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 인터페이스의 압박

유저 인터페이스의 압박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마음에 걸렸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댓글을 올리는 분들에 대한 나의 무심함이었다. 워낙에 게으르고 잘 챙기지 못하는 성격이라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굳이 댓글에 대해 하나하나 대응하지 않았었다. 급기야 민노씨 님은 이런 나의 게으른 행동에 대해 한마디를 했다.

소요유 블로그는 강렬한 개성을 갖고 있지만,  대화가 가능한 블로그라고 생각한다. 물론 답글이 좀 인색한 편이긴 하지만. : )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워드프레스가 댓글에 대한 답글 기능(Threaded Comment)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변명을 했다. 사실 댓글이 여러개 달려있는데, 답글 기능이 없으면 굳이 댓글 다신 분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저 아래에서 대응하기가 마땅치 않았었다.

이제 워드프레스 2.7로 넘어오고, 테마도 변경하면서 댓글마다 답글을 달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워드프레스 탓을 했던 나의 변명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댓글마다 달려있는 “reply”가 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이제는 되도록 댓글을 주시는 분들에 대해 나의 응답을 제공하려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게을러서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새로운 유저 인터페이스가 내 게으름을 압박하고 있다.

봄맞이 블로그 단장

봄맞이 블로그 단장

겨울이 아무리 춥고 고단했다 해도, 봄은 어김없이 겨울을 제치고 문지방을 넘는다. 경칩이 지나니 햇살이 따사롭고, 완연한 봄내음이 대기에 가득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나무들은 새잎을 틔울 것이고, 꽃들은 꽃망울을 내비칠 것이다.

인간들의 세상은 탐욕을 주체할 수 없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자연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봄을 불러온다.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싱그럽고 따사로운 햇살이 대지를 어루만진다.

봄을 맞아 소요유 블로그도 새단장을 했다. 워드프레스 2.7로 판올림을 한지가 한달도 더 지났는데, 이제야 테마를 바꾼다. 굳이 테마를 바꾸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었지만, 워드프레스 2.7이 제공하는 기능을 좀 더 사용하고 싶었다.

그동안 내 블로그에서 제공하지 못했던 것은 댓글에 대한 응답 기능(Threaded Comment)이었는데, 워드프레스 2.7에는 이 기능이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문제는 테마 또한 댓글에 대한 응답을 정확히 보여주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워드프레스 테마를 검색하다가 내 디자인 원칙부응하는 테마를 찾았다. 바꿔놓고 보니 그전 테마와 그리 다르지는 않지만,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이 마음에 든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그렇게 살고 싶다.

MB는 MBC가 맡는다

MB는 MBC가 맡는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박정희의 유신 군사독재가 한창일 때,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통해 독재와 투쟁을 시작한다. 이에 놀란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에 대해 광고탄압을 자행하고, 150여명이나 되는 기자와 PD, 그리고 아나운서들이 해직을 당한다. 이른바 동아투위의 시작이다. 결국 제정신을 가진 언론인들은 그때 거의 다 거세되었고, 언론에 암흑기가 도래했지만, 해직 언론인들은 재야에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88년 한겨레신문의 창간을 주도한 이들도 이들 해직 언론인들이었고, 지난 30여년간 언론 자유와 언론 운동을 이끄는 정신적인 힘은 거의 대부분 동아투위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이 정권을 잡자 언론 상황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35년 전으로 급회귀해버렸다. 이명박과 박정희를 차이는 투표로 정권을 잡았는가 아니면 군부 쿠데타로 잡았는가의 차이 뿐이었다. 부도덕하고 탐욕스럽기는 매일반이었지만, 거짓말하기는 이명박이 오히려 원조 독재 박정희를 능가한다.

지금은 35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명박이 들어서자마자 한 짓은 KBS와 YTN 사장을 자기 심복으로 교체하는 일이었다. 혁명을 하든, 쿠데타를 하든 맨 처음 해야할 일이 방송국 장악인 것을 이명박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의 당선은 극우언론들의 사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정통성 유지는 군부독재 정권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참여정부 때는 KBS 사장을 정연주라는 인물이 맡고 있었는데, 정연주 역시 동아투위 출신이었다. 정연주 사장 하에서 KBS는 신뢰도 1위의 언론으로 거듭났었다. 그러나 사장이 바뀌자마자 이들은 정권의 나팔수로 급격히 변신한다.

