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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김대중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김대중 대통령의 615선언 9주년 기념 연설 중, 가장 뼈 아프게 다가왔던 부분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관련된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만일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고초를 겪을 때 500만명 문상객 중 10분지 1인 50만명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이럴 순 없다, 매일 같이 혐의 흘리면서 정신적 타격을 주고, 스트레스 주고, 그럴 수는 없다, 50만명만 그렇게 나섰어도 노 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억울하고, 희생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겠습니까.

[“이대로 가면 MB도 국민도 불행해질 것 행동하는 양심 돼야… 방관하는 자, 악의 편”, 오마이뉴스]

그가 옳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고 조문한 사람이 500백만명이나 되었는데, 그 중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나섰더라면 우리는 그를 지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탄핵 때 우리가 노무현을 지켰던 것처럼 그렇게 나섰더라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뼈에 사무친다. 우리는 그의 무고함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그렇게 스러져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간악한 언론과 검찰이 잔인하게 그를 짓누를 때에도 우리는 방관자였다. 결국 그는 우리 곁을 쓸쓸히 떠났다. 우리는 그와 함께 할 자격이 없었다. 그와 같은 위대한 인물은 이 척박한 반도땅을 오래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운명이었을까?

그가 떠나고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슬픔이 가슴 깊이 침잠했다. 까닭 모를 눈물이 때를 가리지 않고 흘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노무현의 뜻을 잇고자 하는 모임들이 속속 등장했다. 국민참여정당과 시민주권모임이 출범했고, 노무현재단이 설립되었다. 너무나 크고 위대한 소를 잃었기에 이 볼품없고 척박하고 탐욕스럽기까지한 외양간을 버려두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리라. 하여 나는 국민참여정당과 시민주권모임에 가입했고, 노무현재단의 후원인이 되었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한 500만명의 사람들 중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인 5만명만 나서준다면 우리는 노무현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노무현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여기에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제2, 제3의 노무현을 만들어낼 수 없고, 설령 그런 인물들이 나타난다 해도 그들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정신을 살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행동할 때이다.

노무현과 김대중, 그리고 카르마

노무현과 김대중, 그리고 카르마

불과 석달 사이에 우리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인 두 명을 연달아 여의었다. 떳떳하게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고, 대통령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단 두 명의 정치인이 그렇게 스러져 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서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대통령도 이렇게 쉽게 떠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공개된 일기 속에서 그는 적어도 5월 초까지는 소소한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마지막 일기 중에서]

노무현의 죽음을 가장 슬퍼했던 사람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20년이나 어린 후배를 먼저 보내야하는 노 정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 같은 민초도 슬픔을 감당하지 못했는데, 그는 얼마나 비통했을까.

노무현은 유서에서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했다. 두 명의 위대한 정치인이 그렇게 떠나간 것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다. 그것은 그 두 사람의 운명뿐만이 아닌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이었다.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하고 독재의 부역자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이 현실에다, 무지한 백성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최소한의 도덕성조차 팽개치는 상황에서, 운명은 가장 위대한 두 명의 정치인의 목숨을 요구했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통곡했다. 감히 말하건데 노무현의 죽음을 그렇게 서럽게 울어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그 휠체어에는 KARMA(카르마)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이 민족이 지은 업보를 두 명의 위대한 정치인이 지고 떠났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이 민족의 카르마는 또 어떤 댓가를 요구할 것인가? 삼천리 금수강산을 내놓으라 할 것인가? 그 정도 댓가를 치루면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나 있는 것일까? 카르마에는 에누리가 없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의 이용호 화백은 “지팡이와 밀짚모자”라는 만평에서 이 세상을 떠난 두 정치인의 다정한 모습을 아련히 그려 놓았다.


© 미디어오늘 이용호 화백

슬픔은 이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정치적 고아가 되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정치적 고아가 되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 속보로 흘러나오는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 목이 메였다. 지난 달부터 병세가 위중하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려왔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서거 소식은 여전히 견디기 힘든 슬픔이었다.

김대중이 누구던가.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 온몸으로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그리하여 그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견디면서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 아니던가.

