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양심을 말할 수 있는 자

감히 양심을 말할 수 있는 자

오랜만에 서울에 갔다가 아침 출근길 전철을 탔다. 몇 년만이지 모르겠지만, 전철 안의 풍경은 정말 낯설었다. 전철 소음을 제외한다면 전철 안은 적막했다. 사람들은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그 누구도 깨어있지 않았다. 태반은 졸고 있었고, 눈을 뜬 사람들조차도 활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들 피곤에 절어 있었고, 얼굴은 잿빛이었다.

전체 국민의 절반이 모여 산다는 서울의 아침은 그렇게 잿빛이었다. 출근 시간이 지난 한낮에도 강남의 거리는 차들이 밀려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공기는 매캐했다. 강남의 어느 비싼 아파트 단지는 출근시간에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데에만 30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봐 쉬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는 족속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서울의 경쟁력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려고 했던 이유는 우리나라 국토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잿빛으로 죽어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살리자는 뜻도 있었다. 물론 서울의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는 족속들에게 이런 노무현의 진심이 먹혀들어갈 리가 없었다. 노무현의 행정 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물거품이 되었다. 헌재의 노회한 재판관들은 조선시대 경국대전을 들먹이며 수도 이전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어처구니 없어 보였지만, 그들도 역시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는 족속이었으므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행정수도는 행정복합도시(세종시)로 강등되었지만, 이조차도 서울의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그 당시 서울시장으로 있었던 이명박은 행정도시 건설을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다고 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국회에서 합의한 ‘행정중심 복합도시’안을 24일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다”고 말한 데 이어 25일에는 “행정도시 건설은 수도분할로 국가 정체성과 통치의 근본을 쪼개 수도이전보다 더 나쁘다”고 맹비난했다.

[이명박 “군대 동원해…” 김현미 “쿠데타 수제자…”, 한겨레]

이명박은 2007년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말을 180도 바꾼다. 그에게 있어서 말바꾸기는 손바닥 뒤집기보다도 더 쉬운 일이고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다.

“일부 도민들께서는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행복도시를 중단할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여권(민주당)에서 이명박이 되면 행복도시는 없어진다고 저를 모략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말씀 드릴 것은 이미 (행정도시를 추진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저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킵니다.

[이명박 “세종시 안한다는건 모략,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오마이뉴스]

이명박에게 있어 말이나 약속은 크게 의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2년이 가까워오는 동안 세종시 건설은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었던 것이였기에 이를 추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제 언론들은 이명박의 양심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양심상 그대로 추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당시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대통령 ‘세종시 원안 전면수정’ 정면돌파 착수, 한겨레]

이제는 양심상 할 수 없단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었던 세종시이니 그리 얘기하는 것이 더 정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양심을 가진 자에게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하라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정권을 교체하지 않고는 행정도시는 건설될 수 없다. 행정도시와 같은 어정쩡한 타협안이 아니라 원래 노무현이 하고자했던 “수도 이전”을 하려면 정권은 교체되어야 한다.

이명박의 말 중에서 몇 안되는 참말을 꼽으라면 다음과 같은 말을 들 수 있겠다.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그렇지 않은가.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든지.”

[MB 정세변화 못읽거나, 외면하거나, 한겨레]

그는 표가 나온다면 뭐든지 얘기하고 약속하는 자이다. 그런 자에게 세종시를 원안대로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양심을 들먹일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는 족속들이 저렇게 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그리 길게 가지는 못할 것이다. 서울에 사람이 더 모여들수록 서울은 더 살기 힘든 지옥이 되어버릴 것이고, 그들의 삶의 질은 사람이 모여들면 들수록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이란 한편으로는 영리해 보여도 워낙 탐욕스러워서 끝을 보기 전에는 여간해서 포기하지 못한다.

행정수도 이전과 세종시 건설에 관한 이 지리멸렬한 논란을 통해 탐욕의 끝은 결국 공멸임을 깨닫게 되길 바란다. 그것만이 이명박 정권이 남긴 유일한 교훈이 될 것이다.

덧. 이명박의 어록이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을 발견. OpenChronicle: 이명박 어록

김제동이 지은 죄

김제동이 지은 죄

김제동이라는 진행자가 KBS에서 갑자기 퇴출당하자 여기저기에서 말들이 많다. 몸값이 너무 비싸서 쫓아냈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 보복을 당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김제동은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날 노제 사회를 보았고, 추모 공연 사회도 보았으며, 노무현 재단 출범식에도 자원봉사를 했다. 김제동은 이명박 취임식 식전 행사 사회를 보기도 했다.