이제 남은 것은 MBC뿐인데, 이명박 정권은 허울좋은 민영화를 통해 MBC를 극우언론이나 재벌들의 먹이감으로 준비하고 있다. 지금 국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미디어 관련 법안이 바로 MBC를 조중동에게 넘기기 위한 사전준비인 것이다. 이명박은 자신의 당선과 정권 유지의 일등공신인 조중동을 나몰라라할 수 입장이 아니기에 어떤 무리수를 쓰든지간에 MBC를 조중동에게 넘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종이 신문의 몰락은 명약관화한 것이고, 조중동이 지금과 같은 언론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상파 방송을 잡아야하는 상황이다.

이명박의 이런 음모에 언론노조가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특히 MBC의 젊은 노조원들이 이명박의 음모를 전세계에 고발하기 시작했다. 35년 전, 동아투위 선배들이 비장하게 자유언론실천을 선언했다고 하면, 이들 MBC 노조원들은 패기있고, 발랄하게 이명박과의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이명박과 언론노조, 특히 MBC 노조와의 싸움은 단순히 방송국 하나를 민영화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이 아니다. 과연 이 나라가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더 나아서는 이 나라가 숨을 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인 것이다.

그 이름도 왜색창연한 이명박(아키히로)을 사람들은 MB라 부른다. MB의 언론장악 음모에 MBC가 나섰다. 이 싸움은 친일과 독재세력과의 싸움이고, 반민주주의와의 싸움이고, 비상식과의 싸움이다. 사필귀정이라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MBC 노조원들을 믿고, 그들을 지지한다. 당신들 앞에는 동아투위 선배들이 있고, 당신들 뒤에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이 있다. 타협하거나 물러서서는 안되고,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당신들과 우리들이 살 수 있는 길이다. MBC가 마지막 희망이 되고 있다.

투표 안한 20대들, 지금 행복한가

투표 안한 20대들, 지금 행복한가

작년 4월 총선 전에, 우리나라 20대들의 투표 참여 의사를 보도한 기사를 보고 나는 크게 실망하여 “20대를 위한 나라가 없는 이유” 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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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 연령별 투표율

실제 20대 유권자와 30대 초반의 유권자들은 50~60대에 비해 절반도 안되게 투표에 참여했다. 총선의 결과는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고,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를 합해 수구 세력이 3분의 2의 의석을 가져가 버렸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이들 20~30대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이 나라를 어떤 꼴로 만들었는지, 게다가 그 결과로 이들 젊은이들은 정말 행복해졌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번듯한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이명박은 청년 인턴제, 공기업 초임 월급 30% 삭감 등의 눈가리고 아웅 하는 정책을 들이밀었다. 청년 인턴이 도대체 뭐하는 정책인지 그 인턴을 직접 뽑아야하는 몇몇 기관들의 담당자들한테 물어보니, 6개월 정도 인턴이라는 명목하에 임시직으로 젊은이들을 고용하여 허드렛일을 시키고 용돈을 쥐어주는 것이라 했다. 그럼 6개월이 지나면 어떻게 되냐니까, 대부분은 그만 두어야 한단다. 청년 실업이 너무 늘어 나니 실업률이라는 통계를 낮추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정책이다. 6개월이 지나면? 나몰라라 하는 정책이다.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신입사원들의 첫 월급을 10~30% 정도 깍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나눌려면 고용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우선이고, 월급을 깎을려면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고위직 간부들부터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텐데, 결국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이 밥이 되었다.

경제 위기가 어쩌느니 하면서 언론들이 설레발을 쳐도 가진 자들은 이 위기 속에서도 배를 불릴 것이고, 결국 힘없는 사람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위기의 쓰나미에 쓸려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가진 자들을 위해 세금을 깍아주고, 없는 사람들은 위한 복지는 축소시키는 세력들. 이러한 세력들이 언론과 입법, 사법,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고, 그로 인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우리 젊은이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기성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들 또한 민주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국민들이 쓰레기 언론에 속고, 사기꾼들에게 속고,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면 20대를 위한 나라 뿐만 아니라 1%의 특권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을 위한 나라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경제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치이고, 정치보다 중요한 것은 도덕이다. 잘 살기를 바랄 것이 아니고, 바르게 살기를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결과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과정이 합당한지, 공평한지를 따져야 한다. 청년들을 위한 나라는 청년들의 참여에 의해, 노동자들을 위한 나라는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청년들이 살아있는 나라는 아무리 힘들어도 망하지 않는다. 청년들의 살아있는 눈빛을 보고 싶다.

