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
로나 번이 쓴 <수호천사>에는 천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간단한 방법이 나온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마다 나의 천사들이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이 간단한 요청이 천사들에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수호천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이런 기도를 해 보자. 그리하면 누구든지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로나 번이 쓴 <수호천사>에는 천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간단한 방법이 나온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마다 나의 천사들이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이 간단한 요청이 천사들에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수호천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이런 기도를 해 보자. 그리하면 누구든지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논어는 알다시피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공자의 가르침을 집약한 구절이 나온다.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된다.” 증자는 “예”하고 주저 없이 대답하였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입니다.”
<논어 이인:15>
충(忠)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고, 서(恕)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충은 정성스럽고 진실된 마음을 뜻하며,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것(盡己之謂忠)이다. 서는 황금률에서도 얘기했듯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주자는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서 남이 바라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서(推己之謂恕)”라고 하였다.
세상이 복잡해 보여도 진리는 이렇게 단순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신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몇 구절을 옮겨본다.
신앙이란 비타협적인 게 아니며, 오히려 타자를 존중하는 공존의 상황 속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이 확고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신자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진리가 그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가 진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그에게 입을 맞추고 그를 소유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확고한 신앙은 그를 경직시키는 대신, 그로 하여금 언제든 훌훌 털고 일어나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진리가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는 신자들에게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것은 이탈되어 있는 초월적인 것,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입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고, 갇힌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눈먼 사람들을 눈뜨게 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우리 모두에게 주님이 베푸는 은총의 날을 선포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참여정부 연설문 작성 비서관이었던 강원국의 증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글쓰기(특히, 연설문)에 관한 한 최고의 안목과 역량을 갖춘 정치인이었다. 수구 기회주의 세력들은 그의 말투를 문제 삼아 끊임없이 그를 헐뜯었지만, 연설에 관한 한 노무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치가였다.
강원국이 펴낸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에 노무현 대통령이 비서관에게 내린 32개의 글쓰기 지침이 나온다. 그것은 연설문뿐만 아니라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금과옥조와 같은 것들이다. 그 중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정리해 본다.
- 쉽고 친근하게 쓰게.
-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 통계 수치는 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네.
-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 중요한 것은 앞에 배치하게. 사람들은 뒤를 잘 안 보네. 단락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뒤에서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네.
-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멋있는 글을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것도 안 되네.
-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pp. 19-21>
이 나라는 한때 이런 수준을 대통령을 가졌었다. 불과 10년도 안 된 일이지만,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얘기 같지 않은가.
지난 해 읽었던 책 중 가장 좋았던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놓아버림: 내 안의 위대함을 되찾는 항복의 기술>이다. 이 책은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한 그 단순한 방법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참나’를 찾고자 애쓰는 이들과 생의 고통으로 잠못이루는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호킨스 박사가 말하길 “인생이란 본디 마음 속에서 겁내거나 기대하는 바를 투사해 세상에 덮어씌우고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긴 시간 동안 이리저리 애쓰는 일(If we take a close look at human life, we see that it is essentially one long elaborate struggle to escape our inner fears and expectations that have been projected upon the world.)”이라고 했다. 두려움과 욕망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거칠 것이 없다.
다음은 <놓아버림>에서 설명하는 의식의 법칙들이다.
- 감정이 쌓여 생긴 압력으로 인해 생각이 일어난다.
- 저항 때문에 감정이 지속되는 것이다.
- 자각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우리 내면에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라는 진실이 있다.
- 내가 나를 보는 대로 세상이 나를 볼 수밖에 없다.
- 자기에게 어떤 부정적 생각이나 믿음이 적용된다고 의식적으로 말하면, 실제로 그 영향 하에 놓인다.
- 마음에 품은 대로 실현되기 쉽다.
- 공포는 사랑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 보호하기 위해 똑같이 하는 일이라도, 공포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할 수 있다.
- 소유하거나 행하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수준에서 힘과 에너지가 가장 크다.
- 요구를 멈추면 원하는 바를 얻는다.
- 사랑은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의 법칙이다.
-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들면 곧바로 몸이 약해지며, 몸에 흐르는 에너지의 균형이 깨진다.
- 우리는 스스로 마음에 품은 것에만 영향을 받는다.
- 의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줄지 않는다.
- 답을 찾지 말고, 문제 이면의 감정을 놓아 버려라.
- 놓아버림의 목표는 모든 괴로움과 아픔의 근원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 생각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거나 드러내 보여 주었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은 항상 타인에게 영향을 주어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 인간관계는 전반적으로 마치 상대방이 내 마음속 감정을 알아차리고 있는 듯이 진행된다.

이 땅의 품위있는 노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품위있는 노인들을 보고 싶다.
-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보살피고, 새로운 사고에 개방적이며, 신체건강의 한계 속에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한다.
- 노년의 초라함을 기쁘게 감내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 사실을 품위있게 받아들인다.
-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늘 자율적으로 해결했으며, 매사에 주체적이다.
- 유머감각을 지니고, 놀이를 통해 삶을 즐길 줄 안다. 삶의 근본적인 즐거움을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행복을 포기할 줄 안다.
- 과거를 되돌아볼 줄 알고, 과거에 이루었던 성과들을 소중한 재산으로 삼는다. 호기심이 많고, 다음 세대로부터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한다.
- 오래된 친구들과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사랑의 씨앗은 영원히 거듭해 뿌려져야 한다”는 금언을 늘 가슴에 새긴다.
라마 수리야 다스가 말하는 시간과 친구되는 10가지 방법이다.
<라마 수리야 다스, Buddha Standard Time, 2011>
이제 숨을 쉬고, 미소 짓고, 그리고 편히 쉬어 보자. (Now breathe, smile, and relax…)
당신에게 시간은 있다. (You have time.)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창의적인 사람들은 복합적인 성향을 띈다고 한다. 복합적 성향이란 양극 사이의 중립이나 평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 아무 갈등없이 양극을 달릴 수 있는 성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반대되는 특성들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열 가지 양면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대단한 활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명석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장난기와 극기 또는 책임감과 무책임이 혼합된 모순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상상과 공상, 또 한편으로는 현실에 뿌리박은 의식 사이를 오고간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상반된 성향을 함께 갖고 있는 듯하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매우 겸손하면서 동시에 자존심이 강하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전형적인 성의 역할에서 벗어나 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반항적이고 개혁적이면서 동시에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매우 열정적인 동시에 객관적이 될 수 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개방적이며 감성적인 성향으로 인해 종종 즐거움뿐 아니라 고통과 역경을 겪는다.
<칙센트미하이, 창의성의 즐거움, pp. 69-91>
창의적인 사람들은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다. 로마 신화에서 야누스는 문의 신이기도 하지만, 시작과 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문을 여는 사람들이며, 기존의 것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사람들이다.
최근 관심사는 창의성(Creativity)인데, 이것과 관련된 책들을 몇 권 읽었다. 과연 창의성은 배울 수 있는 것인지, 창의성이 발현되려면 어떤 환경이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맹자는 진심(盡心) 편에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의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끼지 못한다. 부모가 살아 계시며 형제들이 아무런 탈이 없는 것이 첫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봐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봐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에 뛰어난 인재들을 얻어서 가르치는 것이 세번째 즐거움이다.
맹자는 천하의 왕이 되는 것은 군자의 즐거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중 지금까지 두 가지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