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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Travel

도덕봉에 오른다고

도덕봉에 오른다고

5월의 산은 아기의 솜털 같다. 초등학생들의 재잘거림이다. 그 싱그러운 푸르름이 막 피어오르는 5월의 산. 그 산을 외면하기란 불가능하다.

오랜만에 계룡산 수통골에 있는 도덕봉에 올랐다. 도덕봉에 오른다고 더 도덕적인 인간이 되지는 않겠지만, 도덕봉을 포함한 모든 산들은 인간을 조금 더 겸손하게 한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자연 앞에 홀로 서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자연과 하나되는 것이다.

산행은 대전과 공주의 경계인 삽재에서 시작되었다. 도덕봉과 자티고개, 금수봉삼거리를 거쳐 수통골로 내려왔다. 산행 거리는 약 8km 정도고, 시간은 약 3시간이 걸렸다. 원래는 금수봉과 빈계산까지 가려고 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산행 전날,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산넘어산GPS라는 앱을 받았다. 이 앱을 이용하니 산행동안 거의 모든 행적이 기록되었다. 바야흐로 이제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는 빅데이터 시대에 사는 것이다.

블로그에 산행의 흔적을 남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그림을 첨부한다.

도덕봉

 

다자이후 텐만구

다자이후 텐만구

다카오 선생을 만난 것도 선생과 같이 다자이후(大宰府)에 간 것도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삶이란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선생은 큐슈국립박물관에 간다고 했었고,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었다. 안 갈 이유가 없었기에 선생을 따라 나섰고, 선생은 박물관을 보기 전에 텐만구(天満宮)에 들르자고 했다.

텐만구는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스와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기리는 유명한 신사이다. 텐만구 본전 앞에 토비우메(飛梅)는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데, 미치자네의 아름다운 시에 감응하여 교토에서 날아왔다 한다.

동풍이 불면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내다오
매화여, 주인이 떠났다고 봄을 잊지 말고

東風ふかば におひおこせよ
梅の花 あるじなしとて 春な忘れそ

봄바람에 매화 향기가 천 년 넘은 녹나무 아래로 퍼지고, 마음 심 모양의 연못에는 금빛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복을 빌고 나오는 길에 우메가에모치(梅ケ枝餠)를 한 입 베어물고 있었다.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만난 봄은 매화 향기와 함께 오래토록 기억에 남았다.

소녀와 고릴라, 그리고 바다

소녀와 고릴라, 그리고 바다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 소리 들려오는 이 곳은
인적 드문 어느 작은 어항
바람이 분다

바다에 나갔던 기억조차 없는 폐선 한 척
그 옆에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고릴라 한 마리
소녀는 고릴라를 사랑했고, 꽃을 귀에 꽂아 주었고
그래서 고릴라는 슬펐다

그들을 지켜보던 동네 할배
가슴 답답한지 담배 물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색바랜 빈 의자만 덩그라니 남았다

소녀와 고릴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에 가면 고릴라와 소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사려니 숲

사려니 숲

사려니 숲에
갔었지

사각거리는 붉은 송이 밟으며
안개가 스며드는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지

사방은 고요하고
숲은 침묵에 잠겨 있었지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무성한 숲 속
노루 한 마리
시간과 함께 침묵 속에 멈춰 있었지

그곳은
차마 사람의 발길이 닿지 말아야 했을
완전한 세상
속세로부터 이어지던 숲길이
점점 사라지고 말았지

사려니 숲에 다시
갈 수 없었지

<소요유, 2013년 7월>

어제도 사막 모래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 배 열 배나 큰 나무들이
몇 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리 십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질
나도 그대도 단풍드는 날이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 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준 걸
고맙게 받아들인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간산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도종환, 사려니 숲길>

Le Grand Bleu

Le Grand Bleu

튀니지 Gammarth 바닷가 언덕에 있는 식당 이름은 <Le Grand Bleu>였다.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그곳에서 한없이 펼쳐진 지중해의 그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 바다 색깔은 인간이 가진 언어로는 쉽게 형용하기 어려웠다. 넋을 잃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웨이터들은 끊임없이 음식을 나르고, 여기저기서 불어와 영어가 섞인 대화들이 오갔지만 나의 시선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에 시칠리아 섬이 있을 것이고, 아직도 바다 속에서 돌고래와 놀고 있을 쟈크가 있을 것만 같았다. 인간들의 삶은 참으로 비루하지만, 저 바다는 그 비루함과 그 비루함 속에 녹아있는 사랑과 증오마저도 모두 감싸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저 바다는 끝없이 자유로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 것도 거칠 것 없는 그 고독한 자유를. 그렇다. 무한한 자유는 무한한 고독이다. 그 쓸쓸함을 견딜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자유를 만끽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늘 그렇듯이 이렇게 공평한 법이다. 바다는 아버지를 데려갔고, 엔조를 데려갔다. 쟈크는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바다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튀니지의 Gammarth에 가면 Le Grand Bleu 식당에 가야 한다. 그러면 Le Grand Bleu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냉새우보리밥의 추억