왜 서민들은 이명박을 지지할 수 밖에 없을까

왜 서민들은 이명박을 지지할 수 밖에 없을까

한겨레21이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겨레21은 이명박 취임 1주년을 맞이하여, 아직까지도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사람들의 소득을 토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가난한 서민들이 이명박의 정책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부세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들이 종부세 축소와 폐지에 더 많이 찬성했고, 아이들 학원비도 제대로 줄 수 없는 사람들이 사교육을 조장하는 교육정책을 지지했다.

이명박이 지난 1년간 한 일이라고는 상위 1~2%의 특권층을 더욱 배불리는 것이었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 왜 이명박이를 더 지지하고 나서는 것일까? 우리나라 서민들은 메조키스트들인가? 정상적인 사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불가사의한 일이 21세기 인터넷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왜 버젓이 성행하는 것일까? 과연 서민들은 이명박이 어떤 인간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한겨레21이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현상에 대해 변함없이 전문가들의 해석을 덧붙였지만, 핵심을 찌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러한 계급 배반 현상은 서민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도록 우리나라 지배 기제들이 얼마나 견고하고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지난 가을, 나는 도스타인 분데 베블렌을 말을 인용하면서 왜 서민들이 보수적인지를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요, 부자들은 오늘에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다.

<도스타인 분데 베블렌, 유한계급론>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벌어먹기가 힘든 사람들이다. 지배 계급이나 특권층이 자신들을 어떻게 등쳐먹고 있는지를 분석할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텨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여론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조중동문과 같은 수구 언론들의 마타도어는 그야말로 이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극약이다. 이명박이 집권하자마자 왜  KBS와 YTN을 장악하고자 발악을 했겠는가. 신문 시장은 이미 친일과 독재 부역 세력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방송은 아직도 민주 정권 세력들이 경영자로 있었기 때문에 이들부터 축출해야 했던 것이다. 정연주가 사라진 KBS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버렸다.

서민들이 종부세의 구체적 사항을 파악하기도 전에 쓰레기 수구 언론들은 “세금 폭탄”이라는 마타도어로 이들을 융단폭격 해버렸다. 자기 집 한 채 없는 서민들은 종부세 대상자들도 아니면서, 종부세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 세금의 구체적 용도를 알기도 전에 이미 폭탄으로 인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자식들 학원비조차 제대로 마련해주는 부모들이 이명박의 교육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는 “평준화 교육 정책”이 이 땅의 공교육을 말아먹었다는 쓰레기 신문들의 사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서민들을 위한 언론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겨레와 경향 정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힘은 여론 시장에서 너무 미약할 뿐더러, 이들이 가진 편협함이 서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서민들을 위한 정치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이야 원래 가진 자들을 위한 정당이니 그렇다쳐도, 민주당의 궁물 정신과 민노당의 독선은 서민들의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들이 아무리 “신자유주의”가 문제라고 게거품을 물어도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버린다. 이명박이 매일매일 사기를 쳐도 서민들은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용산 참사는 강호순 사건으로 돌려막고, 청와대 여론 조작은 추기경의 죽음으로 돌려 막는 판국에서 이명박이 어떤 짓을 해도 서민들은 그것이 자기들의 목줄을 조이는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수구 신문과 어용 방송들의 여론 장악과 더불어 이 땅 서민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또다른 도구들은 바로 지역감정과 남북 대치 상황이다. 군부 독재의 후예, 차떼기 원조 한나라당은 어떤 짓을 해도 30% 지지세력이 있다. 선거 때마다 투표율이 점점 낮아지는 상황에서 이 30%는 언제나 한나라당에게 국회의 절반 이상의 의석을 몰아주고 있다. 민주 정권 10년으로 남북관계가 많이 좋아졌었지만, 이명박이 들어오면서 다시 남북 대치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빨갱이라면 이를 가는 60대 이상의 노인들은 꼬박꼬박 투표를 한다.

쓰레기 언론들의 여론 장악, 지역 감정, 남북 대치 상황은 우리나라 서민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여기에 젊은이들의 정치 무관심과, 중산층과 특권층들의 탐욕이 더해져 대한민국은 완벽한 매트릭스(Matrix)가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이 땅의 부도덕한 특권층과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매트릭스에서 서민들은 실험실 쥐처럼 생활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카르텔을 깨지 않고서는 서민들의 이명박 지지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좌파들이 정신차려야 하는 이유, 깨어있는 사람들이 정신차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의 시급한 당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이 카르텔을 깨뜨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죄없는 자만이 이명박에게 돌을 던져라?

