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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신성모독의 충돌

풍자와 신성모독의 충돌

2015년 새해 벽두를 강타한 것은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에 대한 테러였다. <샤를리 엡도>는 모든 권위주의에 반대한다는 기치를 내세우면서 수년 전부터 이슬람교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무함마드를 노골적으로 ‘풍자’하는 만평을 게재했다. 이러한 만평은 전세계 무슬림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 일으켰고, 만평가들은 끊임없는 살해 또는 테러 위협에 시달렸다.

<샤를리 엡도>의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르는

“나는 보복이 두렵지 않다. 나는 아이도, 아내도, 차도, 신용도 없다. 약간의 허세를 보태자면, 나는 무릎꿇고 사느니 선 채로 죽겠다.”

라며 무슬림들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2015년 1월 7일, 무슬림 무장 괴한 2명에게 살해된다.

<샤를리 엡도>의 만평가들은 무함마드를 포르노 배우로 묘사하며 풍자(또는 조롱)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라 여겼고, 과격파 무슬림들은 ‘신성모독’으로 받아 들였다. 무슬림들은 예언자 무함마드뿐만 아니라 인간을 형상화하는 자체를 금기시하는 전통이 있다. 그런 무슬림들에게 <샤를리 엡도>는 포르노 배우로 묘사된 무함마드를 선사했다.

<샤를리 엡도>와 과격파 무슬림들은 양립할 수도 있는 ‘표현의 자유’와 ‘상대 종교 존중’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양립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는 공멸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표현의 자유’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 무슬림들에게는 죽음을 불사할 수는 있는 ‘치욕’이 되었다.

‘표현의 자유’라는 깃발 아래에서는 상대방을 모독해도 괜찮은 것인가? 아무리 신성불가침이라지만, 무함마드를 발가벗겨 놓은 것이 12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일만한 엄청난 범죄인가?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인들은 무슬림들을 규탄할 것이고, 무슬림들은 테러를 자행한 범인들을 순교자로 칭송할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예수나 공자의 황금률 밖에는 없어 보인다. ‘표현의 자유’와 ‘신성모독’을 논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바로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대접해 주길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받아들여져야 하는 진리이다.

경건한 공항

경건한 공항

자히르는 무릎을 꿇었다. 눈을 감고 기도했고, 메카를 향해 절을 했다. 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이 보였다. 독실한 무슬림인 그는 자기 종교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되면 묵묵히 메카를 향해 기도할 뿐이었다. 그 장소가 어디인지 상관하지 않았다. 오늘은 단지 공항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공항에서 기도한 것 뿐이었다.

평범하면서도 엄숙한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공항을 모스크로 만들었다. 종교는 그렇게 스스로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강요하고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내어 찬송하지도 간구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겸손하고 경건한 자세는 나를 그리고 공항 전체를 압도했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은은하게 들리는 그 어떤 성당 보다도 더 성스러운 그의 모습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중앙아시아의 비단길을 가기 전 자히르가 머문 공항은 그렇게 경건하게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