오늘 그가 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지 100일도 안되어 김대중 대통령도 떠났다. 해방 이후, 대통령이라 부를 수 있었던 단 두 명의 정치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갔다.

죽기 직전까지 독재에 대해 걱정해야 했고, 민주주의에 대해 걱정해야 했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해 노심초사해야 했던 대통령이 그렇게 갔다. 도덕이 밥먹여주냐며,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며 아무 생각없이, 아니 너무나 탐욕스럽게 이명박을 찍은 국민들을 뒤로 하고 그가 세상을 떠났다.

김대중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없었다. 국민들은 여전히 박정희, 전두환 같은 군부독재자들에게 짓밟히고 있었을 것이고, 정권 교체도 없었을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도 없었을 것이다. 민주주의 상징이자 민주주의 그 자체였던 그가 그렇게 갔다.

노무현이 가고, 김대중이 갔다. 이제 누구에게 기대겠는가? 이 땅의 힘없는 백성들은 이제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 절망 안에 또다른 절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두달 전 김대중 대통령이 615 선언 9주년에 했던 연설이 우리에게 들려준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나는 오랜 정치 경험으로, 감각으로, 만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큰 결단 내리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더불어서 여러분께도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정권이) 백 수십명 죽이고, 인혁당도 죽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 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위해서 우리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양심, 행동할 때 누구든지 사람은 마음 속에 양심이 있습니다. 행동하면 그것이 옳은 일 인줄 알면서도 무서우니까, 시끄러우니까, 손해보니까 회피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 국민의 태도 때문에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죄 없이 세상을 뜨고 여러 가지 수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이룩한 민주주의는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 양심에 합당한 일입니까.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만일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고초를 겪을 때 500만명 문상객 중 10분지 1인 50만명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이럴 순 없다, 매일 같이 혐의 흘리면서 정신적 타격을 주고, 스트레스 주고, 그럴 수는 없다, 50만명만 그렇게 나섰어도 노 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억울하고, 희생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겠습니까.

나는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게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그리고 독재자에 고개를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제, 남북간 화해 협력을 이룩하는 모든 조건은 우리가 마음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서, 그렇게 해서 온 국민들이 바른 생각도 갖고, 표현이나 행동해야 합니다. 선거 때는 나쁜 정당 말고 좋은 정당 투표해야 하고, 여론조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4700만 국민이 모두 양심을 갖고 서로 충고하고 비판하고 격려한다면 어디서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일어나고, 어디서 소수 사람들만 영화를 누리고, 다수 사람들이 힘든 이런 사회가 되겠습니까.

<“이대로 가면 MB도 국민도 불행해질 것 행동하는 양심 돼야… 방관하는 자, 악의 편”, 오마이뉴스>

그는 85세의 고령에도 마지막까지 피맺힌 목소리로 절규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그의 정치 역정은 끝까지 이 땅의 독재와 맞붙는 것으로 끝났다. 목이 메인다.

노무현이 가고 김대중이 갔다. 우리들은 정치적 고아가 되었다. 이제 우리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 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님 만나 두 분이 못다한 정 나누십시오. 저희들은 두 분이 사무치게 그리울 뿐입니다.

죄없는 자만이 이명박에게 돌을 던져라?

죄없는 자만이 이명박에게 돌을 던져라?

신약성경 요한복음에 보면,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에 끌고 와서 이 여인을 돌로 쳐죽여야 되느냐고 묻는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예수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때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중에 죄 지은 적이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복음 8:7>

한겨레에서 자칭 B급좌파인 김규항이 쓴  “상식의 이름으로”란 칼럼을 읽었다. 김규항의 글을 좋게 봐주면, 이명박이 물러난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명박이 물러난다고 해서 노동자, 농민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김규항 같은 B급 좌파들이 걱정하는 것은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소위 “상식”이나 “개혁”을 주장하는 자유, 보수주의자들이 독식하는 것이며, 그들 자유, 보수주의자들은 이명박이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부류라는 얘기다. B급 좌파들의 주적은 이명박이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이란 얘기다.

