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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노래

잊어야 한다면

잊어야 한다면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지만, 죽는 날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죽는 날까지 먼저 간 자식을 잊지 못한다. 자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흐르는 피눈물을 어찌할 수 없다.

자식의 시신 수습이 유일한 희망이 된 부모들은 오늘도 하염없이 무심한 바다만 바라볼 뿐이다. 차라리 꿈이기를, 악몽이기를 수천 번 수만 번 기도했다. 목이 터져라 불러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한달 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뿐이지만, 어떤 종교의 신도 응답하지 않았다. 깊고 깊은 슬픔은 그렇게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고, 먼저 간 아이들은 대답이 없었다.

자식을 잃은 그들을 위로하고 싶지만,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다. 그 아픔은 잊혀지지도, 나누어지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 옆을 지켜주는 것만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김광석의 노래를 요즘처럼 아프게 들은 적도 없다.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

그대는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이렇듯 소식조차 알 수 없지만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르곤 했었던 그날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

그렇듯 사랑했던 것만으로
그렇듯 아파해야 했던 것만으로
그 추억 속에서 침묵해야만 하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날들

<김광석, 그날들>

떠나요, 제주도

떠나요, 제주도

지구별에 비가 온다.

날씨에 무슨 죄가 있다고 폭염이라는 폭력적인 단어를 서슴없이 붙이겠냐마는, 장마가 끝나고 올 여름 정말 사정없이 더웠다. 입추가 지나니 새벽녘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중국으로 간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시원하게 비가 내린다.

비가 오니 갑자기 듣고 싶은 노래. 몇 달 전, 올레를 걸으면서 끊임없이 흥얼거렸던 노래. 그 노래가 듣고 싶다.

그 노래를 들으니 제주에 가서 올레를 걷고 싶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오름에 올라 미야자키 아저씨의 만화 영화에나 나올 법한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을 보고 싶다. 곶자왈 숲을 헤매면서 태고의 순간을 느끼고 싶다. 오솔길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조랑말의 갈기를 쓸어주고 싶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포구에 놓인 빈배를 보면서 저 멀리 밀려 오는 파도 소리를 듣고 싶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아래

이제는 더이상 얽매이긴 우린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 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들이 가꿔 봐요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떠나요 둘이서 힘들게 별로 없어요
제주도 푸른 밤 그 별아래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찍기 구경하며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르메가 살고 있는 곳

<최성원, 제주도 푸른 밤>

휴가철도 끝나가건만, 올 여름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나가수> 감상법

<나가수> 감상법

이명박 정권 들어 뉴스를 비롯한 방송을 거의 보지 않았다. 정권은 신문과 방송을 포함한 모든 언론매체를 장악했다. 언론이나 기자라 불리는 것들은 권력이 장악하기도 전에 그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것들의 야비함에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으므로,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것들을 거들떠 볼 수 없었다.

그 와 중에 지난 몇 달간 유일하게 본방사수를 외치며 눈길을 사로잡은 프로그램은 바로 <나는 가수다>이다. 일명 <나가수>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가수들의 공연을 5백명의 청중이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는 일종의 생존 게임이다.

<나가수>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는 황폐해진 우리나라 대중가요계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최근 10여년간 우리나라의 대중가요계는 “아이돌”이라 불리는 수많은 그룹들에게 점령되었다. 아이돌들은 음악을 하는 가수라기 보다는 철저히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일종의 공산품이었다. 거의 모든 아이돌들은 가수가 아닌 만능 엔터테이너들로 키워졌다. 산업의 논리가 가요계를 점령해 버리자, 모든 것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줄을 섰다. 다양한 가수들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꼭두각시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가수는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다시 일깨워준 프로그램이었다. 노래는 산업이기 전에 음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음악은 대중들의 삶과 사랑을 투영하며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지난 몇 달 간 <나가수>는 수많은 화제를 뿌렸고, 사람들의 환호와 비난을 동시에 듣곤 했다. 아이돌 산업이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을 사막화하는 동안, 사람들은 삶을 위로해 주는 노래와 가수들에게 목말라했다. 그것에 대한 반향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나타났다.

