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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 에어”보다 더 갖고 싶은 것은

“맥북 에어”보다 더 갖고 싶은 것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선보인 맥북 에어(MacBook Air)는 구미가 당기는 물건이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낸 그런 노트북이어서 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름신의 강한 유혹을 느꼈다. 하얀 맥북을 사용하면서 느꼈던 무게의 압박감, 견고하지 못하고 때가 잘타는 외관에 조금은 실망했던 터라 맥북 에어의 출현은 내가 가려워했던 곳을 아주 정확히 긁어주는 것이었다.

맥북 에어보다도 더 갖고 싶었던 것은 그것을 발표하는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이었다.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 낡은 운동화, 단상 위에 물병 하나. 소탈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날카롭고,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는 그의 외모와 목소리. 스티브 잡스의 맥월드 2008 프리젠테이션은 거의 완벽한 쑈였다. 1시간 30분간 계속된 그의 프리젠테이션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최고 경영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자금이나 만들고,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또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그런 경영자가 아닌, 진정 기술 혁신(innovation)을 알고,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그런 회사와 경영자, 직접 자기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시현해 보이면서 “Isn’t it cool?”을 연발할 수 있는 경영자, 그런 것이 부러웠다. 그의 자신감과 실력과 아이디어와 노력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생겨날 수 있을까? 지금으로 봐서는 극히 부정적이다. 과학과 기술을 천시하고, 이공계를 기피하며, 도전 정신이 사라진 나라에서 스티브 잡스는 나올 수 없다. 프로그래머가 천대받고, 3D 업종으로 전락한 나라에서 스티브 잡스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공부를 좀 한다는 아이들은 의사가 되어 (그것도 성형외과) 사람들 점이나 빼고 있고, 또는 검사가 되어 권력의 개 노릇을 하려 하는 나라에서 무슨 스티브 잡스가 나오겠는가.

인터넷으로 중계된 그의 발표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미국의 강대함을 깨달았다. ‘부시가 아무리 깽판을 쳐도 미국이 쉽게 망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는가?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맥북 에어를 발표하는 스티브 잡스를 바라보면서 나는 그런 자괴감과 열등감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나저나 맥북 에어 살 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박종철, 언제 우리는 그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박종철, 언제 우리는 그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영정 속의 박종철은 언제나 20대 초반의 앳띤 얼굴이다. 그가 죽은지 21년이 되었지만 그는 늘 순수한 청년으로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 20대 청년의 죽음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불씨가 되었고, 그의 목숨을 댓가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가 가고 21년이 지났다. 그와 함께 20대를 보냈던 청년들은 지금 다 40대의 중년이 되었다. 청년 시절, 독재의 부당함에 당당히 맞섰던 그들도 세월의 버거움에 두 손을 들었다. “도덕성이 밥 먹여 주냐”며 그들은 지난 세월을 저주했고, 자신의 안위만을 갈구했다.

박종철과 함께 보냈던 20년 전의 시간은 이제 화석이 되었다. 영웅은 전설이 되지 못하고, 영정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1년 전에도 그에게 미안했던 나는 이제 그에게 고개를 들지 못한다.

언제 우리는 그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김광석, 나의 청춘이여

김광석, 나의 청춘이여

노래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에 묻혀있던 옛 기억들이 솔솔 풀려나온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단 한 명의 가수를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김광석을 꼽는다. 그것은 더없이 아름다운 그의 노래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노래와 함께한 나의 청춘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20대, 30대는 어김없이 그의 노래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벌써 12년이 되었다), 그의 죽음은 벼락같이 찾아왔다. 너무도 갑작스런 그의 부음은 전혀 현실감이 없었고, 그 누구도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는 분명한 이유도 없이 저 세상으로 갔다. 마치 기타 하나로 지상에서 1000번의 공연을 해야만 했던 타락천사처럼. 그 공연을 무사히 마치면, 다시 천상의 세계로 되돌아갈수 있었던 바로 그 천사처럼 아무 말 없이 떠나갔다.

그가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여전히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노래에 뒤섞여버린 내 청춘은 그와 함께 떠날 줄 몰랐다. 그의 부재는 남겨진 그의 노래에 아련함을 더해 주었고, 그가 떠난 이후 나는 여전히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를 붙잡고 있었다. 슬픔은 언제나 살아남은 자의 몫이지만, 그가 남긴 노래들로 인해 그 슬픔은 추억으로 승화되었다.

