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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Thoughts

노무현 대통령님, 블로거가 되십시오

노무현 대통령님, 블로거가 되십시오

요즘 나는 내가 두렵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 내가 두렵다.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저 냉소로 외면해버리는 무관심이 두렵다. 현실에 무관심해야만 나를 지킬 수 있다라는 그 절망이 두렵다. 그런 절망과 무관심이 바로 그들이 바라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참 견디기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 마지막 간담회를 하면서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해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참으로 역사에 대한 신념이 대단한 사람이다. 범접하기 힘든 그 역사와 민중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참여정부 국무위원들과의 마지막 간담회에서 “산간 지역은 물론 평지에서도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 굽이치고 좌우 물길을 바꾸어 가면서 흐른다.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노대통령,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 않아’, 한겨레]

대통령이 말한 역사의 법칙을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 나에게는 바다로 가야하는 강들이 시멘트와 갑문에 막혀 허우적대는 것이 보인다. 그 강들은 언젠가는 바다로 가야하겠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지금은 서서히 썩어들어가고 있다. 역사는 어리석은 민족에게 댓가를 요구하고 있다. 내가 가슴 아픈 것은 그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더 절망해야 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서민이라는 것이다.

더 절망하고 절망하여 마침내 그 절망의 극에 다다르면 희망을 볼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절망 중에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배우고 깨달을 수 있을까? 독재의 시절도 견디어 왔는데, 그때도 그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었는데, 나는 노무현을 보내면서, 그리고 앞으로 고통 속에서 5년을 견뎌야 할 대다수 국민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과연 노무현의 감당했던 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누가 기득권 세력과 맞서 역사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나설 수 있을까? 이제 물러난 대통령 노무현을 쉬게 하고 싶지만, 아직 역사는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거두어 들이지 않고 있다. 그가 지난 5년간 얼마나 고단하게 지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아직도 우리는 그의 대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지난 8년간 세계와 역사에 죄를 지으며 절망했던 미국이 오바마라는 인물을 찾았듯이 이제 우리는 노무현 이후의 시대를 다시 준비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참으로 미안하지만, 아직 노무현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새로운 희망을 찾을 때까지 노무현이라는 등대는 불을 밝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가보았다. 그곳이 앞으로 우리에게 꺼지지 않은 희망을 만들어내는 중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홈페이지에 노무현 블로그를 만들었으면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블로거가 되어 다른 네티즌들이나 블로거들과 직접 소통한다면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는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상식과 원칙이 살아있는 공간이 아직도 대한민국에 존재함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님, 블로거가 되십시오. 당신께는 참으로 미안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그렇게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새로운 희망이 나타날 때까지 당신은 불을 밝히셔야 합니다. 강이 바다로 흘러갈 때까지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작은 선물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작은 선물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떠나시는 대통령을 그냥 이대로 보내 드릴 수 없어서, 초보 블로거인 저 소요유는 노무현 대통령께 작은 선물이라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별로 가진 것이 없는 제가 대통령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당신을 끝까지 지지했던 제 마음뿐입니다. (당신이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당신의 진심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보여드릴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일 년 반 정도 되는 동안 280여 개 정도의 글을 썼는데, 그중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것이 60개가 넘었습니다. 그 60여 개의 글 중에서 당신께 드리고 싶은 글들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인 글들 하나하나에는 그 시기 당신이 처한 어려움이나 또는 당신이 이룩한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고,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당신께 드릴 수 있는, 아니 당신께 드리고 싶은 유일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이 당신께 전달이 될지 안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혹 훗날 당신이 이 글들을 읽으신다면, 저를 비롯한 이 땅의 많은 블로거들이 당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했는지,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그때는 당신도 고단함을 잊고 환하게 웃으실지도 (혹은 쑥스러워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중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은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가 블로그계에 노무현 지지자임을 고백하며 쓴 글, “나는 최후의 노무현 지지자”입니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참으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저도 그의 지지자로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 글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저마다 노무현 지지자임을 말씀해 주셨지요.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물론, 대통령께도 위로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주를 “노무현 주간”으로 선포하고,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한 주를 보내고 계신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려 합니다.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글이 평소보다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이 글을 보시는 노무현 지지자가 계신다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통령께 드리고 싶은 글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이 글에 트랙백이나 댓글을 남겨 주십시오. 노무현 대통령께 저 혼자 드리는 선물보다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블로거들이 같이 의기투합하여 선물을 드리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부탁드립니다.