<나가수>는 일종의 생존 게임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경쟁이 있고, 순위가 매겨지게 된다. 함정은 여기에 있다. <나가수>에 출연하는 가수나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청중들은 본질을 외면한 채 순위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순위는 부차적인 것이다. 그냥 흥미를 더하기 위한 곁가지일 뿐이다.

본질은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가수들이 최선을 다해 그 무대를 준비하고, 노래하고, 청중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출연 가수들은 긴장도 하게 되고, 부담감도 갖지만 음악을 통해 청중과 교감하며 무한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본질인 것이다.

<나가수> 출연 가수들에게 경쟁이나 순위는 별 의미가 없다. 그 순위라는 것은 단지 선곡에 따른 운과 청중평가단의 취향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설령 7위를 해서 탈락한다 해도 아무도 그들이 실력 때문에 탈락했다고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과정을 즐기고 그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삶은 몇 등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단 <나가수> 뿐만 아니다. 학교에서건 사회에서건 순위는 결코 본질이 아니다. 그 과정을 얼마나 즐겼는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얼마나 행복했는가, 그로 인해 다른 이들도 행복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본말을 전도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위에만 관심을 갖는다.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삶의 모든 과정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모든 이들을 가치의 잣대가 아닌 존재로서 대해야 한다.

여러 말들이 난무하지만, <나가수>라는 프로그램는 충분히 지지받을만 하다. <나가수>가 아니었으면 임재범을 다시 볼 수 없었을 것이며, 박정현이나 김범수 그리고 YB의 노래를 6개월 가까이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소라의 소름끼치는 <넘버 원>을 들을 수도, 조관우의 <하얀 나비>를 접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당분간 <나가수>는 유일한 위안거리가 될 것이다. <나가수>를 통해 최고 가수들이 준비하는 최선의 무대를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을 통해 충분히 행복해질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었다

뜨거운 태양이 서산으로 떨어지고, 붉은 노을의 흔적도 점점 사라지면서 땅거미가 내렸다. 작렬하던 태양의 뜨거운 빛이 사위어 가면서 바람이 불었다. 한낮의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바람이 불었다.

이름 모를 풀들이 춤을 추었고, 숲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저수지에 갇힌 물들이 바람을 타고 내 앞으로 밀려왔다. 나는 한 포기의 들풀이 되었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바람이 부는대로 내 몸을 맡겨 버렸다.

바람 부는 한여름 밤에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앞산마루에 길쭉한 달이 떠올랐다. 바람은 달을 밀어 올렸고 별들을 은하수 너머로 흐르게 했다. 그 별들을 따라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이 흘렀다.

시간이 멈췄다. 바람이 불었지만 세상은 고요했다. 텅 빈 풍경과 함께 모든 욕망은 침잠했다.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아픔은 바람과 함께 내 곁을 떠났다.

바람은 누군가의 노래를 싣고 왔다.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의 노래가 들렸다. 세상에 온 이유를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 그 원죄와도 같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

바람은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여행자들의 삶은 바람과 함께 번져 나갔다.

7월의 어느 밤에 바람이 불었다.

아내에게 ‘그남자’되기 프로젝트

아내에게 ‘그남자’되기 프로젝트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는 아내에게 ‘그남자’되기를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아내는 외국에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연속극을 곧잘 보곤 했는데, 최근에는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을 즐겨보았다. 내가 이 연속극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순전 아내 덕분이다. 나는 사회지도층은 아니지만, 연속극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같은 짓은 곧잘 할 것 같다. 예를 들면,

  • 아내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입술로 닦아주기 (불행히도 아내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 윗몸일으키기를 하면서 아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서 엉엉 울기
  • 현빈이 불렀던 ‘그남자’라는 노래를 현빈보다 더 잘 부르기 (외모는 현빈과 비교할 수 없지만, 목소리와 노래를 그보다 낫지 않을까^^) 등등

이런 짓을 하면 아내는 좋아할까, 싫어할까? 아무튼 ‘그남자’ 노래 연습부터 시작해야겠다. 고고씽~~~.

