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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건강

신종플루 혹은 돼지독감에 대한 호들갑

신종플루 혹은 돼지독감에 대한 호들갑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이 언론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때, 우리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냉정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돼지독감이라 불렸던 신종플루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4월말 쯤 멕시코에서 돼지독감으로 수십명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보도가 나왔고, 전세계 언론과 세계보건기구가 앞다투어 이 바이러스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하면서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물론 1919년 스페인 독감으로 5천만명의 사람들이 죽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해 경계를 해야 하겠지만, 이미 두달이 지난 시점으로 봤을 때 이번 사건은 지난 조류독감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과 세계보건기구의 지나친 “오버”가 음모론만을 낳고 있는 실정이다.

신종플루가 일반 계절성 독감보다 더 위험하다는 증거도 없고, 이 바이러스가 스페인 독감처럼 세계적 유행병(Pandemic)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번 바이러스로 전세계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현재까지 100여명 정도다. 물론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독감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늘 존재해왔다.

미국에서만 한해에 계절성 독감으로 죽는 사람이 약 36,00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니 신종플루가 일반 독감보다 더 독성이 강하다고 보기 어렵고 그 전염성도 일반 독감에 비해 훨씬 강력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이번 신종플루에 대한 보도와 세계보건기구의 호들갑을 “사기”라고 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1976년 미국 포드 대통령 때 돼지독감 때문에 전국민을 상대로 예방접종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많은 정치인들이 우매한 국민들을 상대로 이런 장난을 친다. 정치적인 위기를 이런 식으로 돌파하려 하는 것이다. 이때 독감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이 1명 있었지만, 2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백신 주사를 맞고 숨졌다.

2년 전 조류독감으로 아우성을 칠 때, 타미플루를 개발한 Gilead Sciences의 주주들은 돈벼락을 맞았다. 도널드 럼스펠드와 미국의 네오콘들이 이 회사의 대주주들이었다. 이번 신종플루의 경우도 타미플루가 치료약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이들은 또한번의 돈벼락을 맞게 된다. 미국의 네오콘들이라면 이런 장난으로 주머니를 불릴만한 족속들이라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다.

음모론을 전적으로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언론과 세계보건기구의 호들갑에 같이 장단을 맞출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런 사건들은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음과 같은 비디오는 냉정한 시각을 갖는데 도움을 준다.

신종플루가 걱정된다면, 손발을 깨끗이 씻으면 된다. 그것이 타미플루나 독감백신보다도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언론 사기, 암 완치율이 절반 가까이 된다?

또 하나의 언론 사기, 암 완치율이 절반 가까이 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암 진단과 생존율을 보도하면서 우리나라 언론들은 또 제목 장사를 했다. 언론들의 왜곡과 사기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건강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장난하는 이 나라의 언론들이 국민 건강에 끼치는 해악은 정말 치명적인 것이다.

연합뉴스 이주영 기자는 복지부의 암 발생률과 생존율 발표를 보도하면서 암 완치율이 절반 가까이 된다고 보도했다.

암 환자 절반 정도는 완치 = 1993~2002년 암 발생자의 5년 생존율은 44.5%로 나타났다. 이를 전후반으로 나눠 생존율을 계산하면 후반기(1998~2002년) 생존율이 46.3%로 전반기(1993~1997년)보다 4.6%포인트가 높다.

암 환자 5년 생존율은 암 치료에서 통상적으로 완치 기준으로 통한다. 5년 생존율 46.3%는 암에 걸린 사람이 100명이라면 이 가운데 46명이 이상이 완치된다는 뜻이다.