갓 서른을 넘기고, 그가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김광석.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우리가 그를 떠나 보낸 것도 아니고, 그가 우리를 떠나고 싶었던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점점 우리들 마음 속에 스며들고, 여전히 우리들은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내 청춘은 머무르지 않지만, 김광석의 노래 속에는 오롯히 살아 있다. 내 첫사랑의 추억이 그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 젖어 있듯이. 때문에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죽는 날까지 내 청춘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김광석이여, 나의 청춘이여!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물 흘러 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어느 하루 바람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단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을…

문국현, 무당이 되고 싶었던 후보

문국현, 무당이 되고 싶었던 후보

문국현이 드디어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다. 그는 애초부터 단일화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단일화 얘기를 꺼내면서 갈짓자 행보를 보인 것은 자기에게 쏟아질 시민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에 불과한 것이었다.

단일화를 하든, 안하든 그것은 문국현이 결정할 문제다. 그런데 내가 문국현을 다시 보게 된 이유는 그가 단일화 결렬을 선언하면서 얘기한 전혀 문국현스럽지 못한 이유 때문이다. 그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운운하면서 씻김굿을 하지 않은 단일화는 의미없다고 얘기했다.

문 후보는 8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자원봉사자 전체 회의에서 “정동영 후보 쪽이 지난 4~5년의 과오와 오만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절규를 씻어줄 수 있는 해원(解寃)의 살풀이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끝내 거부했다”며 “남은 12일 동안 경제 대 경제로 싸워 이명박 후보를 이기자”고 말했다.

이날 문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은) 씻김굿 없이 절대 국민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 씻김굿의 과정을 스스로 못한다면 정책토론을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 하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국현, 단일화 결렬 선언, 오마이뉴스]

씻김굿을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가? 그 씻김굿이라는 것이 6번의 TV토론인가? 단일화를 위한 TV토론은 선관위가 이미 안된다고 얘기하지 않았는가. 때문에 그것을 주관하겠다고 나선 방송사도 하나도 없거늘 도대체 어떤 씻김굿을 원하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아마 문국현 자신도 무슨 씻김굿을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문국현의 참여정부 실패론에 전혀 동의할 수 없을 뿐더러, 그것을 가지고 단일화 협상을 하지 않겠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정말 비겁한 행위라 생각한다. 지금의 전선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이루어놓은 지난 10년을 이어나갈 것인가 아니면 아니면 다시 10년전으로 돌아갈 것인가라는 지점에 놓여 있다. 물론 민노당 같은 좌파 진보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지금 이 전선에서 변수가 안된다. 문국현은 민노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나라당도 아니면서 애매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문국현이 처음 정계 진출을 선언했을 때는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했었다. 그러다가 지지율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자, 결정적인 순간에 반노로 돌아서버렸다. 결국 그 사람의 색깔은 그 사람이 어느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문국현이 2002년 노무현과 같은 바람을 못일으킨 것은 그의 선명성 부족과 역사의식의 부족 때문이다. 자기가 도대체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지금 정치 전선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정치 초보의 어리버리한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문국현은 그냥 유한킴벌리의 경영자로 남았어야 했다. 문국현이 정치인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국회의원 정도야 소화할 지 몰라도 문국현이 대통령이 될 만한 그릇은 아닌것 같다. 물론, 이것은 나머지 11명의 후보에게도 다 해당되는 말이다.

단일화든 하든, 안하든 그것은 문국현 진영이 결정할 일이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만에 하나라도 단일화 실패 때문에 정권이 교체된다면 그 책임의 대부분을 문국현 진영이 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명박 지지도는 적어도 10% 이상 허수가 끼어있다. 이것은 지난 한나라당 경선 때도 이미 확인된 사항이다. 경선 전에 각종 여론조사는 이명박이 10% 이상 이긴다고 나왔지만, 결국 실제 투표에서는 박근혜가 이겼다. 지금의 여론조사는 정치적인 음모가 있든, 아니면 조사방법의 오류든 간에 민심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문국현과 정동영이 어떤 식으로든지 합치면 일말의 희망이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분열되는 쪽은 이회창과 이명박이기 때문이다. 문국현이 정말 씻김굿을 하는 무당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고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이라면 정동영과 단일화해야할 것이다. 정말 정권을 이명박 같은 부패 후보가 가져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단일화해야 한다.