김제동의 절친한 동료인 윤도현은 오래전에 잘나가던 가요 프로그램을 그만두어야 했다. 김제동도 진행하는 방송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다가 이젠 KBS에서 전격 퇴출당했다. MBC의 100분 토론 진행자인 손석희도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는 모양이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다. 독재와 파쇼가 내재되어 있는 시절이다. 형식적으로는 국민의 투표의 의해 선출된 권력이 국민을 억압하는 시절이다. 이런 시절에 딴따라에 불과한 김제동이 KBS 같은 권력의 딸랑이 노릇을 하는 방송사에 붙어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절이다.

김제동은 무슨 죄를 지었나? 웃음을 파는 딴따라 주제에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라는 역모에 가까운 꿈을 꾸었다. 세상이 바뀐지도 모르고 상식을 운운하다니. 지금은 1%의 특권층이 대다수 서민들을 발가벗겨 먹는 것이 상식이다. 부자들의 세금은 깍아주고 가난한 자들에게 그 부담을 고스란히 전가하는 것이 상식이다. 내뱉는 말마다 거짓말을 해대는 자들이 대통령이 되고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는 것이 상식이다.

김제동은 어느 강연회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유쾌한 강연 중간 중간에 ‘상식적이지 못한’ 사회와 정치에 대한 따끔한 비판을 잊지 않았다. 김씨는 “저는 독재도 모르고 반독재도 모르고 뭐도 모른다. 상식, 상식밖에 모른다”며 “상식적이지 않을 때가 가장 웃긴데, 요즘 웃을 일이 참 많다”고 일침을 놨다. 그는 인기 드라마 <선덕여왕>의 대사를 인용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들고 일어난 것은 폭동이 아니라 절규라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8월 트위터에 ‘이란과 쌍용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라고 썼던 것과 맥을 같이 하는 발언이다. 또 김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적어도 누가 죽었으면 죽은 사람에 최대한 예의를 표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니냐”고 말했다.

김씨는 유머는 ‘정치가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라며 자신의 사회 참여를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김씨는 “누군가를 웃기고 싶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니 봐달라고, 인정해달라고 몸부림하는 증거”라며 “여기에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김씨는 “사람을 웃기는 기술은 없고, 사랑과 시와 예술에도 기술이 필요없다. 진심만 있으면 된다”며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면서 정치적 색채가 있는 곳에 가지마라고 하는데 나에게 무슨 정치적 색채가 있느냐”며 웃었다. 그는 강연 제목인 ‘사람이 사람에게’을 가리키며 “이 일곱 자에 위험한 글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독재도 반독재도 몰라…상식밖에 난 몰라”, 한겨레>

김제동은 자기가 아무런 정치적 색채가 없다고 말했지만, 상식을 원한다는 김제동의 한마디 한마디는 지금의 지배계층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김제동의 따뜻한 마음은 저들이 죽어도 가질 수 없는 마음이기에 김제동 같은 이들은 사라져야 한다. 저들은 그저 강자만이 살아남는, 강자들이 독식할 수 있는 정글을 원한다. 그런 정글에서 김제동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김제동은 저들에게는 너무나 불편한 딴따라이기 때문이다.

저들의 상식으로 볼 때, 김제동이나 윤도현 같은 이들은 당연히 퇴출되어야 한다. 아니 검찰로 하여금 구속이라도 시켜버리면 더 속시원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제동과 이병순은 한 배를 탈 수 없고, 김제동과 이명박은 양립할 수 없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다. 김제동은 저들에게는 눈엣가시이고 없어져야할 딴따라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 척박한 시기에 김제동 같은 연예인이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운 일 아닌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연예인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는 눈물이 나도록 고맙다. 슬기로운 자들은 언제나 영원히 사는 법을 택하게 되어 있다. 일시적인 어려움에 연연하지 않고 나와 같은 보잘 것 없는 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김제동. 당신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당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한다.

오바마가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

오바마가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열달도 되지 않아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다. 노벨평화상은 세계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봉사한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권위있는 상이다. 테레사 수녀, 넬슨 만델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등 평생을 인권과 평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받는 상이다. 이런 상을 대통령이 된지 열달도 되지 않은 오바마가 받게 되자 말들이 많다. 객관적으로 볼 때, 오바마가 아직 노벨평화상을 받을만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자신도 전혀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

I am both surprised and deeply humbled by the decision of the Nobel Committee. Let me be clear: I do not view it as a recognition of my own accomplishments, but rather as an affirmation of American leadership on behalf of aspirations held by people in all nations.

To be honest, I do not feel that I deserve to be in the company of so many of the transformative figures who’ve been honored by this prize — men and women who’ve inspired me and inspired the entire world through their courageous pursuit of peace.

