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ows Applications에 대한 Linux 진영의 대응, Linux Equivalent Project

Windows Applications에 대한 Linux 진영의 대응, Linux Equivalent Project

Windows가 가장 뛰어난 운영체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Desktop PC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까닭 중 하나는 Windows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가 많기 때문이다. Linux가 사용편의성을 크게 향상시켜 사용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Windows의 아성을 위협하지 못하는 이유도 Linux 기반의 응용 소프트웨어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Linux 진영, 정확히 말하면 Open Source 진영에서 개발되고 있는 많은 Linux 기반의 소프트웨어들을 Windows 응용 프로그램에 대응시켜 소개하는 사이트가 있다. 이름하여 The Linux Equivalent Project. 생각보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진행중이다.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Linux 기반에도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 좋다.

Windows 기반에서 돌아가는 응용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유료이며 copyright이 있는 제품인데 비하여, Linux 진영은 대부분 GNU License를 채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Linux를 최대의 경쟁자로 지목하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철학적, 경제적 차이때문일 것이다.

Windows의 독점이 끝날 날을 기대해 본다.

금메달은 은메달, 동메달보다 얼마나 더 가치있을까

금메달은 은메달, 동메달보다 얼마나 더 가치있을까

아시안 게임이 한창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 대항 종합 체육 대회에서 각 나라가 몇 등을 하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더우기 우리 선수들이 좋은 성적으로 입상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오늘은 우리나라 언론들이 이런 국제 대회에서 각 나라의 등수를 메기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언론들은 금메달의 가치를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금메달 한 개가 은메달, 동메달 몇 백개보다 훨씬 가치있는 것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항상 금메달이 많은 나라가 은메달, 동메달의 갯수와 상관없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금메달만을 귀하게 여기는 풍조는 우리나라 선수들을 주눅들게 만드는 것 같다. 비록 금메달은 아니더라도 세계대회에서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땄다는 것은 대단히 잘한 것이다. 하지만,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은메달,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뭔가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한다. 은메달, 동메달을 아무리 많이 따도 금메달 하나만도 못한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또는 전국체전 같은 국내 대회도 마찬가지지만) 등에서 순위를 보도할 때, 메달 색깔을 우선시하는 것보다 전체 메달 갯수를 기준으로 보도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대부분의 외국 언론들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메달의 갯수가 같을 경우에만 색깔을 따지는 것이 합당하다. 이렇게 큰 대회에서 메달을 땄따는 것만으로도 (그 색깔에 관계없이) 똑같이 박수를 받아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의 공공의 적으로 떨어져버린 언론들에게 이런 세심한 배려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인간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세계 인권 선언

인간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세계 인권 선언

우리가 인간으로서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규정한 세계 인권 선언은 반드시 읽고 기억해야 할 문서다.

제 1 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제 18 조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종교 또는 신념을 변경할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선교, 행사, 예배 및 의식에 의하여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제 19 조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제 30 조
이 선언의 어떠한 규정도 어떤 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이 선언에 규정된 어떠한 권리와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활동에 가담하거나 또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

이 선언에 규정된 권리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권리이지만, 이러한 최소한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는 흔치 않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면서 북한 인권 운운하는 자들의 위선이 극악스럽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현대의학은 암을 고칠 수 있는가