문국현이 계속 허접한 참여정부 실패론을 들먹인다면 단호히 그의 이름을 지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당이 되고 싶었던 후보로만 기억되다가 사라질 것이다.

서태지, 신화가 되어버린 아웃사이더

서태지, 신화가 되어버린 아웃사이더

서태지 음악은 머물지 않는다. 늘 변화하며 새로운 것을 찾아간다. 그 새로운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비켜서지 않는다. 피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맞선다. 그리하여 그의 음악은 비겁하지 않고, 늘 생동감이 넘친다.

서태지는 절정에 있을 때 떠나갔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그는 그 엄청난 음반 4장을 내고는 훨훨 날아갔다. 가수들에게 인기는 일반적으로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은 정치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것 같다.) 때문에 그런 선택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하러 떠났다. 그가 떠났을 때 많은 대중들이 아쉬어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이기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상에서 홀연히 사라질 줄 아는 그의 선택이 아름다웠다.

어떤이는 그를 문화 권력, 또는 문화 대통령, 심지어는 문화 혁명가라 말한다. 그가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그런 평가가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웃사이더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처음부터 달랐고, 그 다름이 인정되어 주류가 되어갈 무렵 그는 또다른 아웃사이더의 길을 택했다. 익숙해짐을 견디지 못하고, 주류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못했던 그는 태생이 이방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떠남으로 해서 그는 신화로 남았다. 나는 그가 그것을 의도했는지, 안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김광석이나 유재하와 같이 서태지도 신화가 되었다. 김광석, 유재하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지만, 서태지는 가끔씩 새로운 음악을 들고 온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태지를 싫어하는 이들은 그의 이런 행태를 두고 “고도의 숨바꼭질 마아케팅” 이라고 폄하하지만, 서태지와 그런 잔머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혼자 하다가 남들에게 내보일만하다 싶으면 내놓는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모든 것이 계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서태지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말자. 그가 침체된 우리나라 대중가요 시장을 구원할 구세주도 아니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울분을 달래줄 영웅도 아니다. 그는 그저 그가 하고싶은 음악을 하는 조금 특별한 아웃사이더일 뿐이다. 나는 그가 좋다. 이방인으로 사는 것을 즐기는 그런 그가 좋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내 가슴을 울린다. 15년 전에 느꼈던 그 감성이 아직도 그의 음악에 살아있다. 나는 그가 꺽기거나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가끔씩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것 뿐이다.

이제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 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썩 모두를
먹어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매일까
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 이젠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 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겉보기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체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건 좀 더 솔직해봐 넌 알수 있어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 이젠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이데아>

이번에 내 놓은 교실이데아 동영상은 Pink Floyd의 The Wall을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의 그 어떤 가수가 이렇게 외칠 수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그의 귀환을 환영한다. Welcome back!

고승덕, 한국 교육 실패의 전형

고승덕, 한국 교육 실패의 전형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전략팀장으로 맹활약하고 고승덕 변호사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경기고, 서울법대를 나오고, 그 어렵다는 고시를 세 가지나 합격했으며 (그것도 수석, 차석 또는 최연소 등으로 합격했다 한다), 미국에서 내놓으라 하는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대학 등에서 학위를 한 우리나라 법조계를 대표할만한 차세대 주자였다. 또한 방송출연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으며,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팬페이지를 만들었고,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이 25000명이 넘었다.

학력이나 경력으로 봐서 이 고승덕 변호사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부모들의 로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화려한 프로필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이니까. 그가 쓴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라는 책이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정도니 그가 얼마나 많은 기대와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만 하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이명박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수십 가지 비리 의혹으로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신문들의 올인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 이명박의 충견으로 들어갔다. 돈과 명예와 인기를 누렸으니, 이제 남은 것은 권력 뿐인가. 고승덕은 이명박이 연관된 BBK 주가 조작 사건에 관련된 거의 모든 법률적인 문제에 대한 변명과 대변을 하고 있다. 그의 50년 화려한 경력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고승덕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똑똑한 수재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아무런 역사 의식도, 사회 의식도, 도덕적 가치도 판단하지 못하는 팔푼이 같은 모습이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교육, 우리나라 부모들이 추구하는 교육, 공부만 잘 하는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다시 깨닫는다.

