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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Thoughts

유시민을 부탁합니다

유시민을 부탁합니다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지역감정이라는 덫에 온 정치권과 국민들이 허우적거릴 때, 돈키호테처럼 지역감정과 맞서겠다고 나타난 이가 있었습니다. 누구인지는 다들 아시겠지요? 그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라는 종로의 탄탄한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산의 유권자들은 김대중 당으로 출마한 그를 외면했고, 그 외면은 역설적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한때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근원지 역할을 했던 경상도 지역은 이제 한나라당의 텃밭이 된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그리고 이번에 중앙정부까지 모두 한나라당의 인물들로 들어차 버렸습니다. 이런 것을 전문 용어로 일당독재라고 합니다.

지난 20여년간 한나라당의 일당독재가 부산과 대구 그리고 경상도에 어떤 혜택을 되돌려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경상도는 경제적으로도 퇴락하고 있습니다. 사실 경상도 뿐만 아니고, 수도권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지역이 퇴락하고 있지요. 그래도 경상도 사람들의 한나라당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따지기도 난감하고 민망할 정도로 경상도의 패권주의적 지역감정은 참으로 견고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를 고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해야 하는데도,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오히려 지역감정에 기대거나 조장하고 다니기 일쑤입니다. 그들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요.

그 와중에서 부산은 노무현을 배출했고, 대구는 유시민을 길러냈습니다. 참으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견고한 동토의 땅에서 노무현과 유시민 같은 걸출한 정치인들이 나왔다는 것. 그래서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나 신은 공평하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봉하마을로 내려가서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를 할 때, 비가 오는 와중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유시민을 단상으로 올렸습니다. 말은 그렇게하지 않았지만, 노무현은 유시민을 자신의 정치 후계자로 지목한 것이지요. 저한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 유시민이 이번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에 출마합니다. 그도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역구를 버리고, 고난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한나라당이라면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당선”된다는 그 땅에서 유시민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정말 힘든 일이겠지만, 유시민이 이번에 당선이 된다면 그는 다음에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노무현과 유시민은 개성이 다른 정치인들이지만, 드물게 단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으며, 염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대구 수성을 유권자들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들이 유시민에게 투표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지난 대선보다도 사실은 더 중요한 선거가 지금 대구 수성을에서 치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유시민이 당선된다면, 대구는 지역감정의 덫에서 일거에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회는 평생 한번 올까 말까한 그런 소중한 기회입니다. 유시민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명예와 자랑이 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저는 사실 대구에 사시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유시민과 같은 정치인을 민의의 대표로 만들어 국회에 보낼 수 있는 그런 특권을 가진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유시민을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노무현, 나를 점쟁이로 만들다

노무현, 나를 점쟁이로 만들다

1년 전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4주년 기념 인터뷰를 보고 진한 감동을 받았고, 그 느낌을 바탕으로 “우리는 노무현을 그리워할 거다”라는 글을 썼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면, 그를 지지했던 사람이든, 그를 욕했던 사람이든 간에 노무현의 빈자리를 그리워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Yoo님에 의해 멋진 플래시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1년 후, 나의 예언 아닌 예언은 그대로 적중해 버리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지 한달 정도 되었는데,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이 10만명이 넘었단다. 하루에 3000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보러 봉하마을에 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을 까댔던 진보 노까 손호철마저 “노무현이 그립다”며 고백 아닌 고백을 했으니, 내가 1년 전에 한 말은 허언이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후안무치 언론들의 저주와 핍박이 어느 정도 걷히고,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와 국민들과 직접 소통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노무현의 진면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이메가의 쌩쑈에 벌써부터 신물이 난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찾고, 그리워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인터넷과 블로그계에서의 대통령이 아닌 평범한 시민 노무현의 인기는 하늘은 찌른다. 그를 미워하고 그에게 쌍욕을 퍼부었던 경상도의 나이 지긋한 양반들도 봉하마을로 내려온 그를 보면서 검연쩍어 한다. 미안해 하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은 다 한결같은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어느 것이 정의이고 어느 것이 불의인지 평범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사람을 평가할 때, 특히 지도자나 정치인들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보면,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평범한 진리를 바탕으로 나는 노무현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을 어렵지 않게 예견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노무현으로 인해 팔자에도 없는 점쟁이가 되어버렸다.