현대의학은 암을 고칠 수 있는가

현대의학(주류 의학인 서양의학을 말함)을 다른 말로 하면 Allopathy 라 한다. 우리말로 하면 대증요법 정도 될 것이다. 현대의학은 증상을 병으로 보고, 그 증상을 억누르거나 제거할 수 있는 치료법, 약물 등으로 병을 고치려 한다. 예를 들어,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이고, 설사를 하면 지사제를 처방하는 것으로 몸의 이상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이런 기초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현대의학이 퇴행성 질환이나 만성질환 등에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그 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파고들지 않고 단지 몸이 보여주는 증상만을 치료하려 한다면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요즘 암은 너무나 흔한 질병이 되었다. 암환자 한 사람 없는 가족이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망원인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암이다. 일 년에 암으로 죽는 사람만도 5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암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의학은 암을 치료할 수 있는가? 답은 부정적이다. 현대의학이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3가지 암 치료법,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가 효과적이기 않다는 말이다. 그 이유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암세포는 사람 몸의 제어를 받지 않는 돌연변이 세포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하루 수십에서 수천 개의 암세포가 생겨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몸의 면역 세포 중 NK세포(Natural Killer Cell)가 이런 돌연변이 세포들을 모두 찾아내 죽인다. 그렇기 때문에 면역 시스템이 건강한 사람은 암에 걸리지 않는다. 암에 걸렸다는 말은 어떠한 이유에 의해 이러한 면역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암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장 난 면역 시스템을 다시 정상으로 회복시켜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으로 하여금 돌연변이 세포들을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현대의학이 처방하고 있는 3대 치료법은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냥 눈에 보이는 암을 수술이나 약물, 방사선 등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들이 우리 몸의 면역을 더욱더 약화시킨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치료법들은 모두 엄청난 부작용을 동반하고 있다.

암으로 진단이 될 정도로 암세포가 자랐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 또한 상당히 많다고 보면 된다. 수술이나 약물, 방사선 등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를 제거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방법들이 우리 몸의 면역능력을 더욱 저하시키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암은 재발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재발이 아니고 이미 몸 안에 있던 제거되지 않은 (또는 새로 생긴) 암세포들이 자라났다는 얘기다.

현대의학이 이렇게 암 치료에 무력하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민간요법이나 대체의학, 자연의학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현대 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은 다른 치료법에 대해 비과학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사이비 의학으로 폄하한다. 물론 대체요법 중에는 이론적인 근거가 희박한 (의사들이 걱정할만한) 그런 방법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방법 중에 거슨요법이나 니시의학 같은 자연치료법은 한 번 공부하고 시도해 볼만 하다고 생각된다.

미국 암협회가 밝힌 평균 5년 생존율은 8% 정도인 반면, 거슨요법으로 치료받았을 경우는 40% 정도의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거슨요법이나 니시의학으로 모든 암이 치료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치료 원리로 봤을 때, 이들 방법은 우리 몸의 면역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려는 식이요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적어도 현대의학보다는 좀 더 근본적으로 암을 대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암과 같은 난치병에 걸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 환자나 환자 가족이 치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 요즘 같은 환경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짧은 시간 안에 좋은 의료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현대의학, 한의학, 대체의학 등의 치료 방법들을 꼼꼼히 비교하여 보다 근원적인 치료가 어떤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치료방법은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정보를 종합하여 환자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대의학이 그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암과 같은 퇴행성 질환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부자되기를 기도하고 축원하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부자되기를 기도하고 축원하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물질적 축복을 기원하는 것은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그것을 구하러 교회나 절에 다니는 사람은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다. 예수나 부처도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물질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물질이 많고 부자가 될수록 우리는 오히려 행복으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가진 사람들은 왜 나누기를 거부하는가. 왜 세금조차 낼 수 없다고 항변하는가. 지금 우리 사회의 가치 전도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법정 스님의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에 다다르는 길인지를 잘 알려준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법정, 행복의 비결>

예수님의 말씀 중에도 부자를 경계하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완전해지길 원한다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후에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을 들은 청년은 매우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진 재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매우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9:21-25>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arallels Desktop을 이용하여 MacBook에 Ubuntu 설치하기

Parallels Desktop을 이용하여 MacBook에 Ubuntu 설치하기

Parallels Desktop을 이용하면 Mac OS X에서 Windows 뿐만 아니라 Linux까지 설치할 수 있다. 게다가 VirtueDesktops까지 이용하면 세 가지 OS를 환상의 휙휙 모드로 같이 사용할 수 있다. Boot Camp도 나름대로 좋은 선택이긴 하지만 (무료니까), Parallels Desktop의 편리함을 따라 올 수는 없다. 여러 가지 운영 체제를 동시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역시 Parallels Desktop과 같은 Virtualization이 해답인 것 같다.

