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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소요유

우리나라 신문들이 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우리나라 신문들이 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

한겨레신문 홍대선 기자의 ‘쫓기고 밀리고’ 자동차 산업 길을 잃다 라는 기사는 우리나라 기자들이 어떻게 독자들을 우롱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이 기사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쫓아오는 중국과 앞서가는 일본 사이에 끼여서 정말 어려워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중국은 우리보다 기술 수준이 쳐져 있으니 우리를 쫓아오는 것은 사실이고,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있으니 우리가 그들 사이에 끼여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홍대선 기자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자료로 자신의 주장을 침소봉대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그림을 한 번 보자.

출처: 한겨레신문

이 그래프를 언뜻 보면 일본과 중국으로의 수출이 최근 들어 급격히 감소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그래프는 눈속임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의 데이터는 년간 수출액수이고 2007년은 1월부터 4월까지의 수출 액수이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2004년 1월~4월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2007년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그래프를 정확히 그리려면 2007년 평균 예상치로 이 액수에다가 3배를 해 줘야 한다. 그러면 2007년말의 년간 대중국 자동차 수출액은 8.1억 달러는 전년도 6억 달러보다 엄청난 증가를 하게 된다. 대일본 수출도 6.3억 달러로 전년도 4.7억 달러보다도 훨씬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부품 수출 또한 마찬가지다.

기자가 제시한 자료는 오히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선전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자료는 기자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얘기를 해주고 있다.

홍대선 기자의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을 걱정하는 마음은 갸륵하다 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독자들을 호도하면 안된다. 이 기사는 지금도 한겨레신문 사이트 첫 헤드라인으로 걸려 있다.

한겨레신문은 제일 믿을만한 신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신뢰도 1위의 신문조차 이런 식의 데이터 조작으로 독자들을 우롱한다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보다 100배 먼저 시장에서 퇴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적어도 세계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평가는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은 어떤가? 이 질문이 쑥쓰러울 정도로 다른 나라의 언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질이다. 그러면서 기자들은 블로그를 까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신문들이 이런 식이라면 멀지 않아 신문들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경쟁력도 없을 뿐더러 왜곡과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신문은 더 이상 언론이라 할 수 없다. 그 자리를 블로그들이 대체할 것이다.

보도준칙까지 만든 한겨레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다른 신문들이야 더 말해야 무엇하랴.

블로그코리아 유감

블로그코리아 유감

원조 메타 블로그 사이트인 블로그코리아가 다시 돌아왔다. 최근 올블로그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우리나라의 메타 블로그 시장에 원조의 복귀는 여러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 블로그 역사의 복원이라는 측면에서도 좋은 일이지만, 차별화된 서비스로 올블로그와 경쟁한다면 또다른 소통 채널로 많은 블로거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공개된 블로그코리아는 적어도 나에게는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나는 Firefox를 브라우저로 사용하고 있는데 블로그코리아는 Firefox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레이아웃이 깨지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로그인조차 되지 않고, 회원가입 화면은 아예 뜨지도 않는다. IE에서는 이런 기능들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데 Firefox에서는 되지 않는다. (Opera나 Safari에서는 아직 테스트해 보지 않았다.)

궁금한 것은 블로그코리아가 웹표준을 지켜 다른 브라우저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사이트를 제공할 계획이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향후에도 계속 이런 식이라면 적어도 나는 블로그코리아를 올블로그처럼 이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블로그코리아를 들어가기 위해 IE를 수고스럽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제대로 테스트를 하고 공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것은 비단 블로그코리아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아직까지도 테스트에 크게 신경쓰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프로젝트 수행 계획을 세울 때, 테스트의 중요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블로그코리아 같은 경우 많은 블로거들을 베타테스터로 활용할 수 있었을텐데 이런 모습으로 공개된 것은 참으로 아쉽다. 물론 블로그코리아가 IE 이외의 다른 브라우저 사용자들은 신경쓰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면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블로그코리아가 올블로그와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우리나라 블로거들의 보다 나은 소통에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웹표준을 제대로 지켜 Firefox나 그 밖에 다른 브라우저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이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블로그코리아의 발전을 기원한다.