죄없는 자만이 이명박에게 돌을 던져라?

신약성경 요한복음에 보면,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에 끌고 와서 이 여인을 돌로 쳐죽여야 되느냐고 묻는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예수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때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중에 죄 지은 적이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복음 8:7>

한겨레에서 자칭 B급좌파인 김규항이 쓴  “상식의 이름으로”란 칼럼을 읽었다. 김규항의 글을 좋게 봐주면, 이명박이 물러난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명박이 물러난다고 해서 노동자, 농민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김규항 같은 B급 좌파들이 걱정하는 것은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소위 “상식”이나 “개혁”을 주장하는 자유, 보수주의자들이 독식하는 것이며, 그들 자유, 보수주의자들은 이명박이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부류라는 얘기다. B급 좌파들의 주적은 이명박이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이란 얘기다.

이명박이 물러나면 그들의 상식은 회복이 되는가? 알다시피 오늘 비정규 노동자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다. 더도 덜도 말고 땀 흘려 일한 만큼의 열매를 얻는 일이 상식의 회복일 농민들도, 신자유주의로 녹아나는 다른 많은 인민들도 마찬가지다.

보편적인 상식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삶의 처지에 따라 계급에 따라 상식은 다르다. 심지어 이명박씨의 몰상식 역시 적어도 그 자신에겐 엄연한 상식이다. 세상은 상식과 몰상식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상식으로 나뉘며, 어떤 세상인가는 결국 어떤 상식이 세상을 지배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 유행하는 ‘상식의 회복’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말해서 이명박씨가 물러나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들, 생존보다는 정신적 고통과 미감이 문제인 사람들의 상식의 회복인 셈이다.

<상식의 이름으로, 김규항>

우리나라의 노동문제가 1997년 김대중 집권으로 생긴 것인가? 김대중 이전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절에) 정말 우리나라 노동자, 농민이 행복하게 살았을까? 김대중과 노무현은 아무 문제 없는 정부를 이양받았으나 신자유주의를 맹목적으로 받아드려서 지금 이명박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있는가? 1997년의 외환위기는 김대중 정부가 불러왔는가? 그 당시 김대중 말고 권영길이 집권했으면,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정말 보편적인 상식은 존재하지 않는가? 김규항이 보았을 때, 이명박은 상식적인 사람인가? 김대중, 노무현이 만들어 놓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이명박은 바로 잡으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외환위기를 불러온 것은 김대중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시작은 김대중 때부터도 아니다. 김대중은 그 나이에 외환위기를 극복해 보겠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당시 그가 가진 대안이 많지 않았다. 권영길이 대통령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김대중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까? 정말 신자유주의를 일소하고, 노동자 농민의 세상을 만들었을까?

노무현은 말했다. 새시대의 첫차가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차가 되었다고. 세종이 되고 싶었는데 태종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왜 그랬을까? 대통령이 되고 뚜껑을 열어보니, 설거지 거리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경제 위기를 넘겨보려고 내수 진작을 위해 남발했던 카드가 문제가 되었고, 북핵이 문제가 되었고, 당신 초기부터 한나라당은 “탄핵”은 언급하였고, 민주당 내에 노무현 세력은 애초부터 미미했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은 어떤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을까?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 세월이 “오늘 비정규 노동자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다”라는 한 문장으로 매도될 수 있는 것인가. 정말 이명박 정권의 탄생은 노무현이 깽판을 쳐서 나온 결과인가? 김대중, 노무현은 정말 김영삼, 이명박보다 더 손가락질 받을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보편적 상식 문제도 그렇다. 나는 보편적 상식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거짓말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이런 것이 나에게는 보편적 상식이다. 하는 말마다 거짓말인 사람을 대통령으로 앉혀놓고, 그것은 그 사람의 상식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 김규항은 극단적 상대주의자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이명박의 상식은 상식이고, 김대중, 노무현의 상식은 상식이 아닌가? 왜 이중, 삼중 잣대를 들이대는가?

