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Author: 소요유

삼성 음모론이 의미있는 이유

삼성 음모론이 의미있는 이유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삼성 음모론 (이하 삼성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중년탐정 제닉스 님은 태안 앞바다에서 직접 피해를 당한 어민들을 취재하고 “태안 사태는 조작이다”라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동영상이 주장하는 것은 태안 앞바다의 기름 유출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고, 삼성호가 고의로 유조선을 들이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블로그계에서도 그 주장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민노씨 님은 “태안 음모론과 미끼질, 그리고 냄비근성”이라는 글로 논리적인 반박을 했다. 이어서 제닉스 님은 “태안 사태에 대한 관전 포인트”라는 글로 이 사건의 중요한 점들을 정리해 주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봐서는 정말 삼성호가 유조선을 고의로 들이받았는지 알 수 없다. 민노씨 님의 반박처럼 제닉스 님의 취재 결과가 말도 안되는 허황된 주장일 수도 있다. 피해 당사자인 어민들의 인터뷰만으로는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닉스 님의 문제 제기는 현재 상황에서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제닉스 님의 동영상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건 당일 삼성호는 남쪽으로 정상적인 항해를 하다가 갑자기 선수를 돌렸다는 것이다. 어민들의 주장으로는 그 운항행로가 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선수를 돌렸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 방향도 육지 쪽이 아닌 유조선이 정박해 있는 바깥 바다 쪽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수십 년 배를 운항해본 경험이 있는 어민들이 제기하는 의혹이다. 더군다나 배의 충돌 사고시 좌현과 좌현이 부딪혔으면 사고라고 할 수 있으나, 이번 경우에는 유조선의 좌현과 삼성호의 우현이 부딪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들어 어민들은 삼성호가 고의로 유조선을 들이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어민들의 주장들을 이 동영상을 통해 처음 접했다. 이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일리가 있는 얘기들이다. 더군다나 삼성호는 관제실로부터 충돌 위험을 수차례 통보받았으나 사건 당시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무선 통신이 두절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써 여러 개가 겹치고 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러한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사고 선박의 선장을 비롯하여 사고 현장에 있었던 선원들을 철저하게 수사하는 길밖에 없어 보이는데, 정작 한달 동안 수사를 해 온 해경과 검찰은 공식적인 수사 발표를 하지 않았다. 환경연합의 성명서를 보면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다.

태안해양경찰서(서장 최상환)는 1월 2일, 그 동안 진행해 온 서해 기름오염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수사결과를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결과는 충돌사고를 낸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 예인선단 선원 3명(2명 구속)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 선원 2명을 입건하고, 크레인과 유조선의 소유회사들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해경은 이와 같은 내용의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조사 내용이 발표될 경우 증거인멸 등 수사에 중대한 차질이 우려된다는 검찰의 지휘가 있어 별도의 수사내용 발표 없이 사건 일체를 송치했다.

수사결과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생각한다면, 해경의 이례적인 수사결과 발표 거부는 국민적인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사건 발생 한 달이 되도록 수사의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고, 증거 인멸을 여지를 남길 만큼 그동안 허송세월을 했다는 것인가? 40~50만 명의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하며 기름띠를 닦아내고 있는 동안, 경찰과 검찰이 한 일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고, 아직도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도리어 해경과 검찰이 앞서서 사고 책임자를 비호하는 행동 앞에 우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해경과 검찰은 삼성의 로비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인가?, 환경연합]

상식적으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의혹들이 하나도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사고를 낸 당사자 삼성중공업은 사고가 발생한지 한달이 넘도록 사과는 고사하고 변명 한마디 없다. 이것을 수사한 해경과 검찰은 한달 동안 수사한 것을 발표조차 하지 않고 있고, 언론들도 이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우리는 아직까지 이 사고의 전말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삼성은 현재 청와대를 능가하는 우리나라 최고 권력이다. 참여정부도 할 수 없었던 언론과 검찰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닉스 님의 동영상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 피해당사자인 어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때문에 그 주장들이 허황된 얘기라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제닉스 님이 “태안 사태는 조작이다”라고 아주 강하게 단정했다는 사실이다. 아직 “조작”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우리가 아는 정보가 너무 없다. 그냥 “의혹” 수준에서 주장을 해야 했고, 따옴표라도 써서 (조중동이 잘 하는 것 있지 않은가) 어민들의 주장을 전하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제닉스 님처럼 발로 뛰는 블로거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 잘난 기자들도 하지 않는 일을 블로거가 하고 있다는 것도 자랑스럽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어민들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담아낸 것도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제닉스 님의 후속 보도를 기대해 본다.