고승덕에게서 우리 교육 실패의 전형을 본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지 공부만 잘 하는 수재들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만을 위해 불나비처럼 불 속으로 뛰어드는 그런 영악한 사람들이 아니다. 정말 잘 산다는 건 무엇인가, 고승덕을 보면서 아이들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도 이명박에게는 달려가지 않을 것 같다.

신정아가 마녀가 된 이유

신정아가 마녀가 된 이유

중세 유럽에서 마녀로 의심받았던 여자들은 손발이 묶인 채로 물에 던져졌다. 물에 떠오르면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에 쳐해졌고, 물에 가라앉으면 마녀의 혐의를 벗었다. 마녀의 혐의를 벗었다 해도 물에서 살아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불에 타 죽든, 물에 빠져 죽든 마녀로 한 번 찍히면 쉽게 살아날 수 없었다. 그렇게 죽은 여인들이 수 만명에 달했다.

신정아가 마녀가 된 이유는 언론이 그를 마녀로 찍었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수 많은 의혹과 혐의로 그를 마녀로 만들고 있지만, 정작 밝혀진 사실은 학력을 위조했다는 사실 한 가지다. 학력을 속여 교수를 한 사람이 신정아 말고도 여럿이거늘 왜 하필 신정아만 마녀가 되었을까. 언론들은 마녀가 필요했고,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여자 신정아는 언론들의 구미에 정확하게 부합했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언론들은 첫째 이명박의 비리 의혹을 어떡해서든지 감추어야 하고, 둘째 이명박의 대척점에 서 있는 현 정부를 어떡해서든지 도덕적으로 붕괴시켜야 했다. 게다가 신문까지 잘 팔아먹을 수 있는 선정성이 있다면 금상첨화였겠지. 신정아는 이러한 언론들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먹이감이었다.

젊은 여자의 담대한 거짓말이 이명박의 노회한 거짓말보다는 휠씬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언론들은 그것을 노리고 연일 대서특필했다. 더군다나 신정아가 청와대 고위 공직자였던 변양균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언론들은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구나. 조중동문 편집국은 쾌재를 불렀겠지.

학력 위조 이후 신정아가 저지른 실수 중 하나는 한나라당 인사들과 친분을 맺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신정아가 한나라당 의원들과 친하게 지냈다면 그는 마녀로서의 가치를 급속도로 상실했을 것이다. 정형근의 “호텔방 묵주 사건”처럼, 최연희의 “술집 주인인줄 알았다” 처럼.

오버에 오버를 거듭하던 언론들은 마침내 신정아 누드 사진 게재로 완전히 선을 넘었고, 이명박은 신문사 편집국장들을 모아 놓고 마사지걸 고르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전수했다. 신정아는 몸로비도 마다하지 않는 마녀가 되었고, 이명박은 마사지걸도 세심하게 고르는 지혜로운 대선후보가 되었다.

중세 카톨릭이 자신들의 부패를 감추고 공포 사회를 조장하기 위해 마녀 사냥을 했다면, 21세기 대한민국 언론들은 이명박을 지키기 위해, 특권 사회 부활을 위해 신정아를 사냥하고 있다. 이것이 신정아 사건의 본질이다.

신정아가 마녀의 딱지를 뗄 수 있을까. 부패한 언론이 건재하는 한 쉽지 않아 보인다.

아직은 문국현보다 유시민, 이해찬, 한명숙이다

아직은 문국현보다 유시민, 이해찬, 한명숙이다

오마이뉴스가 문국현에 올인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대표 오연호는 김헌태라는 여론조사 전문가의 입을 빌어 그들 또한 김헌태와 마찬가지로 문국현에 올인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하기야 조중동이 이명박 같은 이를 대통령 만들려고 발벗고 나섰는데. 살아 온 이력으로 봐서 문국현은 이명박과는 비교가 안되는 인물이다. 문국현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예의가 있는 사람이다. 그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보여 준 리더십과 성과는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우리 경제계에 좋은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지지를 아직은 유보한다. 문국현은 유능하고 인간적인 CEO 그 이상은 아니다. 그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업의 수장으로서 일을 잘 꾸려 왔지만, 나라의 대표로서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은 경험이 전무하다. 게다가 나는 그의 팀이 누구인지 알 지 못한다. 단기필마로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없지 않은가.