이왕 점쟁이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얘기해 보자. 작년 6월,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평포럼 연설을 듣고 “웹 2.0 시대의 대통령, 노무현”이란 글을 썼다. 노무현은 웹 2.0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지도자라는 요지로 말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지만, 대통령을 멀리서나마 직접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때 5시간 가까이 연설을 했었고, 사람들은 지겨운 줄도 모르고 경청을 했었다.

노무현은 웹 2.0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지도자이면서, 또 웹 2.0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직접 실현하려 하고 있다. 그의 홈페이지를 웹 2.0 방식으로 개편하여 좀 더 편리하게 참여와 공유, 그리고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다고 하니, 노무현은 컴퓨터 비밀번호를 몰라 열흘 동안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했다던 이메가 따위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위대한 지도자다. 도덕성과 더불어 실력까지도. 하여 나는 노무현이 웹 2.0 시대에 걸맞는 지도자라는 사실까지도 미리 알아맞춘 셈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변방의 나라에서 노무현과 같은 수준의 지도자가 나온 것은 사실 기적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 아닌가. 국회의 수준, 사법부의 수준, 언론의 수준, 그리고 그러한 저렴한 주류층에 놀아나는 민도의 수준을 보았을 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은 하늘이 진짜 이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나라를 너무도 사랑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재임기간 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이룬 업적은 사실 맛보기일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의 진짜 활약은 지금부터일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미국의 지미 카터나 엘 고어보다도 훨씬 훌륭하고 뛰어난 지도자가 될 것이다. 세상이 노무현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고, 지금 빠르게 망가지고 있는 이 나라가 노무현을 다시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계신 봉하마을을 한 번 방문하고 싶은데, 아직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좀 한적한 때를 택해 봉하마을에 가고 싶은데, 앞으로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어쩌지? 그렇다면 좀 더 기다려야겠지.

노무현 대통령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비록 당신은 저를 점쟁이로 만들었지만, 저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 차근차근 계획하신 일들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당신으로 인해 정말 많은 국민들이 행복해할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들에게 축복입니다.

총선, 네 가진대로 찍어라

총선, 네 가진대로 찍어라

이 글은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 “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조중동문 같은 후안무치한 우리나라 대다수 언론들에게 속아서 엉뚱한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쓴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집도 없이 월세나 전세를 살면서 “세금폭탄”이라는 말 한마디에 “종부세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제발 정신 좀 차려”라고 얘기하기 위해 쓴 글이다. 지난 대선 때, 한 백수 젊은이가 나와서 취직이 안된다며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메가를 지지한다”는 그런 눈물겨운 코메디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쓴 글이다.

오래 전 김규항은 “비판적 지지”라는 투표 행위를 비판하면서 “네 이념대로 찍어라”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김규항은 그 글에서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비판적 지지했던 진보주의자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면서, “털끝만큼”이라도 진보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서는 “네 이념대로 찍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동기화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만이 한국인들이 제 처지에 가장 적절한 정치를 맞을 유일한 방법이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한국사회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면 가장 반동적인 보수후보를 찍어라. 한국사회의 표면적 악취라도 우선 덜고 싶다면 가장 개혁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그러나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당선 가능성을 절대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되지 못한 정치평론일랑 걷어치우고) 그저 가장 진보적인 후보를 찍어라. 진보에 외상은 없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김규항, 네 이념대로 찍어라]