참여정부때 노무현 씹기를 스포츠로 삼던 그 사이비 좌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최장집, 손호철은 왜 말이 없는가? 노무현이 물러갔으니 이제 신자유주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단 말인가? 좌파들에게 묻고 싶다. 왜 당신들은 그렇게 “독선”적인가? 당신들은 정말 노동자, 농민의 편이긴 한 것인가?

김규항이 “예수전”을 쓰느라 너무 열심히 성경을 읽은 것 같다. 내가 그의 글에서 받은 메세지는 “너희 중 죄없는 사람만이 이명박에게 돌을 던져라”이다.

좌파들, 이제 고만 해라. 그동안 마이 묵었다 아이가.

이제는 추기경의 죽음으로 돌려막아야 할때?

이제는 추기경의 죽음으로 돌려막아야 할때?

어제 저녁, 김수환 추기경이 87년의 생을 마감했다. 아침에 일찍 KBS를 보니 온통 추기경의 죽음에 대한 뉴스 뿐이었다. 처음 서너 꼭지야 그렇다해도 10여분이 넘게 추기경의 죽음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니 점점 지겨워지다가 마침내, 혹시 푸른 기와집에서 또 돌려막기 지령이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추기경이 얼마나 높은 자리인지 잘 알지 못한다. 또한, 그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헌신해 왔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은 진정한 종교인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박정희 시절 탄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섰던 지학순 주교의 이름을 또렷히 기억한다.

지난 성탄절에 이명박이 김수환 추기경을 문병 갔을때,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 추기경에게 “교회에서 성탄예배를 보고 오는 길”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이에 김 추기경은 “이렇게 누워서 맞게 돼 좀 미안하다. 바쁘신 대통령께서 이렇게 오셔서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 추기경은 특히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참 힘이 난다”며 격려했다.

[김수환 추기경 “대통령 말들으면 힘난다”, 한국경제신문]

지난 시절 김수환 추기경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가 잘 모르지만, 이제 병원에 누워있던 추기경은 이명박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힘이 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명박의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구역질이 올라오는데, 추기경은 힘이 난단다. 문병 온 사람에 대한 인사치레인지, 아니면 너무 나이가 들어 판단력이 흐려진 것인지도 모르고, 그도 아니면, 원래 이명박 같은 특권층을 좋아한 사람이지도 모른다.

용산참사를 강호순 사건으로 돌려막겠다던 이명박 정권이 이제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으로 위기를 모면할지 모른다. 이제 정권의 주구가 되어버린 KBS가 온종일 추기경의 삶과 죽음에 대해 방송을 해댈 것이고, 조중동은 온 지면을 추기경 이야기로 도배를 할 것이다. 용산참사와 강호순을 이용한 여론조작으로 궁지에 몰렸던 이명박이 한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혹 저 세상에서 용산 참사로 먼저 가신 철거민 양반들을 만나거든, 빈말이라도 “미안하다”라고 한마디 하고, 그들을 위로해 주시라. 추기경에게는 힘을 주던 이명박의 말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결국 네이버 뉴스를 떠난 이유

결국 네이버 뉴스를 떠난 이유

지난 달까지 네이버 뉴스를 즐겨찾기에 등록시켜 놓고, 하루에 한 번쯤 새로운 뉴스를 보곤 했었다. 네이버 뉴스의 장점은 각 언론사의 뉴스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각 언론사의 웹사이트를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각 기사에 댓글달기 기능이 있어 독자들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쓸 수 있도록 한 것도 초창기에는 큰 장점이었다.

네이버의 정치적 성향이나 뉴스 편집 방향에 대해 그동안 몇 번 문제 제기를 한 적도 있지만, 네이버 뉴스를 떠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지난달 20일에 일어난 용산 참사는 내가 네이버 뉴스를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네이버 뉴스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용하고 있던 사전과 지도 서비스 등도 모두 즐겨찾기에서 지워버렸다.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미디어를 담당하던 자의 “네이버 평정” 발언 이후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해부터 네이버 뉴스에는 부쩍 수구 꼴통들, 알바들, 파시스트들, 그리고 정신이상자들의 댓글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정신나간 댓글들이 예전에도 있었으나 그때는 크게 공감을 얻지 못했었다.