혹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거나 싫어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더라도 이번만은 못 본 척 그냥 지나쳐 주십시오. 제가 준비한, 아니 노무현을 지지하는 블로거들이 준비한 선물에까지 가시를 담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봉하에 내려가시더라도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대통령님은 은퇴하시기에는 아직 너무도 젊으십니다. 수렁에 빠져 버린 이 땅의 백성들을 잊지는 않으시겠지요? 노무현 2.0으로 더욱 강력하게 업그레이드하셔서 저희들 앞에 다시 나타나실 거라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최후의 노무현 지지자, 소요유 올림

노무현, 내가 사랑한 대통령

노무현, 내가 사랑한 대통령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훌륭한 인물들이 많다.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 왜군의 침략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 일제 시대 독립 운동에 목숨을 바쳤던 김구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열사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세계 최고의 문자를 만들고 백성들을 긍휼히 여겼던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열두척의 배로 백척간두에 서 있던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며,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그들을 사랑하냐”고 물으면 쉽게 답을 할 수 없다. 그들이 위대하고 훌륭하고 존경받을만한 삶을 살았음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지만,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호흡하며 동시대를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위대한 관념”으로 남을 뿐이다. 그렇다면 누가 나에게 존경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이 물론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역사상의 위인으로 기록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나에게 있어서 “정의”이고, “감동”이고, “행복”이며, 그리고 “미안함”이자 “안쓰러움”으로 남는다. 나는 그와 함께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처음으로 경험했으며, 그 길이 얼마나 고단하고 험난한 길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위대한 “관념”이 아니고, 평범하면서도 자랑스러운 “실재”가 되었다. 하여 나는 노무현을 사랑한다. 그것은 마치 천하일색이라는 양귀비보다도 내 아내가 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과 같다. 해방 이후 아직도 친일과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이런 정치 풍토에서 노무현과 같은 정치인이 생존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력이 있었던 것도 아닌, 그 흔한 대학 졸업장 한 장 없는 비주류 정치인이 “감동”이 되고, “희망”이 되어 마침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세계 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것이다. 쓰레기 더미에서도 장미꽃은 피는 모양이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는 기득권 세력들의 그 숱한 방해와 멸시와 탄압을 견디면서 꿋꿋히 일을 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을 한 최초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보통 사람이지만,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기득권 세력들이 아무리 그를 폄훼하려 하여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단심이 있고, 용기있는 정치인이었지만, 지금 그는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 그는 정치 철학에서부터 외교, 통일, 경제 그리고 거의 모든 정책 수립과 집행에 있어서 달인이 되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지도자가 되었다. 지금 미국에서 인기있다는 오바마도 노무현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질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일주일 남았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정치인이 역사의 뒤안길로 내려서고 있다. 아쉽다. 안타깝다. 우리는 노무현을 이렇게 놔줄 수가 없는데, 이렇게 보낼 수 없는데, 그는 이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쉬려 하고 있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개인적 바람으로 그가 정치 일선에 계속 남아주었으면 하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을 위해 일을 했고, 국민을 위해 봉사했던 단 한명의 정치인이 이렇게 퇴장해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지난 5년간 그가 당한 수모와 멸시를 생각한다면, 나는 그에게 무언가를 더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의 지지자를 자처하면서도 그에게 별달리 도움을 줄 수 없었던 내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사람들은 새로 대통령에 취임할 이명박보다도 떠나가는 노무현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를 그렇게 욕하던 사람들도 이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숭례문이 참 귀중한 문화재였다는 사실을 숭례문을 잃고 난 다음 깨닫는 것처럼, 노무현이 참으로 훌륭하고 위대한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조만간 깨닫게 될 것이다. 노무현은 내가 사랑한 최초의 대통령이자 최후의 대통령이다. 물론, 노무현보다 더 훌륭한 정치인이 나온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복이 될것이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인 중 노무현을 대신할만한 사람은 없다. 때문에 우리는 노무현을 정말 많이 그리워 할 것이다. 그리고 참 많이 미안해 할 것 같다. 같은 하늘 아래 노무현과 같은 꿈을 꾸면서, 같이 숨을 쉬면서, 한마디로 “노무현의 시대”를 살았던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대한민국은 이제 위대한 정치인을 보내고, 박정희 이후 최대의 난적을 만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 것이다. 나라의 앞날이 암울하다. 그러기에 그가 떠난 자리가 더욱 커보이고, 더 쓸쓸해 보일 것이다. 다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맞을 수 있다면, 아니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를 지도자로 가질수 있다면. 신이 과연 이 나라에 다시 기회를 줄 것인가. 나라가 몰락한다면 사람들은 노무현을 다시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를 만나러 봉하를 한 번 다녀와야겠다.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 정말 5년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의 노고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이 부족한 지지자는 알지 못합니다. 2MB와 기득권층에 의해 당신이 이룬 업적이 하나 둘씩 무너져 갈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이 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한 지난 5년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당신이 우리 곁에 되돌아 오길 바라지만, 염치가 없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견뎌야했던 지난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저는 당신에게 애원하고 싶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 나라의 지도자여서, 대통령이어서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리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신다면 우리 앞에 다시 돌아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니 대한민국은 여전히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그리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한국 마초들의 슬픈 자화상