언젠가 얘기했듯이, 나는 “비판적 지지”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정치적 위치를 규정하는 것은 “선택”이라는 “행위”이지, 누구를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 민노당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실제 투표는 김대중이나 노무현에게 했다면, 그는 보수주의자다. 따라서 비판적 지지를 외치는 사람들은 대개 위선적이다. 자기의 진보적 이념과 보수적 행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선택과 행위를 해왔는지 더 주의깊게 본다.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은 현재의 그 사람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말로 하는 진보를 믿지 않는다. 그 말들이 아무런 달콤하고 장미빛 미래를 보여준다 해도 그 말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념대로 찍어라”는 김규항의 충고는 담백하기는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이념적 지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념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바뀔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념을 잘 믿지 않는 이유는 자기 이념의 변절자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한때 대한민국 대표적 빨갱이였던 박정희는 빨갱이를 때려잡는 반공의 화신이 되었고, 극렬 좌파였던 이재오, 김문수는 수구 정당에 들어가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대학을 다닐때 노동자, 민중을 위해 투쟁했던 대다수 학생회장들은 보수 정당에서 궁물이나 빨아먹는 존재들이 되었다.

선거에서 우리는 “이념”이라는 추상적인 기준보다 보다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잣대가 필요하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며 도덕적 파탄자를 지도자로 뽑는 국민들에게는 “이념”이라는 것은 씨도 안먹히는 얘기다. 하여 나는 주장한다. 당신들이 가진대로 찍어라. 당신들의 재산대로 찍어라.

당신이 고려대 같은 명문대를 나오고, 소망교회를 다니며, 강남에 십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살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면 당신은 이메가와 한나라당을 찍는 것이 맞다. 이 말은 경제적 관점에서만 얘기한 것이다. 물론, 당신이 고소영 범주이면서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진보를 지지할 수는 있다. 그것을 말릴 생각은 없다.

당신이 월세, 전세를 살면서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아이들 사교육비를 걱정하며 제발 양극화가 해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메가와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종부세 대상자도 아니고 억대 연봉자도 아니면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현재 처지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당신은 당신의 어리석은 정치의식 때문에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질 뿐이다.

총선에서 누구를 찍어야 될 지 모르겠다면 당신이 지금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헤아려 보시라. 그리고 당신이 가진대로 찍으면 된다. 이것이 서민이라 불리는 당신에게 드리는 기본적인 투표기준이다.

기자들은 어떻게 기사를 왜곡하는가

기자들은 어떻게 기사를 왜곡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기 바로 전날,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블로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글로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오늘 구글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전자신문 정진욱 기자가 쓴 “노대통령이여, 블로거가 되라”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다음은 정진욱 기자가 쓴 기사의 전문이다.

‘노무현 대통령님, 블로거가 되십시오.’

이명박 정부가 첫 출발을 맞는 날, 메타 블로그 사이트 올블로그(대표 박영욱)에 이제 재야로 떠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아쉬워하는 글이 게시돼 화제다. 올블로그 추천 게시물 순위 4위에 오른 이 글(soyoyoo.com)은 노대통령이 지난 24일 고별 간담회 때 밝힌 소회로 시작한다. ‘요즘 나는 내가 두렵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 내가 두렵다 …(중략)…’ 이어 이 블로거는 노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신념은 존중하지만 어려워진 경제상황 역시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떠나가는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은 글 곳곳에 묻어있다. ‘과연 노무현의 감당했던 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누가 기득권 세력과 맞서 역사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나설 수 있을까?’라고. 이 블로거는 미국이 지난 8년간 세계와 역사에 죄를 지으며 절망에 빠졌다가 오바마라는 인물을 찾았듯 노 전 대통령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역설한다.

바로 블로거가 되어 1인미디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달라는 것.

“노무현 대통령님, 블로거가 되십시오. 당신께는 참으로 미안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그렇게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새로운 희망이 나타날 때까지 당신은 불을 밝히셔야 합니다. 강이 바다로 흘러갈 때까지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것 같습니다”라고.

한편 블로거는 트랙백을 통해 이 글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길 바라지 않는다며 소견을 밝혔다.