Parallels Desktop 아래에서 Windows는 쉽게 깔리는데, Ubuntu 설치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Google에서 찾아보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가 있어, 그 친구의 설치 방법을 소개한다.

  1. Ubuntu Edgy Eft의 iso CD image를 내려받는다.
  2. MacBook에서 Parallels Desktop을 실행한 후 새로운 VM을 만든다. 여기서 나는 Linux 아래 Other Linux Kernel 2.6을 선택했다.
  3. VM의 Setting에서 부팅 순서를 CD가 제일 처음이 되도록 선택한다.
  4. CD Setting에서 image file에서 실행하기를 선택한 후 아까 내려 받은 Ubuntu iso image의 위치를 가리켜준다. CD-ROM Drive에 CD를 넣어 설치하려면 잘 안 된다.
  5. 내 경우 Memory Setting은 512 MB로 했다.
  6. VM을 실행시켜 Ubuntu를 설치한다
  7. CD Setting을 정상으로 돌려 놓는다.

이렇게 하면 Ubuntu를 어려움 없이 설치할 수 있는데, 몇 가지 사소한 문제들이 있다.

하나는 화면 해상도 문제인데, 맥북은 1280×800 이 최적인데, Ubuntu는 1024×768 이 기본이다. 맥북의 해상도를 지원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명령을 실행한다.

sudo dpkg-reconfigure -phigh xserver-xorg

해상도 선택 화면이 뜨면, 1440×900과 1280×800을 선택한 후 다시 부팅한다.

다른 문제는 Ubuntu를 시작할 때나 끝낼 때 splash 화면이 없어 조금 답답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boot/grub/menu.lst를 수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kernel /boot/vmlinuz-2.6.17-10-generic root=/dev/hda1 ro quiet splash 부분을 다음과 같이 바꾼다.

kernel /boot/vmlinuz-2.6.17-10-generic root=/dev/hda1 ro quiet splash vga=792

마지막으로, Ubuntu를 설치할 때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Progress 막대기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일종의 버그인데, Ubuntu Gnome의 테마를 바꿔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해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시

해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시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들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고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두운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 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기다림 만나
얼씨구나 부등켜안고 웃어 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 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 눈 내리는 보리밭 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정호승,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이 깊어지면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겨울을 견딜 수 있다.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꼭 읽어보는 시다. 새해에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8년만에 바꾼 노트북, 맥북(MacBook)

8년만에 바꾼 노트북, 맥북(MacBook)

8년 전에 처음 산 노트북은 그 유명한 삼성 센스 650이다. 거금 250만원을 주고 용산에서 샀는데, 당시에는 아주 훌륭한 사양이었다. Pentium MMX 233Mhz, 96MB 메모리, 3GB 하드디스크, 13.1 인치 LCD 화면, 모뎀에 cd-rom 드라이브까지. 어댑터를 두 번 바꿔준 것 빼고는 큰 고장없이 아주 잘 썼다. Windows 2000을 새로 깔고, 문서 작성이나 인터넷 사용 등에는 큰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 전기 없는 곳에서는 쓸 수 없고, 어댑터 접속 부분이 헐거워져 자주 전원이 나가는 지경이 되었다.

새로운 노트북을 사려고 작년부터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올해 애플에서 나온 MacBook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을 만족시켰다. 더군다나 YouTube에서 세 가지 운영체제가 Parallels Desktop을 이용하여 휙휙 바뀌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 애플에서 세일을 하길래 하얀색 MacBook을 질러버렸다. Core 2 Duo 2.0 Ghz, 2GB 메모리, 160GB 하드디스크. 무게(2.36kg)가 좀 무겁다는 점만 빼고는 대만족이다. 세 가지 운영체제 (Mac OS X Tiger, Windows XP Pro, Ubuntu 6.10 Edgy Eft)를 키 조작 한 번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한 5년 정도는 끄떡없을 것 같다.