<Obama’s Reaction to the Nobel Peace Prize>

그렇다면 노벨 위원회는 왜 오바마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었을까?

우선 그 이유를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 전 미국의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 부시는 대통령을 하는 동안 아무 명분도 없는 전쟁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이라크에서 75만명이 죽고 140만명이 다쳤다. 죽은 사람들 중 민간인은 70만명에 달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는 2만명이 죽고, 5만명이 다쳤다. 이것이 부시 정권 하에서 미국의 모습이었다. 미국은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그 당선 자체로만도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만약 부시의 뒤를 이어 미국에서 네오콘들이 여전히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이란과 한반도도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는 네오콘의 집권을 저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셈이다.

또한, 아무리 제 정신을 가진 대통령을 선출했다 하더라도 미국은 끊임없이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했다. 클린턴 때도 마찬가지였다. 클린턴이 북핵 때문에 북한을 폭격하려 했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다는 클린턴조차 그런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바마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졌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그렇게 쉽게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그리고 가장 진보적 성향이 강한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가 추진하려고 하는 일들이 미국 내에서조차 큰 저항을 받고 있다. 특히 개혁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는 의료보험 개혁에 대해서 기득권 세력의 총체적 저항에 직면해 있다. 노벨 위원회에는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오바마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이다. 링컨이 흑인을 해방시킨 후 150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노예의 후예가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미국이라는 세계 초강대국에 비주류가 처음으로 권력을 잡은 사건이다. 노벨 위원회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려 했을 것이다.

오바마의 말대로 이번 노벨상 수상은 업적에 대한 찬사와 보상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가 훨씬 강하다. 그는 충분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다. 다만, 기득권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번에 노벨 위원회가 힘을 실어준만큼 그가 세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

택시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들으며 무심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일본으로 지나간 태풍때문인지, 하늘은 맑고 깨끗했으며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나무들은 서서히 온몸으로 가을을 증거하려 하고 있었다. 그 노래와 가을의 풍광은 겹쳐지고 뒤섞였다. 아름다운 선율과 사랑스런 노랫말 그리고 청명한 가을의 풍경은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그 사람이 아내라는 사실에 나는 행복했다.

아내를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고 결혼을 했다.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10여년을 넘게 살았다. 성격은 달랐지만 삶에 대한 지향과 세계관이 비슷했다. 아내는 나를 낳아준 부모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가장 기뻐할 때나 가장 힘들고 지칠 때 아내는 내 곁에 있었다.

아내를 만나고 많이 행복했다. 아내를 만나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내를 만나고 위로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내를 만나고 사람은 왜 같이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신 앞에 선 단독자들이지만, 그것이 진리라 하더라도 이 생에서 아내와 같이 살게 되어서 행복했다.

아내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나도 아내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로 인해 내가 행복했던 것처럼 아내도 나를 만나 10년을 넘게 사는 동안 그렇게 행복했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고, 아내와 같이 산 날들은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삶이 건강하게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때문이란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때문이란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이적, 다행이다>

이 노래를 연습해서 아내에게 불러줄 생각이다. 그러면 아내의 고단함에 조그마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내가 사용하는 맥(Mac) 애플리케이션 목록

내가 사용하는 맥(Mac) 애플리케이션 목록

나는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워낙 게으르다 보니 실제 정리정돈을 자주 하지는 못한다. 지금도 내 책상을 보면 온갖 책들과 서류들로 어질러져 있다. 내가 봐도 한심하다. 그렇다고 딱히 불편한 것도 아닌지라 자주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초 내가 사용하는 Windows 소프트웨어 목록을 정리한 일이 있었다. 기특한 일이었다. 그렇게 목록을 정리해놓고 때때로 필요한 프로그램을 계속 추가해 나간다면 나중에 혹시 OS를 새로 깔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을 것 같다.

몇 주 전인가 Snow Leopard가 새로 나왔고, 내가 사용하고 있던 맥북의 OS를 Snow Leopard로 판올림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이것도 벼르고 있던지가 몇 주는 된 것 같다. 맥북의 OS를 새로운 것으로 깨끗이 설치하기 위해 하드디스크 포맷부터 다시 해야 하는데, 그 전에 내가 사용하는 맥 애플리케이션 목록을 정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참 훌륭한 생각이다.

다음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맥 애플리케이션 목록이다.