[정진욱, 노대통령이여 블로거가 되라, 전자신문]

이 짧은 기사에서 정진욱 기자는 몇 차례 어이없는 그렇지만 의도적인 왜곡을 자행한다. 우선, 내가 썼던 그 글은 올블로그 추천게시물 목록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올블로그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인기있는 글도 아니었다. 기자가 어떻게 내가 쓴 글을 접했는지는 모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아쉬워하는 글이 게시돼 화제다”라는 문장은 그냥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 부분인데, 기자는 내가 “노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신념은 존중하지만, 어려워진 경제상황 역시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단다. 나는 그 글에서 경제상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내가 절망과 무관심이란 말로 글을 시작해서 기자가 오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이메가라는 자가 대통령으로 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의 심적 상황을 표현한 것 뿐이지, 경제상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기자는 경제상황을 언급함으로써 노무현 지지자인 나를 이용하여 노무현과 나를 동시에 교묘하게 조롱하고 있다. 노무현의 지지자가 그의 역사 의식은 인정하지만, 경제 실정을 비판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기자는 기사의 말미에 내가 트랙백을 통해 “이 글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길 바라지 않는다”며 얘기했다고 한다. 내 블로그에 내가 트랙백을 보낸다구? 어디에 내가 내 글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단 말인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정치적인 글을 써 놓고 정치적으로 해석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구. 정치적인 글을 정치적으로 읽혀야 한다. 그리고 올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도대체 정진욱 기자는 왜 내 글을 기사화했을까? 이런 짧은 기사 속에 내 글에 대한 인용 부분과 두어 군데 왜곡된 부분을 제외하면 도대체 정진욱 기자가 쓴 것은 무엇일까? 내 블로그의 글을 가지고 기사를 썼으면서 왜 그 흔한 댓글이나 트랙백 하나 안 남겼을까? 전혀 사실이 아닌 두어 문장이 들어가면서 내가 쓴 글의 의미는 반감되어 버리고 나는 조롱당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리나라 기자들 참 기사 쉽게 쓴다. 블로그 글 하나 놓고, 자기 내키는대로 왜곡해서 말이다. 물론, 확인을 하지 않는 것도 기본이고. 나도 이런 식이라면 하루에 수십 개라도 쓰겠다. 소돔과 고모라에 제대로 된 의인 한사람이 없었듯이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기자와 언론이 없다. 이런 나라에서 이메가가 대통령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말 한심하고도 슬픈 일 아닌가.

그러게 있을 때 좀 잘하지 그랬냐

그러게 있을 때 좀 잘하지 그랬냐

대표적인 진보 노까 손호철이 “노무현이 그립다”며 설레발을 쳤다. 내가 누차 얘기했기만, 나는 이런 먹물 진보들의 횡설수설이 수구꼴통 김용갑보다 더 역겹다고 보는 사람이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을 뽑아 놓고 등 뒤에서 칼질을 했던 최장집이나, 손호철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우리 사회 진보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별 도움이 안될 그런 족속들이다.

손호철이 어떤 인물이었던가? 불과 보름 전만 해도 이메가에게 노명박을 닮지 말라고 게거품을 물었던 자가 아니었던가. 그 글에서 손호철은 이메가와 노무현이 닮았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경박한 언행을 꼽았다.

사실 대통령께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너무 닮은 점이 많으며, 잘못하실 경우 노무현의 비극을 반복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경박한 언행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손호철, 이명박 대통령께>

소위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정치학자라는 사람의 칼럼이다. 이메가가 노무현의 100분의 1만 닮았어도 이렇게까지 황량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경박한 언행이라고? 이메가가 경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무현은 경박하지 않고 소박하였다. 꾸밈이 없었고, 직설적이었을 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노무현이 그립단다.

노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점이 많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우직하게 원칙을 지키며 지역주의와 냉전적 주류언론 등 한국정치와 사회의 벽에 도전했던 그의 용기,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 그가 가진 장점은 많다. 그러나 그 같은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아집, 독선 등 결점들을 주로 발휘하고 말았다.