수십만 명이 자원 봉사를 해서 태안 앞바다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 사고의 진실을 정확하게 밝히고, 삼성 측의 사과를 받아내야 하며, 어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보다도 후자가 더 요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답답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김광석, 나의 청춘이여

김광석, 나의 청춘이여

노래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에 묻혀있던 옛 기억들이 솔솔 풀려나온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단 한 명의 가수를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김광석을 꼽는다. 그것은 더없이 아름다운 그의 노래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노래와 함께한 나의 청춘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20대, 30대는 어김없이 그의 노래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벌써 12년이 되었다), 그의 죽음은 벼락같이 찾아왔다. 너무도 갑작스런 그의 부음은 전혀 현실감이 없었고, 그 누구도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는 분명한 이유도 없이 저 세상으로 갔다. 마치 기타 하나로 지상에서 1000번의 공연을 해야만 했던 타락천사처럼. 그 공연을 무사히 마치면, 다시 천상의 세계로 되돌아갈수 있었던 바로 그 천사처럼 아무 말 없이 떠나갔다.

그가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여전히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노래에 뒤섞여버린 내 청춘은 그와 함께 떠날 줄 몰랐다. 그의 부재는 남겨진 그의 노래에 아련함을 더해 주었고, 그가 떠난 이후 나는 여전히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를 붙잡고 있었다. 슬픔은 언제나 살아남은 자의 몫이지만, 그가 남긴 노래들로 인해 그 슬픔은 추억으로 승화되었다.

갓 서른을 넘기고, 그가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김광석.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우리가 그를 떠나 보낸 것도 아니고, 그가 우리를 떠나고 싶었던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점점 우리들 마음 속에 스며들고, 여전히 우리들은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내 청춘은 머무르지 않지만, 김광석의 노래 속에는 오롯히 살아 있다. 내 첫사랑의 추억이 그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 젖어 있듯이. 때문에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죽는 날까지 내 청춘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김광석이여, 나의 청춘이여!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물 흘러 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어느 하루 바람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단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삼성, 또 하나의 가족?

삼성, 또 하나의 가족?

미국 생활을 오래 하다가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미국 사람들이 “의외로” 실수를 잘 저지르지만, 여간해서는 사과를 잘 안한다는 것이다. 특히 업무에 관해서 잘못이 있을 때 그들은 냉큼 사과하지 않는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미국은 소송이 만능인 나라라서 한 번 잘못을 인정해 버리면 자칫 인생이 결딴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삼성중공업의 잘못으로 태안 앞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 사고가 난지 한달이 지났지만, 삼성 쪽에서는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긴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하청업체의 자본금이 5천만원이란다.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한 태안 앞바다의 피해가 수조원이 넘을 것 같은데,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긴다? 이것이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삼성이 하고 있는 일이다.

순박한 어민들과 국민들은 연일 자원봉사로 바다의 떠있는 기름을 닦아내기에 여념이 없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할 기업은 말 한마디 없다. 사과는 커녕 항해일지까지 조작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고, 이런 기업의 총수가 존경받는 나라이니 할 말 다한 것 아닌가? 삼성 입장에서는 어설프게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를 했다가 자칫 회사가 결딴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에 몸을 사리는것 같다. 글로벌 기업답지 않은가? 미국식으로 말이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또 느낀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다는 것이다. 아주 잘나가던 기업이었던 에너지 회사 엔론과 통신 회사 월드컴은 분식 회계 때문에 망해 버렸고, 경영진은 10년 이상 감옥에서 죄값을 치루고 있다. 미국에서 탈세를 하다가 걸리면 그것은 거의 인생 종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삼성 총수의 아들은 4조의 돈을 벌면서 단 16억원의 세금을 냈고,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자식들을 위장취업시킨 어떤 정치인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강화해야 하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 현 상태로 보면,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도 훨씬 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아닌가?

