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부른 “놈현”이라는 애칭

한겨레가 부른 “놈현”이라는 애칭

2주 전쯤 한겨레신문은 “DJ 유훈통치와 놈현 관장사를 넘어라“라는 글을 올렸고,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정론지를 추구하는 언론이 서거한 전직 대통령을 두고 “놈현”, “관장사” 같은 표현을 쓸 수 있는지 분노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한겨레는 편집국장 성한용의 명의로 사과문을 올린다. 성한용이라는 자가 한겨레 편집국장으로 있는지 나는 이때 처음 알았으며, 성한용이라면 능히 “놈현”이라는 표현을 쓰고도 남을 작자임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내놓은 사과문에는 어떠한 진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한겨레에 대한 기대를 진작에 접은 터라 분노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글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 필화사건은 월드컵에 묻혀버렸고, 그런대로 마무리가 되는 듯 했는데, 한겨레는 꽤나 속히 뒤틀렸던 모양이다. 한겨레는 오늘 “놈현”을 “놈현”이라고 불렀는데 뭐가 잘못이냐, 오히려 사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식의 칼럼을 올렸다. 이 칼럼을 쓴 언론인 김선주는 자신은 “놈현”을 노무현의 애칭으로 부른다고 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이 여자도 성한용과 한통속임을 고백했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놈현’이라고도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쪽에서 놈 자와 현 자를 합해서 악의적으로 만든 말이라 할지라도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다. 나 나름의 애칭일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불편하고 길고 어감상 매끄럽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도 ‘명바기’ 혹은 ‘이명바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김선주, 말조심 글조심 … 어렵네]

이런 글은 한마디로 개같은 글이다. 아니 개만도 못한 글이다. 반노들이 만들어낸 악의적인 말이라고 해놓고도 따지지 않는단다. 나름대로 애칭이라고 버젓이 일간지 지면에 써갈긴다. 김선주는 더 나아가 “놈현 관장사”라는 제목이 정곡을 찌르는 적절한 제목이었다고 말한다.

재론되는 것을 어느 쪽도 원하지 않겠지만 나로선 이 사건의 발단에서 마무리까지가 적절했다고 볼 수 없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정곡을 찔렀네…제목 잘 뽑았네’ 했던 것이 첫 느낌이었다.

요즘 한겨레는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한겨레를 “한걸레”라고 얘기한다. 나도 한겨레에 대한 비판 글을 많이 썼지만, 한번도 한겨레를 “한걸레”라고 표현한 적은 없다. “한걸레”라는 것이 결코 명칭이나 애칭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지난 20여년간 진보 진영의 정론지라는 타이틀을 독점해 놓고, 그들은 아무런 성과도 업적도 내놓지 못하고 오로지 조중동 따라하기만을 반복한다. 그들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치졸함은 조중동 못지 않다. “놈현 관장사”라는 제목을 붙이고 성한용과 그 일당들은 얼마나 낄낄거렸을까. 그들의 비아냥 섞인 미소가 눈에 선하다.

그들은 노무현의 죽음을 “관장사”로 비하했다. 그런데 정작 노무현의 죽음을 팔아먹기 바쁜 족속들은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같은 자칭 진보 정론지들이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의 죽음을 그들은 “놈현 관장사”로 표현했다.

참여정부 시절 성한용과 그 일당들의 분탕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도 그들은 끝없이 노무현을 조롱했고, 노무현이 죽고 나서도 그들의 비하와 저주는 그칠 줄 몰랐다. 끝없는 횡설수설과 궤변도 그들의 위선을 감추지는 못했다.

김선주는 박정희는 “박통”으로 부를 수 있지만, 노무현은 “노통”이라고 부를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놈현” 또는 “노무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단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영어 이니셜이 아니라면 ‘박통’처럼 부르기 쉽고 적절한 이니셜을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바보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놈현’ 혹은 ‘노무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

영어 이니셜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도 그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DJ라고 부르고, 이명박을 MB라 부른다. 김대중을 때중이라고 부른 적도 이명박을 쥐박이라고 부른 적도 없지만, 노무현에 대해서는 “놈현”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는 개만도 못한 족속들.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 진보 정론지임을 자처한다.