<손호철, 노무현이 그립다 1>

불과 보름 사이에 경박이 언행이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기술로 바뀌었다. 노무현이 그 어려움을 겪은 것은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과 이 땅의 기득권 세력들에 의한 딴지와 방해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그냥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최장집, 손호철, 손석춘 등 소위 진보 지식인들이라고 불리는 자들과 민노당에 몸담으면서 끊임없이 노무현을 씹었던 자들의 행패는 지난 5년을 더욱 힘들게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노무현이 그립다구? 한 번도 노무현이 지지해 본 적이 없는 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노무현을 그리워할 수 있는 자격은 나같은 노무현 지지자들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손호철 같은 사이비 진보 지식인은 그럴 자격조차 없다. 이메가 치하 보름을 살아보니 이건 아닌가 싶은 모양이지? 그걸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알 수 있는 것인가?

올바른 역사의식이 없으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사이비 진보들은 우리나라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데 아주 크게 기여하였다. 그래도 잘났다고 계속 말도 안되는 질낮은 칼럼들을 써댈 것이다.

제대로 된 언론과 제대로 된 진보가 없이는 이메가와 한나라당의 깽판을 막을 길이 없다. 나라가 거덜이 난 후에 그때 뼈아픈 후회를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물이 소중한 것은 물이 없어져 봐야 알듯이, 노무현이 소중한 것은 노무현이 물러난 다음에는 알게 된 것이다.

올봄은 봉하마을에만 온 듯하다. 봄이 봄이 아닌게야.

이메가가 노리는 잿빛 세상

이메가가 노리는 잿빛 세상

“이메가와 그의 아이들” 벌이는 초현실 코메디 쑈의 결정판을 보면서 “모모”라는 소설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 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허나 이런 증상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란다. 하루하루,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는 게지. 그러면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서서히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 게야.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지는 게지. 이제 그 사람은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그 지경까지 이르면 그 병은 고칠 수가 없어. 회복할 길이 없는 게야.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삐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 신사와 똑같아진단다. 그래,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그 병의 이름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란다.

<미하일 엔데, 모모, p.328>

세상 모든 것이 잿빛이 될 때까지 이메가의 쑈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슬퍼할 것은 슬퍼하고 후회할 것은 후회하고, 분노할 것은 분노해야 하지 않겠는가. 견딜수 없다면 싸워야하고, 싸워서 끌어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무관심은 이메가의 호구로 가는 지름길이다.

The fact that you prevented it from happening doesn’t change the fact that it was going to happen.

<Steven Spielberg, Minority Report, 2002>

이메가의 쑈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일 뿐이다.

대한민국 여성분들께

대한민국 여성분들께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기념일입니다. 명색이 100주년인데, 축하하는 이들(특히, 남자들)이 없는 것 같아 제가 대한민국 남자들의 대표는 아니지만, (주제 넘게) 대한민국의 여성분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아내들, 며느리들, 그리고 딸들께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그리고 이 나라의 남자들은 온전히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신들의 꿋꿋한 인내와 눈물겨운 희생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새천년을 맞이한지 벌써 8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은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군요. 경제 규모로서는 세계 10위권이라는 이 대한민국에서 남녀 평등 지수는 97위랍니다. 대한민국 여성분들께 참 미안합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에게도 참 미안합니다.

언제나 이 나라의 여성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언제나 이 나라의 남자들이 철이 들고, 정신을 차릴까요? 남자인 저도 참 답답하고 난감한데, 여러분들 심정을 어떻겠습니까?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이 땅의 남자들이 여러분의 권리와 처지를 배려해 줄리 만무하니, 다른 방법이 없군요. 현명하신 여러분들이 스스로 쟁취하시는 것 밖에는.