<암 걸릴 확률 4명중 1명…절반 가까이 완치, 연합뉴스>

암의 완치율이 절반 가까이 된다면 이건 정말 기뻐해야 할 일이고, 암이 더 이상 불치병이나 난치병이 아니라는 얘기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암은 여전히 우리나라 사망원인의 으뜸을 차지하고 있고, 암에 대한 획기적인 치료법이 나온 것도 아닌 현실에서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전형적인 제목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 얘기하는 완치율은 5년 생존율을 말한다. 암에 대해 치료 받은 후 5년 동안 살 수 있는 사람이 100명 중 46명이라는 얘기다. 그 5년 이상을 살아 남은 사람 중 5년 6개월 또는 6년, 7년 만에 재발되거나 치료되지 않은 암때문에 죽는 사람이 꽤 될 것이다. 그렇다면 5년 이후에 암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암이 완치된 것인가 아닌가.

완치라고 하면 암이 완전히 나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기자의 표현대로 의료계에서 5년 생존율을 통상적으로 완치율이라 한다면 이것은 현대 의학이 암을 완치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현대 의학의 패러다임으로는 암을 완치하기가 정말 힘들다. 증상에 대처하는 대증요법을 근간으로 하는 현대 의학에서 눈에 보이는 암세포를 수술이나 약물로 일시적으로 제거하거나 억눌러 놓았다고 해서 암이 완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현대 의학의 치료법은 엄청난 부작용을 수반하고 있다. (더 자세한 것은 현대의학은 암을 고칠 수 있는가를 참조하시길)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암을 조기 발견, 치료하면 완치율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5년 생존율을 완치율이라 정의했을 때, 이 말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말이다.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환자가 금방 사망하는 것이 아니다. 진단과 치료부터 사망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 췌장암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위암이나 유방암 같은 경우 조기에 발견하면 5년간 생존할 확률은 치료를 받건 안 받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말기에 발견하게 되면 치료를 받건 안 받건 5년을 살기가 힘들어진다.

현대 의학의 암치료가 5년 생존율을 높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주위에서 수술이나 항암요법의 부작용으로 정말 고통받으면서 사는 사람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과연 이 치료법이 암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되묻고 싶은 경우도 많다.

이주영 기자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암 완치율이 절반 가까이나 된다고 보도했을지도 모르지만, 언론의 정도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이다. 지난 번 조류 독감 보도 때도 그랬지만, 언론의 무책임한 기사가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지 그 해악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나라 언론의 왜곡, 과장 보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암에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현대 의학은 Lab Science”

“현대 의학은 Lab Science”

이 말은 미국의 한 70대 내과의사한테 진찰을 받다가 들은 말이다.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피검사를 하지 않고는 의사들이 환자의 질병을 제대로 진단할 수 없음을 냉소적으로 고백한 것이다. 의사들은 기계가 내 놓은 결과를 해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해진 코스대로만 처방한다. 그 정해진 코스라는 것도 (미국에서는) 대개 제약회사와 보험회사들의 로비와 합의로 결정된 것들이다.

우리 시대 재야 명의로 불리는 장병두 할아버지가 법정에 섰다. 면허없이 의료 행위를 했다는 이유다. 장병두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수많은 사람들이 구명운동에 나섰다.

박태식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는 “3년전 복막과 장으로까지 전이된 위암으로 1달 정도 살 수 있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할아버지의 치료를 받고 완치됐다”며 “삶의 벼랑끝에 몰린 환자들의 희망을 누가 있어 저버릴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현대판 화타 장병두 할아버지 구명운동 ‘불길’, 쿠키뉴스]

질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 새로운 희망을 준 장병두 할아버지는 의사면허와 관계없이 이미 진정한 의자이다. 이런 재야 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현대 의학에서 포기한 이들이라고 볼 때, 장병두 할아버지의 의술은 현대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 동양에는 서양의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많은 훌륭한 전통들이 있다. 이것들이 단지 “과학적”이지 않다는 편견으로 무시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 현대 의학은 너무 극명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밥그릇 지키기에만 연연할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환자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현대 의학 전공자들과 정부의 열린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병두 할아버지가 하루라도 빨리 환자들 곁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진정한 의자는 환자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아침에 눈이 내렸다. 지난겨울에도 볼 수 없었던 눈을 봄의 문턱에서 만난다는 것이 어색하다. 계절이 뒤죽박죽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되고. 하지만 오늘 아침의 눈은 이 아빠에게 아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추억을 되새기게 해 준다.