이명박이 물러나면 그들의 상식은 회복이 되는가? 알다시피 오늘 비정규 노동자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다. 더도 덜도 말고 땀 흘려 일한 만큼의 열매를 얻는 일이 상식의 회복일 농민들도, 신자유주의로 녹아나는 다른 많은 인민들도 마찬가지다.

보편적인 상식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삶의 처지에 따라 계급에 따라 상식은 다르다. 심지어 이명박씨의 몰상식 역시 적어도 그 자신에겐 엄연한 상식이다. 세상은 상식과 몰상식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상식으로 나뉘며, 어떤 세상인가는 결국 어떤 상식이 세상을 지배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 유행하는 ‘상식의 회복’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말해서 이명박씨가 물러나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들, 생존보다는 정신적 고통과 미감이 문제인 사람들의 상식의 회복인 셈이다.

<상식의 이름으로, 김규항>

우리나라의 노동문제가 1997년 김대중 집권으로 생긴 것인가? 김대중 이전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절에) 정말 우리나라 노동자, 농민이 행복하게 살았을까? 김대중과 노무현은 아무 문제 없는 정부를 이양받았으나 신자유주의를 맹목적으로 받아드려서 지금 이명박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있는가? 1997년의 외환위기는 김대중 정부가 불러왔는가? 그 당시 김대중 말고 권영길이 집권했으면,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정말 보편적인 상식은 존재하지 않는가? 김규항이 보았을 때, 이명박은 상식적인 사람인가? 김대중, 노무현이 만들어 놓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이명박은 바로 잡으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외환위기를 불러온 것은 김대중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시작은 김대중 때부터도 아니다. 김대중은 그 나이에 외환위기를 극복해 보겠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당시 그가 가진 대안이 많지 않았다. 권영길이 대통령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김대중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까? 정말 신자유주의를 일소하고, 노동자 농민의 세상을 만들었을까?

노무현은 말했다. 새시대의 첫차가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차가 되었다고. 세종이 되고 싶었는데 태종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왜 그랬을까? 대통령이 되고 뚜껑을 열어보니, 설거지 거리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경제 위기를 넘겨보려고 내수 진작을 위해 남발했던 카드가 문제가 되었고, 북핵이 문제가 되었고, 당신 초기부터 한나라당은 “탄핵”은 언급하였고, 민주당 내에 노무현 세력은 애초부터 미미했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은 어떤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을까?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 세월이 “오늘 비정규 노동자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다”라는 한 문장으로 매도될 수 있는 것인가. 정말 이명박 정권의 탄생은 노무현이 깽판을 쳐서 나온 결과인가? 김대중, 노무현은 정말 김영삼, 이명박보다 더 손가락질 받을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보편적 상식 문제도 그렇다. 나는 보편적 상식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거짓말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이런 것이 나에게는 보편적 상식이다. 하는 말마다 거짓말인 사람을 대통령으로 앉혀놓고, 그것은 그 사람의 상식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 김규항은 극단적 상대주의자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이명박의 상식은 상식이고, 김대중, 노무현의 상식은 상식이 아닌가? 왜 이중, 삼중 잣대를 들이대는가?

참여정부때 노무현 씹기를 스포츠로 삼던 그 사이비 좌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최장집, 손호철은 왜 말이 없는가? 노무현이 물러갔으니 이제 신자유주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단 말인가? 좌파들에게 묻고 싶다. 왜 당신들은 그렇게 “독선”적인가? 당신들은 정말 노동자, 농민의 편이긴 한 것인가?

김규항이 “예수전”을 쓰느라 너무 열심히 성경을 읽은 것 같다. 내가 그의 글에서 받은 메세지는 “너희 중 죄없는 사람만이 이명박에게 돌을 던져라”이다.

