라에서 2009년 새해 벽두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민노씨의 2008 블로그 오디세이 리스트 선정 소감

민노씨의 2008 블로그 오디세이 리스트 선정 소감

민노씨 님이 선정한 2008 블로그 오디세이 리스트에 내 블로그가 선정되었다. 물론, 그의 주관과 취향 그리고 선호에 의해 선정된 지극히 개인적인 리스트이긴 하지만, 나는 올블로그 Top100 블로그에 당첨된 것보다도 훨씬 기쁘고 행복하다. 2008년에 민노씨가 여행했던 블로그들 그리고 그에게 영감과 따뜻함을 전해주었던 블로그 목록들에 들게 된 것은 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다.

민노씨 하면 아는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블로그계의 마당발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뜨거운 열정과 그 엄청난 생산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그는 정말 왕성한 사회 활동가가 아닐까 그런 짐작을 해본다. 그의 관심사는 정치, 경제, 법 등을 시작으로 영화, 드라마까지 거치는 않는 것이 없으며, 그가 알고 있고 그가 좋아하거나 찾아다니는 블로그가 적어도 수백에 이르는 것 같다. 나 같은 소시민은 엄두가 나지 않는 규모다.

더군다나 그는 사안마다 엄청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정확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한다. 그의 관점은 대체로 올바르며, 그의 의견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만 하다. 날카로운 이성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하고, 그의 이런 모습들이 그의 블로그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다. 민노씨 님과 나는 블로그 상에서 개인적인 교류를 하기도 했는데, 바로 내가 최초로 블로그 중매를 섰던 총각이 바로 민노씨 님이다.

그렇다면 그 민노씨 님이 내 블로그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평가했을까.

6. 소요유. http://www.soyoyoo.com/
블로거의 개성과 실존이 강렬하게 투영되는 블로그를 나는 좋아한다. 그렇게 개성이 강한 블로그들 가운데는 이견에 대한 대화가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정치적인 철학에서 견해 차이가 존재하면 더더욱 그런 경향이 많은데, 소요유 블로그는 강렬한 개성을 갖고 있지만,  대화가 가능한 블로그라고 생각한다. 물론 답글이 좀 인색한 편이긴 하지만. : )

[민노씨, 2008년 블로그 오디세이 회고]

민노씨 님은 나와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고 (또는 그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민노씨 님과 나의 정치적인 견해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부분이 바로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한다.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답글이 인색하다고 한 부분은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 변명을 해보자면, 천성이 게으르고 또는 무심하다 보니 일일히 댓글에 답글을 할 수 없을 뿐더러, 나는 내 블로그에 올린 내 글들이 다른 블로거들의 댓글이나 평가에 의해 완성된다고 보기 때문에 내 블로그를 찾는 분들의 견해에 일일히 토를 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블로그 댓글에 일일히 답글을 다는 블로그 주인장들을 보면 사실 존경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나는 성의있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나라 블로그계에는 수많은 블로그들이 우주의 별처럼 존재한다. 민노씨 님의 블로그는 블로그 우주의 나침반 같은 소중한 존재다. 그 수많은 별들을 잘 알지 못해도 민노씨 님의 블로그만이라도 알면 블로그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도 더욱 건필하시고, 혹시 결혼하시게 되면 알려주십시오. 민노씨 님! 😉

추. 민노씨 님 말마따나 아거 님은 속히 빙하기의 동면에서 깨어나서 사바 세계로 돌아오시길.

