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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과 신기루

보수 언론과 신기루

한국의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스스로 보수라고 부르는 자들이 말하는 보수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언론의 탈을 쓴 사이비 정치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이 땅에 언론다운 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수도 없고 언론도 없는데, 보수 언론이 존재할 수 있을까?

보수도 아니고 언론도 아닌 집단이 스스로 그렇게 불려지기를 바랄 뿐,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신기루라 부른다.

정작 문재인 대통령을 홀대한 것은 중국이 아니라, 문재인을 홀대하고 싶은 이 땅의 신기루 같은 얼논들이겠지.

누가 그들을 “보수”라 하는가

누가 그들을 “보수”라 하는가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적을 아는 것이다. 일찌기 손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적을 알고 그들을 정확하게 규정해내는 것은 모든 싸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일 뿐더러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땅의 친일세력과 군사독재 잔재세력을 “보수”세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조중동 같은 사이비 찌라시 신문을 “보수”신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의 신간인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를 보면 시종일관 우리 정치를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진보가 다시 권력을 창출할 수 있을지를 논하고 있다. 이런 식의 논의 전개는 연구결과의 유용성과는 상관 없이 그들에게 “보수”라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면 보수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을 옹호하고 유지하려는 것인데, 정치적으로 볼 때 여기에는 상식과 민족이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보수란 무조건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민족주의 관점에서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유효한 범위 내에서의 변화는 수용한다. 따라서 보수란 개념에는 어느 정도 긍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지금 이 땅에서 “보수”라 불리는 세력들의 면면을 보자. 한나라당, 조중동, 뉴라이트 등등의 세력들에게 과연 “보수”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그들의 뿌리가 어디인가? 그들은 가깝게는 군부독재의 잔재 또는 부역 세력이고 멀게는 일제시대의 친일세력이며, 조선시대 당쟁의 주류였던 노론세력이다. 이들은 수백 년간 이 땅의 권력과 부를 장악했고, 그들만의 성을 쌓아 특권 주류세력으로 부상했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법, 언론, 학계 등등 이 땅의 모든 지배 기재를 장악한 세력들이다.

과연 그들을 보수라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세력에게서 과연 민족이나 상식과 같은 개념을 찾아볼 수 있을까? 그들은 조선시대에는 조선의 왕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개혁을 추구하는 군주를 서슴지 않고 독살하였다. 오로지 중국의 황제만을 추종하는 듯 하면서 자신들의 영달과 탐욕을 추구하였다. 힘의 균형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자, 이들은 앞다투어 나라를 팔았고 친일세력으로 탈바꿈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등 뒤에 숨어 “반공”이라는 무기로 무장하여 죄없는 양민들을 괴롭혔다. 이승만과 결탁하여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고,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에 앞장서 부역하였다.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이들이 정치 권력을 놓쳐본 것은 단 10년, 1998년부터 2007년까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이었다. 그들이 얘기하는 대로 과연 “잃어버린 10년”의 기간이었다. 물론 이 10년 동안에도 행정부의 권력만이 개혁세력에게 잠시 넘어왔을 뿐, 나머지 모든 지배 기재는 여전히 이들 세력의 수중에 있었다.

우리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동물적인 본능은 누가 자신들의 적인지 그리고 누가 그 적의 핵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수없이 쓰러져간 민주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 세력의 영악함과 간교함이 어떤지를 알 수 있다. 김구 선생을 시작으로 최근의 노무현까지 이들 세력들의 탄압으로 쓰러져간 인물들은 모두 그 시대의 가장 핵심적 민주개혁 인사였다. 노무현을 죽이고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은 한명숙을 공격하고 있다.

그들을 “보수”라 규정하고 “보수”라 대우해서는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고 그들을 넘어설 수 없다. 그들은 역사의 반동이고, 전형적인 기회주의 세력일 뿐이다. 그들은 친일세력이고 독재세력이고 부도덕한 부패세력일 뿐이다. 그들은 탐욕만을 추구하며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불구세력일 뿐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아직도 그들을 보수라 부를 것인가? 그들을 보수라고 부르는 순간, 이미 그들의 전략에 말려든 것이고 게임은 해보나마나 한 것이다.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서민들은 왜 보수적인가, 정말 그들은 보수적인가

서민들은 왜 보수적인가, 정말 그들은 보수적인가

대한민국에는 두 종류의 서민들이 있다. 하나는 종부세 대상자이면서 스스로 서민이라 우기는, 쥐박이라 불리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서민(鼠民)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庶民)들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게 살면서도 쥐박이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중서민들도 꽤 존재한다.