좌파들, 이제 고만 해라. 그동안 마이 묵었다 아이가.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 온다…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 온다…

우연히 김규항이 프레시안에 쓴 칼럼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를 읽었다. 김규항을 비롯한 좌파들의 생각이 어떤지 대강은 알기에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사실 이런 류의 글들은 그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명박과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 땅의 수구 극우들을 지극히 이롭게 한다. 따라서, 이런 글들은 좋은 세상을 오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좌파들의 주장은 신자유주의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공공의 적이므로, 신자유주의가 없어지지 않고는 좋은 세상이 오지 않는다로 요약될 수 있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다시 말해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극복될 수 없는 모순을 갖고 있다. 필연적으로 양극화는 심해질 수밖에 없으며, 인간들은 무한 경쟁의 정글로 향하게 되고, 우리가 바라는 인간적인 삶은 도태되어 버린다. 자본주의가 극복되고, 거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그것이 사회주의일까? 이론적으로는 사회주의가 맞겠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이란 종이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좌파들의 또다른 주장은 이명박이나 노무현이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고 본다.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도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바마나 부시나 다를 것이 없다고 얘기한다.

이를테면 “모든 게 이명박 때문” “이명박만 없으면”이라는 ‘시대의 신학’이 목표로 하는 세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명박 이전에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훨씬 더 민주적이며 개혁적인 정권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사회 진보 운동의 목표는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인가? 물론 진보적이되 먹고 사는 일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야 ‘이명박이라는 짜증나는 인간’만 사라져도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대개의 사람들은 이명박이 물러나고 김대중이나 노무현 시절로 되돌아간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

[김규항,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

이 지점에서 나는 좌파들과 결별할 수 밖에 없다. 김규항의 질문에 내가 답하자면, 이명박이 없어지면 이명박이 없어진만큼 좋은 세상이 온다. 한나라당이 사라지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이 된다. 조중동이 폐간되면, 우리 사회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2배쯤 좋은 사회가 된다. 물론, 그 좋은 세상이란 것이 좌파들이 얘기하는 궁극적인 사회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후진 사회는 아니란 얘기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유모차를 끌고나가 촛불을 켤 필요가 없었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대운하 같은 정신 나간 짓거리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돈많은 부자들은 지금보다 더 세금을 많을 냈을 것이며, 복지 예산은 지금보다 조금 더 늘어났을 것이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아이들은 조금 더 행복한 세상에서 공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중동이 없었다면, 이명박 같은 사기꾼이 절대 대통령으로 뽑히지 않았을 것이다. 조중동이 없었다면, 지금쯤 더 이상 북한 퍼주기 얘기는 안나왔을 것이다.

좌파들이 원하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이 권력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조중동은 폐간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투쟁해야 하며, 조중동과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상식과 토론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명박과 조중동을 놔두고, 신자유주의와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념은 반대지만, 이명박과 같은 편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신자유주의가 힘을 못쓰고 하려면, 일단 이명박과 조중동이 사라져야 한다.

좌파들은 이 사실을 당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노무현을 까대던 진보 학계의 거두 최장집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별 말이 없다. 대부분의 좌파들이 그렇다. 좌파들은 왜 이명박이나 조중동보다 노무현을 더 싫어했을까? 왜 그랬을까? 노무현이나 이명박을 동일시하는 그런 좌파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좌파들의 말을 실현하는 길은 혁명을 하는 것밖에 없는데, 내가 보기에 이 지구상에서 2008년 혁명이 가능한 나라, 혁명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길 밖에 없지 않을까? 그들이 진정 평등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원한다면 말이다.

나는 이명박 정권보다 노무현 정권 때가 나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부시보다는 오바마가 나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다. 노무현이나 오바마를 성공시키고, 그 다음에는 그들보다 조금 더 진보적인 인물들을 선택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민노당이 제도권으로 들어온 것이 언제였는가? 노무현 정부 때 아니었는가? 내가 노무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단 한걸음 우리가 원하는 사회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좌파들이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보였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야 우리는 또 한걸음 내딛을 수 있다. 미국도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까지 200년이 넘게 걸렸다. 오바마가 얼마나 진보적 인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200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비주류인 흑인이 권력을 잡게 되었다는 사실. 역사는 참 더디게 흐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좌파들이 열걸음을 원하는데 노무현은 단 한걸음밖에 나아가지 못했다. 좌파들은 그 한걸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한걸음이 눈물이 나도록 소중하다. 오바마가 당선되었다고, 흑인들의 삶이 당장 나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리고 나에게는 그 오바마의 한걸음이 중요하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없어지면 우리는 또 한걸음 내딛을 수 있다. 조중동이 없어지면 우리는 두걸음을 내딛을지도 모른다. 이명박과 싸우지 않고, 조중동과 싸우지 않고, 신자유주의 타파를 부르짖는 것은 거짓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문국현이 노무현한테 배워야 할 것들