Firefox
Safari
FileZilla
iTerm
Skype
Twhirl

TextWrangler
iTunes
Google Picasa
Google Earth
VLC
Mendeley Desktop

smcFanControl
CoolBooKController
Flip4Mac

Adobe Photoshop
Adobe Acrobat
Microsoft Office
NeoOffice
Hangul

지난 번에도 얘기했지만, 되도록 담백하고 가벼운 FLOSS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려 한다. 앞으로 새로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도 여기에 계속 추가할 것이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Ubuntu Linux 애플리케이션도 정리해보려 하는데, 언제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즘 노래들

요즘 노래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까지는 어떡하든 따라가 보려 했다. 떼지어 나오는 여자 아이들의 얼굴이나 이름을 다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노래를 외면할 수 없었다. 라디오를 켜도 TV를 켜도 온통 그들의 몸짓과 목소리뿐이었다. 중년인 나도 노바디를 흥얼거렸고, 지지지지 베베베베 거리면서 그들의 몸짓을 흉내냈다. 모든 매체를 장악해버린 십대 소녀들의 춤과 노래를 외면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소녀시대, 원더걸스의 성공은 또다른 소녀 그룹들의 전성시대를 열어젖혔다. 올들어 정말 분간하기 힘든 여자 아이들이 떼를 지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카라, 포미닛, 2NE1, 애프터스쿨 등등으로 불리는 그룹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타났다. 이름도 헷갈리고, 그 그룹에 속한 여자 아이들도 헷갈리고, 그들의 노래도 헷갈렸다. 그들의 노래나 율동은 말초적이었고, 중독성이 강했다. 노래말은 단순했고, 비슷한 리듬은 반복되었다. 음악에 대해선 사실 문외한에 가까운지라 그들의 음악적 성취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가수라기 보다는 종합예능인에 가까웠다. 모두가 비슷비슷해 보였지만, 대부분은 훌륭한 외모의 소유자들이었고, 얼마나 연습했는지는 몰라도 수준급의 춤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음악들이 생산되고 소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기획과 돈이 대중음악계를 지배한지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 않은가. 소녀 그룹들의 전성시대가 언제까지 갈 지는 알 수 없지만, 당분간 그들로부터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최근에 알게된 몇몇 노래는 나를 아무 생각없는 인간으로 만드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가을 풍경

가을 풍경

추석이 지났다. 가을 들녘은 표현 그대로 황금 물결이었다. 신은 늘 그렇게 세상을 축복했다. 연일 따사로운 햇빛과 드높은 하늘과 맑은 물로 세상을 어루만졌다. 보릿고개는 그야말로 옛말이 되고 말았다. 곡식은 차고도 넘쳤지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힘에 겨웠다.

풍년이 되어도 농민들은 울상을 짓는다. 쌀값은 그들의 힘겨운 노동을 보상해 주지 못했다. 자연은 농민들을 축복했지만, 세상은 그들을 따돌렸다. 그들은 자식과 같은 벼를 갈아엎으며 눈물을 흘렸다.


© 김도균

남쪽에는 쌀이 넘쳤고, 북쪽에는 여전히 굶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는 쌀로 굶는 사람들을 먹이면 좋으련만 이념과 탐욕은 쌀을 버리고 사람을 굶어 죽게 만들었다. 짐승만도 못한 아집과 억지만이 난무했다.

성묘를 갔더니 밤나무에 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시골에는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밤을 따가지 않았다. 감나무에도 감이 지천으로 열려 있었는데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누런 곡식과 선홍색 감, 그리고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는 풍광을 연출했다. 산은 고요했다. 바람은 선득선득 불었다. 가을 잠자리들이 산 기슭 밭을 어른거렸다. 옹달샘에는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났다.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과 해일이 일었지만, 손바닥만한 한반도의 가을은 완벽했다. 바로 이런 곳을 천국이라 할 터인데, 인간들의 탐욕은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빅맨(Big Man)이 지배하는 나라

빅맨(Big Man)이 지배하는 나라

You are the big man.

이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G20 정상 회의에서 들은 찬사라고 청와대는 전했다. Big Man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정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부패한 독재자를 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물론, 국제 기구 대표나 다른 나라 정상들이 면전에서 “너는 알아주는 독재자야”라고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이것은 오바마가 가르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위키피디아의 Big Man 페이지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Big Man의 예시로 나와 있었다(가 지금은 지워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간다의 이디 아민, 짐바브웨의 무가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등과 어깨를 나라히 하고 있었다(가 지금은 사라졌다).