6년 전 오늘, 엄마는 너를 낳기 위해 이틀이나 산통을 거듭했고, 그날 창 밖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너는 엄마의 따뜻한 자궁이 그렇게 그리웠는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지. 결국에는 의사가 수술을 했고, 너는 한쪽 눈만 뜨고 아빠의 얼굴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가지러 집으로 갈 때도 눈은 그치지 않았다. 그 눈은 아빠에게는 축복이었다. 누가 너를 아빠와 엄마에게 보내주셨는지는 모르지만, 너 같이 귀엽고 예쁜 녀석을 보내주신 그분께 감사했고, 우리는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행복에 사무치니 누가 시샘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네가 아팠던 지난 2년 우리는 힘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지. 어린 네가 겪어야 할 고통에 엄마 아빠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잘 먹고 신나게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너는 단식을 해야 했고, 친구들이 다니는 유치원에도 제대로 갈 수 없었지. 아빠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힘든 삶에도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이 어려움이 우리에게 뭔가를 얘기해 주고 싶어 한다는.

이제 우리는 터널을 겨우 빠져나오고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건강의 소중함을 알았고, 현대 의학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없는지 그 허실을 알았으며, 건강의 책임은 본인과 가족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네가 다시 건강을 찾아 나가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수업료가 비쌌지만, 제대로 배웠다는 생각이다.

아빠는 우리 딸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지난 2년간 우리가 건강에 대해 공부하고 생활한 것처럼 그렇게 하면 우리 가족은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고 찾아야 한다. 행복은 소유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고, 혼자만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우리 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빠는 네가 있어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아빠는 네게 너무 많은 빚을 진 것 같다. 아빠도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아빠의 삶이 너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여섯 번째 맞는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딸아!

결국 “밥그릇 문제”라고 자백한 의사협회

결국 “밥그릇 문제”라고 자백한 의사협회

의사협회 회장 장동익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의료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가 밥그릇 문제임을 자백했다. 예상대로다. 의사협회장의 주장을 사실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설령 의사 1/3이 한 달에 300만원 밖에 벌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의사들의 수입을 법으로 보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사로서 먹고 살기 힘들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 확률적으로 보더라도 의사들 전체가 실력 있는 것은 아니므로, 실력이 없고 문제가 있는 의사들은 퇴출되는 것이 당연하다. 의료법 개정안이 국민 건강 증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 보아야지, 의사들의 수입 문제나 그들 영역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무기한 파업 운운하며 반대하는 것을 용납할 사람은 의사협회 회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더우기 이들이 우스운 이유는 자기들 밥그릇 지키기가 명확한데도 국민 건강 주권을 운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중적이다. 지난 번 의약분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의약분업을 반대한다고 해 놓고, 결국 의료수가 몇 번 올리는 것으로 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그냥 돈 더 벌고 싶고, 의사들이 누렸던 독점적인 권한 침해받기 싫다고 정직하게 얘기해라. 그 편이 스타일을 좀 구기지만 순수해 보이지 않을까. 더 이상 아픈 사람 치료하는 것을 성직으로 안다느니 하는 입에 발린 소리는 그만 하자. 어차피 의사들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로 스스로 격하시킨 마당 아닌가. 만약 의사협회 회원들이 아픈 사람들을 볼모로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 무기한 파업을 한다면, 그들의 면허를 취소시키고 의료계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의사가 될 자격이 없다. 그리고 의료시장을 전면 개방하고 국민들에게 더욱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수입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많은 부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교육과 의료 같은 공공 서비스는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맞다. 한 가지 더. 현금이 아닌 신용거래를 통해 병원과 의사들의 수입이 전부 드러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수입에 맞는 세금 부과로 그들로 하여금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도록 국세청이 지도편달해 나가야 한다.
젊은 의학도, 김민섭 님의 댓글을 읽고

젊은 의학도, 김민섭 님의 댓글을 읽고

이 글을 쓸까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그가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그에게 나의 의견을 들려주고 싶었다. 이 글은 그를 비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한 관심과 기대, 그리고 삶을 조금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의 주제넘은 충고라고 해 두자.