문국현이 노무현한테 배워야 할 것들

문국현은 유한킴벌리의 존경받는 경영자였다. 사람 중심이라는 패러다임으로 IMF 시련 속에서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도 훌륭히 위기를 극복하고 회사를 발전시켰다. 그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그럴 것 같다.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후보들 중에는 그래도 개중 나아보인다.

하지만 문국현이 정치인으로서 보인 행보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늘 그의 말 속에는 계산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참여정부에 대하여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다가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자 참여정부 실정론을 들고 나왔다. 돌이킬 수 없는 악수 중의 악수다.

지금 재벌과 언론과 검찰과 그리고 한나라당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특권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노무현 밖에 없다. 문국현이 그냥 그 특권세력에 포함되어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짝퉁을 원조보다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국현이 개혁세력의 편에 서려면 노무현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는데, 참여정부 실정론이라니 이것은 정말 웃기는 전략이다.

문국현의 언론관도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좋은 게 좋다 식으로 이 나라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이에나 언론들이 어떤 세력인데, 그들과 놀아나겠다면 당신은 이미 개혁 세력이 아니다. 노무현이 언론과 맞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을 하고 있지만, 그는 결코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다. 문국현에게 그런 용기와 기개가 있을까?

최근 단일화 논쟁에서도 문국현은 오히려 정동영보다도 후진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문국현 후보로 단일화가 된다면 정동영으로 단일화되는 것보다는 당선 확률이 조금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정동영보다도 더 자신감있고 통 크게 나가야 할 것인데, 여러 조건들을 붙이고 있다. 대선이 19일인데, 16일까지 단일화하겠다는지 또는 방송토론을 6번 해야 한다느니 하는 것들은 문국현의 그릇을 작게 만드는 아주 안좋은 수들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그러면 너무 쪼잔해 보이는 것 아닌가.

정말 단일화의 의지가 있다면 시민 사회 세력에게 맡겨라. 그 사람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라고 하든, 팔씨름을 하라고 하든 그냥 따르면 된다. 이것은 문국현이 정동영보다 먼저 치고 나갔어야 할 전략이다. 아무래도 문국현 캠프의 참모들의 수준이 떨어지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때 어떠했었는가? 정몽준에게로 날아간 김민새의 막무가내에도 노무현은 거의 모든 부분을 양보했다. 계산하지 않고 그냥 국민을 믿은 것이다. 그것이 노무현과 문국현의 차이다. 만에 하나라도 설령 문국현으로 단일화되지 않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문국현은 이제 정치를 시작한지 두 달여 밖에 되지 않은 사람 아닌가.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아무리 정동영이 후진 후보라지만 단일화하기 위해서는 정동영 사퇴 밖에 없다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단일화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북한의 김정일이 아무리 후진 지도자라도 통일을 위해서는 김정일이 사퇴하는 수 밖에 없다면 김정일이 받아들이겠는가?

문국현이 그나마 매력적인 후보이긴 하나 12명의 난쟁이들 중 그냥 조금 키가 큰 것 뿐이다. 걸출한 정치인 김대중, 노무현에 비하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번 대선에서 지든, 이기든 개혁세력이라는 사람들이 분열된 모습까지 보이면 그것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가 될 것이다. 20년 전에 우리는 이미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시간이 많지 않다. 문국현, 정동영 크게 다르지 않다. 문국현으로 단일화되면 좋겠지만, 정동영으로 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면 다른 사람은 총리로 러닝메이트가 되면 된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나는 사실 이번 대선 후보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문국현, 정동영이 단일화를 한다면 그 사람에게 내 표를 줄 것이다. 이것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그래도 안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노무현, 한 번 더 하면 안 되나

노무현, 한 번 더 하면 안 되나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데어버린 우리나라는 87년 “5년 단임제 대통령제”라는 헌법을 만들었다. 이 헌법 덕분에 친일, 독재, 부패 세력의 권력 독점을 노태우, 김영삼 정권으로 끝내고 98년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건국 이래 50년 만이었다. 정권 교체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했지만 그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50년간 이어진 친일, 독재 세력의 무능력과 부패로 나라는 거덜이 났다.