도대체 언제까지 금이나 모아가면서 나라를 살리자고, 태안 앞바다 기름을 닦으면서 바다를 살리자고 할 작정인가? 그러면서도 한나라당을 찍어주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들인가? 당신들이 살리자고 하는 경제는 도대체 어느 나라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분노할 때는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하고, 기억할 것은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나 더 당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경부운하와 에비앙 생수

경부운하와 에비앙 생수

너무 오래된 일이라 언제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한 30년 전쯤 될까),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석유가 많이 나는 중동에서는 물이 없어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는단다.” 이 말에 우리 모두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물을 외국에서 사다 먹는다”라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금수강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석유는 나지 않지만 산 좋고 물 좋은 그래서 축복받은 땅이 한반도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의 기억이 또렷히 되살아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동 사람들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들은 물이 없어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었지만, 우리는 멀쩡한 물을 파헤쳐 못먹게 만들고, 외국에서 물을 사다 먹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한반도대운하 TF에서는 팔당댐 등에서 식수를 길어올리는 직접취수 방식을 지하수에서 식수를 공급하는 간접취수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사업 본격 시동, 한국경제]

한 10년 후쯤 중동의 초등학교에서는 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배울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은 석유도 안나는 나라가 물을 외국에서 사다 먹고 있다. 한 때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물이 좋은 나라였는데, 그 좋은 물을 다 못먹게 만들었단다.” 중동의 어린이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훗날 우리는 우리 자식들에게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경제가 좋아지면 에비앙 생수를 사다 먹으면 그만이라고 얘기할 것인가? 에비앙 생수는 1리터에 2000원 정도하는 물이니 기름값보다 훨씬 비싸다고 해야 하나? 기름값이 비싸다고 세금을 내려달라는 국민들은 나중에 물값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

나는 30여년 전 중동의 어린이들에게 미안하고, 나는 나의 자식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게으른 블로거의 2007년

게으른 블로거의 2007년

며칠째 겨울비가 내려 쌓인 눈을 모두 녹였다. 나를 비롯한 인간들이 싸질러놓은 오물로 어머니 대지는 확실히 더워지고 있다. 나 같이 없이 사는 사람들한테 따뜻한 겨울은 축복일 수 있겠으나, 이것을 온전히 달가워할 수만은 없는 슬픈 겨울이다.

2007년 한해가 간다. 시간의 연속성으로만 본다면야 오늘 뜨는 해와 내일 뜨는 해가 다르지 않겠지만, 그 시간을 마디마디 끊어서 새로운 숫자를 부여하는 인간들의 행위는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라도 해야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자기 삶의 궤적을 돌아볼 것이 아닌가.

7년만의 귀환이었다. 객지를 떠돌다 돌아온 나에게 한반도는 적당히 낯설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안식처를 제공하였다. 지난 7년 동안 심신이 피로하였으나, 2007년은 그 피로를 어느 정도 덜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개인적인 성취와 보람도 있었으며, 늘 그렇듯 부끄러운 모습도 있었다. 올해도 나는 운이 좋았다.

처음으로 블로거로서 온전한 한해를 보낸 나는 이제 갓 초보 딱지를 뗀 운전자의 모습이었다. 돌아보면 내 주장의 과잉에 종종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좀 더 따뜻한 글들을 많이 써볼껄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2007년 순간순간의 내 모습이었기에, 훗날 이 글들을 되돌아보면서 2007년을 추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만으로도 이 블로그는 참으로 게으른 나에게 의미가 있다.

보잘 것 없는 글에 이름모를 많은 분들의 성원이 있었다. 그분들의 댓글로 이 블로그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밀실에 유폐되지 않은 채 광장과 나름대로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블로그를 찾아와서 글을 읽어주고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의 관심 덕분이었다.

2008년이 더 나은 한 해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으로봐선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때문에) 감히 “더 행복하세요”라고 빈말이라도 기원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해인사 한마디에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십시오. 살아보니 건강만큼 소중한 것이 없더이다. 몸도 건강하고 그리고 생각도 건강한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견뎌야할 시간들이 우리들이 예상한 것보다 쉽게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맙습니다.

블로그로 중매서기

블로그로 중매서기

3주 전쯤에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출근길에 우연히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를 듣다가 울컥해져서 썼던 글이다. 공교롭게도 이 글에 세 분이 댓글을 주셨는데, 한 분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계신 어느 목사님이었고, 다른 두 분은 아직은 결혼 전인 분들이었다.