첫번째 부류의 서민(鼠民)들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고 한 짓이라고는 종부세 무력화와 감세, 그리고 각종 부동산 규제 철폐 뿐이다. (그리고 전봇대도 2개나 뽑았구나.) 어떻게 해서든 땅값을 올려 일하지 않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뿐인데, 대한민국의 경제적 최상위층들이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고 지켜주는 이런 부도덕한 정치집단을 지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봐서는 당연하다. 물론, 잘사는 그들 중에도 간혹 양심을 가진 도덕적인 부자도 있겠지만, 극히 소수이겠지.

문제는 두번째 부류의 서민(庶民)이다. 이들은 도시와 농촌에서 매일매일 뼈빠지게 일을 하고도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버텨나가는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부류다. 이런 서민들의 수는 전체 국민의 50%를 넘는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대한민국에서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 줄 정치세력을 집권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현실은 두번째 부류의 서민들에게 자못 우울하다.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빈민 등 서민들을 대변한다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지율을 5%를 넘지 못한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서민인 나라에서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은 집권은 커녕 지지율 5%를 넘지 못한다. 종부세 대상자 2%만을 위하는 정당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언제나 30%를 웃돈다. 이런 현실은 정말 많은 서민(庶民)들이 이중서민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서민(庶民)들은 극우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일까? 경제학자 도스타인 분데 베블렌(Thorstein Bunde Veblen)은 그의 “유한계급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The abjectly poor, and all those persons whose energies are entirely absorbed by the struggle for daily sustenance, are conservative because they cannot afford the effort of taking thought for the day after tomorrow; just as the highly prosperous are conservative because they have small occasion to be discontented with the situation as it stands today.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요, 부자들은 오늘에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다.

이유는 다르지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보수적이라는 얘기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정치고, 신자유주의고 자기들의 관심사가 될 확률이 아주 적다. 선거에 악착 같이 투표하는 사람들은 강남에 사는 졸부들이지, 인력시장에서 하루하루 몸을 파는 노동자들이 아니다. (지난 번,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 위대한 강남은 공정택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민들의 정치의식이 떨어지고, 정치적 무관심과 체념이 커질수록 경제적 양극화는 더 커질 것이고, 정치권력은 한나라당과 같은 극우 보수 세력에게 고스란히 넘어갈 것이다.

우리나라 서민(庶民)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할만한 정치세력을 선택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서민들의 계급적 사고를 가로막는 숱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 아주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신문들이 언론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공영방송이라던 KBS도 이미 이명박 졸개들에게 넘어가버리고, 아직도 1950년대 반공사상에 젖어서 좌빨 타령이나 하고 있는 수구 쓰레기 알바들이 네이버를 장악하고 있으며, 우리가 남이가 한마디면 앞뒤 가리지 않고 한나라당을 찍어대는 지역감정 추종자들이 있는한 서민들의 계급적 사고는 그야말로 요원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2~3% 지지를 받고 있는 진보신당의 심상정이 한미FTA를 들이대면서 노무현을 씹어돌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근본 모순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서민들에게는 아무런 이슈가 되지 못한다. 결국, 이런 상식적인 토론이 가능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한다. 언론 문제, 지역감정 문제, 그리고 색깔론. 이런 문제들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서민들의 이중서민 노릇은 지금처럼 계속된다.

또다른 해결책은 투표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룰라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이유는 브라질이 의무투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룰라같은 노동자 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으며, 그를 지원하는 세력이 집권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투표율이 적어도 80%만 넘어가도 한나라당이 집권할 수는 없다. 아무리 서민들이 보수화되었다고 해도, 아무리 국민들이 사기를 당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대한민국이 후진 나라라 하더라고 투표율 90%에서 이명박과 같은 사기꾼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는 없다.

정작 문제는 서민들의 보수화라기 보다는 서민들의 무관심이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당면 문제는 한미FTA가 아니고, 언론 문제고, 지역감정 문제고, 남북 문제다. 이들 문제가 선결되지 않고는 이명박이 아무리 깽판을 쳐도, 그 이후에는 박근혜가 정권을 잡을 것이고, 박근혜가 아무리 나라를 말아먹어도 그 이후에는 오세훈 같은 젊은 수구들이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참으로 암울한 현실이다.