그 국가부도의 위기를 국민의 정부가 막아내고, 참여정부에서 드디어 나라가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했고, 권력 기관들을 원래 자기 자리로 돌렸다. 경기 부양을 하지 않고도 주가지수는 2000을 돌파했고, 수출과 무역흑자는 연일 늘어났다. 기업들은 정치 자금 차떼기에서 해방되었고, 체질 개선을 통해 건실하게 다시 태어났다. 북핵 문제로 위기로 치닫던 북미 관계는 6자 회담과 우리 정부의 외교로 실마리를 잡기 시작했다. 언론은 역사상 최고의 자유를 누리고 있고, 정신통신 기술의 발달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화 대국이 되었다. 우리의 문화는 적어도 아시아권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일제 시대, 독재 시대 때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명예가 하나 둘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정권 교체 10년 만의 일이고, 참여 정부 5년 만의 일이다. 부도 직전의 나라를 민주 세력이 인수해서 이루어 놓은 성과다. 정말 세계 어떤 나라가 IMF 국가 위기를 5년 만에 졸업하고, 50년간 뒤틀린 민주주의와 사회 부조리를 단 5년 만에 바로 세운단 말인가. 정말 대단한 나라, 대단한 국민 아닌가. 그 중심에 걸출한 두 명의 정치인이 있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룬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남북정상회담이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지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남과 북의 정상들이 만났다. 남과 북의 대결 구도가 완화되고 우리 국민들은 북이 우리의 적이 아닌 결국에는 우리가 보듬어 안고 가야 할 우리의 형제자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금강산 관광, 개성 공단 경협이 시작됐고, 철도가 이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남북을 오갔다. 북핵 문제로 북미 간의 마찰이 있었어도 우리 국민을 동요하지 않았다. 평화의 물꼬가 터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두 번째로 남북정상회담을 갖는다. 노무현. 노무현이 김대중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것은 정말 우리 민족의 복이다. 그는 이제 지역주의 온 몸으로 깨부수려 했던 단순한 비주류 야당 정치인이 아니다. 상식과 원칙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로 무장하고 지난 4년 6개월간 그 고난의 세월을 이겨 내고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었다. 이제 그는 정치 뿐만 아니라 경제와 외교의 달인이 되었다. 세계 어떤 국가 지도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런 인물이 이제 6개월 후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다. “5년 단임제”를 규정한 우리 헌법이 이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 노무현이 한 번만 더 이 나라를 이끌어 준다면 정말 우리는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을텐데, 나라를 반석 위에 올릴 수 있을텐데, 정말 안타깝다.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를 만들고도 더 이상 활용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가 정말 아쉽다.

지금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인물들, 특히 유력 주자라 불리우는 인물들이 감히 노무현과 비교가 되는가. 자칫 잘못하면 지난 10년의 세월을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 우리 국민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정치 언론들의 사기에서 얼른 깨어나야 한다.

웃기는 언론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누구한테 더 이익인지, 또 뒷거래는 없었는지,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정치적 의도는 없는지 이런 것들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에게 우리 한반도의 평화, 민족의 안위와 번영은 안중에도 없다. 정말 쓰레기 언론들 아닌가. 이들을 개혁하지 않고는 우리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노무현이 한 번 더 할 수 없다면, 김대중-노무현의 뒤를 이을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그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대통령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김대중은 노무현이 뒤를 이었기 때문에 더 빛나고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의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고 그의 정책을 이어받는 사람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그가 더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유시민, 이해찬에게서 그 가능성을 본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평화 체제가 정착되고, 경제 협력이 강화되고, 이산 가족들이 만나고, 핵이 폐기되고, 북미간 수교가 이루어지고, 마침내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정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정부는 그 기반을 바탕으로 통일을 앞당기는 정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우리의 자랑스런 대통령, 그의 노고에 감사한다.