한국 마초들의 슬픈 자화상

군가산점 부활 움직임과 한국 스포츠계의 성폭력 사태는 얼핏 전혀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 마초들의 위기의식과 열등감이 스며 있다.

우선 군가산점 제도부터 살펴보자. 청와대가 이미 논평을 냈지만, 취직할 때 군필자에게 부여했던 군가산점 제도는 이미 오래전에 위헌 판결이 났던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남녀평등과 장애인 차별 금지라는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는 것일 뿐더러,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수많은 예비역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병역은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주어진 의무다. 의무에 대해 보상을 주장하는 것도 자존심 구기는 일이지만, 만약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을 주장하려 한다면, 취업 후 군대 경력을 인정해 달라고 얘기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또는 국가가 부과하는 병역의 의무에 동의할 수 없다면, 모병제를 주장하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라.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취업시험에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는 마초들의 논리는 그 근거가 부족하다. 취업시험에서 점수가 낮게 나오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안했거나 실력이 모자라서일 뿐이지 군대를 다녀온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열등감이 극에 달한 어떤 이들은 여자들에게도 똑같이 병역의 의무를 지워야 한다고 설레발을 친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남녀 평등에 맞는 것일까? 그런 주장을 할 정도로 그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철저하게 평등주의자들이고 떳떳한가?

내가 보기에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노동의 양이 많다. 맞벌이 부부만 따져 보더라도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다섯 배까지 아내들이 남편들보다 훨씬 가사노동을 많이 한다. 당신들의 어머니, 당신들의 아내가 감당해야 했던 노동의 수고를 곰곰히 생각해 보라. 아니 지난 주에 있었던 설연휴를 한번 떠올려 보라. 당신들의 어머니나 아내나 며느리가 없었다면 설 명절에 차례나 제대로 지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정말 여자들에게 병역의 의무까지 지우고 싶은가? 그리되면 정말 대한민국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제 당신들의 어머니나 당신들의 아내가 그 노동의 댓가를 요구한 적이 있는가? 상식이 있고, 자존심 있는 남자들이라면 이런 낯뜨거운 주장은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스포츠계 성폭력 사태는 군가산점 제도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스포츠계의 지도자라는 자들이 “지도”라는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범죄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거의 모든 종목에서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는 것이 충격이다. 이런 파렴치한 자들이 지도자랍시고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사회 풍토에 얼마나 많은 어린 여자 선수들이 절망했겠는가?

여자 선수들을 다스리고 통제하기 위해서 그 선수들과 자야 한다고? 도대체 그들의 머리 속에는 뭐가 있는 것일까? 실력 없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X 밖에 없으니 성폭력을 저질러서라도 지배를 하겠다? 여자 선수들이 무슨 성노리개감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런 사고 방식의 근간에도 마초들의 열등의식이 여지없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합리적 이성과 실력으로 여자 선수들을 지도할 수 없는 자들이니 말이다.