아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치는 세상

아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치는 세상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자란다. 예쁘고 반듯하고 명랑하고 건강하게 자란다. 잠든 아이 머리맡에 있는 일기장을 펼쳐보다가 “내가 나비가 된다면”이라는 제목의 일기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나비가 된다면 가장 예쁜 꽃에 집을 지을 것이다. 어떻게 지을거냐면 꽃에 눕고 또다른 꽃잎을 이불로 사용할 것이다. 집을 다 완성하면 꿀을 많이 모아 친구들에게 나누어줄 것이다. 그리고 꿀벌과도 힘을 합쳐서 꿀을 모을 것이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서 겨울이 되면 그동안 꿀벌이랑 친구들과 모은 꿀들을 똑같이 나누어 가질 것이다. 친구들과 꿀벌들은 내년 봄에 다시 만날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쓴 너무나 따뜻하고 예쁜 글이다. 내가 간섭하지 않아도 아이는 이렇게 잘 자라고 있다. 대견하고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들과 즐겁게 공부해야 할 학교에 탐욕에 찌들은 자들은 경찰까지 밀어넣었다. 일제고사라는 시험시간에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을 자르고,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에서 2008년 12월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 곳곳이 전쟁터 아니면 공사판으로 변하고 있다. 나중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변명을 해댈 것인가? 절반의 탐욕과 절반의 무관심으로 이 야만의 권력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할 것인가?

성탄절을 앞두고 가장 즐거워야할 아이들의 가슴에 대한민국은 대못을 치고 있다. 예수가 와서 통곡할 일이 아닌가.

눈을 맞으며 눈물 흘리다

눈을 맞으며 눈물 흘리다

절규하지는 않더라도 가슴이 더 아려올 때가 있다. 분노하지 않더라도 가슴이 더 먹먹할 때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참으로 착한 사람들 뿐인데, 이런 사람들만 있으면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만한 곳일 것 같은데, 그것은 불행하게도 순진한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2008년은 탐욕에 찌들은 자들이 마음껏 본색을 드러낸 한해였다. 부끄러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눈과 귀를 막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모든 것은 뒤죽박죽이었고, 아무런 계획도 없었고, 오직 한줌도 안되는 무리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우왕좌왕이었다.

새천년에 되불러져온 야만은 그전의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원치 않는 자들에게 알지도 못한 채 당한 폭력의 세월을 뒤로 하고, 이제는 스스로의 손으로 선출한 권력에 모든 것을 알고도 당하는 무자비함은 차라리 개그의 한장면이라 하는 것이 속편할 일일지도 모른다.

성탄절이 다가와도 그 흔한 캐롤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어느 누구도 예전에 누리던 그 연말연시의 들뜸을 누리지 못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성탄 전야에도 개조차 컹컹거리며 뛰어다니지 못한다. 모든 것은 경제 논리와 자본의 논리로 치환되었고,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잘려나갔다.

그 흔하디 흔하게 얘기하던 희망이라는 덕담 한마디도 이제는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어둠의 시간들. 이런 시간을 이런 노래라도 듣지 못한다면 차마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문닫은 상점
길게 늘어진 카페트
갑자기 내게 말을 거네

난 중동의 소녀
방 안에 갇힌 14살
하루 1달라를 버는

난 푸른 빛 커피
향을 자세히 맡으니
익숙한 땀, 흙의 냄새

난 아프리카의 신
열매의 주인
땅의 주인

문득, 어제 산 외투
내 가슴팍에 기대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네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난 사람이었네
공장 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어느날 문득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자본이라는 이름에
세계라는 이름에
정의라는 이름에
개발이라는 이름에
세련된 너의 폭력
세련된 너의 착취
세련된 너의 전쟁
세련된 너의 파괴

붉게 화려한 루비
벌거벗은 조명이 되어
돌처럼 굳은 손을 내밀며
내 빈 가슴 좀 보라고

난 심장이었네
탄광 속에서 반지가 되어 팔려왔지만

난 심장이었네
어느날 문득 반지가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루시드 폴, “사람이었네”>