우선, 그를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답답한 의사협회”라는 글을 통해 복지부 의료법 개정안이 가지는 의료 시장주의 문제를 지적했다는 것이다. 의사협회에서는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추론해 보건대, 의사협회는 밑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언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복지부 안대로 하면 의사들의 수입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김민섭 님은 의료 시장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의사협회가 답답하다고 얘기했다. 당당한 그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런데,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의사들의 시위를 옹호내지는 변호하면서 들고 나온 논리다. 내가 보기에 지금 의사협회에서 주장하는 반대 논리는 지극히 지엽적인 것이고, 국민의 건강 주권과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김민섭 님은 복지부의 개정안 특히, 투약이나 간호진단 같은 것이 의사의 직업적 자존심을 건드렸기에 의사들이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것이라 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특권의식이다. 젊은 의학도의 논리에서 묻어나오는 특권의식이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

의사의 직업적 자존심. 이건 의사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환자들과 국민들에게 신뢰를 쌓아가면서 만들어지는 나가는 것이다. 투약이나 간호진단이라는 법률 용어가 의료법에 들어가고 안들어가고 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의약분업을 반대하면서 의사들이 보여주었던 행태들이 그들의 직업적 자존심을 깎아내렸다. 의사들 스스로 의사라는 직업을 단지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으로 격하시켰다. 지금 의사들이 자기들의 자존심이 상처받아서 할복한다고 할 때 몇명의 국민이 지지하고 공감할 것인가? 할복하면 뭉개진 자존심을 다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에서 약자는 환자들이다. 몸이 아픈 환자들의 처지에서 의사의 진단과 처방은 거의 절대적이다. 만약 의사들의 진단과 처방이 잘못 되어 환자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거나 환자가 사망하였을 때 환자나 유가족은 보상 받아야 하는데, 의료 소송을 해도 우리나라에서 환자가 이길 확률은 지극히 낮다. 잘못을 저지른 의사의 실책을 증언해 줄 다른 의료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어서 동료의사의 잘못에 대해 침묵하고 의료 기록 위변조 하는게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나?

또 하나의 문제는 의료서비스의 독점하려는 의사들의 태도다. 솔직히 얘기해 보자. 의사들은 한의학이나 자연의학 대체의학 등을 의학으로 인정하나?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직 현대 서양의학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나는 의료 서비스가 좀 더 다양화해야 하며, 대체의학과 자연의학 중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들은 제도권으로 편입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와 같은 주장이 의료법에 반영이 되었을 때, 의사협회는 또 사회주의 주사파 의료법이라 외치면서 할복할 것 아닌가.

의사들이 국민들의 불신을 극복하려면 먼저 겸손해져야 한다. 환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 죽도록 아파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없다라고 얘기한 어떤 의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업적 자존심 때문에 의사들이 거리로 나섰다는 말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왜 사람들이 그런 눈으로 보는지 먼저 반성해 볼 일이다. 물론 개인 면면을 보면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의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집단이 어떻게 비춰지고, 인식되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권의식을 버리고, 좀 더 겸손하며, 환자의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의사. 김민섭 님이 그런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

안중근 의사가 되고 싶었던 의사 선생님

안중근 의사가 되고 싶었던 의사 선생님

“사회주의 주사파 의료법을 깨부수자”며 모인 의사 선생님들의 집회에서 한 의사 선생님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정말 훈훈한 미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비난 열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서울시의사회 소속 한 의사가 할복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서 경과보고를 하기로 돼 있던 좌훈정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는 연단에 오르지도 않은 채 즉석에서 테이블과 수술칼을 준비해 “혈서를 쓰겠다”며 할복했다.

