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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의 양심

법관의 양심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은 모든 법관들에게 똑같이 주어져 있는 것이니,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법관의 양심이다.

만약 양심이 극도로 불량한 판사가 법을 임의로 해석하여 판결을 내리면 어떻게 될까? 정의는 사라지고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 될 것인데, 이를 견제할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들의 양심이 적어도 일반인 평균 이상의 수준을 가질 때 작동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고법 정형식 판사는 삼성의 황태자 이재용을 집행유예로 풀어 주었다. 물론 1심 판결이 났을 때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어떡하든 이재용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눈물겨운 판결을 했다. 이재용의 거의 모든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차고도 넘치는 증거를 모른 척 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받지도 않은 돈을 받았다고 판결했던 사람이 이재용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심초사했다. 이 정도 양심은 있어야 우리 사회 지도층이 되는 것이다.

적폐들의 최후의 보루는 양심 불량 법관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 판결이었다. 하기야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최고 권력 삼성의 황태자를 1년 가까이 감방에 처넣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긴 했다.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이 나라 지배세력은 아직 너무도 견고하다.

예상했던 일이고 놀랍지도 않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미네르바 구속, 이것은 인터넷과 리만 브라더스의 전쟁이다

미네르바 구속, 이것은 인터넷과 리만 브라더스의 전쟁이다

이제부터 인터넷에 글을 쓸 때, 비록 개인 블로그라 할지라도 논문처럼 정확한 레퍼런스(참고문헌)와 주석을 달아야 할 것이다. 언제 어떻게 검찰에 소환될지 모르니, 어디까지가 인용이고 어디까지가 의견인지를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혐의를 벗을 수도 있고, 처벌을 받더라도 최소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다음 아고라에서 정확한 경제 예측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인터넷 논객이 미네르바다. 미네르바가 이렇게 인터넷과 언론을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그의 해박한 경제 지식과 손쉽게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한 정확한 경제 진단과 예측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년부터 대한민국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한 “리만 브라더스”의 뻘짓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음 아고라를 가지 않기 때문에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언론이나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옮겨진 그의 글을 몇 편 읽어 보았다. 큰 틀에서 그가 한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나 같은 소시민에게도 벌써 2005년 말, 2006년도부터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소문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국발 금융 위기를 불러올 것이고, 우리나라도 그 금융위기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것,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였다.

리만 브라더스가 그 위기를 잘 넘길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였다. 리만 브라더스의 이력만 보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작년에 리만 브라더스가 1년 내내 행한 짓들을 보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위기의 시작은 미국이었지만, 그 위기를 증폭시킨 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한 마디로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포크레인으로도 못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해가 바뀌자마자 우리의 검찰께서 “미네르바 검거”라는 탁월한 선택을 하시어, 오히려 리만 브라더스를 더 곤경에 처하게 했다. 물론, 리만 브라더스의 지시였는지, 아니면 검찰 스스로 판단해서 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네르바 검거는 검찰은 물론 리만 브라더스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악수임은 분명하다.

지금 인터넷 상에서는 “검찰이 구속한 미네르바가 바로 그 미네르바가 맞냐”라는 논란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검찰이 구속한 미네르바는 여러 미네르바 중의 한 명일 뿐이다”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사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워낙 말들이 많으니 나도 “사실만 가지고” 숟가락 한 번 꽂아보면,

1. 인터넷,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 아고라에서 필명으로 미네르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여러 명이 존재한다. 이것은 다음 아고라 운영자에게 물어봐도 금방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고 더군다나 정부의 핵심 관계자까지도 확인해 준 사안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 “미네르바 복수”, 매일경제)

2. 검찰에 구속된 미네르바는 작년 12월 신동아에 인터뷰를 한적이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신동아에 인터뷰를 한 미네르바는 다른 사람이다. 신동아가 그 인터뷰를 조작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들이 인터뷰한 다른 미네르바를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구속된 미네르바가 자신들과 인터뷰한 미네르바인지 아닌지는 확인해줄 수 있지 않을까? (미네르바, 신동아 기고한 적 없다고 부인, 한국경제)

3. 우리의 검찰께서 신동아 관련 부분은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어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셨으며, 지금 구속된 미네르바가 그 미네르바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시었다.