기만적 민주주의와 수구세력의 힘

기만적 민주주의와 수구세력의 힘

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두어 가지 사실을 바로잡아야겠다. 우리나라의 잘난 수구 언론들이 총선이 끝나고 나팔을 불어대는 것 중의 하나가 “민심이 보수화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투표를 한 46%의 표심은 보수화된 것이 아니고 “수구” 또는 “극우” 그 자체였다. 수구세력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했고, 또 다른 정통 수구인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진짜 이름 웃기지 않은가) 그리고 친박 무소속을 합하면 50여석이 넘는다. 수구 세력이 의회 권력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언론이 진보로 분류하는 통합민주당이나 창조한국당 등은 사실 보수라고 보는 것이 맞고, 진보세력이라 불리울 수 있는 정당은 민노당과 진보신당 정도이다. 진보신당은 당선자를 내지 못했고, 민노당은 5석 정도의 명맥만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진보 세력은 국회의 1.67% 만을 차지한 것이다.

수구 언론들이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 또 지껄이는 이야기는 “절묘한 민심의 선택”이라는 말이다. 이건 그냥 “수구” 투표를 해버린 46% 유권자들에 대한 감사의 립서비스이다. 수구 세력이 개헌선을 가져가 버렸는데 무슨 민심의 절묘한 선택? 한나라당이 턱걸이 과반을 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너무 좋아서 웃자고 하는 소리인가?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뭐가 다른가. 그들은 다 한 뱃속에서 나온 일란성 샴쌍둥이일 뿐이다.

20여년 전, 그 지긋지긋한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많은 국민들은 권력을 국민의 손으로 선출하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정말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87년도 전두환이 물러가고도 전두환의 친구인 노태우가 국민의 손에 의해 뽑혔고, 92년에는 이들과 손을 잡은 김영삼이 다시 선출되었다. 97년에 와서야 수구세력에서 보수세력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데, 수구세력이 나라를 말아먹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고 아니 나라를 말아먹었다 해도 김대중이 또다른 수구인 김종필과 손잡지 않았다면 역시 불가능했다. 첫번째 정권교체는 외환위기로 인한 나라 망한 댓가로 받은 절반의 정권교체였다.

2002년은 어떠했는가? 그때는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무현은 정말 1세기 한번 나올까 말까한 정치인이다. 수구세력이 노무현을 그렇게 미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과 더불어 인터넷이라는 또다른 무기가 국민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의 기적이었고, 신이 대한민국을 보살폈다고 밖에 얘기할 수 없는 세계 정치사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민주화 이후 20여년의 짧은 역사를 살펴봐도 친일과 독재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수구들의 힘은 정말 막강하다. 우리나라 언론, 입법, 사법, 행정 모든 분야에서 수구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90% 이상이다. 이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게 여론을 호도하거나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기만한다. 투표 성향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 국민들 중 이런 수구들의 이념을 따르는 사람들이 한 30% 정도 되는 것 같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구세력들은 계급적 이익 때문이건 (이 부분은 5%도 안되는 것 같고) 지역주의 때문이건 아니면 반공 때문이건 간에 언제나 한나라당에 투표를 한다. 이 30% 는 거의 언제나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국회의원 선거이든, 대선이든, 보궐선거이든 간에 말이다.

따라서 전체 투표율이 60% 이하가 되면 수구세력을 이길 방도가 없다. 참여정부 때 재보선에서 40 대 0으로 열린우리당이 졌고, 그때 정치권은 참여정부의 실정때문이라고 노무현을 몰아세웠지만, 이건 노무현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투표율 30% 정도인 재보선에서 수구세력이 아니고는 이길 방법이 없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다. 투표율 46%로는 수구세력이 아닌 보수, 진보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적어도 민주당이나 민노당이 한나라당과 대등하게 경쟁을 하려면 적어도 70% 이상의 투표율이 나와야 한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악순환이 발생하는데 정치권의 수구세력들은 그들의 명성에 걸맞게 정치 혐오를 불러 일으키고 (부정부패든, 성추행이든, 개싸움이든 간에) 유권자들은 점점 그 행태를 보고 욕을 해대면서 선거에 관심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바뀌는 것이 없고, 그렇게 욕을 먹어도 그놈들이 또 뽑히니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증폭되면서, 투표율은 점점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서 정치 권력은 점점 수구화되어 간다. 이것은 수구 세력들의 또다른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할수록 자신들이 득세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정치 혐오를 불러 일으킨다.