이제 한겨레에 대해서는 분노할 필요도 비판하거나 비난할 필요도 없다. 분노나 비판이나 비난은 어느 정도 관심과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그들이 짖어대면 그냥 개만도 못한 족속들이 짖어대는구나 하고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냥 제 풀에 지쳐 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정론지는 이제 “딴지일보” 하나 남았다. 주간지로는 “시사인” 정도일 것이고.

<덧붙임>

참여정부 시절 한겨레의 분탕질을 정리한다. 아래 글들은 한겨레를 읽고 열받아 쓴 글들이다. 이제는 더이상 열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6 thoughts on “한겨레가 부른 “놈현”이라는 애칭

  1. 김선주는 자신이 말한 소위 ‘애칭’을 합리화하기 위해, 은근슬쩍 명바기를 가져다 씁니다. 하지만 이도 잘못된 것입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사와 댓글은 공유해서는 안 되는 언어가 있습니다. 한겨레는 결국 자신들의 글을 기사가 아닌 댓글로 봐달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서해성이란 작자는 ‘상징’이라 했습니다. 스스로 소설가라고 우기는(그가 썼다는 소설이 발견되면 제발 알려주세요) 이 자는 도대체 상징이 무엇인지 아는지, 소위 편집위원 김선주란 작자는 ‘애칭’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제발 사전을 찾아보고 썼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가 조중동을 닮아간다고 하면 조중동이 화를 내지 않을까요? 내용에 관계없이 기사에 써야할 언어와 쓰지 말아야 할 언어는 알고 있지 않나요, 조중동은!
    조중동은 찌라시신문이지만 한겨레는 기사가 아닌 댓글을 소위 통쾌하고 짜릿한 글이라 착각하는 한걸레 댓글모음일 뿐입니다.
    오래전 제대로된 언론을 후원하겠다는 마음으로 산 한겨레신문 주식이 어느 순간 걸레 재생공장 주식으로 바뀌어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헐~”입니다. 조중동 신문의 댓글을 기사로 표절한 한걸레의 과감한 “애칭질”과 “상징질”에 두 손 두 발 다 듭니다.
    “한걸레, 유 윈!!!!!”

    1. 성한용이란 자가 편집장이 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명박이 취임하자 성한용이 내지른 일성이 “이명박을 돕자”였지요. 이명박보다도 더 비열하고 가소로운 자들이지요. 이런 자들이 진보입네 하고 있으니, 이명박이 안심하고 삽질하고 있는 겁니다.

      한겨레의 이런 꼴을 진작에 알아버렸으니, 뭐 서운하지도 않습니다. 요즘은 그냥 무시해 버리고 맙니다.

  2. 유행했던 말로 “비겁한 변명”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조금 더 보태자면 “치졸한 변명”이구요.
    쪽팔리지는 말아야지…-_-
    말씀하신 시사인에 대해서는 조금 조금스러운게.. 전에 1년 정기구독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기사 중 너무 어처구니 없는 글을 봐서 충격을 먹고 구독연장을 안했지요.
    지금은 종이매체는 전혀 안보고 있습니다.
    국내유일의 정론지 딴지일보가 있다는걸 까먹고있었는데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1. 시사인에 어떤 기사가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 알려주십시오. 저도 지금 몇 년째 구독하고 있는데, 그들이 또 한겨레 같은 짓을 한다면 더 이상 구독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1. 노무현 대통령 추모 특별판이었고, 편집국장의 편지가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극우상업지의 행태와 동일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까댔던 시사인의 반성없는 추모 행위가 심정적으로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친구에게 배신당하면 더 아픈 것 처럼 말이죠.. 당시에 시사인 게시판에 들어가서 뭐라뭐라 쓰기도 했었는데ㅋㅋ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감정이 격해 과민반응을 보인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땐 많이 슬프고 아쉽고 그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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