예수는 조갑제를 용서할까

예수는 조갑제를 용서할까

전직 월간조선 사장이었던 극우 언론인 조갑제가 예수를 들먹이면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도덕적이라고 설교했다. 예수가 한반도로 건너와 정말 고생 많이 하신다. 위대한 시장경제론자가 되어야 하고, 이랜드의 매출과 이익도 올려줘야 하고, 사학법도 막아줘야 하고, 초대형 교회 부흥도 시켜야 하고, 서울도 봉헌받아야 하고.

백만 보 양보해서 조갑제의 말대로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도덕적”이라 하자. 그렇다면 예수는 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매우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9:23-25>

조갑제의 말대로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도덕적인데, 예수는 그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천국은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이란 말인가. 우리나라의 부자 낙타들 중 과연 천국의 바늘 구멍을 통과할 자가 누구란 말인가, 갑제씨.

조갑제의 의해 위대한 시장경제론자가 된 예수도 조갑제의 논리에 의하면 부도덕한 이가 되어 버렸다. 부자를 축복하지는 못할 망정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해 버린 예수는 조갑제 식으로 얘기하면 부도덕의 극치가 된 것이다. 어떤가? 자기모순 아닌가? 이명박을 구하기 위해 진정 이렇게 예수까지 팔아야 한단 말인가, 갑제씨?

내가 아는 한, 제대로 된 그 어떤 종교도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예수도 부처도 부자를 축복하지 않았다.

사랑의 상징 예수가 과연 조갑제를 용서할 것인가? 나는 다만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왜 신정아만 문제인가

왜 신정아만 문제인가

광주 비엔날레 감독을 맡은 동국대 신정아 교수의 학력이 위조되었다 한다. 박사 학위 뿐만 아니고 석사 학사까지 위조라고 하니 그 여인 또한 보통 사람은 아닌 듯 하다.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오로지 출세라는 허명을 붙잡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젊은 여인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이 여인은 분명 사기를 쳤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우리 사회의 도덕의 잣대는 이 여인의 사기를 재단할 수 있을 정도로 과연 얼마나 반듯하단 말인가?

한나라당의 어떤 대선 주자는 위장전입 문제가 제기되자 정권 차원을 음모라며 개거품을 물다가 슬그머니 인정하고 말았다. 자식 교육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라고, 양해바란다고. 대다수 쓰레기 언론들은 이 자의 거짓과 위선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더구나 이 자는 위장전입 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기, 재산 은닉, 위증 교사, 주가 조작 등 헤아릴 수 없는 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자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간이 검증을 회피하기 위해 “윤리 교사를 뽑는 것이 아니다”라는 망발을 일삼는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런 인간을 눈감아 주는 사회가 왜 유독 신정아만 문제를 삼는가. 광주 비엔날레 감독이 되기 위해 꼭 박사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신정아는 자신의 의혹을 까발린 측에 대해 정권 차원을 음모라며 검찰에 고발하는 적반하장을 일삼진 않았다. 신정아가 비도덕적이긴 해도 누구처럼 나라와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진 않았다.

신정아가 문제라면 왜 그보다 한 십만 배쯤 더 문제가 있는 이명박은 괜찮은가? 유영철은 연쇄살인범으로 죽어서 죄값을 치루어야 할 인간이지만 왜 그보다 한 오만 배쯤 더 죄값을 치루어야 할 전두환은 괜찮은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어서? 한나라당이면 모든 것이 용서되기 때문에?

우리는 도대체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대통령은 윤리 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를 해도 괜찮고, 주가 조작을 해도 괜찮고, 재산 은닉을 해도 괜찮고, 위증을 교사해도 괜찮고, 위장 전입을 해도 괜찮지만, 다만 고졸 대통령은 안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잘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이명박이 과연 국민들을 잘 살게 할 수 있을까? 경부운하 운운하는 삽질 경제로? 아마 종부세를 내는 2% 계층의 사람들은 더 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정아를 욕하라. 그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하지만 그 여인에게 들이댄 잣대 그대로 이명박 같은 자를 재단하라. 그러면 신정아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이랜드의 예수는 나의 예수와 다른가

왜 이랜드의 예수는 나의 예수와 다른가

이랜드라는 기독교를 신봉하는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량해고했고, 해고된 노동자들은 그에 맞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말인데, 도대체 그들이 믿는 예수는 어떤 예수란 말인가. 이랜드는 이익 6%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한다. 정말 예수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할까.