또 하나 웃긴 것은 친일에 앞장서고 독재에 부역을 했던 신문들이 민주화 이후에 언론 자유를 외친다는 사실이다. 박정희를 찬양하고 전두환을 옹호했던 수구세력들은 민주화 이후에 줄기차게 투표를 해댄다는 사실이다. 민주화 과정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민주화의 적이었던 세력들이 민주화의 열매를 가져간다. 이거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군부 독재 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금의 수구세력들은 선거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 정당성(그것이 비록 기만적이라 할지라도)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때는 거리로 나가 싸우면서 위안이라도 얻고 희망이라도 얻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뽑았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왜 투표 안했냐고 하면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사실 상황은 20여년 전보다 더 비참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1. 투표를 의무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50% 이하의 투표율로는 선출된 권력도 정당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투표를 의무화한 호주는 투표율이 90%를 넘고 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우리는 민심을 운운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기권할 자유도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2. 투표 용지에 기권란을 넣어야 한다. 뽑고 싶지 않은 후보가 당연히 있을 수 있으므로 기권란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
  3. 기권이 50%가 넘으면 그 선거는 무효로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정당은 해산해야 하고, 다시 처음부터 정치 지형을 다시 짜야 한다.
  4. 선출된 권력에 대한 소환의 권리를 국민들에게 주어야 한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잘못 선출되었을 때는 소환되어야 하고 탄핵되어야 한다. 그러한 권리가 국민들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5. 국민들에게도 입법청원권과 입법권 그리고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6. 이러한 절차를 간소화하고 투표를 쉽게 하기 위해서 전자투표(인터넷 투표나 휴대전화 투표) 등을 도입해야 한다.

이 정도 되면, 민주주의의 기만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거 제도의 변경은 헌법이나 선거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데, 수구 세력이 3분의 2나 들어가 있는 국회에서 국민들의 선거 참여를 위해 법률을 개정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국민들의 정치에 더욱 혐오감을 느낄 것이고, 그에 비례하여 투표율은 계속 50%를 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수구 세력의 장기 집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97년의 경우처럼 나라가 망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노무현과 같은 매력적인 정치인이 나와 국민들에게 잠시나마 희망을 주는 것이다. 이메가와 한나라당의 국정운영 능력을 보았을 때, 외환 위기와 같은 경우가 멀지 않아 다시 올 것 같지만, 그 때도 박근혜가 눈물 한두 번 흘리면 수구 세력은 다시 뭉칠 것이다. 즉, 나라가 망해도 정권교체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과 같은 정치인이 다시 나와 주어서 국민들의 관심을 높여야 하고 정치 참여를 높여야 하는데, 이 부분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내가 유시민을 지켜 보는 이유는 바로 두번 째 가능성 때문이다. 유시민 정도되면 노무현의 뒤를 이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다시 한 번 신이 대한민국을 보살피시고,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다면 아예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70% 아니 80% 이상의 국민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메가가 운하를 파든, 사기를 치든, 나라를 말아 먹든, 팔아 먹든, 뭘 해도 수구의 집권을 막을 길이 없다. 수구 언론들과 선관위와 검찰과 사법부 등은 지속적으로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좌절시킬 것이다. 지금처럼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한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앞날은 상당히 어둡고, 민주주의는 서민과 노동자들을 더욱 기만할 것이다.

한줌도 안되는 친일과 독재 세력을 단죄하지 못한 것이 나라의 원죄가 되어 버렸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희망의 근거를 마련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의 고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치족

무치족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수라 스스로 떠드는 사람들 중 대개는 보수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보수라 함은 나라와 민족의 안위를 자기 자신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하며, 그것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보수라 스스로 일컫는 사람들의 뿌리는 멀리는 친일 세력이고, 가까이는 군부 쿠데타 세력들이다. 이들은 우리 나라의 민주화에 무임승차한 후 그 열매만을 한 없이 누리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여 나는 이들을 무치족(無恥族)으로 부를란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족속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