유투브는 여전히 진실된 “정황”을 증언하고 있다

유투브는 여전히 진실된 “정황”을 증언하고 있다

20여년 전, 지강헌이라는 탈주범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인질극을 벌이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돈 500만원을 훔쳤지만, 600억원을 횡령한 전경환(전두환의 동생) 보다도 더 감옥에 오래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했던 자였다. 위대한 대한민국에서 감히 잡범 주제에 특권층에게 불만을 갖다니… 그는 잡범이었지만,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노건평(노무현의 형)이 “포괄적 공범”으로 구속되었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그렇다고 의심할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란다. 노건평이 돈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그것은 그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넘버 3의 송강호가 라면 먹고 뛴 선수가 “현정화”라고 하면 “현정화”인 것이다. 그 앞에서 “임춘애”라고 얘기해봤자 날아오는 것은 주먹과 발길질 뿐이다.

죄가 없다 하더라도 그들이 죄인이라면 죄인이 되는 것이다. 죄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들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다. 법에 관한한 그들은 하느님이다. 설령 법에 규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관습법까지 들고 나오는 이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노건평 같은 이는 그야말로 밥이다. 퇴임을 했어도 눈에 가시 같은 노무현을 욕보이고 잡아넣고 싶은데, 아무리 뒤져도 나오는 것이 없으니, 만만하고 어수룩한 그의 형이 걸렸다. “포괄적 공범”으로 말이다.

노건평이 구속되는 날, 이명박은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달려가 배추 아주머니와 또 멋진 사진 한장을 박아 주셨다. 배추 아주머니는 자애로운 대통령의 품안에 안겨 살기 힘들다고 눈물을 지었고, 이명박은 “눈물난다. 내가 기도해야 되는데…”라고 아주머니를 위로했다. 이명박은 농민들은 다 죽어가는데 농협이 이권이나 개입한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 말은 노건평 관련 사건을 계속 챙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은연중 드러내놓고 있다.

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08/1204/IE000991524_STD.jpg

이런 연출은 이명박이 얼마나 노무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의 형이 구속되는 날, 가락동으로 달려가 이런 역겨운 사진을 찍으며 노건평과 연관이 된 농협을 비난하는 센스. 퇴임을 한 노무현에게는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이명박은 쥐박이라고 놀림만 받으니 질투가 날만도 하겠지.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기 전, 도곡동 땅 문제나 BBK 문제 등으로 곤혹스런 상황에 여러 번 직면했으나, 그때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수구 언론 조중동과 추상 같은 검찰이 그를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 심지어 자기 입으로 BBK를 설립했다는 동영상이 나왔어도 검찰은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법치였고, 지금도 그 법치는 여전히 견고하게 유효하다.

유투브에는 아직도 이명박이 BBK를 설립했다는 동영상이 이명박과 검찰을 조롱하고 있다.

오해는 마시라. 노건평이 죄가 있으면 당연히 구속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이 지었던 죄업이, 아니 죄를 지었다는 “정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명박의 부도덕과 무능이 다가오는 진짜 경제 위기에서 더 빛을 발할 것라는 사실이다. 그때도 사진 한 장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서민들은 왜 보수적인가, 정말 그들은 보수적인가

서민들은 왜 보수적인가, 정말 그들은 보수적인가

대한민국에는 두 종류의 서민들이 있다. 하나는 종부세 대상자이면서 스스로 서민이라 우기는, 쥐박이라 불리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서민(鼠民)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庶民)들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게 살면서도 쥐박이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중서민들도 꽤 존재한다.

첫번째 부류의 서민(鼠民)들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고 한 짓이라고는 종부세 무력화와 감세, 그리고 각종 부동산 규제 철폐 뿐이다. (그리고 전봇대도 2개나 뽑았구나.) 어떻게 해서든 땅값을 올려 일하지 않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뿐인데, 대한민국의 경제적 최상위층들이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고 지켜주는 이런 부도덕한 정치집단을 지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봐서는 당연하다. 물론, 잘사는 그들 중에도 간혹 양심을 가진 도덕적인 부자도 있겠지만, 극히 소수이겠지.