제가 드리는 이 감사와 축하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아내들, 며느리들, 그리고 딸들, 힘내십시오. 그리고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여러분들이 행복해져야 아이들이 행복해지고, 아이들이 행복해져야 이 세상이 행복해집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훨씬 따뜻하고 행복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소요유 올림

돈 많은 것이 죄가 아니라구?

돈 많은 것이 죄가 아니라구?

이메가라는 자가 취임하자마자 1억 달러 내각을 끌어모았다. 예상못했던 바도 아니고,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만약 그 자가 윤구병 같은 이를 장관으로 임명하려 했다면 그것이 더 놀랄 일 아니겠는가. 1억 달러 내각의 면면은 이메가를 닮았지만, 아무도 이메가를 뛰어넘지 못했다. 하기는 우리나라에서 이메가를 뛰어넘는 뻔뻔함을 가진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1억 달러 내각에 대한 검증이 시작되자, 그들이 안드로메다에서나 통할 법한 소리로 변명을 늘어 놓는다. 이런 어처구니들의 손을 들어 준답시고, 또다시 여론조작을 시도하는 언론들. 돈 많은 것은 죄가 아니란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회의 장로들이고 집사들이다. 믿음이 부족해서 복지정책이 실패하고 양극화가 생겼단다.

돈이 많은 것이 죄가 아니라면, 왜 그들이 그렇게 받들고 있는 예수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을까. 왜 예수는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을까. 왜 그래야만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을까. 그들은 도대체 어떤 예수를 믿는 것일까. 그들이 다니는 교회에는 내가 알고 있는 예수와 다른 예수가 있는 것일까.

돈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은 죄다.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노동인데, 자기의 노동만으로는 1억 달러 내각에 있는 자들처럼 돈을 긁어 모을 수가 없다. 설령, 억세게 운이 좋아서 죄를 짓지 않고 돈을 많이 벌었다 하더라도 필요 이상의 돈은 다른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이고, 부처의 가르침이다.

사람은 돈이 많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돈이 많으면 불행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자기가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은 전생에 죄가 많다고 보면 된다. 그 업을 씻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훨씬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다.

대부분이 종부세 대상자라 노무현을 극도로 혐오했던 우리나라 주류층들의 단면이 이번 1억 달러 내각에 녹아 있다. 그들의 뿌리는 알다시피 친일이나 독재 세력, 또한 그들에 기생했던 재벌과 언론이다. 그들의 부도덕과 추잡함과 뻔뻔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도 그들이 더 위험한 이유는 국민들의 정신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구? 정말 그런가?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그렇게 부도덕하게 살아도 돈만 많으면 되는가? 그러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가? 장관도 하고, 대통령도 하고? 그리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수를 찾고 기도만 하면 되는가? 딱 한가지만 물어보자. 진짜 그렇게 살면, 경제만은 살릴 수 있는가?

탄자니아 세렝게티 평원에 살고 있는 짐승들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먹지 않는다. 그래서 옛말에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란 말이 있나 보다. 한반도는 지금 세렝게티 평원만도 못한 곳으로 전락했다.

저는 파워블로거가 아니랍니다

저는 파워블로거가 아니랍니다

올블로그 Top 100 블로거에 운좋게 당첨되고 나서 몇몇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자고 댓글을 남긴다. 블로그의 영향력 확대에 따라 기존 언론들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기자들이 블로그의 발전 방향이라든가, 대안 언론으로서의 블로그의 역할 등을 물어보면 사실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그 기자들이 찾고 있는 블로거들은 “베스트블로거”들이나 “파워블로거”들이기 때문에 나는 애초부터 자격이 없는 셈이다.