한 남자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 남자는 열심히 사랑합니다
매일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그 남자는 웃으며 울고있어요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람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계속해야 니가 나를 사랑하겠니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잔 웁니다

그 남자는 성격이 소심합니다 그래서 웃는 법을 배웠답니다
친한 친구에게도 못하는 얘기가 많은 그 남자의 마음은 상처투성이

그래서 그 남자는 그댈 널 사랑했대요 똑같아서
또 하나같은 바보 또 하나같은 바보 한번 나를 안아주고 가면 안돼요

난 사랑받고 싶어 그대여 매일 속으로만 가슴 속으로만
소리를 지르며 그 남자는 오늘도 그 옆에 있대요

그 남자가 나라는 걸 아나요 알면서도 이러는 건 아니죠
모를꺼야 그댄 바보니까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보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계속해야 니가 나를 사랑하겠니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잔 웁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오늘같이 청명한 가을날에 듣고 싶은 노래. 인간들이 세상에 거의 유일하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음악이 아닐까라는 생각.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내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한경혜 작사,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젊음 그리고 사랑

젊음 그리고 사랑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불과 같은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 사랑도 언젠가는 식어버린다. 달콤한 사랑일수록 아픔과 상처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죽음으로 끝난 비극적 사랑이었기에 아름다웠다. 실제로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긴 세월을 같이 살았다면, 그들도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고, 그들의 열정적 감정도 세월에 따라 변했을 것이다.

지독하게 격한 감정을 믿지 말라. 그것이 사랑이든, 증오이든 간에 그런 감정은 늘 순간적인 것이다. 평정심이 생겼을 때, 그 감정을 조용히 바라보면 그 감정을 일으키게 한 상대를 보다 냉정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젊음은 이런 따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이 젊음이다.

삶의 여러 굴곡을 거치고 산전수전을 겪은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류시화 시인의 말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리의 생이 바뀔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때문에 삶은 운명이다. 사랑도 그렇고 이별도 그렇다.

젊었을 때 꽤나 좋아했던 영화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테마. 오늘 문득 이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What is a maid? Ice and desire.
The world wags on.

A rose will bloom, it then will fade.
So does a youth, so does the fairest maid.

Comes a time when one sweet smile,
Has its season for a while.
Then love’s in love with me.

Some they think only to marry.
Others will tease and tarry.
Mine is the very best parry.
Cupid he rules us all.

Caper the caper; sing me the song.
Death will come soon to hush us along.

Sweeter than honey and bitter as gall.
Love is the pasttime that never will pall.

Sweeter than honey and bitter as gall.
Cupid he rules us all.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생이 거듭될수록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야 하리라. 욕망이 소멸하고 더이상 생을 반복할 이유가 사라질 때 비로소 안식할 수 있다. 그런 삶을 위해 지극히 평범하여, 흔적도 없이 스쳐가야 한다. 바람과 같이 그리고 구름과 같이.

누가 영웅이 되고자 했던가. 누가 위인이 되고 열사가 되고자 했던가. 그들은 진정으로 그런 삶을 원했을까? 지극히 평범한 삶을 원했지만, 시대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몰고간 것은 아닐까? 제물이 된 것은 아닐까?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어둠을 죽이던 불빛
자꾸만 나를 오르게 했네

알다시피 나는 참 평범한 사람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루시드 폴, 평범한 사람>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서정적인 가락에 시대의 아픔을 녹여낼 수 있는 조윤석은 “평범한 사람”은 아닌 듯 하다. 모두들 정글같은 세상에서 자기 욕망만을 쫓는 시대에 이런 노래를 들려주는 그가 고마울 뿐이다.