이번 용산 참사 사건을 보도하는 어느 뉴스에 붙은 네이버 댓글들은 도저히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 쓴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역겨운 것이었고, 그런 댓글들이 최고의 공감을 얻고 있었다. 결국 네이버 뉴스는 이런 식으로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렸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부터 네이버 뉴스는 “평정”된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곳에 더 있다가는 내 명에 살기가 쉽지 않겠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미련없이 네이버 뉴스를 지웠다. 내친 김에 네이버 지도와 사전도 다음으로 갈았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신문시장, 네이버로 대표되는 인터넷 포털, 그리고 방송까지 미디어법 통과로 재벌에게 넘어간다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매트릭스가 되어 버린다. 그런 세상이 되면, 이 땅에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는 땅에 더이상 살 이유가 있을까?

용산 참사에 붙은 네이버 댓글
용산 참사 기사에 붙은 네이버 댓글
5천억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

5천억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

삼성그룹 전 회장 이건희의 아들인 이재용이 자신의 아내으로부터 5천억 재산분할을 해달라는 이혼소송을 당했다. 그의 아내가 왜 이혼소송을 제기했는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지 않지만, 그 이유는 모두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이재용은 돈많은 아버지로부터 현금 60억을 받아서 십수년만에 1조원의 재산을 불린 장본인이다. 1조원의 재산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는 단 16억의 증여세만을 납부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불법 의혹을 제기하여 소송을 했고, 법원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사실 삼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무소불휘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다. 그 엄청난 금권으로 언론과 입법, 사법,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삼성의 정치자금을 받지 않은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드물 것이고, 검찰은 정기적으로 관리(떡값)를 받고 있음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드러났다. 그들의 언론 관리야 말하면 무엇하랴.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많고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초법적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 삼성의 황태자 이재용은 자신의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한 모양이다. 결혼한 지 십년이 넘었고, 자식도 둘이나 둔 상황에서 아내가 재산의 절반을 내놓으라며 소송까지 할 정도라면 그들의 결혼 생활이 어떠했는지,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미루어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단돈 5천원을 가지고도 아내를 그리고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삼성의 이재용처럼 1조원이라는 재산을 가지고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돈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족할 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하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행복은 나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온다. 그리고 나눌 줄 아는 마음에서 행복은 싹트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너무나 예쁜 딸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아직까지 건강을 잃지 않고 있으며, 밥은 굶지 않을 정도의 수입이 있고, 그 수입을 쪼개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진리다.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

2월의 어느 날, 비가 내린다. 입춘이 지나고, 봄이 겨울을 제치고 다가서면서 비가 내린다. 이 비는 봄을 재촉하는 비일까 아니면 봄을 시샘하는 비일까.

비는 공평하게 대지를 적신다. 가뭄으로 갈라진 땅에도, 목마름을 견뎌왔던 나무에도, 그리고 가난하거나 또는 돈이 많은 사람들 머리 위에도 공평하게 내린다. 용산 철거민 유족들의 머리위에도 비가 내리고, 유족들을 둘러싼 전경들의 머리 위에도 비는 내린다.

비와 함께 슬픔이 내리고, 그 슬픔은 비를 맞는 모든 이들을 감싼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나 돈이 너무 많아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 슬픔을 떨치지 못한다. 슬픔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인데, 그 행운을 찾으려 사람들은 수많은 세 잎 클로버들을 버렸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찾아오지 않는 행운을 위해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버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머리 위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때로는 분노했고, 때로는 비겁했던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 비는 내리고, 나는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언니네 이발관의 앨범을 쉬지 않고 듣는다. 창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리고, 이석원의 목소리는 내 귀를 잔잔히 울린다.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그대의 익숙함이 항상 미쳐버릴 듯이 난 힘들어
당신은 내 귓가에 소근대길 멈추지 않지만
하고싶은 말이 없어질 때까지 난 기다려
그 어떤 말도 이젠 우릴 스쳐가

앞서간 나의 모습 뒤로 너는 미련 품고 서 있어
언젠가 내가 먼저 너의 맘 속에 들어가
하고싶은 말이 없어지지 않을거라 했지
그랬던 내가 이젠 너를 잊어가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
넌 말이 없었지 마치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나는 너를 보고 서 있어
그 어떤 말도 내 귓가에 이젠 머물지 않지만
하고싶은 말이 없어질 때까지 만이라도
서로가 전부였던 그 때로 돌아가
넌 믿지 않겠지만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하네
난 나를 지켰지 마치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그동안의 근심 어디엔가 버려둔 채

사랑했었나요 살아있나요
잊어버릴까 얼마만에
넌 말이 없는 나에게서 또 무엇을 더 바라는가
슬픔이 나를 데려가 데려가

<언니네 이발관, 아름다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