문제는 두번째 부류의 서민(庶民)이다. 이들은 도시와 농촌에서 매일매일 뼈빠지게 일을 하고도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버텨나가는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부류다. 이런 서민들의 수는 전체 국민의 50%를 넘는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대한민국에서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 줄 정치세력을 집권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현실은 두번째 부류의 서민들에게 자못 우울하다.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빈민 등 서민들을 대변한다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지율을 5%를 넘지 못한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서민인 나라에서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은 집권은 커녕 지지율 5%를 넘지 못한다. 종부세 대상자 2%만을 위하는 정당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언제나 30%를 웃돈다. 이런 현실은 정말 많은 서민(庶民)들이 이중서민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서민(庶民)들은 극우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일까? 경제학자 도스타인 분데 베블렌(Thorstein Bunde Veblen)은 그의 “유한계급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The abjectly poor, and all those persons whose energies are entirely absorbed by the struggle for daily sustenance, are conservative because they cannot afford the effort of taking thought for the day after tomorrow; just as the highly prosperous are conservative because they have small occasion to be discontented with the situation as it stands today.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요, 부자들은 오늘에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다.

이유는 다르지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보수적이라는 얘기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정치고, 신자유주의고 자기들의 관심사가 될 확률이 아주 적다. 선거에 악착 같이 투표하는 사람들은 강남에 사는 졸부들이지, 인력시장에서 하루하루 몸을 파는 노동자들이 아니다. (지난 번,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 위대한 강남은 공정택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민들의 정치의식이 떨어지고, 정치적 무관심과 체념이 커질수록 경제적 양극화는 더 커질 것이고, 정치권력은 한나라당과 같은 극우 보수 세력에게 고스란히 넘어갈 것이다.

우리나라 서민(庶民)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할만한 정치세력을 선택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서민들의 계급적 사고를 가로막는 숱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 아주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신문들이 언론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공영방송이라던 KBS도 이미 이명박 졸개들에게 넘어가버리고, 아직도 1950년대 반공사상에 젖어서 좌빨 타령이나 하고 있는 수구 쓰레기 알바들이 네이버를 장악하고 있으며, 우리가 남이가 한마디면 앞뒤 가리지 않고 한나라당을 찍어대는 지역감정 추종자들이 있는한 서민들의 계급적 사고는 그야말로 요원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2~3% 지지를 받고 있는 진보신당의 심상정이 한미FTA를 들이대면서 노무현을 씹어돌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근본 모순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서민들에게는 아무런 이슈가 되지 못한다. 결국, 이런 상식적인 토론이 가능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한다. 언론 문제, 지역감정 문제, 그리고 색깔론. 이런 문제들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서민들의 이중서민 노릇은 지금처럼 계속된다.

또다른 해결책은 투표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룰라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이유는 브라질이 의무투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룰라같은 노동자 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으며, 그를 지원하는 세력이 집권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투표율이 적어도 80%만 넘어가도 한나라당이 집권할 수는 없다. 아무리 서민들이 보수화되었다고 해도, 아무리 국민들이 사기를 당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대한민국이 후진 나라라 하더라고 투표율 90%에서 이명박과 같은 사기꾼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는 없다.

정작 문제는 서민들의 보수화라기 보다는 서민들의 무관심이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당면 문제는 한미FTA가 아니고, 언론 문제고, 지역감정 문제고, 남북 문제다. 이들 문제가 선결되지 않고는 이명박이 아무리 깽판을 쳐도, 그 이후에는 박근혜가 정권을 잡을 것이고, 박근혜가 아무리 나라를 말아먹어도 그 이후에는 오세훈 같은 젊은 수구들이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참으로 암울한 현실이다.

