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Tag: 문재인

헬조선, 과연 누구 책임인가

헬조선, 과연 누구 책임인가

유명 대학 교수들이 페이스북에서 헬조선에 대한 논쟁을 벌인 모양이다. 한 교수는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빈정대는 청년 세대를 철이 없다고 꾸짖었고, 다른 교수는 청년 세대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 세대의 오만이라고 맞받았다. 하지만, 헬조선 문제를 세대 대결로 치환하는 것은 논점이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헬조선은 세대의 문제가 아니고, 계급의 문제이고 사회 구조의 문제임을 알아야 이 논쟁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우선 청년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 나라는 헬조선인가? 이 땅의 대다수 청년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나라는 정의롭지 못하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잘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대다수 청년들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견고한 벽이 있다. 헌법 상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민주공화국이지만, 사실은 신분제나 계급제 국가라고 봐야 한다. 그래도 이전 세대에서는 어느 정도의 신분 상승이 허용되었으나, 이미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났다. 희망이 없는 사회, 청년이 신음하는 사회, 아이 낳기를 꺼리는 사회는 분명 헬조선에 가깝다.

왜 이렇게 되었나? 해방 이후 첫단추를 잘못 꿰었다. 단죄되어야 할 친일파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모든 일이 꼬였다. 그 이후 수십 년간 (소위 산업화 세력이라 불리는) 군부 독재가 들어서면서 친일파와 독재 부역 세력이 명실상부한 지배 세력이 되었다. 이들이 재벌, 언론과 결탁하여 반칙과 특권으로 자신들의 계급을 만들어갔다. 이들은 보수세력이 아니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기회주의 세력일 뿐이다. 이 나라에서는 당연히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았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탄압을 받거나 죽임을 당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개, 돼지 취급을 당했다.

청년들은 자신의 부모 세대나 할아버지 세대를 비난하지 않는다. 설령 그들이 기성 세대를 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기성 세대는 청년들에게 미안해 해야 한다. 한 줌도 안 되는 친일과 독재 부역 세력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만들었다. 기성 세대의 잘못은 이런 기회주의 지배 계급을 타파하지 못하고 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한 것이다. 따라서 계급의 틀은 나날이 공공해진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연대나 협력은 개나 줘버려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대학에서는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 그런 인간들만이 지배 계급에 들어갈 자격이 생긴다.

그렇다면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인가? 두 번의 정권 교체를 경험하면서 일말의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무현의 가치가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정의로운 나라에 다가서고 있다. 헬조선을 만든 건 기성 세대지만,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청년들의 몫이 되었다.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그 희망은 점점 커질 것이다.

지배 계급은 몹시 견고하다. 행정부만을 제외하고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상부구조를 장악하고 있다. 이 구조를 타파하지 않고는 해피조선은 가능하지 않다.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그리고 그 청년들이 기성 세대가 되었을 때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하라. 예전에는 헬조선이었지만, 지금은 해피조선이라고. 청년들의 건투를 빈다.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 중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 문재인. 가장 대통령을 잘할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았으니 당분간 이 나라의 걱정거리는 많이 줄었다.

오늘 국정운영 100대 과제 발표를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정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발표의 내용과 형식이 최고 수준이고, 지난 2달 동안 이 일을 진행한 사람들의 면면이 훌륭하다. 믿음직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5년간 국정을 경험했다. 경험으로 봐도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그는 명석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우월한 외모까지 겸비했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권력의지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 노무현의 운명을 본인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공과 사의 구분이 명확하고, 원칙을 끝까지 지키며, 리더로서의 무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다. 늘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우리 사회 약자 편에 서서 일을 한다. 품성으로 봐도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이 나라의 복이다.

10년 전쯤 노무현 대통령은 오늘 발표와 비슷한 형식의 연설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던 때였다. 사방이 적이었고, 노무현은 너무나 많은 오해와 핍박을 받던 시절이었다. 연설의 달인이었던 노무현조차 버거워했던 연설이었다.