한국 남자들은 성차별이나 성폭력 같은 사회 문제를 얘기할 때 여자들은 타자화하고 대상화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적이거나 또는 남자들의 상대 개념이 아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어머니거나 또는 남자들의 아내거나 남자들의 딸이거나 며느리인 것이다. 성차별이나 성폭력은 여자들만이 당하거나 견뎌야할 문제가 아니고, 남자들의 어머니, 아내, 딸, 며느리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남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문제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우리 모두가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들이다.

한국 남자들의 과거의 누렸던 몹쓸 권위들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그것들을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마초 근성을 드러내지 말라. 그러면 그럴수록 초라해지는 것은 남자들 스스로다. 당당한 남자로 살고 싶다면 마초 근성을 버려야 한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우월하지 않다.

한국 남자들이 언제나 밴댕이 소갈 딱지를 뗄 수 있을 것인가.

이명박이 치명적인 이유

이명박이 치명적인 이유

2메가 또는 2MB라 일컬어지는 이명박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위험하다는 사실이 이번 숭례문 화재로 다시 한 번 밝혀졌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가 저지른 일들을 살펴보면 묘한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이명박 자신의 출세를 위해 또는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전시성으로 기획되고 “졸속”으로 추진된다. 그 전시 효과의 단물을 모두 빨아먹고 난 후, 일이 실패하기 전에 이명박은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정작 책임은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말이다.

이명박이 문화재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숭례문을 졸속으로 개방한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알려진대로 국보 1호 문화재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그것은 그냥 표면적인 또는 부수적인 이유일뿐이다. 진짜 이유는 숭례문 앞에서 북치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숭례문을 “졸속”으로 개방한 것이다. 그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자서전에 한 줄 넣기 위해서 말이다.

이명박은 애시당초 문화재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문화재 같은 것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정확하겠지. 하지만 숭례문 개방 이벤트가 자신의 대권가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순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였다. 조중동 같은 신문들은 그의 “추진력”을 칭송하고 말이다. 정말 문화재를 사랑하고 그것을 시민들의 품에 돌려보내겠다고 하는 사람은 그렇게 일을 하지 않는다. 이명박은 숭례문 개방 이벤트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청계천도 마찬가지다. 숭례문 화재와 붕괴가 TV로 생중계되고 그 잔해가 끔찍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갖고 아우성치지만, 청계천 공사로 사라진 문화재 또한 숭례문 붕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명박이 과연 청계천을 복원하고 그것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에 관심이 있었을까? 아니다. 이명박이 관심이 있었던 것은 “청계천 복원을 이명박이 했다”라는 사실 뿐이다. 청계천 물을 한강에서 퍼올리든, 년간 운영비가 200억원이 넘게 들든 (그 돈이 자기 돈이 아닌 바에야)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의 치적을 삼기 위해 임기 내에 겉모양만 그럴 듯하게 해치워 버린 것이다. 청계천은 대권밑천일 뿐이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부조직개편안은 또 어떤가. 이명박이 정말 작고 효율적인 정부조직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순진하거나 아니면 바보거나 둘 중에 하나다. 이명박은 장관 숫자를 줄이고, 공무원 숫자를 줄였다는 사실에 집착할 뿐이다. 그 부처가 왜 필요한 것인지, 왜 통합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 부처를 없애는 것이 왜 효율적인지 따위는 사실 안중에도 없다. 공무원 숫자를 줄였다는 업적만을 갖고 싶은 것 뿐이다. 그 일의 타당성, 부작용 등은 아예 관심 밖이기 때문에 따져볼 이유도 없다.

현대 건설이 망한 이유를 아는가? 70년대 그 잘나가던 우리나라 대표 회사, 현대건설이 망했다. 그것도 숭례문 붕괴의 경우와 아주 비슷하다. 자신의 실적을 위해 수금도 할 수 없던 이라크에서 무조건 수주를 해온 이명박 때문이었다. 정작 회사가 망할 때는 이명박은 이미 회사를 떠나고 없었고, 그 피해와 책임은 남아있던 회사 직원들과 국민들이 짊어져야 했다. 그리고 이명박은 “성공한 CEO 출신의 정치인”이란 이미지만 가져갔다.