냉새우보리밥의 추억

파리에서 튀니스로 가는 에어 프랑스 비행기 안의 여자 승무원들은 육감적이었다. 그들이 음료수와 식사를 나르기 위해 비행기 복도를 이리저리 지날 때마다 이름 모를 향수 알갱이들이 흩날렸다. 그 향수 알갱이들은 아무렇게나 구겨져서 자고있는 승객들을 깨웠다.

승무원들이 내놓은 음식은 생전 처음 본 듯한 것이었다. 이것이 프랑스식인지, 중국식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국적 불명의 음식이었다. 작은 새우 세 마리와 보리 알갱이들의 조화. 볶음밥 같이 보이는 이 음식을 입에 가져가는 순간, 그것의 냉기가 소름을 돋게 했다. 평소에는 정말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새우와 보리가 서로 어울리지 못한 채 곤두 서 있었다. 나는 그 음식을 “냉새우보리밥”이라 이름지었다.

17시간 정도의 여정에 몸은 피로하였고, 허기가 져서 냉새우보리밥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이가 시려웠고, 한기가 온몸을 감샀다. 따뜻한 차를 한모금 마심으로써 그 한기를 조금씩 달랬다.

비행기는 지중해를 건너고 있었고, 승객들은 냉새우보리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길을 떠나면서 듣는 노래

길을 떠나면서 듣는 노래

비행기들은 큰 굉음을 내면서 사라지거나 나타났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공항을 서성거렸다. 삶은 늘 그런 것이었다. 어디엔가 정착하지 못하고 늘 무엇을 위해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었다. 마침내는 떠남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고, 사람들은 떠나기 위해 떠나버리는 순간을 맞게 되었다.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동안 공항에는 그리그(Edvard Grieg)의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가 은은하고 낮게 울려 퍼졌다. 그 노래를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이 노래보다 더 잘 표현하는 곡은 없는 것 같았다.

노르웨이의 농부 페르퀸트는 사랑하는 연인 솔베이지를 홀로 두고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떠난다. 세월은 흐르고, 페르퀸트는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오려 하지만, 도중에 산적을 만나게 되고, 벌었던 돈을 모두 빼앗겨 버린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저당잡혔던 그 세월도 고스란히 날려버린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고향 집. 어머니는 오래 전에 돌아가시고, 백발이 성성한 늙은 솔베이지만이 페르퀸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단한 페르퀸트는 솔베이지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나고 만다.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으면서 말이다.

솔베이지의 노래에는 기다림과 떠남에 대한 슬픔과 아련함이 그렇게 베어 있었다. 이 노래가 낮게 깔리는 동안 북적거리던 공항도 서성거리던 사람들도 시간이 멈추어지는 사이 잠시 안식하였다. 슬픔과 아련함은 Happily Ever After 보다 길게 여운이 남았다.

The winter may pass and the spring disappear,
the spring disappear.
The summer too will vanish and then the year,
and then the year.
But this I know for certain, you’ll come back again,
you’ll come back again.
And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iting then,
you’ll find me waiting then.

God help you when wandering your way all alone,
your way all alone.
God grant to you his strength as you’ll kneel at his throne,
as you’ll kneel at his throne.
If you are in heaven now waiting for me,
in heaven for me.
And we shall meet again love and never parted be,
and never parted be!

<Edvard Grieg, Solveig’s Song>

우중 맨발 산행

우중 맨발 산행

하늘은 여전히 잔뜩 흐려 있었다. 어제도 세찬 비가 쏟아졌고, 아침까지만 해도 빗줄기는 좀처럼 가늘어지지 않았다. 모처럼 계획했던 산행이 무산될 것 같았지만, 오후들어 비는 점점 잦아들었다.

산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비가 와서인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옅은 안개가 어디선가 밀려 왔다. 6월의 녹음은 점점 짙어졌다. 13Km에 달하는 임도에 어떤 술만드는 회사가 황토를 뿌려 놓았다 한다. 지난 밤의 세찬 비 때문에 군데군데 누런 흙이 씻겨 내려갔다. 신발을 벗고 그 누런 흙길에 발을 디뎠다. 발가락 사이로 찰흙 같은 황토가 새어 나왔다. 마치 모내기철에 논흙을 밟는 그런 부드럽고 미끈한 느낌이었다.