오늘 문재인 정부는 정말 세련되고 근사했다. 그리고 여유로웠다. 10년 전의 당황하던 노무현이 있었기에 오늘 이렇게 유능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민주 세력이 집권 경험을 쌓아 가면서 이제는 도덕성뿐만 아니라 능력으로도 기회주의 세력을 압도하고 있다. 내년 지방 선거, 그 이후 총선을 통해 지방 권력과 의회 권력마저 가져온다면,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늘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발표를 보았다면, “이야, 기분 좋다!”고 했을 것 같다. 그가 많이 보고 싶다.

노무현, 당신의 흔적

노무현, 당신의 흔적

노무현은 슬픔이다. 그것도 아주 깊은, 너무나 깊어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아련해진 그런 슬픔이다. 그것은 가슴먹먹함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아니 잊혀질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저린 가슴 속의 비통이다. 아픔이고, 눈물이다. 그의 따뜻한 미소를 생각하면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흐르다 고요한 침묵만 남는다.

8년의 세월이 흘렀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문재인을 친구로 두었기에 대통령감이 된다고 자랑스럽게 외쳤던 당신이 떠나고, 그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었다. 당신이 마지막 글에서 말한 운명, 그 운명이 문재인을 꼼짝 못하게 했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부활이다. 그가 노무현의 가치를 완성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무현은 그리움이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아니 채울 수 없는 보고싶음이다. 당신의 정의로움, 용기, 수줍음, 재치, 순발력, 포효, 그리고 발가락 양말. 그 모든 것이 그립고 보고 싶지만, 당신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리움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고 했던가.

해마다 5월이면 당신의 꽃이 필 것이고, 우리는 당신의 흔적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견뎌야할 천형인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존경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저 세상에서는 부디 안식하시길 기도합니다.

공감, 위로, 감동 그리고 대통령

공감, 위로, 감동 그리고 대통령

“[…] 철 없었을 때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빠와 엄마는 지금도 참 행복하게 살아 계셨을 텐데. 하지만 한번도 당신을 보지 못한 이제 당신보다 더 큰 아이가 되고나서 비로소 당신을 이렇게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제게 사랑이었음을, 당신을 비롯한 37년 전의 모든 아버지들이 우리가 행복하게 걸어갈 내일의 밝은 길을 열어주셨음을. 사랑합니다, 아버지.”

딸이 태어난 날, 아버지는 딸을 보기 위해 병원을 가다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졌다. 딸은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37년이 지난 후, 그날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 먹은 딸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버지를 부르며 흐느낀다. 사랑한다고. 편지를 읽던 딸도 울고, 수화통역사도 울고, 기념식장에 참석한 이들도 울고, TV를 보던 시청자들도 울고, 대통령도 울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용히 다가가 그 흐느끼던 딸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공감이 위로가 되고, 위로가 감동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그는 대통령이 아니라 다시 돌아온 아버지였다. 깊은 슬픔이 깊은 위안으로 승화되었다. 편지를 읽은 그 딸뿐만 아니라, 그 광경을 지켜본 모든 이들이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

문재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성경륭은 그를 “침착한 노무현”이라고 했지만, 오늘 그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노무현”이었다.

15년 전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이 나라는 다시 한 번 로또를 맞았다. 노무현의 소중함을 몰랐던 국민들이 이제는 알 것이다. 노무현의 뒤를 잇는 문재인이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를.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라니, 하늘이 이 나라를 버리지는 않은 게다.

비용을 말하는 자들에게

비용을 말하는 자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겨우 5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온나라가 순식간에 정상궤도를 찾아간다. 마치 못된 마법사의 주술에서 빠져나온 듯 동화같은 얘기들이 펼쳐져서, 지난 5일 동안 벌어진 일들이 무척이나 낯설고 초현실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이다 같은 지시 한마디에 국정교과서는 폐지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광주항쟁 기념식에서 제대로 불려지게 되었다. 인천공항의 1만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고, 세월호 참사 때 세상을 떠난 기간제 선생님들의 순직이 인정받게 되었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상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지난 9년 동안 세상은 황폐했고 소모적이었으며 잿빛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펴겠다고 하니, 어떤 이들은 누가 그게 좋은 줄 몰라서 못했냐고, 돈이 없어서 못했다고 비아냥거린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5년간 4조원의 돈이 든다고 훈계한다. 물론 돈이 들것이고, 그것도 많은 돈이 들것이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예산이나 비용부터 꺼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속내는 그 일이 하기 싫은 거다. 어떡해서든 해야 할 일이라면 예산이나 비용은 부차적인 문제다. “돈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명박이 5년 동안 해먹은 국민 세금이 189조원이다. 4대강 강바닥 파는데만 22조원의 세금이 들어갔다. 왜 그들은 이런 천문학적인 세금 낭비에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데 드는 비용 4조원에는 그렇게 인색한 것일까.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고, 그들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연간 400조의 예산을 가진 나라에서 5년간 4조원의 돈은 큰 문제가 아니다. 189조의 세금을 날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문제는 의지다.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는 의지. 그런 의지로 충만한 문재인 대통령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황사가 걷히고 노무현이 보고 싶었다