검찰 관계자는 “앞으로 박씨가 글을 쓴 동기와 배경, 공범 또는 주변인물이 있는지 등을 수사할 계획”이라며 “그러나 지난해 말 한 월간지와 인터뷰를 했는지는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향후 수사 방향을 밝혔다.

[연합뉴스, 인터넷논객 ‘미네르바’ 구속 수감]

우리의 검찰께서는 요즘들어 가장 중요한 핵심 사안이라 여겨지는 부분들을 일부러 또는 괜히 애둘러 가시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신동아 인터뷰 부분은 여러 미네르바 중 바로 그 미네르바를 구별하는데 핵심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미 검찰은 지금 구속한 미네르바가 그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씀해 주시었다.

4. 지금 검찰에 구속된 미네르바는 “허위사실 유포”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미네르바가 썼다는 그 많은 글 중에 특히 연말에 정부가 “금융기관에 달러 매입 자제” 공문을 보냈다는 글을 문제삼고 있는데, 그렇다면 정부는 금융기관에 달러 매입 자제를 요청했을까 안했을까? 이석현 의원(이 사람은 국회의원이다)은 정부가 분명히 금융기관에 달러 매입 자제를 전화로 요청했다고 한다. (“정부가 시중은행에 ‘달러매입자제’ 전화까지 했다”, 오마이뉴스)

5. 그렇다면 “전화”로 요청한 것을 “공문”을 보냈다고 했기 때문에 “허위 사실 유포”에 걸린다고 지금 검찰께서는 주장하고 계시고, 여러 미네르바 중 한 미네르바를 구속시킨 것이다. 이것이 과연 구속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우리의 법원 영장 전담 판사이신 김용상 판사께서는 왜 구속영장을 발부해 주셨을까?

김용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외환시장 및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서 그 성격 및 중대성에 비춰 구속수사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영장 발부사유를 밝혔다.

[뉴시스, 미네르바 구속, 네티즌들 갑론을박]

6. 전화로 달러매입자제를 요청한 것을 공문으로 보냈다고 했기에 범죄사실이 소명된다고 하신 김용상 판사는 그동안 어떤 판결을 내리셨을까? 법관은 늘 판결로 얘기한다고 하는데, 김용상 판사의 프로필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고 수사 대상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하는 검찰. 그렇다면 김용상 판사의 그간의 판결들이 국가 기밀이라도 된다 말인가?

사실 검찰에 구속된 미네르바가 진짜 원조 미네르바냐 아니냐는 논란은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 일개 네티즌이 사소한 거짓말(전화로 한 것을 공문으로 했다고 했기에)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고 구속을 했다는 사실, 검찰의 그러한 주장에 법원까지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 이것은 이명박 정권들어 우리나라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것이 아니고, 30년전 쯤 독재의 시절까지 되찾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새해들어 이명박 정권은 검찰을 동원해 인터넷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네르바의 구속은 그 한 단면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리만 브라더스와 인터넷, 과연 리만 브라더스는 인터넷을 평정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이명박이든, 강만수든, 검찰이든, 영장전담판사든 간에 인터넷이 어떤 공간인지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터넷과의 전쟁, 리만 브라더스는 승리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인터넷 최강국이라는 나라에서 2009년 새해 벽두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법원의 창의력에 경의를 표하며

법원의 창의력에 경의를 표하며

오래된 얘기지만, 아버지는 내가 판검사가 되길 원하셨다. 그 시대 분들의 공통된 염원이기도 했지만, 아들들이 공부 꽤나 하는 것 같으면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를 봐서 판검사가 되길 바라신 분들이 많았다. 그것이 그 시절 신분 상승과 출세의 지름길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아버지의 그런 바람을 거슬렀다. 사회 물정을 모르던 어린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하여 잘잘못을 가린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면에서 결벽증이 있었다. 더구다나 그 많은 법조문들을 외우고, 그 법으로 다른 이들의 행위를 재단하는 것이 재미없게 보였으며, 고리타분해 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법조인에 대한 나의 이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법조인들은 절대 고리타분하지도 않고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내가 느낀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보여준 상상력과 창의력이 우리 사회 특권층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만 발휘된다는 사실이 참담할 뿐이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든지 “사회의 정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라든지 하는 퀘퀘묵은 언명들이 쓰레기통에 쳐박힌지는 너무나 오래되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는 명판결은 모든 성공한 범죄를 처벌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법치주의를 유린했지만 그들은 희희낙낙할 뿐이었다. “서울은 경국대전에 수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수도를 옮길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판결한 그들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만 있을 뿐이었다. 수백억의 회사돈을 횡령하고 회사에 수천억의 손실을 입혀 유죄가 선고되었지만 나라의 경제를 생각해서 사회봉사 명령을 내리는 그들의 애국심이 눈물겨울 뿐이었다.