좌훈정 의사 선생님은 할복한 후 손바닥에 피를 묻혀 흰 천에 도장을 찍었다. 혹시 안중근 의사를 본받기 위해 한 시도였을까. 안중근 의사의 그 의사는 좌훈정 의사의 그 의사가 아닐텐데 말이다. 진정 안중근 의사를 따라 할 요량이었으면, 어설픈 할복보다는 왼손 약지 한마디를 끊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가 도대체 흰 천에 쓰려고 했던 혈서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의사들이 국민의 건강권을 볼모로 밥그릇 지키려 하는 것, 지난 의약분업 때 신물이 나도록 보아왔다. 진정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는 의사들이라면 지금 현대의학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안중근 의사와 병 고치는 의사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의 기득권층이 보이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는 것. 이 집회에 참석한 의사 선생님들이 그렇고, IMF를 불러오고도 참여정부가 경제 파탄의 책임을 지라는 한나라당이 그렇고, 친일과 독재 부역으로 점철된 조중동의 적반하장이 그렇고,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 전직 장성들이 그렇고…

한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따지는 것만큼 공허한 일이 있을까.

연예인 자살로 본 우울증 치료의 허와 실

연예인 자살로 본 우울증 치료의 허와 실

젊고 예쁜 여자 (연예인)들의 자살은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고 안타깝게 만든다. 영화배우 이은주가 그랬고, 어느 재벌의 막내 딸도 그랬으며, 어제 가수 유니의 경우도 그랬다. 모두 우울증(depression)으로 인한 자살이란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렇게 젊은 여자들이 왜 세상을 등지고 있는가.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도 꿋꿋하게 살아가는데 나름대로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왜 그럴까. 우울증은 그렇게 무서운 병인가.

통계를 보니 전체 자살하는 사람의 66%가 우울증과 관계가 있고, 우울증은 여자가 남자보다 2배이상 많이 걸린다고 한다. 하긴 언론에 오르내리는 연예인들의 자살 중 남자의 경우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은 많이 나와 있는데, 이 약들이 그리 효과가 있지 않은 모양이다. Prevention & Treatment에 게재된 연구를 보면 우울증 치료하는 약이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 플라시보 효과 (Placebo Effect) 정도의 효능만 보이는 모양이다. 유니의 어머니도 인터뷰에서 우울증 약을 먹어서 우울증이 다 나았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울증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좋다는 연구가 있다. 따라서,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생선이나 기름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 Fish Oil 이나 Flaxseed Oil도 오메가-3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이 약보다도 더 효과가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다. 따라서 음식으로 고칠 수 있는 질환은 먹는 음식을 조절해서 고치는 것이 낫다. 몸에 좋은 채소와 기름들은 대체로 몸을 건강하게 하고 대부분의 질병에 효과를 보인다. 그리고 지속적인 유산소 운동, 걷기와 자전거 타기, 수영 등이 우울증에 권할만한 치료방법들이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그리고 증명되지 않은 거지만), 규칙적인 봉사활동도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도와주면서 함께 희망을 찾아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한 번 연구해 볼 만한 과제인 것 같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면 우울증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우리 잘 먹고 잘 살자. 세상은 살아볼만한 곳 아닌가.

항생제가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진짜 이유

항생제가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진짜 이유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스웨덴 어린이보다 5배 이상 항생제를 많이 먹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겨레가 오늘 보도한 바에 따르면 7살 미만 어린이 천 명당 약 46명의 어린이가 매일 항생제를 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우리나라 병원에서 항생제 처방률을 바탕으로 항생제 남용 통계를 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항생제 사용량이 밝혀진 것이다.