황사가 걷히고 노무현이 보고 싶었다

며칠 전부터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가 온 땅을 뒤덮었다. 미세먼지 지수가 300을 넘었고,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모래바람이 휘몰아쳤다. 5월 9일, 비가 내리자 비로소 황사가 걷히고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명박근혜의 지난 9년은 마치 지독한 황사에 갇힌 한반도였다. 정치, 경제, 안보, 외교 등 무엇 하나 시궁창에 쳐박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물론, 모든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한줌도 안 되는 기회주의 세력에게 속아 용감하게 묻지마 투표를 자행한 덕분이었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5월 9일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비로소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을 수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에 이어 이제 제대로된 세 번째 민주정부를 맞게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그의 당선을 보면서 내내 노무현 대통령이 보고 싶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오늘 얼마나 기뻐했을까. 그가 뿌린 씨앗이 이제 서서히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깨어났고, 그들은 세상이 바뀌기를 원했다. 이제 노무현의 꿈이 문재인을 통해 실현될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다. 더디지만, 세상은 조금씩 좋아질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의 자랑스런 국민이 되었음을 자축한다.

문재인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민주정부 만세!!!

홍준표가 남자인 것을 반대합니다

홍준표가 남자인 것을 반대합니다

“동성애를 반대합니까?” 홍준표가 물었다. 그 질문은 문재인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속임수였다. 갑작스런 동성애 질문에 문재인이 제법 선방하긴 했지만, 이건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동성애는 성적 취향과 지향의 문제다. 다른 사람의 (선천적) 취향을 찬성 또는 반대하겠다는 발상은 말이 안 된다. 동성애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지만,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는 없다.

동성애를 반대할 수 있다면, 이성애도 반대할 수 있어야 하고, 당신이 남자 또는 여자인 것도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홍준표가 남자인 것을 반대합니다.” “홍준표가 이성애자인 것을 반대합니다.” 이런 주장이 말이 되는가? 홍준표가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는가? 태어나 보니 남자였는데, 어쩌라구? 남자보다 여자를 더 좋아하는데, 반대한다면 어쩌라구?

동성혼의 합법화는 찬성 또는 반대할 수 있다.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를 이성 간으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동성 간으로 확대할 것인지의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필요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땅의 진보세력들이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아직 동성혼을 합법화하거나 아니 최소한 공론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일제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친일파조차 단죄하지 못한 나라다. 친일과 독재의 부역세력들이 거의 모든 권력을 잡고 있는 나라다. 이 세력들을 권력에서 제거하지 못하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 그렇기에 정권교체가 먼저다.

진보세력은 조급함을 떨쳐야 한다. 문재인의 성공을 이용하여 서서히 주류로 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참여정부 때처럼 수구세력과 한패가 되어 문재인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진보가 진보하지 못하고 퇴보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진보의 현명한 전진을 기대해 본다.

대통령의 언어

대통령의 언어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습니까?”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통쾌한 일격이다. 따라쟁이 안철수 후보도 “지금은 남북대치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주적이다”라고 말했다. 훌륭한 뒷북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승민이나 안철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북한을 주적이라 얘기하는 것은 쉽다. 국방부 장관이나 군의 장성들이 북한군을 주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과 전쟁이나 전투가 일어나면 싸워서 이겨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군인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지만, 대통령은 이 나라 백성들의 삶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지도자이다. 따라서 그 책임의 정도가 국방부 장관이나 장성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은 주적임을 알지만 주적이라 말하지 않아야 하고, 때로는 당장 전쟁이라도 해서 저들을 쓸어 버리고 싶지만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다른 나라 전쟁에 파병을 하고 싶지 않지만 파병해야 하는 결정도 직면한다. 그렇게 쉽게 말하고 그렇게 쉽게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5천만 국민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언어는 신중하고 무거워야 한다.