문국현이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이 되고자 했다면 더 먼저 움직였어야 했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국가 경영에 대한 경험을 쌓든지 아니면 보궐 선거라도 출마해서 그의 능력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도 아니었으면 민주신당의 경선에라도 참여해서 그가 기성 정치인들을 어떻게 요리할 수 있는지 실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그는 넘어서지 않고 피했다. 극복하지 않고 우회했다. 지금의 문국현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지금은 문국현보다는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이다. 이 세 사람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은 한 몸이다. 세 사람은 이명박을 꺽기 위해서 변신 합체할 것이다. 셋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지만 결국 이 세 사람이 차기 정부를 이끌 것이다. 노무현이 뿌려 놓은 씨앗을 그들이 거둬들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최악의 후보를 선택했다.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고 후보가 되었다면 한나라당이 정권을 가져갈 확률이 거의 100% 였을 것이다. 박근혜가 후보가 되었다면 정권 교체 확률이 적어도 70%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으로 한나라당은 정권을 가져갈 수 없다. 이명박은 지난 대선 후보인 이회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구 보수 세력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 후보였다는 이회창으로도 한나라당은 두 번이나 실패했다. 아무리 조중동의 막강한 지원사격이 있다 하더라도 이명박으로는 힘들다.

나는 문국현이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과 한 팀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정권을 재창출하길 바란다. 그 팀 속에서 문국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마음껏 보여 달라. 그 팀 속에서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라. 그런 연후에 나라의 대표로 나서길 바란다. 내가 지금 노무현의 열렬한 지지자이듯이 그 때에는 당신의 열렬한 지지자가 될 것이다.

문국현이 오연호나 김헌태의 “피를 끓게” 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아니다. 문국현의 선택을 지켜 볼 것이다.

지지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이명박

지지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이명박

지지율 1위라는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후보 이명박의 비리 의혹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고 있다. 어제는 박영선 의원이 주가 조작에 대한 의혹을 발표했고, 오늘은 김혁규 의원이 위장 전입 의혹을 제기했다. 병역 문제, 선거법 위반에 관련된 문제, 김유찬이 제기한 살해 협박 문제, 출생지에 대한 의혹, BBK 문제, 수천억원 대의 위장 재산 문제 등 가히 비리 의혹의 종합 선물 세트라 할만하다.

우리나라 언론이 제대로 되었다면 이 정도의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은 선거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출마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그 잘난 하이에나 언론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 이명박은 지지율 1위 후보라는 허울을 쓰고 오늘도 한반도 대운하 삽질 프로젝트를 외치고 있다.

이명박 지지자로 보이는 한 블로거는 BBK 김경준과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문건의 친필 서명이 조작이라며 그간의 이명박 서명이 담긴 사진들을 모아 그에게 제기된 의혹을 풀어보려 했다. 내가 보기에 그 서명들은 모두 같아 보였지만, 그 블로거는 서명이 다르다고 강변했다.

이 블로거가 돈을 받고 이런 일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순수하게 그를 지지하기 때문에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안쓰러웠다. 지지자들이 비리 의혹을 풀기 위해 서명 대조 작업까지 벌여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그는 자랑스러워 할까. 그 문건을 차치하고라도 논리적 정황으로 제기되는 여러 비리 의혹에 대해 그는 정말 이명박이 깨끗하다고 믿는걸까. 그 블로거는 아니라고 얘기할 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비참해 보였다.

이명박은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정치공세, 공작정치라는 말로 일축하고 있고, 그를 비호하는 언론들은 그의 말을 받아쓰기하고 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법이고,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명박의 밑천은 TV토론 한 번이면 드러나게 되어있다. 이명박은 그의 지지자들을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이 쯤에서 그만두기 바란다. 언론이 얘기하는 지지율 1위라는 보도를 믿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언론 믿어서 망한 사람 여럿이다. 이명박의 지지자에게도 충고한다. 이명박은 당신이 그런 노력을 들여 보호하고 지지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당신의 순수한 에너지를 함부로 낭비하지 말라.