그로 인해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새벽 강을 보러 가다

새벽 강을 보러 가다

정태춘의 노래처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을 아주 오래도록 머무르고 맴돌아 나는 새벽 강을 보러 떠났다. 강은 아무 말없이 흐르지 않는 듯 흘렀고, 새벽 강에서는 물안개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그 안갯속에서 가을은 점점 깊어졌다. 한여름 푸르름에 지쳤던 나뭇잎들은 저마다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안개는 산과 강을 구별하지 않았고, 나무와 사람을 나누지 않았다. 일찍 일어난 새 두어 마리만이 안갯속을 헤치며 날고 있었다.

강은 소리 없이 안갯속으로 흘렀다. 흐르고 흘러 그 강물은 낯선 서울에 닿을 것이며, 그곳에서 욕망의 찌꺼기들과 맞닥뜨릴 것이다. 안개는 그렇게 흘러가는 강물을 조용히 배웅하고 있었다. 그 강은 억겁의 세월을 소리 없이 흘렀고, 새벽마다 안개는 어김없이 피어올랐다. 무엇을 바라지도 않았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지도 않았다.

정태춘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단다. 한때 그는 그의 노래로 세상을 위로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했다. 사실 모든 것이 부질없었다. 욕망으로 충만한 세상은 새벽 강과 같은 그의 노래를 반기지 않았다. 그는 순수했고 담백했지만 그의 노래로 세상의 탐욕을 정화할 수 없었다. 원래 탐욕이란 그런 것이다.

그가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 해도 그의 노래는 영원히 내 가슴에 남았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고요한 새벽 강에 가면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세상의 그 어떤 음악도 그의 <북한강에서>처럼 새벽 강을 가슴 절절히 노래하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의 욕망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은 흐르고 흐를 것이다. 새벽마다 그 강은 안개를 피워 올리고 정태춘의 노래는 그 안개 사이로 은은히 떠오를 것이다. 위로하려 하지 말고 바꾸려고 하지 말라. 강의 일부가 되어 떠오르고 가라앉다가 그저 그렇게 흘러 가리라. 그리고 욕망이 다하지 않는 한 우울한 삶은 그렇게 지속되리라.

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리를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 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리를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짙은 안갯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리를 들으려 했소.

강물 속으로는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 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우리 이젠 새벽 강을 보러 떠나요.
과거로 되돌아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소.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거요.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거요.

<정태춘, 북한강에서>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

택시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들으며 무심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일본으로 지나간 태풍때문인지, 하늘은 맑고 깨끗했으며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나무들은 서서히 온몸으로 가을을 증거하려 하고 있었다. 그 노래와 가을의 풍광은 겹쳐지고 뒤섞였다. 아름다운 선율과 사랑스런 노랫말 그리고 청명한 가을의 풍경은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그 사람이 아내라는 사실에 나는 행복했다. 아내를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고 결혼을 했다.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10여년을 넘게 살았다. 성격은 달랐지만 삶에 대한 지향과 세계관이 비슷했다. 아내는 나를 낳아준 부모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가장 기뻐할 때나 가장 힘들고 지칠 때 아내는 내 곁에 있었다. 아내를 만나고 많이 행복했다. 아내를 만나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내를 만나고 위로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내를 만나고 사람은 왜 같이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신 앞에 선 단독자들이지만, 그것이 진리라 하더라도 이 생에서 아내와 같이 살게 되어서 행복했다. 아내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나도 아내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로 인해 내가 행복했던 것처럼 아내도 나를 만나 10년을 넘게 사는 동안 그렇게 행복했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고, 아내와 같이 산 날들은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삶이 건강하게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때문이란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때문이란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이적, 다행이다>
이 노래를 연습해서 아내에게 불러줄 생각이다. 그러면 아내의 고단함에 조그마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