종부세가 합헌이었다면 그건 더 놀라운 일이다

종부세가 합헌이었다면 그건 더 놀라운 일이다

종부세에 관련된 위헌소송에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면, 그것은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선출된 것보다도 더 놀랍고 역사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런 판결에서 합헌 결정을 바란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너무 순진한 사람이거나 또는 외계인일 가능성이 크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8명이 종부세 대상자다. 재판관의 90% 이상이 이해당사자라는 말이다. 이들 중 재산이 10억 미만인 사람이 두명뿐이다. 이 두명만 합헌 결정을 내렸고, 나머지 7명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헌법이라는 잣대로 종부세를 판단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재산을 기준으로 종부세를 재단한 것이다.

위헌 판결을 내린 7명의 재판관은 강만수보다도 더 교활하다. 이들은 종부세의 취지는 합헌이라고 박아놓고, 세대별 합산과 1가구 1주택 세부과에 대해 위헌과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림으로써 사실상 종부세를 빈 껍데기로 만들었다. 차라리 강만수처럼 종부세는 징벌적 과세 운운하는 것이 더 순진하고 착해보인다.

종부세는 관습헌법으로도 위헌이다. 관습헌법.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몇년 전에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이 관습헌법에 의해 위헌판결 났던 것을 기억하는가? 관습헌법에는 서울이 수도로 규정되어 있기에 관습헌법을 고치지 않고는 수도를 옮길 수 없다고 주장했던 헌법재판소의 노친네들을 기억하는가? 마찬가지다. 종부세 같은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있는 세금이다. 감히 가진자에게 세금을 물리다니. 세금은 원래 천한 아랫것들이나 내는 것이었다. 그런 세금을 상위 2%에게 물리다니 노무현은 그들에게 (오바마가 아닌) 오사마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만약 종부세가 헌재의 노친네들에 의해 합헌 판결이 났다면, 나는 정말 놀랐을 것이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이 이 정도 수준이 아닌데, 내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 주류의 파렴치함이 이 정도가 아닌데” 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그들은 그들의 저렴한 수준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말았다.

종부세, 행정수도 이전, 간통죄 등등의 문제를 헌재의 노친네들에게 물어본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을만한 삶을 살지도 않았고, 그들의 도덕성이 일반인들보다도 딱히 낫다고 볼만한 근거도 없기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런 가치관과 관련된 문제의 판결을 맡기고, 그 판단이 최종이 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매트릭스의 오라클이 아니다. 그들은 선출된 권력도 아니고, 9명의 출신 성분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표할 수 정도로 분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이런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수도이전이나 종부세 판결과 같은 파렴치한 결과가 계속될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강화되지 않고는 이런 문제들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선거 참여가 의무화되어야 하며, 국민투표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에 의해서도 발의되어야 한다. 브라질이나 호주처럼 투표가 의무화된다면, 이명박 같은 자가 대통령으로 뽑힐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지고, 오늘과 같은 헌재의 교활한 판결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진 자들이 무엇을 해주길 기대하지 말라. 주류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받기를 기대하지 말라. 당신이 강부자나 고소영이 아닌 한, 이명박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당신이 등신이라는 사실을 만방에 과시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냥 견디든지, 견딜 수 없으면 싸우든지, 선택은 둘 중에 하나뿐이다.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 온다…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 온다…

우연히 김규항이 프레시안에 쓴 칼럼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를 읽었다. 김규항을 비롯한 좌파들의 생각이 어떤지 대강은 알기에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사실 이런 류의 글들은 그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명박과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 땅의 수구 극우들을 지극히 이롭게 한다. 따라서, 이런 글들은 좋은 세상을 오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좌파들의 주장은 신자유주의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공공의 적이므로, 신자유주의가 없어지지 않고는 좋은 세상이 오지 않는다로 요약될 수 있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다시 말해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극복될 수 없는 모순을 갖고 있다. 필연적으로 양극화는 심해질 수밖에 없으며, 인간들은 무한 경쟁의 정글로 향하게 되고, 우리가 바라는 인간적인 삶은 도태되어 버린다. 자본주의가 극복되고, 거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그것이 사회주의일까? 이론적으로는 사회주의가 맞겠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이란 종이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좌파들의 또다른 주장은 이명박이나 노무현이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고 본다.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도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바마나 부시나 다를 것이 없다고 얘기한다.