내가 알고 있는 예수는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는 언제나 약자 편에 섰고, 그들의 병을 고쳐 주었고, 그들의 아픔을 달래 주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세상에는 내가 알고 예수 이외에 또 다른 예수가 있나 보다.

그 또 다른 예수는 가진 자 편에서 물질의 축복을 내리며, 부자는 더 부자가 되게 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만드는 그런 예수인가 보다. 그 또 다른 예수는 비정규직은 아무 때나 해고하고 그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만드는 그런 예수인가 보다. 그 또 다른 예수는 이랜드의 예수이고, 초대형 교회 목사들의 예수이고, 사립학교 이사장들의 예수이고, 한기총의 예수이고, 재벌들의 예수이고, 서울을 봉헌하겠다던 이명박의 예수인가 보다.

팔레스타인 그 척박한 땅에서 2000년 전에 태어나 세상을 바꾸고 하나님의 나라 지상낙원을 이루고자 했던 그 예수가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땅 한반도 서울에서 그 또 다른 예수로 변신한 것인가. 천박한 자본주의를 비호하고 축복하는 예수로 전락한 것인가.

이랜드여! 당신들이 돈을 버는 것은 좋은데 제발 예수를 팔지 말라. 자본의 논리로 비정규직을 해고하더라도 예수를 들먹이지 말라. 당신들은 위선자들이고 독사의 자식들이다. 이것이 당신들의 기도에 대한 내가 아는 예수의 응답이다.

더 이상 나의 예수를 욕되게 하지 말라.

비올 때 듣고 싶은 노래

비올 때 듣고 싶은 노래

간밤에 빗소리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으나 감당하기 힘들어 결국 창문을 닫고 말았다. 빗소리는 나를 어머니의 자궁으로 데려간다. 아늑하고 아련하게. Rare Bird의 Sympathy는 이럴 때 듣고 싶은 노래다.

Now when you climb, into your bed tonight.
And when you lock and bolt the door.
Just think of those, out in the cold and dark,
’cause there’s not enough love to go ’round.

And sympathy is what we need my friend,
and sympathy is what we need.
And sympathy is what we need my friend,
’cause there’s not enough love to go ’round,
no there’s not enough love to go ’round.

Now half the world, hates the other half.
And half the world, has all the food.
And half the world, lies down and cries: “We starve”,
’cause there’s not enough love to go ’round.

And sympathy is what we need my friend,
and sympathy is what we need.
And sympathy is what we need my friend,
’cause there’s not enough love to go ’round,
no there’s not enough love to go ’round.

<Rare Bird, Sympathy>

우리 주위에 사랑은 정말 충분하지 않은 것인가. 비와 참 잘 어울리는 음악이지만 가사는 뼈아프다. 이 비를 맞으며 어딘가 배고픔에 웅크리고 있을 이웃이 있다. 정말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나눌어 줄 사랑이 충분하지 않은 것일까.

사랑에 대해 알고 싶으면

사랑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사랑이다. 단정적으로 말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신약 성경 고린도전서를 펼쳐보면 사도 바울이 사랑에 대해 적어 놓은 구절이 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뎌 냅니다. [고린도전서 13:4-7]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구절을 읽으면 된다. 그리고 행하면 된다. 이 구절만큼 명확하게 사랑을 정의한 것을 보지 못했다. 진리는 수천년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명백히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너무도 단순하지만, 이 단순한 진리를 행하기는 쉽지 않다.
딸과 헤어지는 것은

딸과 헤어지는 것은

공항에서 딸아이는 연신 팔을 쳐들었다. 안아달라는 얘기다. 이제 만 여섯을 훌쩍 넘긴 아이는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나기 시작했다. 키도 제법 크고 몸무게도 늘어나 옛날 아기 때처럼 안고 업고 하기엔 좀 버거웠다.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아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제 아빠 가면 심심해서 어떡해? 엉~ 엉~ 엉.” 공항까지 웃고 까불면서 따라온 아이의 가슴 속에는 그리움과 허전함이 공존했던 것이다.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이 아빠의 무심함이 부끄러웠다.