법원이 재벌의 “유전무죄”를 위해 발휘한 창의력에 대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법원을 빠져나오면서 웃음을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감히 재벌을 처벌하려 하다니, 재벌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데 말이야, 안 그래?

나 같은 일반인들은 탈세나 배임, 횡령 같은 경제 범죄를 더욱 확실하게 처벌해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상식적인 생각을 하지만, 우리의 자랑스런 판사님들은 나라의 경제를 위해서 재벌 그룹 회장들의 그런 범죄는 눈감아 주거나 눈감아 줄 수 없을 때는 강연이나 신문 기고 같은 엄청난 사회 봉사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상상력인가.

(물론 될 수도 없었겠지만) 내가 법조인의 길을 택하지 않은 건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다. 저렇게 소설가를 능가하는 창의력으로 법을 만들고 유린하는 그들과 같은 법조인이 되었다면 너무나 부끄러워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상상력이라면 아예 젬병이 아니든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대한민국의 판검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유전무죄”의 깃발 아래 최고의 상상력을 발휘하시라.

사법부는 어떻게 화살을 피할 수 있을까

사법부는 어떻게 화살을 피할 수 있을까

판사 한 명이 소송 당사자가 쏜 화살을 맞았다. 다행히 화살 맞은 판사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사법부와 검찰이 발칵 뒤집힌 모양이다. 사건의 외양만 보면 정신 나간 전직 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피격한 사건이다. 사법부 입장에서는 중대한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왜 우리나라 사법부가 화살을 맞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성균관대에 재직했던 젊은 교수 김명호는 촉망받는 수학자였다. 그가 대학입시 채점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수학 시험 문제 하나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하다 다른 교수들의 미움을 받아 재임용에 탈락하게 된다. 그는 사법부에 법적 판단을 요청하였지만 10년 훨씬 지난 지금까지 법원은 재임용에 관련된 사항은 학교의 재량이라며 학교의 편을 들어 주었다. 더 자세한 사항은 한겨레 21의 보도 ‘학문을 위한 양심의 수난’과 Mathematical Intelligencer 의 ‘The Rewards of Honesty?’ 를 참조하면 된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주류계층의 부도덕함과 그들의 끈끈한 연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직한 사람이 매장당하는 사회,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사법부가 그 정직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그 사람의 억울함을 배가시켜준 꼴이니 사법부는 화살을 맞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 전직 교수가 날린 화살은 판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사법부 전체에 대한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나는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위헌 판결을 보고 대한민국 사법부에 학을 뗀 사람이다. 전두환에 대해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고 얘기한 검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스스로 자정할 능력이 없는 집단들이다. 이들에게 정의를 바로 세우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기보다도 어렵다. 사회관과 가치관 정립이 안 된 사람들을 사법시험 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판사 검사로 임명을 하고 엄청난 권한을 누리게 했으니 그 집단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인적 구성에서 사법부 개혁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제도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많은 판검사들이 화살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법고시를 없애고 법학대학원 도입을 빨리 하여 법조인의 수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배심원제를 두어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보다 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사법부 고위직은 국민들이 선거로 뽑아야 하고, 고위직의 비리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고위직 비리 수사처를 두어야 한다. 검찰의 권한도 분산시키고 부처들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 견제와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법조인들이 화살을 맞지 않도록 국회에서 사법부 개혁에 관한 법률을 빨리 통과시키기 바란다.

그 억울한 전직 교수의 인생이 측은하다. 한 때 촉망받는 수학자였던 그가 정직의 보상으로 우리 사회 주류의 이지메에 매장을 당했으니.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그는 살인미수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의 삶을 보상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에게 수행과 용서의 기도를 권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처지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