이를테면 “모든 게 이명박 때문” “이명박만 없으면”이라는 ‘시대의 신학’이 목표로 하는 세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명박 이전에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훨씬 더 민주적이며 개혁적인 정권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사회 진보 운동의 목표는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인가? 물론 진보적이되 먹고 사는 일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야 ‘이명박이라는 짜증나는 인간’만 사라져도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대개의 사람들은 이명박이 물러나고 김대중이나 노무현 시절로 되돌아간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

[김규항,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

이 지점에서 나는 좌파들과 결별할 수 밖에 없다. 김규항의 질문에 내가 답하자면, 이명박이 없어지면 이명박이 없어진만큼 좋은 세상이 온다. 한나라당이 사라지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이 된다. 조중동이 폐간되면, 우리 사회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2배쯤 좋은 사회가 된다. 물론, 그 좋은 세상이란 것이 좌파들이 얘기하는 궁극적인 사회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후진 사회는 아니란 얘기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유모차를 끌고나가 촛불을 켤 필요가 없었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대운하 같은 정신 나간 짓거리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돈많은 부자들은 지금보다 더 세금을 많을 냈을 것이며, 복지 예산은 지금보다 조금 더 늘어났을 것이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아이들은 조금 더 행복한 세상에서 공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중동이 없었다면, 이명박 같은 사기꾼이 절대 대통령으로 뽑히지 않았을 것이다. 조중동이 없었다면, 지금쯤 더 이상 북한 퍼주기 얘기는 안나왔을 것이다.

좌파들이 원하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이 권력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조중동은 폐간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투쟁해야 하며, 조중동과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상식과 토론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명박과 조중동을 놔두고, 신자유주의와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념은 반대지만, 이명박과 같은 편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신자유주의가 힘을 못쓰고 하려면, 일단 이명박과 조중동이 사라져야 한다.

좌파들은 이 사실을 당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노무현을 까대던 진보 학계의 거두 최장집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별 말이 없다. 대부분의 좌파들이 그렇다. 좌파들은 왜 이명박이나 조중동보다 노무현을 더 싫어했을까? 왜 그랬을까? 노무현이나 이명박을 동일시하는 그런 좌파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좌파들의 말을 실현하는 길은 혁명을 하는 것밖에 없는데, 내가 보기에 이 지구상에서 2008년 혁명이 가능한 나라, 혁명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길 밖에 없지 않을까? 그들이 진정 평등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원한다면 말이다.

나는 이명박 정권보다 노무현 정권 때가 나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부시보다는 오바마가 나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다. 노무현이나 오바마를 성공시키고, 그 다음에는 그들보다 조금 더 진보적인 인물들을 선택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민노당이 제도권으로 들어온 것이 언제였는가? 노무현 정부 때 아니었는가? 내가 노무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단 한걸음 우리가 원하는 사회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좌파들이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보였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야 우리는 또 한걸음 내딛을 수 있다. 미국도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까지 200년이 넘게 걸렸다. 오바마가 얼마나 진보적 인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200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비주류인 흑인이 권력을 잡게 되었다는 사실. 역사는 참 더디게 흐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좌파들이 열걸음을 원하는데 노무현은 단 한걸음밖에 나아가지 못했다. 좌파들은 그 한걸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한걸음이 눈물이 나도록 소중하다. 오바마가 당선되었다고, 흑인들의 삶이 당장 나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리고 나에게는 그 오바마의 한걸음이 중요하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없어지면 우리는 또 한걸음 내딛을 수 있다. 조중동이 없어지면 우리는 두걸음을 내딛을지도 모른다. 이명박과 싸우지 않고, 조중동과 싸우지 않고, 신자유주의 타파를 부르짖는 것은 거짓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