모든 것이 이런 식이다. 앞으로 경부운하도 이럴 것이고, 교육정책도 이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여태 벌인 일들이나 앞으로 벌일 일들이 대부분 “비가역적”이라는 데 있다. 되돌릴 수 없거나 되돌리기 너무 힘들다는 것들이다. 숭례문 붕괴가 그랬고, 청계천도 마찬가지다. 현대건설도 돌이킬 수 없고, 경부운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명박의 살아온 인생 행적을 추적해 봤을때, 이명박은 김영삼보다도 훨씬 위험하고, 전두환, 노태우보다도 치명적이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이후 최대 난적을 만났다.

3년 후 숭례문이 복원되었을 때, 이명박은 숭례문 앞에서 또 북을 치며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국보 1호를 되살려 놓은 대통령”으로 박수를 받겠지? 당신들은 또 이명박을 연호하며 박수를 치겠는가? 경제만 살리는 줄 알았더니 숭례문까지 살렸다고?

독일은 나찌의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그대로 놔두었다 한다. 마찬가지로 숭례문도 이명박이 물러갈 때까지 복원하면 안된다. 그 처참함을 봐야 그나마 “이명박이 치명적인 이유”를 기억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있다. 숭례문의 잔해는 기억상실이 일반화된 우리들을 매일 같이 각성시킬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경부운하만은 막아야 한다. 이것은 당신들과 나의 그리고 우리 자식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

숭례문 화재, 당신들은 왜 눈물 흘리는가

숭례문 화재, 당신들은 왜 눈물 흘리는가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이 났다. 불이 나서 2층으로 된 누각이 모두 타버리고 처참하게 붕괴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했다. 어떤 이들은 나라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며 분통을 터트렸고,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늘 그렇듯 언론들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느니, 소화기가 8대 밖에 없었다느니, 밤에는 관리자가 없었다느니 하면서 선정적인 보도들이 난무한다. 이런 지극히 평면적인 보도들은 책임을 다른 곳으로 전가하기에는 좋을지언정 큰 도움은 안되는 얘기들이다.

블로그계에는 좀 더 차원 높은 원인 분석이 이어졌다. 조직적 재앙시스템이라는 시스템적 분석부터 예고된 화재였다는 얘기까지. 그리고 이러한 화재의 빌미를 제공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도 있었다. 다 맞는 얘기들이다.

숭례문의 화재와 붕괴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전임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이 자신의 치적을 위해 아무 대책없이 “졸속”으로 숭례문을 개방했던 것이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의 빌미가 되었다. 전시 행정, 졸속, 난개발 등 대한민국의 “천민” 자본주의가 일구어낸 성장과 성과 위주의 개발 정책이 빚어낸 결과들이다.

숭례문이 국보 1호란 사실을 제외한다면 이러한 붕괴는 낯설지 않은 모습 아닌가. 90년대만 하더라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고 성수대교가 붕괴되었으며, 외환위기로 나라 경제가 결딴났다. 어디 그뿐인가. 해마다 공사 현장의 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때마다 언론들은 “인재”라고 떠들었다.

숭례문의 화재에는 “경제만 살리면 된다”면서 천하의 거짓말쟁이를 서울시장으로, 또 대통령으로 뽑아버린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어디 숭례문만 그런가? 청계천은 또 어떤가. 그 숱한 문화재를 다 팽개쳐버리고 시멘트로 발라버린 그 수준 또한 숭례문의 붕괴와 다름없지 않은가.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경부운하 만든다고 우리나라 강이란 강은 모두 유린될 것이고, 수많은 문화재가 수장되거나 버려질 것이다. 또한, 우리의 말과 글도 영어몰입교육 앞에 벼랑끝으로 내몰릴 것이다.