민주주의의 에일리언들, 6월은 끝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에일리언들, 6월은 끝나지 않았다

20년 전 우리는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최류탄 연기 자욱한 거리를 누볐었다. 그렇다. 민주주의를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수 많은 열사들과 민중들이 흘린 피 위에서 호헌은 철폐되었고, 독재는 물러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전두환, 노태우는 주머니에 29만원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심어 놓은 세력들은 에일리언의 알처럼 민주주의에 기생하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다. 군부독재가 사라진 이후 이 땅의 언론들은 그 부당한 권력을 독차지했다. 제대로 된 기자와 언론인들이 독재에 저항하다 도태된 이후 한국의 언론은 에일리언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건전한 상식과 가치가 전도되었고, 여론은 왜곡되었다. 민주 세력이 흘린 피와 땀은 언론에 의해 매도되었다.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 이 말도 되지 않는 마타도어가 언론에 의해 만들어졌고, 무의식 중에 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좀먹었다. 6월 항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한겨레신문마저 이들 언론 에일리언들과 놀아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뼈아픈 고통이다. 그렇게 힘들고 소중하게 이룩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국회에서조차 유린당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김형오라는 에일리언은 국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어 “피 흘리며 이룩한 민주주의가 밑둥치부터 흔들리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 언론자유와 정당정치가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언론자유의 위기는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당의 위기는 열린우리당과 집권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방안을 “세계적인 웃음거리이자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언론탄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정부는 국민에게 숨기지 않으면 안 될 무슨 비밀이 있냐”고 반문하며 “노 대통령이 언론을 탄압한 독재적 발상을 가진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형오 “피흘려 이룩한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민주주의를 탄압한 박정희, 전두환을 시조로 모시고 있는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라는 자가 한 말들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리게 한 자들이 20년이 지난 후에 하는 말들이다. 역사는 이렇게 뒤틀려가고 있다. 어떤 언론도 이 김형오라는 자의 말을 비판하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피를 나눈 에일리언이기 때문이다. 나는 도대체 김형오라는 작자가 20년전 무엇을 했기에 저렇게 뻔뻔스럽게 말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여 그의 약력을 찾아보았다. 그는 역시 5공의 청와대 비서실 출신이었다. 전두환의 하수인이었던 것이다. 노무현은 이 에일리언들과 싸우는 최후의 정치인이다. 그는 에일리언들에게 극도로 탄압받는 대통령이지만, 오늘도 그들의 심장을 겨누어 일타를 날렸다.
지난날의 기득권 세력들은 수구언론과 결탁하여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국민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은 민주정부를 친북 좌파정권으로 매도하고,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음으로써 지난날의 안보독재와 부패세력의 본색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민주세력 무능론까지 들고 나와 민주적 가치와 정책이 아니라 지난날 개발독재의 후광을 빌려 정권을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독재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해 왔던 수구언론들은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하여 민주세력을 흔들고 수구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 중에 누구도 국민 앞에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군사독재의 잔재들은 아직도 건재하여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고, 민주세력은 패배주의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6월항쟁 20년, 국민주권의 시대 열자”]
누가 뭐라 해도 노무현과 참여 정부는 6월항쟁의 계승자다. 민주주의의 에일리언들과 이렇게 처절하게 맞서는 사람은 노무현 밖에 없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도 역시 노무현이다. 친일과 군부독재의 잔재를 정리하지 않고, 언론을 개혁하지 않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없다. 하여 나는 노무현을 끝까지 지지함으로써 나의 6월항쟁을 계속할 것이다. 노무현과 함께 이 땅의 민주주의를 완성시켜 나갈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그냥 민주주의의 무임승차자로 남을 것인가? 저 에일리언들과 같이 민주주의를 좀먹으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것인가? 우리의 6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