미혼이신 이 두 분의 블로거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가끔 그분들의 블로그를 찾아 가서 글을 읽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분들의 글을 통해서 대강 어떤 블로거들일까 그냥 내 짐작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아직 노총각이라고 밝힌 남성 블로거는 블로그계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유명한 분이다. 블로거로서 방송에도 섭외되어 인터뷰를 하실 정도니까. 게다가 그 분의 박학다식하고 사려깊은 글들은 나를 포함한 많은 블로거들을 사로잡고 있다. 가칭 연애 상담 전문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는 여성 블로거는 블로그계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초보 블로거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아주 신선하고 흥미로운 글을 썼고, 내가 우연히 그 글을 읽고 “좋은 남자 고르는 법”이라는 관련글을 보냈다.

굳이 불교 말씀을 꺼내지 않더라도 나는 살면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이다. 내 블로그에 올린 결혼과 사랑에 관련된 글에 두 분의 선남선녀가 댓글을 주셨고, 어떤 우주의 인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 두 분을 연결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되었다.

블로그계에서 이런 프로젝트는 아마 처음인 것 같고, 두 분의 블로거에게 결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분들의 필명조차 적지 않았지만, 나는 두 분이 현재 교제하는 사람이 없다면, (굳이 결혼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한 번 서로 교신해 보는 것은 어떨지 정중하게 제의해 본다. 서로의 블로그를 찾아 댓글을 남기거나 관련글을 보내고, 이메일 주소나 휴대전화 번호 등을 교환하여 한 번 만나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내가 두 분의 블로거를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라서 상당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냥 나는 나의 본능이 시키는대로 하고 있다. 사실 이 글은 벌써부터 쓰려고 했는데, 연말에 개인적으로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새해에 두 분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하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행복해 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문제는 좋은 상대를 어떻게 만나느냐는 것인데, 거기에는 운명이란 것이 복선처럼 깔려 있다. 이 글이 두 분에게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새해에는 두 분 다 더욱 행복하세요. 😉

미친 한겨레

미친 한겨레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되도록이면 정치에 관련된 글을 쓰지 않으려 했다. 집단적으로 이성과 도덕성이 마비된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노무현이 물러나고 나면 이 나라 정치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기에 나는 그저 침묵하고자 했다. 그런데 세상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조중동도 아닌 한겨레에서 “이명박 당선자를 도와야 한다”는 머릿기사를 읽고 나는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의 모든 언론이 썩어 문드러졌다해도 그래도 한겨레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랬던 나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한겨레마저도 이명박 앞에 딸랑딸랑 줄을 서는 듯한 이 칼럼에서 우리 언론의 마지막 단말마 같은 비명소리를 들었다.

지난 대선에서 BBK 문제로 이명박을 괴롭혔던 한겨레가 내심 이명박 정권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명박이 취임도 하기 전에 이명박을 돕자고 읍소하며 나섰다. 이명박이 성공해야 한다며 이 칼럼은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검찰, 경찰, 국세청, 정보기관을 대통령이 장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금권선거를 부활시키면 안 된다. 남북관계를 대결구도로 끌고가면 안 된다. 복지 예산을 줄이면 안 된다.

꼭 해야 할 일도 있다.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야 한다. 중소기업을 일으켜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부패를 추방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그러나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중략]

이명박 당선자는 성공해야 한다. 실패하면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다. 우리 모두 그를 도와야 한다. 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 그를 뒷받침해야 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 언론은 무책임한 추측 보도로 혼선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감시해 줘야 한다. 오만해지지 않도록 견제해야 한다. 이명박 당선자는 메시아가 아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이명박 당선자를 도와야 한다, 한겨레신문]

정말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이명박을 찍은 유권자들을 비아냥거리기 위해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에는 이제 언론이라 부를수 있는 매체가 사라졌다는 사실뿐이다.

지난 10년 전 어느 정권 때문에 대한민국의 경제가 수렁에 빠졌는지 기억하지 못하는가 보다. 그 외환 위기로 인해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이젠 아예 모르쇠다.

정말 한겨레는 이명박이 양극화를 해소시키고, 중소기업을 일으켜 세우고, 부패를 추방할 것이라 생각하나?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금권선거가 부활되지 않고, 복지 예산이 줄어들지 않을 거라 생각하나? 정말 한겨레가 견제하고 감시하면 이명박 정권이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나?