전쟁을 하자고 쉽게 내뱉는 족속들의 전제는 그 전쟁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이유는 남북전쟁 이후 미국 본토에서 한 번도 현대전이 일어나지 않아 전쟁의 참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적이나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이다. 물론 통일까지 가면 더 좋겠지만, 그것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그리고 일본의 아베 등 이런 부류의 사람들 속에서 한반도 평화와 공존, 번영을 이루어낼 실력있는 지도자가 우리에겐 절실하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이다.

손자병법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이런 까닭에 백번 싸워 백번 모두 이기는 것은 최상의 방법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다.

문재인에게서 그런 지도자를 본다. 문재인은 김대중, 노무현에 이어 대한민국의 사실상 세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고,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대선 그리고 무작위성

대선 그리고 무작위성

무작위성은 인위적인 요소와 규칙이 없는, 또는 의도적으로 조작이 없는 특성을 가리킨다. 모집단의 특성을 알기 위해 표본을 추출할 때 표본의 무작위성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 뽑힌다. 어떤 의도를 갖고 표본을 추출하면 그 의도가 결과에 반영되기 때문에 무작위성이 없는 표본은 모집단을 대표할 수 없다.

김어준이 제작하고 최진성 감독이 연출한 <더 플랜(The Plan)>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지난 18대 대선의 개표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선관위가 발표한 공식 개표 자료를 바탕으로, 일체의 선입견이나 정황을 배제하고 오로지 자료 분석 기법으로 통계적 증거를 제시한다.

검증 결과, 투표지 분류 기계가 분류하지 못한 미분류표 112만표(전체 투표수의 3.6%) 중에 무효표는 10%였고 나머지 90%는 정상표였는데, 그 미분류된 정상표가 3:2의 비율로 문재인보다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러한 현상은 251개 개표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무작위성이 담보된 분류 기계라면 분류표의 후보 간 득표 비율과 미분류표의 후보 간 득표 비율이 거의 같아야 한다(K=1). 지난 18대 대선의 경우, 투표지 분류 기계는 이러한 무작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은 투표지 분류 기계에 어떤 의도가 심어져 있음을 방증한다.

영화가 공개되고 며칠 후, 선관위가 보도자료를 냈지만, 왜 K=1.5가 나왔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물론 거의 모든 언론들이 이 영화가 던지는 의혹을 외면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어떤 정당도 이 의혹에 대해 아무런 논평이 없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매트릭스(Matrix)란 말인가.

한국 언론은 세월호 선내 방송

한국 언론은 세월호 선내 방송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이 나올 때,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황급히 해경의 경비정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이 방송만 아니었어도 훨씬 더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살 수 있었다. 아니, 승객들을 제대로 안내하는 방송만 했어도 거의 모든 승객이 구조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뭔가 의도가 있지 않고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국민의당 경선이 시작될 무렵, 거의 모든 언론이 안철수 띄우기에 나섰다. 공중파와 조중동, 종편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언론이라 알려진 한경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모든 기득권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어떡해서든 문재인 당선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99%의 언론이 대동단결하여 문재인 죽이기를 하고 있다. 일사분란하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하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정말 적폐가 청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과 독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나라의 지배계급에 치명타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조하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 때의 선내 방송처럼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호도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조작되고 왜곡된 여론조사로 문재인과 안철수의 양자대결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만약 유권자들이 이런 언론에 또다시 속는다면, 이 나라는 세월호처럼 침몰할 것이고, 대다수 국민들은 영원히 지배계급의 개, 돼지로 살아갈 것이다.

촛불민심은 정권교체이고, 그것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문재인이다. 지금 이 나라의 언론들은 세월호의 선내 방송처럼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한국 언론은 민중의 적이다. 그들을 믿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