딸아이의 울음에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피로 연결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나의 분신인 딸아이의 가슴에 나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이 사무쳤다. 아이는 내일이면 또 이 순간의 그리움을 잊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내 가슴은 미어졌다.

나는 딸아이에게 몇 가지를 얘기했다. 건강할 것,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 것, 엄마 말씀 잘 들을 것 등등. 딸은 훌쩍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딸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 나는 하루 24시간 딸과 같이 있었다. 그때 나는 미리 알았다. 내 인생에서 딸과 가장 오랜동안 같이 보낼 시간이라는 것을. 이것은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을.

이제는 딸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1년에 고작 두어달 정도. 아이가 커서 사춘기가 되면 같이 살더라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지만, 막상 나는 그 순간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딸아이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 날,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지금은 나의 부재에 대해 딸아이가 울지만, 그날에는 딸아이의 부재에 대해 내가 울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딸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울면서 공항을 떠났고,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들이 지리산으로 간 까닭은

그들이 지리산으로 간 까닭은

<양들의 침묵>과 오대양 사건 이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리산 팔칠파. 그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는 광신도 집단인가 아니면 권력 쟁취를 시도하는 희대의 사생아들인가? 그들이 갑자기 지리산으로 잠적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후에는 오공의 수구세력들이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던데…. 그들과 소련의 쿠데타는 과연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러한 독자들의 의혹을 풀기 위해 본 기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팔칠파에 위장취업, 그들의 엽기적인 행각을 낱낱이 폭로한다.


등장인물

  • 금동이: 까무잡잡한 피부에 곱슬곱슬한 머리가 가수 박일준을 연상시킴. 검은 안경테 속의 날카로운 눈은 항상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는 듯한 표정임. 그는 이번 팔칠파의 지리산 산행을 계획하고 준비한 주범임.
  • 박마담: 한때 팔칠파를 배신하고 팔육파를 조직했으나 보복이 두려워 다시 팔칠파로 복귀함. 의류업과 부동산 등으로 화곡동의 큰 손으로 부각됨. 팔칠파의 모든 정보를 관리하는 발 넓은 여인. 이번 지리산 산행을 맨 처음 주장함.
  • Calculator: 아주 힘이 센 사내. 별명과는 달리 계산에 익숙하지 못함. 자신이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동생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 상당히 위험한 인물임. 사진 찍는 것이 취미지만 이번에는 사진기 고장으로 낭패를 봄. 산행의 등반대장임.
  • 조조: ‘소사사’라는 잡지사에 갓 들어온 신참 기자. 이번 팔칠파의 지리산 산행을 취재하고자 팔칠파에 위장취업. 명석한 두뇌와 완벽한 변장술로 팔칠파의 실체를 밝히는데 큰 공을 세움. 놀 때와 일할 때를 구분한다고 말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못함.
  • 진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 지리산에 혼자 왔다가 팔칠파에 붙잡힘. 갖은 고생 끝에 조조의 도움으로 탈출함.


1

7월 13일. 모처럼 맑은 날이다. 금동이가 전화를 했다. 오늘이 바로 팔칠파 모임이 있는 날이고 산행 계획을 세우는 날이라고. ‘따분하던 차에 껀수 하나 올리게 생겼구나!’ 라는 생각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에 보니 서너 명이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대충 인사를 하고 앉으니, 유럽에 다녀온 똘똘이의 말보따리가 터진다. 케임브리지가 어떻고, 뮌헨이 어떻고 등등. 잔뜩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이 그를 쳐다본다. 군대를 갓 제대한 김감독도 참 오랜만에 만난 친구다. 궁금했던 신변잡기로 시간을 때우고 자리를 옮겼다.

박마담이 두 시간이 지나도록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금동이는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한다. 출석한 사람끼리 지리산 산행에 대해 의논하고 박마담에게 사후 통보하기로 했다. 여기서 박마담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그녀가 지리산 산행을 여러 번 고집했기 때문이다. 왜 팔칠파가 지라산에 가려고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조직원들조차 알지 못하는 베일에 싸인 그들의 산행. 정말 궁금증만 더해가고 있었다.