숭례문의 화재와 붕괴는 전조일 뿐이다. 아직 본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눈물을 보이면 나중에는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영어를 숭배하는 나라

영어를 숭배하는 나라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문화유산이 무엇일까? 한가지만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한글”이라 말하겠다. 문자를 발명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를 개발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프로젝트이다. 나는 한때 세종대왕이나 집현전 학자들이 지구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우리보다도 훨씬 문명이 발달한 어느 별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문자를 만들어주고 간 별나라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한겨레 논설위원 곽병찬은 다음과 같은 짧은 칼럼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얘기했다.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문자는? 1998년부터 2002년 말까지 유네스코는 말뿐인 언어 2900여종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는 연구를 했는데, 여기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문자는? 유네스코가 문맹퇴치 기여자에게 주는 상의 이름은 어떤 문자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나? 지구상 100여개의 문자 가운데 제작자 그리고 제작 원리와 이념이 정리되어 있는 유일한 문자는?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서 사용하는 문자는? 일본의 오사카시는 엑스포 기념 세계민족박물관을 지어 세계의 문자를 전시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문자는? 언어학 연구에서 세계 최고라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학대학이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실용성 등의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 결과 1등을 차지한 문자는?

컴퓨터 자판에서 모음은 오른손으로, 자음은 왼손으로 칠 수 있는 유일한 문자는? 이동전화의 한정된 자판을 가장 능률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 디지털시대의 총아로 떠오를 문자는? 발음기관의 움직임과 작용, 음성학적 특질을 본떠 만들었으며, 음양오행의 철학적 원리와 하늘·땅·사람의 존재론적 구조를 담고 있는 문자는?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평가했고, 〈알파베타〉의 저자 존 맨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말한 문자는? 언어학자 라이샤워 교수가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제”라고, 시카고대학의 매콜리 교수는 “10월9일이면 꼭 한국 음식을 먹으며 지낸다”며 존경심을 털어놓은 문자는? 영국 리스대학교의 제프리 샘슨 교수가, 기본글자에 획을 더해 동일 계열의 글자(ㄱ, ㄲ, ㅋ)를 만든 독창성은 어떤 문자에서도 볼 수 없다고 칭송한 문자는? 그런데,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그 귀함과 고마움을 잘 모르는 문자는?

<곽병찬, 답: 한글, 한겨레신문>

이런 훌륭한 말과 글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정말 눈물겹게 웃기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단군 이래 최고의 거짓말쟁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가하면, 그 자의 여자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인수위원장이라는 여자는 영어 숭배 정책을 내놓고 국민을 협박하고 기만하고 있다. 이들로 대변되는 한국의 특권층이 영어 숭배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시점에서 영어는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든든한 무기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야말로 한국의 특권층이 자신들을 일반인들과 차별화하는 수단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몰라도 영어는 잘 한다. 영어가 숭배되는 나라에서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고 출세의 지름길이다. 지금 이명박, 이경숙으로 대변되는 자들은 이러한 환경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영어 몰입 교육이라는 교활한 카드를 빼들었다.

물론, 이 정책이 그들의 배를 살찌우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영어 숭배 정책이 실행되면 테솔(TESOL)을 비롯한 영어 사교육 기관이 행복한 비명을 지를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돈이 없는 일반 서민들은 영어 양극화에 눈물을 글썽일 것이다. 이쯤되면 경제 때문에 이명박을 찍었다는 서민들은 자기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든 마찬가지다.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 때에도 그 시대 기득권층은 한글 창제에 전면적으로 반대했다. 집현전 학자 최만리를 중심으로 한글이 중국문화와 제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 이유로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은 유명한 일화 아닌가. 지금도 이런 생각에 젖어 있는 일부 법조인들은 법전에 있는 용어들을 한글화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옛날 의사들은 라틴어로 처방전을 쓰면서 자신들을 일반인들과 차별화했고,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도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전문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자신들이 특권층임을 과시했다.

영어는 하나의 의사소통 수단일 뿐이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만 하면 된다. 영어를 잘 하는 것과 국가 경쟁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영어가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되고 있고, 국민들의 그들이 벌인 사기판에서 또다시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당하고, 또 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우매한 민중들이 가엾고 불쌍할 뿐이다. 당신들의 민도를 높이지 않으면 당신들은 언제나 특권층의 호구로 살아갈 것이다. 금모으기나 하면서, 기름에 절은 돌멩이나 닦으면서 말이다.

이명박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소유> 란다. 정작 그 책을 쓴 법정 스님은 그 책에 있는 “미리 쓰는 유서”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법정, 미리 쓰는 유서>

법정 스님은 한국말과 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다음 생에서도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이명박이 <무소유>를 제대로 읽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 얼마나 눈물겨운 코메디인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5년간 자신들의 무덤을 팠다.