한나라당의 비극은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사람들이 대선 후보로 유력시 된다는 데 있다. 전혀 본선 경쟁력이 없는, 비리 의혹으로 똘똘 뭉친, 비전도 철학도 전략도 없는 이런 인물들이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는 데 이들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막상 본선이 시작되면 한나라당과 언론들은 극도로 당황할 것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로는 정권을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을 본선이 시작되고야 알 것이지만, 그 땐 이미 늦었다는 걸~. 아마 회창옹이 다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손학규의 탈당으로 한나라당의 집권은 물건너 갔다.

지지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정치인은 정계를 떠나야 한다. 이것이 진리다.

김훈, 천박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김훈, 천박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소설가 김훈이 몇몇 인터뷰에서 드러낸 역사 인식과 사회 의식은 천박한 것이었다. 그토록 얇은 인식을 그토록 두텁게 말할 수 있는 그의 위악과 용기가 흥미로웠고, 그 두터움 속에 언듯언듯 비치는 그의 여림이 좋았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그의 독특한 무의식적 확신에는 그냥 외면해 버리기는 쉽지 않은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안팎을 일관되게 살지 못하는 회색지대 사람들의 죄의식일 수도 있고, 열등감일 수도 있는데, 나도 그 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므로 (생각은 다르지만, 삶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끄러우면서도 웃기는 일이다.

문장으로 보면 김훈은 황석영, 조정래와 더불어 우리 시대 최고라 할 만하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면서 날카롭지만, 그 문장들이 섞이면 때로는 맞서면서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멀미가 날 정도로 현란하게 휘돌기도 하며, 때로는 너무 건조하여 바스러지기도 한다. 또한 문장과 문장들이 뱀같이 서로의 꼬리를 물어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한다. 특히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같은 역사 소설에서 그의 섬뜻한 문장은 더욱 빛이 난다.

그가 기자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된 것이 우리 문학을 위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그의 소설은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문장을 지닌 소설가의 역사 인식이 지극히 얇은 것은 신이 너무도 공평하거나 아니면 신이 인간을 질투한다는 사실의 반증일 것이다.

그가 한겨레신문 기자 때 쓴 “밥에 대한 단상”은 내가 신문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칼럼이었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점심을 먹는다. 외국 대사관 담 밑에서, 시위군중과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전경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는다. 닭장차 옆에 비닐로 포장을 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먹는다. 된장국과 깍두기와 졸인 생선 한 토막이 담긴 식판을 끼고 두 줄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신병들이 식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잔반통을 치운다.

시위군중들도 점심을 먹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준비해온 도시락이나 배달시킨 자장면을 먹는다. 전경들이 가방을 들고 온 배달원의 길을 열어준다. 밥을 먹고있는 군중들의 둘레를 밥을 다 먹은 전경들과 밥을 아직 못 먹은 전경들이 교대로 둘러싼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거리의 식당에서 기자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다. 다 먹고나면 시위군중과 전경과 기자는 또 제가끔 일을 시작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관찰자인 기자가 써낼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짧은 글 속에 다 들어가 있다.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칼럼이다. 이 칼럼에서 묘사된 장면은 후에 <배웅>이라는 단편 소설의 한 장면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 소설보다 이 칼럼이 훨씬 낫다.

그가 보여준 문장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감당하지도 못하는 말을 줄이고,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같은 문장들을 보여 달라. 그의 인식에는 동의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지만, 그의 문장은 계속 보고 싶다. 그의 건필을 기원한다.

<덧글> 김훈의 한겨레 쾌도난담에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나라는요, 언론이 탄압을 받아서 문제가 생기는 건 절대 아니고, 그 반대야. 너무 붙어먹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언론의 자유? 말도 안 돼. 내가 엠네스티 언론인위원회 위원장이거든. 그 발족식에 가서 내가 물었어. 언론인위원회가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 그러니까 기자들이 보도에 관해 박해받을 때 연대해서 정권과 싸우는 게 목적 중 하나라는 거야. 너희들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어. 누가 박해를 받아. 그때 밀가루 파동 나서 박해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고. (웃음) 문제는 붙어먹어 생긴 거야.

기자에 대한 그의 인식에는 동의한다. 현 시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