나는 이 블로그를 공개된 일기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냥 쓰고 싶은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기록할 뿐이다. 물론 이 공간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내 글을 읽고 공감을 하시거나 반대를 하실 수도 있지만 그것은 2차적인 것이고, 이 블로그는 나를 위한 가장 이기적인 공간이자 기록들이다. 내가 블로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사실 열명도 채 되지 않고, 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도 하루에 백 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소규모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을 올블로그 Top 100에 한 번 뽑혔다고 (사실 나는 내가 왜 뽑혔는지도 모르지만) 파워블로거 취급을 하시면 나는 무척 당황스럽다. 더군다나 인터뷰를 하자니… 그것도 내가 답하기 어려운 것들만을 물어 보시면서.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저는 파워블로거 또는 베스트블로거가 아니랍니다.

나는 블로그를 시작한 지 1년 반정도 되는 초보 블로거이고, 정치적으로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골수 노빠인데다가, 아내와 딸 하나를 두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는 그런 보통 노동자일 뿐이다. 만약 파워블로거를 찾으신다면, 한국 블로그계의 선구자이신 아거 님이라든지, 아니면 왕성한 활동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계신 민노씨 님 등을 인터뷰하시면 될 것이다.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유”다. 때문에 나는 가입형 블로그를 하지 않는다. 가입형 블로그에서는 100%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그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좀 들어가고, 시간을 좀 더 투자해야 하지만 나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를 제한당하거나 억압당하는 블로그는 더 이상 블로그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블로그는 “자유롭게 노닐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블로그 이름이 소요유(逍遙遊)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님, 블로거가 되십시오

노무현 대통령님, 블로거가 되십시오

요즘 나는 내가 두렵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 내가 두렵다.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저 냉소로 외면해버리는 무관심이 두렵다. 현실에 무관심해야만 나를 지킬 수 있다라는 그 절망이 두렵다. 그런 절망과 무관심이 바로 그들이 바라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참 견디기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 마지막 간담회를 하면서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해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참으로 역사에 대한 신념이 대단한 사람이다. 범접하기 힘든 그 역사와 민중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참여정부 국무위원들과의 마지막 간담회에서 “산간 지역은 물론 평지에서도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 굽이치고 좌우 물길을 바꾸어 가면서 흐른다.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노대통령,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 않아’, 한겨레]

대통령이 말한 역사의 법칙을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 나에게는 바다로 가야하는 강들이 시멘트와 갑문에 막혀 허우적대는 것이 보인다. 그 강들은 언젠가는 바다로 가야하겠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지금은 서서히 썩어들어가고 있다. 역사는 어리석은 민족에게 댓가를 요구하고 있다. 내가 가슴 아픈 것은 그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더 절망해야 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서민이라는 것이다.

더 절망하고 절망하여 마침내 그 절망의 극에 다다르면 희망을 볼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절망 중에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배우고 깨달을 수 있을까? 독재의 시절도 견디어 왔는데, 그때도 그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었는데, 나는 노무현을 보내면서, 그리고 앞으로 고통 속에서 5년을 견뎌야 할 대다수 국민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과연 노무현의 감당했던 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누가 기득권 세력과 맞서 역사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나설 수 있을까? 이제 물러난 대통령 노무현을 쉬게 하고 싶지만, 아직 역사는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거두어 들이지 않고 있다. 그가 지난 5년간 얼마나 고단하게 지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아직도 우리는 그의 대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지난 8년간 세계와 역사에 죄를 지으며 절망했던 미국이 오바마라는 인물을 찾았듯이 이제 우리는 노무현 이후의 시대를 다시 준비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참으로 미안하지만, 아직 노무현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새로운 희망을 찾을 때까지 노무현이라는 등대는 불을 밝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가보았다. 그곳이 앞으로 우리에게 꺼지지 않은 희망을 만들어내는 중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홈페이지에 노무현 블로그를 만들었으면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블로거가 되어 다른 네티즌들이나 블로거들과 직접 소통한다면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는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상식과 원칙이 살아있는 공간이 아직도 대한민국에 존재함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님, 블로거가 되십시오. 당신께는 참으로 미안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그렇게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새로운 희망이 나타날 때까지 당신은 불을 밝히셔야 합니다. 강이 바다로 흘러갈 때까지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