비를 맞은 나무들은 피톤치드를 왕성하게 뿜어냈다. 그 맑은 공기가 땀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왔다. 짙은 녹음과 옅은 안개, 그리고 부드러운 흙을 맨발로 걸으니 이 위대한 어머니 대지와 비로소 하나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은 온갖 악다구니들로 아우성이었지만, 비가 온 후의 숲 속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 고요하고 신비로운 숲은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상쾌하게 해 주었다.

어머니 대지 위의 이름 모를 나무와 들꽃들이 비를 맞아 청초하였고, 나도 그것들과 함께 어머니 대지 위에 맨발로 뿌리를 내렸다.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자연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없을 것인데, 속세를 떠날 수 없다 할지라도 가끔은 이렇게 숲속에서 세례라도 받아야 할 것 같다.

비가 오는 6월에는 계족산에서 맨발 산행을 해야 한다.

인간으로부터 도망친 별

인간으로부터 도망친 별

밤하늘에 별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오리온 별자리가 또렷하게 내 얼굴로 내려왔다. 대학교 때 강화도로 엠티를 갔었을 때도 그랬었다.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는데 밤하늘은 셀 수 없는 별들로 출렁거렸다. 옛 사람들이 왜 미리내라고 불렀는지 알 것도 같았다. 별똥별도 여러개 떨어졌고, 나는 여러 가지 소원을 떨어지는 별동별과 함께 마음 속 깊이 간직했다. 밤공기는 바삭바삭했다. 그 바삭거리는 공기가 내 가슴 속을 훑고 지나갔다. 조각배 같은, 아니 아리따운 여인의 눈썹 같은 그믐달이 별들 사이로 헤엄쳐 갔다.

밤하늘에 저 별들이 없다면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하지만 도시의 밤하늘엔 별들이 떠난지 이미 오래다. 도시의 인간들은 밤하늘을 올려다 보지도 않을 뿐더러 별들이 이미 떠난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별들이 떠난 밤하늘 아래 살고 있는 이들은 네온싸인들만이 번쩍이는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인간들이 만든 불빛은 별빛보다 밝았지만 별빛보다 한없이 추해 보였다. 그 번쩍거리는 불빛을 뒤로 하고 별들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슬픈 일이었지만 인간들은 그 슬픔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20여년 만에 찾은 대둔산에서 도시로부터 그리고 인간으로부터 도망친 별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간들이 별들로부터 도망친 거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별들이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별빛에 취해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행복했다.

계림의 이강몽환(漓江夢幻)

계림의 이강몽환(漓江夢幻)

계림은 늘 연무에 휩싸여 있었다. 엷은 안개 속에 드러난 수만개의 봉우리들은 한폭의 중국 산수화처럼 명도를 달리하며 저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봉우리들은 능선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산맥을 형성하지 않았다. 작은 봉우리들이라도 들판에서 갑자기 불끈 솟아올라 버린 것이다. 그것들은 인간들과 같이 있었지만 인간들과 뒤섞이지 않았다. 인간들은 봉우리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어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자연과 인간은 그렇게 나뉘어져 있었다.

봉우리들 사이로 작은 강이 흘렀다. 사람들은 그 강을 이강(漓江)이라 불렀다. 이강의 물은 맑았고, 봉우리들은 물위에 그것들의 자태를 드리웠다. 그것들은 하늘로도 솟아 있었고, 물 아래로도 꺼져 있었다. 수면을 경계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이강과 봉우리들과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마치 꿈속의 환상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강몽환(漓江夢幻).

자연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도 인간들의 삶은 팍팍했다. 어부들은 가마우지 목에 줄을 매달아 그것들이 잡은 물고기들은 빼앗고 있었다. 가마우지들은 본능으로 잡아올린 물고기들을 삼킬 수 없었다. 목을 조이고 있는 줄이 물고기를 계속 입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자유롭게 물고기를 삼킬 수 없는 가마우지의 처지가 불쌍했고, 가마우지 앵벌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인간들의 삶이 안쓰러웠다. 마을 사람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호객을 했고, 몇몇 아이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손을 벌리며 구걸을 했다. 계림의 자연은 중국 산수화 그대로였지만, 인간들은 그 산수와 썩 어울리지 못했다. 중국 산수화에 인간의 모습이 빠져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추석 즈음에 피었어야 했을 계수나무 꽃이 이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꽃의 모양은 볼품 없었지만, 은은한 향기는 멀리 퍼지고 있었다. 계수나무 꽃의 향기와 밤하늘의 달이 공감각으로 어울렸다. 그 달빛이 물에 어리고 멀리 산들의 무정형하고 불규칙한 윤곽선이 가물거렸다. 계림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