Parallels Desktop이 아직은 Windows에서 iSight, USB 2.0, Bluetooth 등를 지원하지 못하는데 조만간 버전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매일매일 MacBook과 잠이 든다.

웃기지 마라, 다음 대통령도 우리가 결정한다

웃기지 마라, 다음 대통령도 우리가 결정한다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원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대통령은 자신들이 만들어 내는 줄 아는 모양이다. 또 대선을 일년 앞두고 신당 창당이니 정계 개편이니 아주 법석을 떨고 있다. 한 가지 얘기해 줄께. 민주주의가 좋은 것이 뭔지 아나? 그건 당신들 같은 국회의원이나 나 같은 서민이나 똑같이 한 표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더군다나 우리 국민들은 지난 두 번의 대선을 통해 아주 잊지 못할 경험을 했거든. 평화적 정권 교체와 평화적 주류 교체. 더군다나 주류 교체는 민주주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없었던 일이지. 이런 경험은 정말 잘 안 잊혀진다.

대한민국의 주류 기득권 세력이 내놓을 수 있었던 최고의 후보 이회창을 일개 고졸 출신의 변호사가 이길 수 있었다는 사실. 이건 세계 정치사에 기록될 일이다. 국회의원들 중에 5년전 노무현이 대통령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 노무현을 처음 지지한 천정배조차 노무현이 대통령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노무현이 출마선언을 했을 때부터 그가 대통령이 될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한 순간도 그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신당 창당이니 어쩌니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당신들은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 생각같아서는 노무현을 한 번 더 대통령으로 하고 싶지만, 헌법이 허락하지 않으니 우리는 그와 비슷한 인물을 찾을 것이다. 아무리 지지율이 낮아져도 미안하지만 대한민국 정치는 노무현을 중심으로 돈다. 왠줄 아는가. 그보다 더 진실한 정치인이 없으니까. 그는 자기 원칙과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의원직에 연연하는 당신들하고는 수준이 다르다는 뜻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거지만,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다음 대통령을 결정할지 알려 줄테니 참고했으면 한다.

  1. 언론을 가장한 정치권력, 대한민국의 공공의 적 조중동 패거리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들은 선출되지 않은 견제받지 않는 유일한 권력이다. 언론의 가면을 썼기 때문에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뚜렷한 견제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들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패거리들을 감싸안고 타협하려는 사람은 안된다. 우리 사회의 악의 근원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그 청산의 중심에 설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2.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병역 문제, 돈 문제 등 어느 하나 흠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사람은 조중동과 맞설 수 없다.
  3. 똑똑하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잘 알 수는 없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김영삼의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을 빌릴 수 없다.” 그런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어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었나. 머리를 빌릴지언정 그 지식을 소화하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4. 권위적이지 않고 겸손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유머 감각이 있으면 더 좋다. 국민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사람,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면 좋다. 그리고 국민을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한다.
  5.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기준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노무현이다. 하지만 그는 다음 대선에 나올 수 없으니, 우리는 이 기준에 맞는 다른 사람을 찾을 것이다. 지금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명박이니 박근혜니 고건이니 정동영이니 김근태니 이런 사람들은 다 기준미달이다. 이 사람들이 다음 대통령이 되지 않을 것이니 국회의원들이여 괜히 그들 앞에 줄서지 마라. 불쌍해 보인다.

나는 한 사람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출마한다면 내가 노무현을 지지했듯 그 사람을 지지할 것이다. 그 사람이라면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신념을 잘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그 사람을 마음 속에 두고 있을 것이다. 대개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좋아하는 것도 비슷해진다. 열린우리당이 통합신당이니 하며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눈치를 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김근태, 정동영에게 한마디 한다. 당신들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난 지난 5년 동안 노무현과 맞짱떠서 살아남는 사람을 못 봤다. 역사는 당신들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당신들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