똥인지 된장인지 기필코 맛을 보겠다고 달려든 유권자들은 지금 똥통에 처박힌 상태다. 아니라고?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덤벼드는 저 면허도 없는 돌팔이 의사의 수술대에 국민들은 아예 홀딱 벗고 누워버렸다. 그리고서 하는말 “제발 경제만을 살려주세요.”

이번 선거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쓰레기 수구 언론과 떡찰을 앞세운 대한민국 수구 기득권층에게 3분의 1 가까운 유권자들이 강간을 당한 그런 선거다. 그런 특권 주류 계층에 놀아난 국민들이 불쌍하지만, 결국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한 줌도 안되는 이 기득권 세력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니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2% 정도되는 종부세 대상자가 아니라면 이명박 정권에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렇게 당하게 되어 있다. 나중에 이명박을 찍은 손가락을 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 때, 그 때나 정신을 차릴까? 아마 그 때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를 외칠 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제대로 된 언론이 생기지 않는 한 아무런 희망도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상식과 정도를 걷는 그런 언론을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겨레는 우리의 대안이 아닌 것 같다.

천년의 사랑, 성탄절에 부른 노래

천년의 사랑, 성탄절에 부른 노래

성탄절 전날 밤, 꿈 속에서 내가 부른 노래는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이었다. 이 노래를 부르고 부르다가 지쳐 잠을 깨고 말았다. 크리스마스 캐롤도 아니고 성탄절에 “천년의 사랑”이라. 왜 “천년의 사랑”이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천년의 사랑”은 인간들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탄절에 듣는 천년의 사랑은 예수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천년이 두 번씩이나 가도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 라고 예수가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었을까? 역시 꿈보다는 해몽인가.

이대로 널 보낼 수는 없다고

밤을 새워 간절히 기도했지만

더 이상 널 사랑할 수 없다면

차라리 나도 데려가

내 마지막 소원을

하늘이 끝내 모른척 저버린데도

불꽃처럼 꺼지지 않는 사랑으로

영원히 넌 가슴속에 타오를 테니

나를 위해서 눈물도 참아야 했던

그동안에 넌 얼마나 힘이 들었니

천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는 성탄절을 기뻐하실까

예수는 성탄절을 기뻐하실까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으로 일컬어진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등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석학들을 배출해낸 민족이고, 지금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막후에서 움직이는 민족이 유대인들이다. 명석한 두뇌, 고난과 역경을 기회로 바꾸는 도전 정신, 세계 제일의 교육열 등은 훌륭한 유대인들을 배출하는 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명석하고 똑똑한 민족이지만,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적지 않은 과오를 발견하게 된다. 모세는 약 400여년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홍해까지 갈라가면서 구해내지만, 정작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은 모세를 믿지 않았다. 단 열흘이면 도착할 수 있었던 가나안 땅을 가지 못하고, 유대인들은 40여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다. 유대인들이 배출해낸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예수도 그가 태어난지 2000년이 지나도록 유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얼마나 지독한 역설이란 말인가. 그 수많은 이적을 행하고, 인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을 행한 하느님의 아들이자 인간의 아들인 예수는 고향 사람들인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를 외면하면서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민족도 유대인들에게 버금갈만한 똑똑하고 부지런한 민족이다. 그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반만년동안 꿋꿋히 나라를 지켜온 민족이며, 20세기 들어와서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유일한 민족이다. 아마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민족은 단연코 우리 민족일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들을 거세하고 제거한 것은 비단 유대인들뿐만 아니었다. 우리 역사도 유대인 못지 않은 과오가 있었다. 조선 시대만 보더라도 조광조가 제거되었고, 정약용이 유배되었으며, 정조 이산이 독살되었다. 해방 이후 김구가 암살되었고, 여운형, 조봉암, 신익희가 뜻을 펴지 못한 채 사라졌으며 장준하가 살해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유대 민족이나 우리 민족 전체가 이런 훌륭한 인물들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늘 그 시대의 부도덕한 주류세력들이 그들의 정치적 권력과 탐욕을 지키기 위해 개혁 세력들의 지도자를 제거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은 예수는 이억 만리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땅 대형 교회의 목사들과 주류 세력들은 예수의 이름을 팔아 장사를 하고 있다. 예수는 가진 자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주류 이데올로기의 대명사가 되었고, 서울을 봉헌한 어느 기독교 정치인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외면받은 예수는 한반도에서 또다른 방식으로 거세되어 버린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든, 한반도든 사회적 약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예수는 발붙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아니 그런 세상이 된 것이 아니고 원래 그런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부도덕의 댓가를 직접적으로 치뤄야 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거세시킨 주류세력들이 아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부도덕을 추인해버린 어리석은 백성들이란 사실이다. 2007번째 생일을 맞은 예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노빠는 문국현을 지지할 수 없다