Lee Myung-bak – President of Republic of Korea. Dictator. He ruined Korean democracy which had been recovered under 2 former Korean presidents, Roh Moo-hyun and Kim Dae-jung (Nobel Laureate)

이명박 – 대한민국 대통령. 독재자. 두 명의 전직 대통령, 노무현, 김대중이 회복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Big Man from Editing History, Wikipedia]

Big Man을 대표하는 인물로 언급되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지금 지지율이 한창 올라 표정 관리에 들어간 상태다. 한겨레가 발표한 지지율 조사에서 Big Man 이명박은 45%의 지지율을 얻었다. 정운찬 총리 임명이나 4대강 사업은 국민의 3분의 2가 반대하는데도 Big Man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절반 가까이 된다.

확실히 그는 Big Man이 맞는 것 같다. 국민들은 그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책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에 비해 그를 너무도 인간적으로(?) 지지하니 말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그를 빨아주니 그는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용산에서 철거민의 장례를 여지껏 치르지 못해도 그는 건재하다. 너덜너덜 온갖 불법과 편법 의혹을 받는 총리와 장관을 임명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업을 그는 의기양양하게 밀어붙인다. 국정원이나 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해도 별 상관없다.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서된다. 그는 Big Man이니까.

Big Man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흥분하고 자랑하는 대통령, 그리고 그를 절반 가까이 지지한다는 국민들. 오늘도 나는 당신들이 별 일 없이 살길 기도할 뿐이다.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김대중 대통령의 615선언 9주년 기념 연설 중, 가장 뼈 아프게 다가왔던 부분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관련된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만일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고초를 겪을 때 500만명 문상객 중 10분지 1인 50만명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이럴 순 없다, 매일 같이 혐의 흘리면서 정신적 타격을 주고, 스트레스 주고, 그럴 수는 없다, 50만명만 그렇게 나섰어도 노 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억울하고, 희생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겠습니까.

[“이대로 가면 MB도 국민도 불행해질 것 행동하는 양심 돼야… 방관하는 자, 악의 편”, 오마이뉴스]

그가 옳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고 조문한 사람이 500백만명이나 되었는데, 그 중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나섰더라면 우리는 그를 지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탄핵 때 우리가 노무현을 지켰던 것처럼 그렇게 나섰더라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뼈에 사무친다. 우리는 그의 무고함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그렇게 스러져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간악한 언론과 검찰이 잔인하게 그를 짓누를 때에도 우리는 방관자였다. 결국 그는 우리 곁을 쓸쓸히 떠났다. 우리는 그와 함께 할 자격이 없었다. 그와 같은 위대한 인물은 이 척박한 반도땅을 오래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운명이었을까?

그가 떠나고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슬픔이 가슴 깊이 침잠했다. 까닭 모를 눈물이 때를 가리지 않고 흘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노무현의 뜻을 잇고자 하는 모임들이 속속 등장했다. 국민참여정당과 시민주권모임이 출범했고, 노무현재단이 설립되었다. 너무나 크고 위대한 소를 잃었기에 이 볼품없고 척박하고 탐욕스럽기까지한 외양간을 버려두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리라. 하여 나는 국민참여정당과 시민주권모임에 가입했고, 노무현재단의 후원인이 되었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한 500만명의 사람들 중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인 5만명만 나서준다면 우리는 노무현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노무현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여기에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제2, 제3의 노무현을 만들어낼 수 없고, 설령 그런 인물들이 나타난다 해도 그들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정신을 살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행동할 때이다.

신(神)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본질

신(神)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본질

결국, 야보 선사의 흔적없는 삶은 나를 라마나 마하리쉬와 성철 스님에게 인도했다. 성자들의 가르침은 그 뿌리가 어느 종교에 닿아있든지 상관없이 꼭 닮아 있었다. 또한, 라마나 마하리쉬의 신에 대한 가르침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정의와 다르지 않았다.

신은 형상이 없이 어디에나 있습니다.

신은 순수한 존재이며, 순수한 의식입니다.

세상은 신 안에서 그리고 신의 힘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그러나 신은 세상의 창조자가 아닙니다.
신은 결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신은 그저 있습니다.
신에게는 의지도 욕망도 없습니다.

개별성이란 자신이 신과 같지 않다는 환영입니다.
이 환영이 사라질 때 남아 있는 것이 신입니다.

신, 구루, 참나는 동일합니다. 구루는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신입니다. 동시에 구루는 헌신자의 가슴에 있는 참나입니다.

신은 있습니다.
신은 그대 안에 있습니다.
신은 언제나 일인칭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불멸의 의식, p. 124>

진리는 깨달은 성자들의 의해 이미 드러나 있었다. 세상은 이미 구원되어 있었다. ‘나’를 버리고 ‘참나’를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대로 인간의 본질은 신(神)일진데, 우리의 욕망과 카르마가 그 본질을 가리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그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