삼성 음모론이 의미있는 이유

삼성 음모론이 의미있는 이유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삼성 음모론 (이하 삼성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중년탐정 제닉스 님은 태안 앞바다에서 직접 피해를 당한 어민들을 취재하고 “태안 사태는 조작이다”라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동영상이 주장하는 것은 태안 앞바다의 기름 유출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고, 삼성호가 고의로 유조선을 들이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블로그계에서도 그 주장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민노씨 님은 “태안 음모론과 미끼질, 그리고 냄비근성”이라는 글로 논리적인 반박을 했다. 이어서 제닉스 님은 “태안 사태에 대한 관전 포인트”라는 글로 이 사건의 중요한 점들을 정리해 주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봐서는 정말 삼성호가 유조선을 고의로 들이받았는지 알 수 없다. 민노씨 님의 반박처럼 제닉스 님의 취재 결과가 말도 안되는 허황된 주장일 수도 있다. 피해 당사자인 어민들의 인터뷰만으로는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닉스 님의 문제 제기는 현재 상황에서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제닉스 님의 동영상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건 당일 삼성호는 남쪽으로 정상적인 항해를 하다가 갑자기 선수를 돌렸다는 것이다. 어민들의 주장으로는 그 운항행로가 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선수를 돌렸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 방향도 육지 쪽이 아닌 유조선이 정박해 있는 바깥 바다 쪽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수십 년 배를 운항해본 경험이 있는 어민들이 제기하는 의혹이다. 더군다나 배의 충돌 사고시 좌현과 좌현이 부딪혔으면 사고라고 할 수 있으나, 이번 경우에는 유조선의 좌현과 삼성호의 우현이 부딪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들어 어민들은 삼성호가 고의로 유조선을 들이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어민들의 주장들을 이 동영상을 통해 처음 접했다. 이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일리가 있는 얘기들이다. 더군다나 삼성호는 관제실로부터 충돌 위험을 수차례 통보받았으나 사건 당시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무선 통신이 두절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써 여러 개가 겹치고 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러한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사고 선박의 선장을 비롯하여 사고 현장에 있었던 선원들을 철저하게 수사하는 길밖에 없어 보이는데, 정작 한달 동안 수사를 해 온 해경과 검찰은 공식적인 수사 발표를 하지 않았다. 환경연합의 성명서를 보면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다.

태안해양경찰서(서장 최상환)는 1월 2일, 그 동안 진행해 온 서해 기름오염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수사결과를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결과는 충돌사고를 낸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 예인선단 선원 3명(2명 구속)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 선원 2명을 입건하고, 크레인과 유조선의 소유회사들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해경은 이와 같은 내용의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조사 내용이 발표될 경우 증거인멸 등 수사에 중대한 차질이 우려된다는 검찰의 지휘가 있어 별도의 수사내용 발표 없이 사건 일체를 송치했다.

수사결과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생각한다면, 해경의 이례적인 수사결과 발표 거부는 국민적인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사건 발생 한 달이 되도록 수사의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고, 증거 인멸을 여지를 남길 만큼 그동안 허송세월을 했다는 것인가? 40~50만 명의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하며 기름띠를 닦아내고 있는 동안, 경찰과 검찰이 한 일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고, 아직도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도리어 해경과 검찰이 앞서서 사고 책임자를 비호하는 행동 앞에 우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해경과 검찰은 삼성의 로비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인가?, 환경연합]

상식적으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의혹들이 하나도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사고를 낸 당사자 삼성중공업은 사고가 발생한지 한달이 넘도록 사과는 고사하고 변명 한마디 없다. 이것을 수사한 해경과 검찰은 한달 동안 수사한 것을 발표조차 하지 않고 있고, 언론들도 이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우리는 아직까지 이 사고의 전말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삼성은 현재 청와대를 능가하는 우리나라 최고 권력이다. 참여정부도 할 수 없었던 언론과 검찰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닉스 님의 동영상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 피해당사자인 어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때문에 그 주장들이 허황된 얘기라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제닉스 님이 “태안 사태는 조작이다”라고 아주 강하게 단정했다는 사실이다. 아직 “조작”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우리가 아는 정보가 너무 없다. 그냥 “의혹” 수준에서 주장을 해야 했고, 따옴표라도 써서 (조중동이 잘 하는 것 있지 않은가) 어민들의 주장을 전하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제닉스 님처럼 발로 뛰는 블로거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 잘난 기자들도 하지 않는 일을 블로거가 하고 있다는 것도 자랑스럽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어민들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담아낸 것도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제닉스 님의 후속 보도를 기대해 본다.