금동이의 주도로 몇 가지 사항이 결정된 후, 임여사가 박마담에게 전화를 했다. 얼굴빛이 노래져서 돌아온 임여사의 얘기는 박마담이 지리산에 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핑계는 휴가 동안에 언니 집을 봐 주기로 했다나 어쨌다나. 금세 그곳은 박마담 성토장으로 변했다. 박마담이 팔육파에 가입했다는 소리도 나오고, 포항에 있는 남자와의 관계도 파헤쳐지고, 급기야는 제명과 보복의 목소리마저 튀어나온다.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조직원들은 매우 값비싼 맥주라는 술을 마신다. 3차를 파한 후에 시간이 늦어 선배의 하숙방에서 날을 지새웠다.

2

8월 2일. 구질구질한 날이다. 장마는 이미 지났는데 날씨가 우애 이렇냐? 팔칠파들이 룸에 모여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역시 금동이를 비롯해 대여섯이 모였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박마담이 참석했다는 점이다. 역시 조직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박마담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이번 산행 때문에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었다. 팔칠파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금동이의 협박이 유효했던 것일까. 아무튼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다.

여기서 단서가 될 만한 일은 동문회 간사 송박사의 등장이다. 송박사는 룸에 모인 팔칠파 조직원들에게 회비 명목으로 거액의 사채를 요구했고, 조조만을 제외한 나머지 팔칠파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던 사건이 일어난다. 아마 이 사건이 그들의 지리산 산행을 더욱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다.

식당에서 영계백숙을 비우고 최종 산행 참가자를 결정했다. 금동이와 박마담, Calculator, 그리고 조조 이렇게 네 명으로 결정된다. 임여사는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최교수와 똘똘이 그리고 박사장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음을 통보한다.

D-day는 8월 5일. 오후 8시 30분에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흩어졌다.

뉴욕의 비루한 아침

뉴욕의 비루한 아침

뒷골목에서 지릿한 오줌 냄새가 나고, 신문 쪼가리들이 바람에 날렸다. 비둘기들은 사람들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뭔가를 쪼아 먹고 있었다. 오렌지색 작업복을 입은 청소부는 느릿느릿 빗자루를 움직였고, 집없는 사람들은 웅크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 사이로 관광객들은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끊임없이 가고, 노란색 택시들은 경적을 울려대며 사람들 사이를 헤쳐갔다. 사람들은 신호보다 먼저 거리를 건넜고, 차들은 신호가 바뀌어도 사거리를 지났다. 지극히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무질서했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목적에 아주 충실했다. 사실은 엄청난 질서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난 밤에도 오페라의 유령은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을 유혹했을 것이다. 타임 스퀘어 그 번쩍이는 광고판앞에서 벌거벗은 카우보이와 사진을 찍으려는 여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아침부터 담배를 피는 여자들은 꽁초를 아무데나 버렸다. 그들은 멋진 썬글라스로 얼굴을 가렸고, 꽉 끼는 바지는 둔부의 윤곽을 드러냈다. 근처 스타벅스 커피점에는 커피와 베이글을 사려는 뉴요커들로 붐볐다. 커피 냄새가 오줌 냄새와 섞였다. 그 냄새는 신문지의 잉크 냄새와 다시 섞였고, 버스에서 나오는 배기가스 냄새와 섞였다. 몇몇은 그 거리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었고, 몇몇은 택시들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경찰들과 소방차들은 싸이렌을 울리며 지나갔다. 뉴욕의 아침은 늘 그렇듯 소란스러웠다. 허드슨 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에 있는 이 작은 섬 맨하탄은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서 단돈 24달러에 산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이 약 400년 전의 일이다. 24달러 짜리 섬은 수많은 사람들과 빌딩들과 차들로 붐볐고, 세계 돈의 중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뉴욕이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 하지만 그 매력을 발견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자연이 유폐되어 있는 자본의 중심에서 어떤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숨을 쉬기엔 태양이 너무 뜨거웠다. 뉴욕의 6월은 너무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