항생제는 양면의 날을 가지고 있다. 항생제의 개발로 세균으로 인한 질병들이 많이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약의 남용은 우리 인류에게 엄청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항생제로 치료가 되지 않는 수퍼 세균의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세균 감염으로 병원 무균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있다. 항생제 개발 속도보다 새로운 세균의 출현 속도가 빨라지면 인류 생존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 세균들은 우리 생각보다 더 지능적이다. 이것들은 생존을 위해 변이한다. 항생제에 견디기 위한 개체로 끊임없이 자가변이하는 것이다. 이것이 항생제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위험이다. 항생제가 새로운 세균을 출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은 우리 피부에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항생제가 위험한 이유, 특히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이유는 항생제가 어린이들의 면역을 크게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들어, 어린이 아토피, 천식, 알러지 등 면역계 계통의 질환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항생제 오남용이다.

항생제를 먹게 되면 병을 일으킨 세균 뿐만 아니라 장에 있는 많은 세균들을 죽이게 된다. 알다시피 우리 장에는 1.5Kg이 넘는 세균들이 있다. 이 중에는 몸에 좋은 세균 (유산균 같은 것)과 나쁜 세균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항생제의 복용으로 이러한 균형이 쉽게 깨질 수 있다.

항생제는 특히 Leaky Gut Syndrome (LGS) 이라는 새는 장 증후군의 주요 원인이 된다. 이 증후군은 장벽이 약해져서 몸 밖으로 나가야 할 독소와 불순물들이 몸 안으로 역류하여 생기는 모든 증상들을 말한다. 우리 인체에 있는 면역세포 중 약 70%가 장에 있는데 이러한 물질들이 장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오면 몸의 면역은 과잉반응을 하게 된다. 몸의 해독작용을 맡은 간장 등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고, 피부나 폐가 간의 역할을 돕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게 되는 대표적인 증상 중의 하나가 아토피성 피부염이다.

따라서 항생제 오남용은 아토피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가끔 청국장이나 유산균이 아토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식품들이 장을 튼튼히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열이 나거나 가벼운 감기에 걸렸다고 병원에 데리고 갈 필요는 없다. 병원은 부모가 빠른 회복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항생제와 같은 센 약으로 가벼운 증상을 치료하려 한다. 그러므로 의사들의 각성도 필요하지만 부모들의 의식 전환이 아이들 건강에 급선무라 할 것이다.

자기 이빨은 자기가 닦으면 된다

자기 이빨은 자기가 닦으면 된다

수돗물에 불소를 넣어 국민들의 충치를 예방하자는 정책은 위험하면서도 웃긴다. 보건복지부와 몇몇 치과 의사들을 주축으로 20여년 전부터 제기되어 온 얘기인데 아직까지도 미련을 못 버린 모양이다. 지난 달 경향신문 기사는 내년부터 더 많은 정수장에 불소를 넣을 것이라는 보건복지부의 정책을 보도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 건강을 생각하는 것은 나무랄 수 없지만, 이런 식은 아니다. 불소가 충치를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끊임없이 의심받고 있고, 불소의 독성이 몸 안에 쌓여 갑상선 기능 저하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수 십년 전부터 제기되고 있는데도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보건복지부가 할 일은 아니다.

충치가 걱정되면 더 자주 닦으면 되는 것이고, 불소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소 치약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수돗물 불소화에 들어가는 예산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치약과 칫솔을 사서 나누어 주라. 그 편이 훨씬 효과적이고,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테니까.

수돗물 중에 우리가 음용수로 사용하는 것은 채 1%도 안된다. 그러면 그 많은 물에 들어가 있는 불소는 그냥 자연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이빨도 없는 물고기들이 불소를 많이 섭취하면 어떻게 될까. 독극물이 몸 안에 쌓이게 되니 건강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수돗물 불소화 정책을 폐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런 우매하고 위험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우리 국민들이 자기 이빨 건강을 위해 칫솔질을 할 수준은 되지 않는가.

녹색평론에서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읽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