노빠는 문국현을 지지할 수 없다

한 노무현 지지자가 정동영에게 표를 줄 수 밖에 없는 그 심정을 변명이란 표현으로 문국현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는 문국현을 2007년도판 노무현으로 격상시키면서 문국현에게서 희망을 보았으나 거악인 이명박을 물리치기 위해 할 수 없이 정동영에게 투표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노무현 지지자와 문국현 지지자는 양립할 수 없다. 정작 문국현 본인은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부정하고 있으며, 노무현도 문국현을 자신의 정치적 계승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노무현을 지지하는 나는 문국현을 지지할수 없다. 더군다나 문국현을 2007년의 노무현이라고 얘기하는데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문국현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 나라의 정통성을 짊어지고 나갈 지도자가 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근원적인 모순과 거악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왜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 민주정부가 이렇게 엄청난 성과를 내고도 이런 가시밭 길을 걸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정작 싸워야 할 상대가 무엇인지, 자신은 어느 편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 왜 노무현이 임기 말년까지 “공수처 설치”를 주장하고, “기자실 통폐합”을 하는지 문국현은 잘 모른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문국현이지만, 그는 한 번도 제대로 맞서지 않았다. 늘 계산했고, 돌아가려 했다. 노무현은 밭을 탓하지 않는 농부였지만, 문국현은 비를 내리고 땅을 만드는 신의 경지로 본인을 자리매김했다. 노무현은 국민과 함께 땀흘리고 뒹구는 농투서니였고, 문국현은 모든 문제를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는 “어디선가 나타난” 전지전능의 해결사가 되길 원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해결하는. 그에게 과연 그럴 능력이 있을까?

정치적 수세에 몰린 문국현은 급기야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버렸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18일 “박 전 대통령의 삶에서 부정과 부패가 있었느냐, 박정희 대통령은 깨끗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文, ‘박정희 삶에 부정부패는 없었다’, 뉴시스]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말은 하는 것이 아니다. 립서비스라도 말이다. 박정희야말로 세계 독재사에 우뚝 솟을만한 인물이고 그의 삶이 부정과 부패로 점철되어 있는, 급기야 부하의 총에 맞아 세상을 등진 인물 아닌가. 문국현이 정말 몰라서 이런 말을 했다면 천박한 역사인식을 드러낸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참으로 기회주의적인 것이다.

문국현은 좌우를 넘나들면서 자기가 필요한, 대중에게 다가갈만한 정책들은 다 골라냈다. 노무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노무현에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욕을 먹고, 대통령직을 내놔야 한다 해도 노무현에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문국현은 그것이 이율배반적이라도 할지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양립시킨다. 예를 들어, FTA를 찬성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것 같은. 노무현은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서 문국현은 노무현과 비교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고, 아직까지 그러한 가치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그가 참여정부를 계승할 사람도 아니니 노무현 지지자들이 문국현을 지지할 이유도 없고, 지지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노무현 지지자가 문국현에게 표를 주는 것은 이명박을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문국현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이명박이 당선될까봐 할 수 없이 정동영에게 표를 던진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실 상당히 비겁한 자기 위선이자 합리화다. 이런 비판적 지지론은 87년 대선 때부터 진보 진영의 단골 손님처럼 등장했다.

자기의 세계관과 지향은 “선택”이라는 행위가 말하는 것이다. 권영길을 지지하고 싶은데 할 수 없이 노무현한테 표를 던졌다 또는 문국현을 지지하는데 어쩔 수 없이 정동영에게 표를 던졌다라는 것이야 말로 자기 변명일 뿐이다. 그런 것은 없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노무현을 찍었다는 행위이지, 권영길을 지지했다는 마음이 아니다. 우리 좀 담백하게 살자. 애초부터 비판적 지지라는 것은 없다.

나는 노무현 지지자이므로, 문국현을 지지할 수 없다. 노무현의 정치 철학과 정책을 계승할 세력을 선택할 것이다. 그 세력은 여전히 유시민, 한명숙, 이해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