수십만 명이 자원 봉사를 해서 태안 앞바다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 사고의 진실을 정확하게 밝히고, 삼성 측의 사과를 받아내야 하며, 어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보다도 후자가 더 요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답답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 또 하나의 가족?

삼성, 또 하나의 가족?

미국 생활을 오래 하다가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미국 사람들이 “의외로” 실수를 잘 저지르지만, 여간해서는 사과를 잘 안한다는 것이다. 특히 업무에 관해서 잘못이 있을 때 그들은 냉큼 사과하지 않는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미국은 소송이 만능인 나라라서 한 번 잘못을 인정해 버리면 자칫 인생이 결딴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삼성중공업의 잘못으로 태안 앞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 사고가 난지 한달이 지났지만, 삼성 쪽에서는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긴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하청업체의 자본금이 5천만원이란다.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한 태안 앞바다의 피해가 수조원이 넘을 것 같은데,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긴다? 이것이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삼성이 하고 있는 일이다.

순박한 어민들과 국민들은 연일 자원봉사로 바다의 떠있는 기름을 닦아내기에 여념이 없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할 기업은 말 한마디 없다. 사과는 커녕 항해일지까지 조작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고, 이런 기업의 총수가 존경받는 나라이니 할 말 다한 것 아닌가? 삼성 입장에서는 어설프게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를 했다가 자칫 회사가 결딴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에 몸을 사리는것 같다. 글로벌 기업답지 않은가? 미국식으로 말이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또 느낀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다는 것이다. 아주 잘나가던 기업이었던 에너지 회사 엔론과 통신 회사 월드컴은 분식 회계 때문에 망해 버렸고, 경영진은 10년 이상 감옥에서 죄값을 치루고 있다. 미국에서 탈세를 하다가 걸리면 그것은 거의 인생 종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삼성 총수의 아들은 4조의 돈을 벌면서 단 16억원의 세금을 냈고,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자식들을 위장취업시킨 어떤 정치인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강화해야 하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 현 상태로 보면,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도 훨씬 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아닌가?

도대체 언제까지 금이나 모아가면서 나라를 살리자고, 태안 앞바다 기름을 닦으면서 바다를 살리자고 할 작정인가? 그러면서도 한나라당을 찍어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들인가? 당신들이 살리자고 하는 경제는 도대체 어느 나라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분노할 때는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하고, 기억할 것은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나 더 당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경부운하와 에비앙 생수

경부운하와 에비앙 생수

너무 오래된 일이라 언제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한 30년 전쯤 될까),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석유가 많이 나는 중동에서는 물이 없어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는단다.” 이 말에 우리 모두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물을 외국에서 사다 먹는다”라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금수강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석유는 나지 않지만 산 좋고 물 좋은 그래서 축복받은 땅이 한반도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의 기억이 또렷히 되살아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동 사람들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들은 물이 없어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었지만, 우리는 멀쩡한 물을 파헤쳐 못먹게 만들고,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한반도대운하 TF에서는 팔당댐 등에서 식수를 길어올리는 직접취수 방식을 지하수에서 식수를 공급하는 간접취수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사업 본격 시동, 한국경제]

한 10년 후쯤 중동의 초등학교에서는 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배울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은 석유도 안나는 나라가 물을 외국에서 사다 먹고 있다. 한 때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물이 좋은 나라였는데, 그 좋은 물을 다 못먹게 만들었단다.” 중동의 어린이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훗날 우리는 우리 자식들에게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경제가 좋아지면 에비앙 생수를 사다 먹으면 그만이라고 얘기할 것인가? 에비앙 생수는 1리터에 2000원 정도하는 물이니 기름값보다 훨씬 비싸다고 해야 하나? 기름값이 비싸다고 세금을 내려달라는 국민들은 나중에 물값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

나는 30여년 전 중동의 어린이들에게 미안하고, 나는 나의 자식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